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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내 인생을 바꾼 작은 기도실 '

Gospel Letter. ' 내 인생을 바꾼 작은 기도실 '


신학교 시절, 저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엄청난 헌신을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해봐야 버는 돈은 고작 몇 만 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버지께서 가져가 술을 드시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인도에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입니다. 힘든 여정 속에서도 항상 감사가 끊이지 않아 유독 저에게 빛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참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단기선교를 끝내고 돌아와서는 그 친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밥을 사 먹고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을 잘 몰라 성경고사를 계속 낙방했습니다. 신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밤늦게 까지 도서관에 홀로 있기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진짜 멋있었습니다. 성경 지식이 넘치는 친구들, 악기를 잘 다루고 멋들어지게 찬양인도를 하는 친구들, 든든한 배경 속에서 멋진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 모두 저를 작아지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_창세기12:1-4a’


제 모교에는 제 몸이 겨우 들어가 엎드릴 수 있는 작은 기도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초라한 내 모습이 서러워서 가기 시작했던 기도실은 저에게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펼치면 그 말씀이 어김없이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 제 마음에 전달되었습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에 기록하기 바빴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제게 확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식적이었던, 관념적이었던 하나님께서 내게 실존적인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_창세기22:12b’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그 배후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놓치게 만듭니다. 붙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또 놓칩니다. 하나님을 놓친 인간은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상황이나 환경에 어김없이 갇히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아닌 환경을 바라보고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말이 중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기도실에서 저를 찾게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주님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십자가 사랑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서러움의 눈물이 아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는 사람이 아닌, 환경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 제 삶이 구원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기도실을 찾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것이 제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_하나님을 만나는 보이지 않는 예배당을 회복하길 원하는,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