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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금요예배

<금요예배>

일시:  2014년 4월 11일

제목 : 인생을 굽어 살피사

말씀 : 시편 14 : 1-7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4-11 금요예배.hwp



아래 링크를 통해 음성 메시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db.tt/jXVb7tG2


Ⅰ. 의인 = 사명자

성경의 의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군생활을 의장대에서 해서 저보다 큰 사람들과 지냈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나왔을 때 마치 난쟁이 나라에 온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준이 잘못되었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의 근간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준은 조금 잘 못된 듯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기준삼고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말씀은 내 인생의 등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깨달음이 옵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분별력도 생깁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인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예배생활을 하지 않으면 분별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 보는 것도 달라집니다. 한국교회가 예배는 잘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고 실천을 할 수 있는 묵상이나 삶으로 적용하는 것이 없다면 반쪽짜리 신앙생활입니다. 어쩌면 금요예배는 예배보다는 기도를 실천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동안 ‘금요예배에 기도하러가야지.’ 라는 생각만 해도 기도의 절반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를 다녀오는 것으로 땡처리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준이 됩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당장 유익한 것 같지만 악순환이 되어 결국 모두가 어렵게 됩니다. 성경, 말씀, 기도가 기준이 아닌 다른 편리한 것을 들이 미는데 그것이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신앙은 지름길이 없고 곁길이 없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이 들릴 때까지 신앙생활을 하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특별한 사람일까요? 교회안에 은근히 그런 문화가 존재합니다. 요즘 교회가 욕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빈들의 영성이라고 하여 교회 건물이 없고 목사도 없고 교단도 속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질 필요가 없다하여 카페, 유원지, 가정을 돌며 모여 돌아가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청렴하게 살고 깨끗하게 살자고 그런 개혁을 외칩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앞에서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주신 성경의 기준이 구원입니다. 수많은 개혁적인 단체들은 구원만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특히 세상에서 내놓은 사람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이 드러나길 원하셨고, 또 한가지는 그런 사람들이 쉽게 주인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자, 실력있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똑같습니다. 똑같이 고백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 자백하지 못해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 곧 의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검소하고, 청렴하고 사람을 돕는 것이 의인이 되는 기준이 아닙니다.

‘사명자는 자신의 전공과 직업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사람, 다시 말해 복음이신 주님을 본받아 누군가를 위한 섬김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다_사명자, 이재철목사’

Ⅱ. 이 땅의 어리석은 자들

하나님이 의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구원의 역사를 드러내려 하는데 하나님이 찾는 의인이 없습니다. 이 땅에 어리석은 자들만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어리석은 자들은 가난한 자들, 실패한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은 모두가 100%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굽어 살피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가난한자, 소외된 자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기준은 구원에 있습니다. 그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어떤 삶을 살고 있을 지라도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신분으로 바뀌어지면 그것은 정말 복된 인생입니다.

1.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_시편14:1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해야 자신의 죄가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복음을 모르고 죄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금세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집안에 우환, 질고가 오고 죽음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점쟁이도 찾아가고 무언가를 의지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죄를 자백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죄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살아오면서 지은 알고있는 죄를 다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백하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미션홈에서 자기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사역이 되기 바랍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드러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어떻게 붙잡고 살았는지도 포럼해야지만, 반대로 말씀을 붙잡지 못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이 되어야 발전이 있게 됩니다. 그런 포럼은 정말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포럼입니다.

저는 중학생때 운동부에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수학을 배우는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면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덮어 놓았습니다. 결국 대학에 갈 때도 수학은 다 찍었습니다. 제가 수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시 돌아가서 ‘제가 수학을 배우지 못했으니 도와주세요.’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껍데기로 교회를 다니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면 큰일 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에게 그런 부끄러움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라도 그러한 타이틀이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매일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붙잡고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 불신자는 자신들은 망해가고 괴로우면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인생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많은 것을 다 가지고 누리고 사나 결국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2.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 자들_시편14:4

사람들이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 교만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교만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신앙생활 오래하면서 이상하게 변질됩니다. 경륜과 경험과 자신의 의가 하나님을 부르지 않게 만듭니다. 분명히 순수하게 복음을 받고 성장하며 성공했는데 인생의 말미가 비참한 것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거대해지고 축복을 받아 많은 사람 살려야 하는데 그것이 권위가 되고 이익이 되니 교회가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병이 들었어도 그것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가스펠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여러분을 볼 때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최고 공격기술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콩깍지가 쓰여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남편이 내편이 아니고 남의 편이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 후에 어렵게 삽니다. 예배하는 가정을 꾸리기 바랍니다.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초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세상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교육받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내 인생의 최고의 직업은 주일학교 교사다.’ 그리고 그는 체신부장관을 하면서도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였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배운 것이 너무 많고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 5년 살면 중국을 잘 안다고 이야기하고, 10년을 살면 잘 모겠다고 이야기하고, 20년을 살면 침묵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국이 크고 역사가 깊은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때문에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승승장구하니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지식이 많고 돈이 많으니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과오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엎드리고 부르짖는 것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제 모교회에서 제게 복음을 전해주신 목사님은 목회를 늦게 시작하셨습니다. 한전에서 일을 하면서 전기를 다루는데 전문가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에 목회자가 되고 광주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공사를 하면서 전기를 만지는데 목사님이 그것을 하고 있으니 한 대학생이 와서 ‘목사님, 그렇게 하는게 아니에요.’하면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내가 전기를 30년을 다뤘는데..’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과도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 방법이 무식한 것 같지만 성경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라고 합니다.

Ⅲ. 그들 중에 계시는 하나님

1. 그러나 사랑하시는 하나님_시편14:5,7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피난처로 자처하셨고, 사랑하시기에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의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의인의 세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때가 있습니다. 세대가 있습니다. 이 세대에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복음도 듣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해주는 목회자가 있고 그런 교회에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만약에 그런 자가 옆에 있어 귀찮으십니까? 교회가라는 어머니가 귀찮고, 예배드리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이 귀찮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배를 챙기고 신앙생활 하도록 챙기는 사람이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축복이며 그것으로 먼저 믿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인생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우리가 불신자 상태에서 어렵게 예수님을 믿게 되어 이 복음이 귀한 것을 알기에 내 자녀가, 성도님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인의 세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2. 의인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_시편14:6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를 가난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된다고 하십니다. 가난한자는 의인을 말합니다. 구원을 의인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구원받은 자, 예배자, 경건한 자, 도피성같은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이루시는 도구가 된다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놀라운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준이 다릅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이고 구원입니다. 시집을 가는 것도, 직장에 가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소유개념을 잘못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1억이 있고 그것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은 베풀며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이후 돈을 가지고 갈 수도 없는데 그것을 쳐다보다 죽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면 나누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구원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소유개념을 가지면 불행하듯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면 제대로 된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칠곡의 계모 사건을 보고 정말 화가 났습니다. 특히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1년 동안 경찰이 와서 경고만 하고 갔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와 같지 않습니까?

Ⅳ. 그들을 사랑하는 자의 기도

우리는 복음을 가진 사람들일까요? 이 부분이 저에게 늘 의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크신 사랑이 내게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삶은 작은 부분에서 달라질 것입니다. 무엇이 기쁨이고 보람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바꾸려고 합니다. 교회를 사역하면서 큰 교회의 시스템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사역 잘하는 사람들의 책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가족이 오면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가족이 왔을 때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시스템을 연구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의 시스템을 보고 배우지만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진실이 되었을 때 기적이란 것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영혼 구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전도 방법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전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으면 전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상상하기 싫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임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의 결정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릴 사랑하셔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는 능력이 있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가족과 나라, 국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 자체에 힘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예배를 사랑하는 자의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만들 수도 있고 폐할 수도 있는 분입니다. 온 우주를 하루아침에 접을 수도, 펼칠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굽어 살피고 계십니다.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공부, 연구, 사업, 모든 인생의 목적이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된다면 모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고, 땅끝입니다._땅끝의 아이들, 이민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