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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주일예배


2017-01-22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01-22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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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은 벗어난 삶_요한일서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_요한일서1:3-4’

 

오늘 아침 교회에 올 때 거울을 얼마나 보셨나요? 우리는 사람들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는 반듯하게 꾸미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릴 생각은 거의 안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그저 화나는 대로, 짜증이 나는 대로, 슬픈 대로, 원망하는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옵니다. 드러내고 안 드러내고는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외모는 다 드러나니 깔끔하게 다듬지만,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은 완전 엉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속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여태 거기에 속아 살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숨기는 데 연연하며 살았습니다. 숨기고 감추고 누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국의 정서가 더 그렇습니다. 체면이나 겉치레가 중요합니다. 속은 어떻든지 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큼은 자신을 반듯하게 꾸며야 합니다.

작년에 망콴에 처음 갔을 때 중풍병에 걸려서 누워있는 환자가 있다고 하여 심방을 갔습니다. 갔더니 한 청년이 정말 오랫동안 중풍병으로 누워있었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도 중풍병이 오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병들었는지 보세요. 이번에 망콴마을에 가서 또 그 집에 갔을 때 작년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정말 제가 마음으로 그 집을 기도했다면 일 년 동안 준비했겠지요? 의약품이라도, 하다못해 뭐라도 들고 가야지요. 너무 억장이 무너진 것은 그 동생들이 전부 중풍병이 와서 누워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의약품을 준다고 해결될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 마음을 기뻐하시지 않았구나 그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 산다고 해놓고 실제 제 마음은 다른 것을 사모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지요? 말씀도 매일 묵상합니다. 예배도 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마음에 감사와 행복이 없을까요? 신앙생활은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

 

1. 죄에게 속지 말라_요한일서1:5-10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_요한일서1:5-10’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기 위해 첫 번째 죄에게 속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누구에게요? 하나님에게요. 빛에게 드러내야 합니다. 목사에게 드러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로 가면 우리 죄를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됩니다. 빛 가운데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니 죄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왜 회개하라고 합니까?’ 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의 과거, 현재, 미래 문제까지 다 해결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걸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왜 해야 합니까?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이것입니다.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세수는 왜 매일 하십니까? 어차피 또 밥 먹을 건데 양치질을 왜 하십니까? 세수하고 양치하면 시원함과 상쾌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늘 씻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왜 씻어야 해? 하면서 일주일, 한 달을 안 씻고 살아보십시오. 아마 누가 옆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개는 빛 가운데로 자꾸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지만 빛 가운데로 자꾸 가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십니다. 빛 가운데로 가는데 조건이 없습니다.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회개를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변화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세수 안하십니까? 목사라고 양치도 안하고 삽니까? 그렇지 않으면 질병에 걸리겠지요.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죄가 자꾸 우리를 공격하고 유혹합니까?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수도원의 수사였을 때 성경을 읽다가 지옥에 대해 믿어졌답니다. 그래서 조금만 죄를 지으면 고해성사를 하러 갔는데 신부가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와서 죄를 지었다고 하니 귀찮아 하면서 다음엔 죄를 좀 몰아서 가지고 오세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루터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 곧 이미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것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용서받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이신칭의의 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신칭의의 교리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적당히 죄짓고 살고, 미워하고 살고, 싸우고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입니다. 루터가 와서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어쩔 수 없어가 아닙니다. 루터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루터는 매일 성경을 읽고 주님과 사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교리적인 신앙생활에만 집착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침울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입니다. 요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꾸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과 사이에 뭔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에게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2. 세상에 속지 말라_요한일서2:12-17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_요한일서2:12-17’

 

두 번째 세상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삶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망콴마을에서 사랑하였으나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틀린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 삶이 변화되는 것은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전히 세상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까 그것으로 만족해.’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다보면 너무 그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또 두렵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손해 보는 거 아냐?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거 아냐? 예수 믿고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육신은 어쩔 수 없잖아. 세상 식대로 사는 거지 뭐.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야.’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정말 믿는가? 세상을 살아갈 때 유혹이 크지만 지옥의 실상이 훨씬 더 비참합니다. 사실 세상이 대단해보이거나, 세상의 유혹이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 하나님을 작게 생각하고 또 교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씨앗를 몇 개씩 나누어드리면 어떤 분은 그걸 가지고 가서 심는 분이 계시겠지요. 그런데 어떤 분은 책상위에 씨를 올려놓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씨가 새싹이 됩니다. 그러나다 작은 나무가 됩니다. 열매도 맺도록 자라겠지요. 똑같은 씨앗인데 이렇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씨앗인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책상위에 올려두고 사니 삶이 늘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씨를 심고 키우면 그 씨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내 삶이 변화됩니다. 어떻게 키우는 것입니까? 오늘처럼 예배드리고 말씀도 듣고 기도 생활도 시작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신 것과 충만은 다른 말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3. 자신에게 속지 말라_요한일서3:24,4:1-6

 

세 번째 자신에게 속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문화에서 자랐습니다. 성도가 몇 명 쯤 되면 목사는 이렇게 해도 된다. 조직에서 위에 있으면 이런 말, 행동을 해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도 헷갈렸습니다. 오히려 어떤 열등감이 저에게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비교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평생 짐이었습니다. ‘남보다 뛰어나고 잘나고 실력 있어야 쓰임 받는 거야.’ 혹시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헌금 좀 많이 하면 힘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빠지고 그렇습니까?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이것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_요한일서3:24’

 

사람들은 자꾸 자기 자신에게 속습니다. 어떤 책에 보니 어떤 집사님이 목사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 하니 그러지 말라고 자기의 간증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가 났다고 합니다.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고 피곤했는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정말 싫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아이만 보면 짜증이 났습니다. 왜 이 아이가 태어나가지고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매일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밤에 자지러지게 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고 너무 심하게 우니까 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어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 품에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품에서 죽은 아이를 보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아버지로부터 사랑 한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왜 이 아이에게 사랑 한번 주지 못했을까요제가 그 글을 보는데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든 기준, 내가 만든 생각의 틀, 내가 만든 상처, 내가 만든 수준 같은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더 크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_요한일서4:1-4’

 

그래서 요한사도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영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분을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그분은 세상보다 크신 분입니다. 나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렇게 늘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내 안에 실제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된 것을 믿지 않습니다. 믿는 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시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묵상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글 몇 자 써서 나누는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남아서, 목사여서 매일 묵상일기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제 자신에게 속아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제 안에 오신 예수님이 주인 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고 싶고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일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걸 점검하기 위해 묵상일기를 씁니다.

 

. 사랑의 힘_요한일서4:11-12,16-2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_요한일서4:11-12‘

 

1907년 한국 교회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도 말씀이 전해지고 예수님을 많이 믿었지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기 시작한 때는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두 집 살림 하던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회개하고 자기 생활을 정리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하인은 주인의 돈을 가로채고 부정한 일을 했다는 고백을 공개적으로 했고, 또 주인이 그 하인을 용서해서 받아들이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셔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 사랑을 체험하고 난 후 이상하리만큼 제가 변화됨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도사를 하면서 중고등부가 부흥될 때 사람들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흥하냐? 시스템 좀 배우자, 말씀이 좋은가, 교사들을 어떻게 움직이냐 제가 속으로 그런 거 아닌데 하면서 시스템을 주고 그랬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흥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예배드리게 할까? 그 이면에는 다 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한명 왔는데 딱봐도 문제아 같은 아이가 온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데 제가 중고등부 물들이면 어쩌지? 말씀이나 듣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한두 번 나오고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는 은혜 받고 헌금위원을 하는데 제가 얼마나 회개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참 나쁜 놈이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사랑하시는데 나는 사랑하지 못했구나. 내 힘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도록 은혜를 받아야 하는구나. 내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끊어졌구나. 하나님과 사랑하지 못하고 있구나. 사랑하면요 아이들이 압니다. 아이들이 좋아집니다.

가스펠 교회를 만나고 여러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면 너무 예쁘잖아요. 행복하지요. 매일 밤이면 한명, 한명 두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서 진짜 변화된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결혼할 대상이 있는데 여전히 옛 여인을 사랑하면 될까요? 저는 구원받은 증거가 사랑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지만 하나님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그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교회를 사랑하는 것의 차이도 엄청납니다. 저는 예전에 견딜 수 없는 화가 제 안에 있었습니다. 화는 절대 일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일이 잘 안되면 엄청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신앙생활 할 때입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니 내가 좋아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_요한일서4:18-20’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살면서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성격이 불같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사람을 받아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사진을 보니 이마에 혹이 크게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우리는 문제 많은 가정에, 문제 많은 교회에, 문제 많은 세상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이기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다.

 

주님이 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깨닫길 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성육신하셔서 죄와 저주, 지옥에서 구원하여 주신 그 사랑을 깨닫길 원합니다. 그 사랑으로 죄에서 벗어나며, 세상을 이기고,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 받기만 하지 않고 이제 나도 주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로 살아 이 땅에 그 사랑 전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