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일시: 2014년 3월 21일
제목 : 항상 계시는 하나님
말씀 : 시편 11 : 1-7
설교 : 오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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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일, 금요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회피하지 말고 전쟁을 그리스도의 자녀 답게 도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훈련을 열심히 받는데 예배의 개념도 없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오늘 찬양에 나온 것처럼 내가 있는 현장이 거룩한 땅이 되게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 비밀이 없이 우리는 종교인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사실 금요예배와 주일예배 때도 예배를 잘 드려야겠지만 사실은 여러분의 삶이 궁금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곳에서 예배가 회복되길 바랍니다.
Ⅰ. 나의 하나님, 나의 믿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저를 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보이는 것과 달리 제 삶이 떳떳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개척을 하면서 그런 전쟁을 하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게 힘이 되는 말씀은 시편 말씀입니다. 시편은 여러 가지 체험적인 지식이 담겨 있는 풍성한 보고와 같습니다. 다윗은 생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갖가지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천상으로부터 내려온 듯한 아름다운 표현으로 그의 마음을 묘사합니다. 그가 고난을 당하거나 즐거움을 누릴 때에 곁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행위를 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같은 경우를 다윗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 그는 자신을 미워하여 그의 생명을 취하고자 하는 사울에게서 ‘산의 새처럼’ 추적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소심한 친구들은 다윗이 잡힐까 염려하여 숨기에 좋은 산으로 도망하여 사울의 진노를 피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이 강건하여 이처럼 무기력한 방법을 쓰라는 권고를 일축해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굳게 다짐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 다윗의 믿음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윗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10분을 드릴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을 외면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10분만 시간을 내라는 말씀이 있는데 왜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시간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10분 동안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 시간보다 소중할 텐데 왜 그 시간을 갖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홀로 있는 그 시간에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렵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하나님이 홀로 있는 자신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실까 하여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홀로 마주하시며 그분의 뜻에 우리를 복종시킬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무섭도록 고독한 만남을 꺼리며 모면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너무 가까이 다가오시지 않도록 하고 할 수 만 있으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마저도 피하려 하는게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서 예배는 빨리 해치우려 합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의 그런 모습을 아시고 이 나라 민족에게 위기와 재앙을 주시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_시편121:1-2’
Ⅱ. 사람들의 유혹과 조롱
1.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_시편11:1’
사람들은 우리에게 조금만 고난이 오면 세상 방법(자기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당장 제가 개척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여러분이 고난에 처해 있다면 다윗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렇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 어떻게 하지?’ ‘저 친구는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행복해 보이는 데 나는 어쩌지?’ ‘어 저 사람은 인본주의를 써서 승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하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오만하게 하여 넘어지게 할 수 없을 때에는 불신으로 우리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사탄의 계략은 얼마나 교묘한 것인지 그는 우리와 가장 친한 친구를 움직여서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고 합니다. 사탄이 펼치는 논리는 그럴 듯하여 우리가 확고하게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으면 위험스러운 일이 닥칠 때마다 겁이 많은 새처럼 산으로 도망하도록 만듭니다. 오늘 다윗의 주변 사람들이 도망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다윗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불안하고 평안함이 없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러한 말들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_시편11:2a’
다윗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악인은 활을 당겼고 화살은 시위를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새야, 새야, 날아가 도망가라! 도망가야 안전하다. 지금 곧 서둘러라. 조금만 늦어도 죽고 말것이다!"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듯합니다. 이 말은 그의 영혼에까지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고 그것과 싸우려 하였습니다. 차라리 위험을 당할지언정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을 보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둘러싼 위험은 분명 심각하고 급박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원수들은 그를 향해 비밀스럽게 화살을 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시대는 사울의 불의한 통치 아래서 공의와 율법이 기초부터 흔들리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에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그는 위험에서 벗어났고, 원수들이 쳤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며, 그를 둘러싼 불의에 대항할 수가 있었습니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_시편11:3’
저한테 이 질문을 한다면 반대로 "의인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기독교인 한명이 혼자 기도한다고 변화가 될 것 같으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데 그렇다면 의인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단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잔혹하고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고 믿음으로 약속의 실현을 받았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도망을 가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증거가 있었습니다. 물매와 작은 돌만을 가지고서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자를 물리쳤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에게서 다윗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사울 왕과 그의 앞잡이에게서도 분명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전쟁하는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정복하는가는 알지만 어떻게 도망하는가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도망을 간다면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찾으실 것입니다.
Ⅲ. 견고한 자의 노래
이 시를 견고한 자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고백이 늘 있어야 합니다.
1.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_시편11:4a’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성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논리적으로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 권력, 정치가 완전한 것인 줄 알고 가지만 그 바라던 것을 얻고 나면 이미 새로운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성공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쉼과 평화를 누릴 수 있으려면 온전함에 이르러야 하는데 온전함이라는 단어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가정, 직장, 학원에 하나님의 집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전에 가지고 있던 걱정, 근심은 그 안에 들어갔다 올 때 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것이 신앙생활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삶 속에서 예배가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주일 예배를 억지로 나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일주일 동안 불신자들과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근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2.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_시편11:5a’
하나님은 각 사람을 살피시되 마치 우주에 그 외에는 다른 피조물이 없는 것처럼 철저하게 살피십니다. 머리털까지도 세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일 예배, 금요 예배시간에만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라는 공동체의 의미가 크지만 항상 계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온전히 바라보시며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의인을 감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해보고 있는 것 같고 억울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것을 다 아시고 우리가 10분 시간을 내는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것을 나누면서 사는 것고 다 아시며 주를 위해 내 인생을 내어 놓은 것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루 10분의 시간도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그만 하라고 할까봐. 하나님이 바꾸라고 할까봐.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관철시키실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간에 모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잠히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비밀을 소유한다면 머지않아 영혼은 풍성하게 채워질 것이고 새롭게 살아날 것이며 새 힘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는 영원한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체험해야 할 단계가 있다면 이 단계일 것입니다. 크로스비, 주기철 목사님, 사도 바울, 베드로, 오늘 다윗이 그 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주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께 붙잡힌바 되어, 그리스도께 발견되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모든 걱정, 근심, 불안과 황망함, 소음과 절규, 눈물과 두려움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 질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_시편62:1‘
3.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_시편11:6a’
그물이 무엇입니까? 악인의 마지막 때를 이야기 합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은 지옥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악인들은 영혼이 있는 것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 영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영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속임수로 탁류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 그 소중한 사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말았습니다. 두려움과 혼란, 괴로움과 실망에 싸여 있는 영혼, 숨 돌릴 틈없이 굴러가는 일상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영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혼자서 바둥거리며 그가 가진 육체적 힘만을 의지하여 겨우 삶을 지탱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_시편11:7a’
정직한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안되는 구나,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구나’라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 시간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환경과 상황은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 중 가장 많은 고백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된 사람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들은 것에 순종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묵상입니다. 그 시간을 반드시 가지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Ⅳ. 항상 계시는 하나님
가스펠 가족들은 인생의 곁길이나 지름길을 버리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웃으시며 우리의 가는 길을 비추어 주실 때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숨기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를 버려두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피해서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없습니까? 우리를 유혹하는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바랍니다. 믿음의 성장을 꾀하여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길로 가야 합니다. 재물과 육체와 마귀는 모두 우리 귀에 속삭일 것입니다.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그러나 우리 모두 도망가지 말고 담대히 그들과 전쟁을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_야고보서4:7’
우리는 싸워 보지도 않습니다. 대적하면 사탄이 피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피해버립니다. 이런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치르는 여러분에게 보배로운 열매가 자신의 삶 위에 넘치게 부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한 곳 뿐입니다. 오늘 밤 그 피난처에서 마음껏 하나님과 교제하시길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_시 46: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_요일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