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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4 금요예배

<금요예배>

일시:  2014년 3월 14일

제목 :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하여

말씀 : 시편 10 : 12-18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3-14 금요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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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b.tt/uXyI1dem



 말씀 묵상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심방이 다 끝나고 5월이 되면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에 대해 나누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수련회를 통해 실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묵상하고 내 것으로 삼는지에 대해 함께 응답 받으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많은 부분들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말씀 묵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짜 말씀 묵상은 우리가 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말씀 묵상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을 쫒아가는 것이 말씀 묵상일 것입니다.

Ⅰ. 회개에 이르는 정직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삶에 아픔이 클수록 상상할 수 없는 문이 열린다는 것을 늘 간과합니다. 그러니 신앙 생활의 깊이가 1, 2 단계의 수준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섭리를 보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몸과 마음이 아프다면 그만큼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픈 마음이 있을 때 다시 한번 추스르고 각자의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전도자로 부르셨는데 우리는 완전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복을 시키기 위해 수술도 해야 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다윗은 ‘정금처럼 단련시킨 후에’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라톤을 하고 축구를 하려 해도 1년 이상을 준비 해야 합니다. 시험을 봐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낳으려 해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고 응답을 주려 하시는데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플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예전에 어떤 미스코리아가 하버드대학에 합격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누구 집사네 딸이 서울대에 갔다하면 괜히 심술이 나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하버드에 갔을 때는 박수를 쳐 주면서 가족이, 교인이 그러면 배 아파 합니다. 평상시에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 무시하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멀리 있을 때는 시기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제의 원수라고 해도 나한테 잘해주면 그 사람이 밉지 않습니다. ‘그 사람 너무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나한테 잘해주면 ‘사람이 다 똑같지,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 되면 ‘나는 왜 이 꼴이야 나는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데 왜 그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기가 3배 어렵고,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기가 7배 어렵다고 합니다. 가스펠 가족들은 이런 벽이 무너 졌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예배를 회복해야겠습니다. 예배는 구원의 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기념하는 예배를 회복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오는 어떤 전쟁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작은 체질들, 육신적인, 종교적인 것들을 벗어날 힘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속에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 믿는 성도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아예 세상적인 사람은 공격도 안합니다. 워낙 확실한 사람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를 공격할까요?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인입니다. 인생에서 겪는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인줄을 모르고 살면 안됩니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은 채 싸우면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데 우리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면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계속 어렵게 됩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 속에서 기쁨과 감격이 있을 때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문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앞에서는 정직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면 저도 끔찍합니다. 여러분 얼굴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서 설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죄를 회개하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가족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이웃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절대 친구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_ 역대하7:14’

Ⅱ. 악인들의 생각과 행동

제가 이번 주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심방도 하고 제가 하는 사역도 하고 어른들도 뵈었습니다. 다들 다릅니다. 저에게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 어느 목사님은 저에게 강남에는 매주 20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나만 실패하고, 나만 멸망당하면 되는 데 영적인 것이란게 그렇지 않습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나 한 사람 때문에 가족들이 살기도 합니다. 다윗이 오늘 악인들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며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_마태복음23:12-14’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겉으로는 집사고, 장로고 목사이지만 나 때문에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옥에 가도 괜찮지만 예수님이 너 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려 하는 자들 까지도 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한국교회, 현대 교회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1.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_시편10:2a

아마도 오늘 말씀은 사울왕이 가장 심하게 괴롭힐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다윗도 하나님께 다 털어놓은 것입니다. 자기만 악하고 벌 받으면 되는데 그 결과가 가련한 자까지 고통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이것을 잘 모릅니다. 살인자가 되어서 자신만 감옥에 가고 끝나면 되는데 그 자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영적인 것은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역기능자 한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에게 천국문이 닫히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로 인해 저의 가족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이 가련한 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심히 압박하니 그 모습이 싫었던 것입니다. 참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_시편10:4b

불신자(역기능자)는 당연히 ‘하나님이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가끔 인터넷 댓글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비난하는데 참 안됐다 싶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것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알베르 카뮈의 ‘오해’라는 희곡에 보면 가난하게 살면서 여인숙을 운영하는 두 모녀가 등장합니다. 너무 가난에 시달려서 모녀는 남모르는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여인숙을 찾은 손님 중에서 연고가 없어 보이거나 부유하게 보이는 손님이 있으면 음식에 약을 넣어 살해한 후 시체를 강물에 버리는 것입니다. 모녀는 그런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유해 보이는 청년이 여인숙을 찾아왔습니다. 죄의 표적이 된 그 청년은 모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그의 가방을 뒤지던 모녀는 자신들이 죽인 청년이 자신의 오빠요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도시에 나가 성공한 아들이 어머니와 누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찾아왔다가 놀라게 해주려고 자기 신분을 숨겼던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어머니는 강물에 투신하고 딸 마르타는 이렇게 독백을 하고 목숨을 끊습니다. ‘천명이 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할지라도 죄는 불행할 뿐이다’ 자신들의 행복이 돈인 줄 알고 죄를 지었지만 결국 그들이 얻은 것은 불안과 초조와 살인입니다. 그것은 결국 가정도 파괴합니다. 누가 강한자일까요?

3.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여 _시편10:7

죄에는 강자가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죄를 이기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은 저주와 거짓과 포악을 하게 됩니다. 강한 사람은 절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실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사는 악인들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진실할 수 있는 힘조차 없습니다.

4.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_시10:10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은 그렇습니다. 사단의 종들은 그들에게 쓰임을 받지만, 결국 넘어지게 만들어 비참해 집니다. 그것들을 섬기면 좋을 줄 알았는데, 성공하면 될 줄 알았는데 바벨탑을 쌓고 큰소리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사단이 마지막에는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까운 것은 믿는 자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Ⅲ.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

하나님 백성의 기도는 달라야 합니다. 다윗은 오늘 저 사람들은 다 찾아가서 끝장을 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마 사울왕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사울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니 분노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다윗은 사울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때는 원통하게 기도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지나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새로운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또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소홀이 여깁니다. 훈련을 많이 받고, 많이 알고 그러면 이상하게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도생활도 안됩니다. 기도생활이 안되면 예배도 소홀해 집니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예배

다윗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께 예배 했습니다. 가장 악인들이 판을 치고 승승장구 하고 있을 때에 동굴에서,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의 하나님 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승리하게 했던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살아있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습니까?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예배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고 복음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깁니다. 예배가 정말 사모되어집니다. ‘예배를 빼먹지 마라, 제대로 드려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예배 때 마다 느껴집니다. 말씀이 꼭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_마태복음22:32’

2. 화평케 하는 자 - 하나님과 사람에게

이런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현장에서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이런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아납니다. 이런 한 사람 때문에 직장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저는 종교인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예수 믿는 데 너무 잘 믿어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색을 냅니다. 안 믿는 부모님을 무시하고, 안 믿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의 집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니 좋아야 하는데, 새가족이 잘되면 좋아야 하는데 배가 아픕니다. 그것이 종교생활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자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도 화평합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더 평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니 정말 수고하여도 즐겁습니다. 말씀이 좋고 신나는 사람은, 천국을 맛 본 사람은 이 세상의 것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으니라_히브리서11:16’

Ⅳ.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하여

우리는 날마다 묵상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묵상합니까?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방법은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애통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불쌍한 사람들을 봐도 감각이 없을 때 제가 가장 타락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지...뭐 나하고는 상관없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진 것입니다. 그런 강퍅함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야 하고, 더 잘되어야 한다고 기도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기도수첩을 하고 시간을 내어 묵상을 했지만 말씀을 묵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게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십니까?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기 위해 기름을 부으시겠다고 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주 여호와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합니다. 가스펠 교회 성도님들이 이 영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의 입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에게 가장 즐겁고 행복합니까? 예배 드릴 때 즐겁고 찬양할 때 행복합니까? 우리에게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과정입니다. 함께 있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_이사야61:1-3’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_요한복음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