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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위험한 신앙생활 '

Gospel Letter. ' 위험한 신앙생활 ' 


‘우리의 참된 실상을 망각하고, 우리를 실제보다 더 성숙하고 유능하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다.’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살만하고, 사역도 안정되어 잘한다 칭찬을 받기 시작했고, 가정도 복음화되어 스스로에게 ‘수고했어’라고 할 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위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만큼 위기였습니다. 여전히 예배드리고 있었고, 여전히 훈련도 잘 받았으며, 여전히 경건생활도 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의 예배, 저의 훈련, 저의 경건생활에 말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이룬 줄로 착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게 되고,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일을 자기의 공로로 치부하게 되는 것, 열매를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더 이상 실제적으로 찾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의 마음을 증발시켜버려 교만한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공로를 스스로에게 돌리는 탓에 더 이상 감사 할 수가 없습니다.


교만은 우리 삶을 이원적으로 만듭니다. 사생활과 공생활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게 됩니다. 이런 삶은 특히, 목사에게 가장 위험한 삶입니다. 점차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강의할 때나 사역할 때처럼 가정과 보이지 않는 삶에서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착각하게 됩니다. ‘사역만 잘하면 되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제 마음은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죄 문제가 더 이상 나하고 상관없다는 그릇된 확신으로 은밀한 죄를 탐하고 있는 제 마음은 정말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치 포도원 농장의 일꾼처럼 ‘내가 다 알아서 잘하고 있잖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교만은 자존심으로 직결되고, 사람들의 시선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회개하는 것이 사람들 시선에 수치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어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길을 가게 됩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_시편51:3-4’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_시편51:10-12’


처음부터 바리새인들이, 처음부터 포도원의 일꾼들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아닌 독사의 자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다윗이 기도했던 기도제목처럼 저 역시 고요하고 평온한 영혼이 삶의 목표가 되도록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_시편131:1-3’




_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넘치길,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