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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8-05-04 금요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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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4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29) 구원의 서정

본 문 :

요한복음1:12

임대영 목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_요한복음1:12’

 

29문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값 주고 사신) 구속의 참여자가 되는가?

- : 성령께서 자신의 역사인 유효적인 소명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써 우리가 구속의 참여자가 된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써 메시아적 직무를 통하여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속사역, 구원사역은 성령을 통하여 택하신 백성들에게 적용하십니다. 성령은 선택된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길을 적용시키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구원의 한부분에 해당), 구원을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다시말해 구원을 위한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성령님의 은혜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교리가 구원론의 근본임을 기억하고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 지금도 반복되는 관점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기록물인 성경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신앙은 사람들의 구전과 잘못된 관점들로부터 진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이지만, 정보는 다양합니다. 수많은 정보로 가득한 세상 사회에서 진짜, 진리,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한가지 사실도 그 사실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온갖 자신의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하여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특성은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사실을 전달 받은 사람은 진짜 사실보다 다른 정보들로 인해서 혼동하거나 잘못 오해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행태 때문에 기독교 안에는 다양한 신학과 성경 해석들이 존재 한다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들이 만약 성경 말씀에 이념, 정치, 부흥을 위한 방법, 가치관, 성공과 같은 수많은 양념을 첨가하게 된다면 성도들은 진리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성경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기준으로 본문 그대로에 충실하고 성도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오류들로 인해 구원론에도 다양한 관점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습니다. 첫째는 자연주의(현대주의)는 신앙에서의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어떤 필요도 언급하지 않고 인간 예수님만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적인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살면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인간에게서 나타난다고 이야기 합니다. 현대에도 인문학자들이 성경을 활용하여 구원론을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르미니안주의라고 부릅니다.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는 죄인의 구원 문제가 일부는 하나님께 일부는 인간에게 의존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인정하지만 영혼의 거듭남을 위한 성령의 사역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교리를 통칭해서 아르미니안주의라고 합니다. 성령 사역대신의 인간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소요리문답을 공부하면서, 구원파의 구원론에 대해서 잠시 다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론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교회 구원파의 구원론을 옹호하거나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구원론이 잘못됬다는 것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라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구원파는 회개를 부인하는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적 이단이라고 한국교회가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거듭남을 강조합니다. 거듭난 날짜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점진적 회심을 부인합니다. 그렇다보니 신앙의 위인들이라해도 구원받은 날짜로 언급하지 않으면 구원을 의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칼빈은 급격한 체험과 정확한 날짜를 밝히지 않아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속적인 회개기도는 구원받지 못함을 증명합다고 합니다.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구원 받지 못해서 하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구원파는 죄사함을 너무 강조하면서 성화와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무시하고 있는 이단입니다. 구원파는 구원의 확실성으로 구원을 모두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구원의 확신이 결국은 인간에게 달려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무시하고 있는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혁파 신앙(칼빈주의)에서는 구원은 초자연주의다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신학은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루터, 쯔빙글리, 낙스, 칼빈과 같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더욱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칼빈주의라고 불리웁니다. 칼빈은 구원론에 있어 명쾌하고 확신 가득한 문체로 신학을 정리하였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고 적용하시는 일은 시종일관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_로마서11:36’

 

 

. 구원의 서정

 

소요리문답서에서는 구속의 적용의 다양한 단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들은 논리적인 순서들입니다. 다시말해 구원의 서정이 시간적인 흐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서정 단계들은 동시에 발생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소명(부르심)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확증됩니다. 이 부르심이 선택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만이 구원에 참여 할 수 있게 됩니다. 부르심의 방법은 오직 은혜로만 나타납니다. 부르심은 말씀의 들음과 성령의 조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차별없이 모든 죄인들에게 선포됩니다. 선택 받은 자들은 이 말씀에 반응하고 믿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의구심, 불신앙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일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나? 하지만 칼빈은 이러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심은 사탄의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유혹에 속지 않고 오직 말씀에 근거한 부르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자연 상태는 죄인입니다. 중생전에 있는 사람은 죄로 죽은 자입니다. 중생은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주시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순간적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의 전인격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케 해줍니다. 중생한 자들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게 됩니다.

 

칼빈은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앙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또 확실하게 아는 지식이며, 이 지식은 그리스도안에서 값없이 주신 약속의 진실성을 근거로 두는 것이며,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며 우리의 마음에 인친바가 된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신앙의 목적지는 하나님이며 그리스도는 그 길이십니다. 이 신앙의 열매는 화평으로 타나납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화평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2. 회심

 

죄인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서는 것으로서 두 요소로 구성됩니다. 회개는 인간이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신앙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옛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 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생활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순결하게 진심으로 경외할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는 신앙의 결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회개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칼빈은 회개를 세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회개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생을 돌리는 것이라 부를 때 우리의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영혼까지의 변모를 요구 한다. 둘째, 회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함으로부터 나온다. 죄인이 회개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으로 자극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셋째, 회개는 육신을 죽이는 것과 영으로 사는 두 부분이 있다. 육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영을 살린다는 것은 마음이 의와 공의와 자비로 완전히 기울어 지는 것이다.

 

3. 칭의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과 죄 용서함을 말합니다. 칭의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게 될 때, 그가 즉시 그리고 영원히 의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칭의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칭의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칭의의 목적은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영광, 의가 드러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4. 양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_요한복음1:12’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_요한일서3:1’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칭의 될 때, 그가 또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삼으심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의 행위인데 이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 자녀의 모든 특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양자라는 용어는 외부의 사람을 자신의 자족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5. 성화

 

회심에서 죽음의 때까지 성령께서 신자로 하여금 거룩을 위하여 죄에 맞서 싸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칭의의 상태는 하나님께서 헌신된 성화의 생활을 요구 하십니다. 성화는 옛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여 선행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이고 은혜로운 작용입니다. 칼빈은 이신칭의와 더불어 성화론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칼빈 신학의 모토가 하나님께만 영광을(SOLI DEO GLORIA)’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에 이르기까지 평생 성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6. 영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신자들이 영육 간에 완전해지는 것이 영화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선은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으며, 이것은 신자가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칼빈은 구원의 목적을 거룩에 두었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 성경적인 구원론

 

구원의 서정에서 중요한 것은 회심의 필요성과 성화의 중요성입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허물로 죄로 죽은 죄인이 선포된 복음을 듣고 그리스께로 초청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옛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복음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들어가시고, 그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때 구원받은 자는 죄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그리스도를 원하게 됩니다. 그가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즉시 칭의되고 양자가 됩니다. 그 때부터 생의 남은 기간동안 예수님과 더불어 그를 위하여 살기를 노력합니다. 마침내 마지막 날에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육간에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은혜가 더욱 큰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논리적, 인문학적인 설명으로 완전히 정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 구원의 역사는 육신과 영혼의 역사,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일어나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음을 증명하고, 한편으로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할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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