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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8-05-18 금요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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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18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소요리문답강해30-31) 유효적 소명

본 문 :

요한복음6:63

임대영 목사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_요한복음6:63’

 

30문 어떻게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을 적용하시는가?

: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우리 안에 적용하여 신앙을 조정하시고, 우리를 유효적인 소명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십으로써 적용하신다.

 

31문 유효적 소명이 무엇인가?

: 유효적인 소명은 성령의 사역이어서 우리의 죄와 비참을 확신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알게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사, 우리를 설득하여 복음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믿도록 하신다.

 

소요리문답 30문부터는 29문에서 총괄적으로 다뤘던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나누어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이후에는 구원 받은 자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10가지 계명과 삶에서 적용해야할 주제에 대해서 다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_고린도전서1:21’

 

유효적인 소명이란 성령의 사역입니다. 복음을 듣고 유효적 소명으로 반응하여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임, 복음을 믿게됨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죄인을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는 전도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부터 구원의 사역은 시작됩니다. 그래서 전도가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 때문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대명령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28:19-20)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_로마서10: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_로마서1:16’

 

 

. 왜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가?

우리가 이러한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복음에 반응하여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똑같은 복음이 선포되는데, 어떤 사람은 회심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더욱더 강팍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고 다시사신 십자가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시는 이 복음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집니다. 복음 메시지는 누구나 듣도록 선포되는 구원의 길입니다. 단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진정한 회심과 구원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_로마서10:13’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 왜 이러한 차이가 일어나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이점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 되었을 때,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더 좋은 본성을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한 본성을 가졌다고도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유효적 소명은 인간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_에베소서2:1’

 

자연적인 의지와 욕망을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 자신의 능력이나 자연적인 욕구를 그냥 방치하셨다면, 그누구도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말로 복음을 받아들임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면,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지로 복음을 선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_고린도전서2:14’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을 때 받아들일까요? 그 대답은 몇 사람이 유효적인 소명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 메시지를 들었다면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유효적인 소명에 이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복음의 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죄로 인하여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 복음이 어리석은 것이기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몇 사람에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은 살리심(에베소서2:5), 지으심(에베소서2:10), 거듭남(요한복음3:4-5), 죽은자들에게서 일으키심(에베소서2:6) 등으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동안에 소경과 벙어리와 저는 자들의 육체를 치유하신 것처럼, 성령의 사역은 인간을 역적으로 회복시키는 기적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의 결과는 복음이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에는 어리석게 보였던 것이 이제는 인간의 마음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_사도행전2:37’

 

 

.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유효적소명)

 

하나님께서 죄인을 초청하시는데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유효적 소명)이 있습니다. 내적 소명은 효과적 소명 또는 유효적 소명이라고도 부릅니다.

 

외적 소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셨다는 말입니다. 외적 소명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의 증표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정죄하시는 일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_로마서10:14-17’

 

내적 소명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에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뒤따르지 않는 다면 그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_로마서8:30’

 

죄인들이 복음을 들었을 때, 이미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복음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듣고 복음에 순종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복음의 순종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 한 것이며 성령의 사역으로 가능케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_고린도전서2:1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고 인간의 방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인간을 강제적으로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의 사역입니다. 인간안에 새 의지를 창조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그들이 그 전에는 하기 원치 않았던 것을 이제 하도록 만드신 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거듭날 때, 세가지 사실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죄인든 마치 맹인과 같은데, 세상의 아름다운 색들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성과 죄책을 깊이 회개 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탕감하시기 위하여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회개는 인간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보게 되고 알게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은 강제로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을 열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성화하게 하셔서 하나님 기업을 상속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_사도행전26:18’

 

 

. 조심할 것

 

유효적 사명을 가진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내적사명, 유효적사명을 가졌다는 확신의 기초를 종교적인 위기 체험과 감정적인 것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거듭나지 않더라도, 획기적인 감정적 몰입과 뜨거운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방언이나,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더라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_히브리서6:4-8’

 

물론 성령의 사역은 특정한 때에 강력한 감정에 휩싸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린은 성령의 사역을 인간적 기준으로 미리 예측하고 단정지어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우리가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뒤로하려는 유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아서 회개 할수 없다고 변명합니다. 때로는 그들은 확신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회개와 신앙의 의무를 소유하기 전에, 어떤 성령을 소유한다는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신앙 공동체 안에 있다면 회개와 신앙생활의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누구도 자신이 거듭났는지 먼저 알고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거듭났는지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복음을 듣고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속에 살아간다면 회개와 순종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복음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생활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유효적 사명을 가진자들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의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말씀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택받은 자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그 빛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의 유혹, 사탄의 유혹임을 알고 더욱더 하나님 자녀의 확신인 유효적 소명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의 시작은 들음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이시간에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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