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요찬양예배

2017-11-03 금요찬양예배

2017-11-03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7-11-03 금요찬양예배.hwp


음성다운로드: http://bit.ly/2zujoPP




20171103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27)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

본 문 :

빌립보서2:5-8

황안나 목사

 

27문 그리스도의 비하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는가?

답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는 성육신과 비천한 삶의 조건에서 구성되는 바, 율법 아래 나시고 세상에서 고난을 겪으시며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일시적인 죽음의 세력 아래 계신 것이다.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본체이십니다. 여기서 기독교 교리의 많은 신비한 교리중 하나인 삼위일체 교리를 먼저 아셔야합니다. 성부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입니다. 이 것을 보고 우리는 3위라고 합니다. 위격에 있어서 이렇게 삼위로 나눠지지만 본질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는 기독교 역사 325년 공의회로부터 6차 공의회를 걸쳐 확립된 교리입니다. 또한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에서는 늘 우리’, 혹은 성부 성자 성령이 늘 함께 등장을 하고 특히 바울서신에서는 마지막 부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축도 부분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또 오늘 봤던 빌2:5-8절 혹은 에베소서나 히브리서 혹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공관복음에서도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을 끊임없이 함께 등장합니다. 삼위 중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저와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길을 열어주실 분이 필요한데, 앞서 우리가 소요리문답에서 공부했듯이 오직 성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끝없는 저주와 재앙과 지옥과 마귀의 권세아래 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보면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다른 길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속죄 사건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니깐 대충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가,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이렇게 우리는 쉽게 말하고 그것을 천만대행이다, 진짜 뼈저리게 이 사건을 내 마음판에서 되새기고 감지덕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갈까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겪고 행하는 것이 쉽고 당연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대신해서 죄값인 죽음까지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죄값인 죽음을 견디기까지 또 수많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틀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라고 합니다.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는 성육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4’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절대로 해결 방법이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사람과 지금 한참 떨어지는 낙옆과 비교해도 무한 차이가 날 만큼 다른 존재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낮은자리로 오심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두 번째는 낮은 자리로 오심입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_누가복음2:7’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 유대인의 왕, 또 혹은 막강한 로마의 왕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로마 뿐만 아니라 사실 그 분은 이 땅의, 심지어 우리가 가장 광범위하게 표현하는 단어 우주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천한 모습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죄의 비참성입니다.

 

3. 율법에 복종하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복종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_갈라디아서4:4’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제공자이십니다. 율법위에 있으신 분이시죠. 하지만 인간이 되셨을 때는 스스로 그 율법의 종이 되셨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율법을 지키고 살아갈 때 유혹도 많고 참 안 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도 똑 같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탄이 와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율법대로 지속적으로 지키며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4. 고난을 견디심

네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_이사야53:3’

주일날 마가복음 강해설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고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배고픔, 고통, 슬픔, 가난을 예수님께서 다 경험하십니다. 소요리 문답의 표현으로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 죄를 지은 모든 대가를 누군가를 위해서 치르시고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5. 하나님의 진노

함께 성경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_마태복음27:46’

죄의 온전한 결과를 겪으심의 표현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을 철저히 경험하심의 표현입니다. 또한 마지막날까지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대의 섰을 때의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였으면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섰을때의 모습이기도 하죠. 그것을 예수님이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원래는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이지요.

 

6. 죽으심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십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_빌립보서2:8’

 

그의 낮아지심은 곧 죽을 만큼, 혹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워서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것 아니고 철저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의 은혜 받는 모습을 보고, 여러분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여러분이 봉사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기로 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우리가 헌금을 많이 드리는 것을 보고 다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모든 과정,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고, 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자,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며 그 분을 진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또 말씀과 함께 시행되어지는 세례 성찬,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도장 찍고 온 교회 앞에서 고백하고 공포하는 성례가 너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양성의 교리)

 

동일본질

325, 로마황제 콘스탄틴 1세가 소집하여 니케아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첫 번째 기독교 공의회입니다. 동방 서방 교회가 함께 모여 열린 기독교 공의회였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하나님과 본질이 같으시다라는 결론, 곧 동일본질입니다. 그리고 동일본질이 아닌 유사본질을 주장했던 신학자와 교회들은 이단으로 판정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요, 성령이 주관한 이 공의회에서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학이 대세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도덕성 높은 인간이라는 결론을 유출하는 신학이 붐을 일으키고 가끔은 메인 신학이 되려고 합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양성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50페선트 인성과 50퍼센트 신성이 합친 분이 아니시고 100퍼센트 인성을 가지셨고 100퍼센트 신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 편에서도, 우리 편에서도 유일하게 중보자가 될 수 있는 분은 오직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만해도 70명 가까이 되는 자칭 새시대의 중보자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단 사이비가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만 그럴까요? 가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진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가 되게 우리는 살고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의 고난

예수님은 낮아지심을 통해 그가 우리를 위해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가집니다. 아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죽어? 성자와 성부는 하나인데, 그럼 성부 하나님도 죽으신거야? 라고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도 이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번 학기에 삼위일체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고 몇 년 동안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2017년에 사는 여러분 뿐만 아니라 4세기때 벌써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부고난설이라는 주장도 있었지요. 성부고난설은 성부도 십자가에서 함께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성의 고난입니다. 신성과 양성 중 인성의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문법적으로는 이상하지만 신학교 교수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성에의고난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의 인격

 

세 번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실제로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의 고난이 우리랑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분의 낮아지심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하나님자녀가 되어서 나중에 천국가는 걸로 끝나는 걸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_빌립보서2:5’ 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사역들과 이 사역들을 통해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럼 오늘은 어떨까요? , 그랬었구나, 아 감사하구나, 아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정도로만 받아드린다면 단지 우리에게 이론적으로나 문자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의미 전달만 되었을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에 대한 욕망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표현을 안하지만 감정적 욕구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성경의 의미를 알고 지적인 욕망과 뜨거운 설교나 예배 분위를 통해 감정적으로 만족을 얻습니다. 그리고 지적이나 감정적인 충족을 은혜라고 표현을 합니다. 회개기도를 했다고 회개를 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한 구절 보았다고 믿음이 있는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회개도 믿음은 다 그 다음의 행위나 실천을 동반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는 익숙한 성경구절에 나오는 믿음도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기도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실제로 회개의 돌이킴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쉬운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고 정도가 다르고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인격의 기준을 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원의 감사와 감격들이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속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야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우리를 위한 인격입니다. 단지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의 평상시 삶에서 우리의 인격을 통하여 나타나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6070, 또 길면 8090년 되는 전체 인생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점차 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끝나면 안 된다, 의미에서 끝나면 안 된다, 감정적으로 끝나면 안 된다 아무리 설교를 해도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게 책을 추천드립니다. 오늘 공부했던 내용에 관해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덜 알고 싶다하시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강해>라는 책을 참고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적용했는지 알고싶으시면 참고서적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 당신은 진짜 크리스천인가? >, 담임목사님께서 추천해주셨던 책들입니다. 이 저자들은 말씀을 삶에서 어떻게 풀었는지 참고할 수 있는 책들입니다. 물론 저자가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도 나만의 것을 찾아가면 됩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지교회 모임이나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나만의 것을 찾으면 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 대신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수치와 조롱과 슬픔과 죽음을 당하셨는데,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내 마음에 내 삶에 어느정도 소유하고 있는지 돌아보겟습니다. 혹 그 은혜를 잃어버리셨다면 예수님과의 첫사랑을 돌이켜보시고 회복하는 기도의 시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통해 인생이라는 전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2. 저희와 함께 은혜를 받으셨던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셨습니다. 우리 소중한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가정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하며 이 소중한 가정이 믿음의 복된 가정으로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또 여러분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형제들과 친척들이 복음을 들으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가정과 가문이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여러분 마음에 있는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시기를 바랍니다. 혹은 조용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둘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금요찬양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1-17 금요찬양예배  (0) 2017.11.17
2017-11-10 금요찬양예배  (0) 2017.11.10
2017-10-27 금요찬양예배  (0) 2017.10.27
2017-10-20 금요찬양예배  (0) 2017.10.20
2017-10-13 금요찬양예배  (0) 20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