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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7-02-1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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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신앙은 깨어있음입니다

본 문 :

요한복음 18:28-40

오승주 목사

 

.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들_창세기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_창세기11:1-4’

 

지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향을 향해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주일 강단 때 마다 그것을 실제화 하는 말씀들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많은 분들이 믿음의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간증을 기록하여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성경을 매일 한 장 읽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습니다.’ ‘목사님 묵상일기를 기록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목사님이 묵상일기를 적는 것을 왜 이렇게 강조하시나?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니 한두 가지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맞아? 내가 이렇게 믿음이 없었나.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믿음을 가지도록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도록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요찬양예배 때 말씀을 나누었지만, 문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우리를 압박하는지 모릅니다.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바벨탑사건을 보세요. 도시를 이루고 바벨탑을 쌓는데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쌓습니다. 그런데 호흡이 기가 막힙니다. 모든 지혜와 능력이 다 동원됩니다. 단 한사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또 그들도 흩으셨다 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 쓸모없는 일에 그들은 인생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멋지고 아름다운 믿음의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주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빌라도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 빌라도 같은 인생이 될 것인가

 

1. 빌라도의 양심과 야망 사이_요한복음18:29-31,19:12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_요한복음18:29-31’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을 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냐? 실제로는 빌라도는 재판 중에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름대로 예수님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습니다. ‘십자가 옆에서 십자가 처형 현장을 지휘하였던 백부장이 말한 것처럼, 저는 진실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유대 명절이 되면, 로마 총독의 권한으로 죄수 한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전례가 있는데 예수를 살리는 일에 이용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차라리 바라바라는 흉악범을 살려달라고 소리침으로 무산되었습니다. 빌라도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면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빌라도의 정치적인 야망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유대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정치적 야망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넓은 지역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을 때, 무리들은 말했습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_요한복음19:12’

 

이렇게 사람들이 소리쳤을 때, 이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빌라도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황제 가이사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하는 인정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자신이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일에 동참을 했다고 하는 말은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소리가 더 두려웠습니다. 그는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그러고는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립니다.

 

2. 놓쳐버린 기회 그리고 미래_요한복음18:37-38,고린도후서4:4,시편49:20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_요한복음18;37-38’

 

그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 또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도록 내어 드렸습니다.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떨까요?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불과 몇 년 후 로마 황제로부터 파면 당한 뒤 갈리굴라 황제 때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외면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자리인데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운 것은 빌라도라는 이름은 저주받은 이름이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지옥에서 지금까지도 성도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라는 신앙 고백 소리를 들으며 울부짖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빌라도가 그들의 불의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풀어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반역자를 살려주었다는 모함 때문에 파면을 당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역사에 남은 영원한 의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려고 빌라도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 생애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날, 이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는데 자기가 그 때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세상 욕심 때문에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_고린도후서4:4’

 

빌라도는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순간이 빌라도에게는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물었지만 진리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던지고는 유대인들을 만나러 나가 버렸습니다. 구원보다 유대인들의 소리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진리와 영생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무서운 저주의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진짜 진리에 대한 열망,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진리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_시편49:20’

 

존귀한 자리에 있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빌라도가 차라리 총독이 아니었다면, 빌라도가 차라리 사형 언도를 내릴 수 있는 재판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빌라도는 이런 저주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 인생 최대의 기회_히브리서2:1-3,9-16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_히브리서2:1-3’

 

우리 인생에는 최대의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나는 구원받았다고 구원을 등한시 여깁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구원을 받았다면 더 구원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겠지요. 저는 예배 시간이 제 인생의 최대의 기회라 생각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제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도 해야 합니다. 공부도 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도 가져야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다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입니다. 저 역시 엄청나게 그런 일들을 노력합니다. 그러나 매일 밤 주님 앞에 엎드려 구원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하는 중에, 공부하는 중에, 인간관계 속에서 구원을 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_히브리서2:9-11’

 

예수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 곧 예수님과 거룩함을 입은 자들 곧 우리가 형제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다 무시하고 영적인 세계를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내면 세상에서도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생활수준이 떨어져서입니까? 배우지 못해서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하찮은 은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로마 황제보다 하찮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을 육신적인 성공보다 하찮게 생각합니다. 예배보다 학점이 더 중요하고, 심지어는 취미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겠지요.

 

. 신앙생활은 깨어있음입니다_창세기13:18,다니엘6:10,사도행전1:14,고린도후서4:18

 

신앙생활은 깨어있음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실질적인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환경이나 가족 때문에 불평은 하고, 상처도 받았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거리가 멀게 살아갑니다. 내 영이 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3월부터 미션홈 별로 심방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집사님, 장로님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없다 보니 남전도회 예배를 한 달에 한번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화권 성도님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도와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_창세기13:18’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_다니엘 6:10’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_사도행전1:14’

깨어있기 위한 첫째는 말씀입니다. 사람 속에는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한 여러 생각과 내면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성격, 한계, 팔자, 운명으로 그냥 받아드리고 살아버립니다. 그것들이 어디서 왔을까요? 아브라함에게 그냥 살라고 했겠지요. 좋은 집안에, 좋은 환경에 그런데 그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깨어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매일 깨어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어찌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알아가는 것은 신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기준이나 가치관을 말씀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인도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무관심합니다. 성령에 대해 무관심해도 교회 다니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서 구원의 감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하루 세 번씩 감사했다고 기록합니다. 감사할 환경이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때는 성령충만과 말씀이 흥황하다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말씀에 하나님에 대한 최상급 정보가 담겨져 있다면 그것을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이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 사는 것은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힘든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 훈련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말씀과 성령인도를 위한 삶으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예배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_요한복음10:10’

더 풍성한 삶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일구어야 할 우리 인생의 여정입니다. 그런데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저만 해도 목사라 여러분과 살아가는 삶이 너무 다릅니다. 여기에는 불신자 가정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경제가 어려운 분들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인간관계가 어려운 분도 계십니다. 어린 아기를 육아한다고 힘들어하는 젊은 엄마들도 많습니다. 영적으로 치열하게 전투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 처음 믿음의 길을 가는 새가족들도 정말 많으십니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 나라의 가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진짜 고민스러웠던 것은 어떻게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갈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예배에서만큼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 누구는 교사로, 누구는 봉사하는 자로 공동체를 섬기게 됩니다. 생명이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_고린도후서4:18’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교회가 잘되어야 해, 오목사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 불안하게 만들고, 염려를 주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요한복음 말씀이 길을 안내해주셨습니다. 빌라도처럼 기회를 놓치는 인생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 바람이 몰아쳐도, 폭풍우가 몰려와도 주님을 따르는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보이는 것만 주목하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주목하며 삽시다. 그렇게 살도록 오늘도 말씀을 주셨고, 성령 하나님이 동행하시니 깨어서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서로 기도하고 돕는 한주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로 살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더 감사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구원의 감사로 바뀌게 하시며, 세상의 욕망이 믿음의 고백으로 바뀌길 원합니다. 내 삶 속에서 날마다 말씀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배로 깨어있어 빌라도 같은 인생이 아니라 베드로 같은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보잘것없는 우리 인생이었을지라도 이제 구원을 위해 쓰임 받는 빛나는 인생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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