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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8-12-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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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육신적인 삶을 넘어 영적인 삶

본 문 :

창세기 9:1-29

오승주 목사

 

 

. 한결같은 신앙의 길_잠언21:31-22:1

 

잠언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내용들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드리기 힘들어 거부하려는 마음이 강하게 들 때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올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을 이끌었던 SK와이번스 감독이셨던 트레이힐만감독님께서 우승직후 곧바로 사퇴를 하셨습니다. 우승직후 사퇴는 한국야구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 특이하다 싶어 기사를 찾아보니 병환 중에 계시는 노모를 모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힐만 감독님은 자신은 인생의 분명한 기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 둘째가 가족, 셋째가 야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갈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교하는 삶도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기 기분대로, 마음대로, 상황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말씀도 그렇게 기분대로, 마음대로, 상황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종교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하거나 성장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잘났다고 하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교회 청년들의 도움으로 가스펠 편지를 엮어 말씀의 깊은 곳으로란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서출판 가스펠도 출범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마음 아파하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루트로 쓰임 받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가까운 지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실력이 없고,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고, 실수투성인지 모릅니다. 문제 많은 불신가문에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분들은 제 설교를 잘 듣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설교를 얼마나 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가 책을 낸다니 오목사가 뭘 했다고?’ 웃으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두 사실입니다. 전도사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실수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사역을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머리가 나쁘니까 맨날 몸이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늘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의 은혜를 사모했고, 그래서 더욱 말씀을 마음에 담으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배우고 노력하고 올곧고 성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일기를 썼습니다. 사실 할 것이 그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시간이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배경도 없는 것이 능력도 없는 것이 그런 거 한다고 성공하겠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저는 성공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실수하고 다시 돌아서서 하나님 품으로 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 안에 연약한 사람들, 밖에 연약한 사람들만 보였습니다. 조금 도와주고 섬겼습니다. 나와 같은 심정일꺼라고 생각하니까 더 가까이 가고 보이지 않게 위로해주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 열매가 말씀의 깊은 곳으로입니다. 신앙은 한결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_잠언21:31-22:1’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논리 같지만, 사실입니다. 우리는 은이나 금보다 은혜를 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세상의 논리보다 은혜를 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한결같으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노아처럼 말입니다.

 

 

. 신앙은 은혜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지 말라._창세기9:1-7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_창세기9:3-7‘

 

오늘 언약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 창세기의 명령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말씀하고 계시죠? 동물을 다 먹되 피째 먹지 말라 고 하십니다. 짐승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의 피까지 이야기합니다. 살인자들이 동물을 학대하면서 느끼는 쾌감으로 만족 못하여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아, 그런데 자기가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에서 넘어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육신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육신도 따라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약에 와서 마음에 대해 다시 말씀합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를 진짜 죄다 고 하십니다. 육신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구원받은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분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는 그 공의와 사랑을 깨버립니다. 죄는 우리를 육신을 따라 살게 만듭니다. 자꾸 그렇게 가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음을, 세상에 죄가 있음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피째 먹는 것이 바로 욕심이고 죄의 본성입니다. 욕심 그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 그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입니다. 그것은 돈을 버는 것, 성공하는 것, 쾌락을 탐하는 것, 교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빠지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2. 무지개언약과 인간의 연약함_창세기9:8-17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_창세기9:11-13’

 

그런 연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맺습니다. 일방적 언약입니다. 일방적 언약은 사실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건 협박과 강요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일방적인 것은 그것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와 약속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모는 어린 자녀와 약속을 하면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도 사랑합니다. 연약한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사랑의 약속을 지킵니다. 완전한 사람과 언약을 맺어야 진짜 언약이잖아요. 그처럼 완전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진짜 언약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합니다. 가치가 있어서, 수준이 있어서 언약을 맺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수준이 같은 사람끼리 언약을 맺는 건데 우리가 수준이 있습니다. 수준이 없는 사람과 맺는 약속은 한쪽이 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믿음 없고 실패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언약의 사람이 맞으시지요? 그렇다면 안심하십시오. 언약이 없으면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노아가 홍수이후에 얼마나 허무하고 두려웠을까요. 방주에 나와서 집 걱정을 했을까요? 음식걱정을 했을까요? 직업걱정을 했을까요? 미래에 대해 막막하고 절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다시는 내가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무슨 말인가요?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식을 주십니다. 안심을 주십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제일 많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너는 내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마귀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고 했습니다. 형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은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증거입니다. 신약에 와서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바라보면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는 일도 있고, 가난, 가정, 자녀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으면 다시 산다.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의심을 줍니다. 방주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또 불안합니다. 무지개를 보고 회상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유월절 잔치를 하면서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늘 구원을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3. 셈과 함과 야벳_창세기9:18-27,요한계시록2:4,요한복음12:43,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서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시를 원하노라 하였더라_창세기9:20-27’

 

그런데 이상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농사를 짓고 자녀가 장성하고 삶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노아가 술에 취합니다. 단순히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술에 취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옷을 벗었다고 합니다. 옷을 벗는 것이 죄인가요?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자녀들의 태도를 보면서 노아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자녀들이 볼 때 죄이고 허물이 되는 큰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당대에 완전한자입니다. 의인이고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선지자였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홍수와 방주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큰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안정이 올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인간은 도, 수양, 어떤 지위로 죄를 포장하지만 다 가면입니다. 한빈이가 화장실 갔다 오면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나지 않지만 오물이 창자로 가려져있기 때문에 터져야 나는 것이 냄새입니다. 한빈이만 그렇습니까? 방심하지 마십시오. 방종하지 마십시오. 가만 두면 죄는 교만을 만들어내고 교만은 사망을 만듭니다. 특히 자신의 익숙한 분야 즉 자기 전공을 조심하십시오. 건강이든, 직장이든, 직분이든 말입니다. 꼭 그 분야에서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람을 지시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입조심해야 하고 느낀 대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명해지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헌금도 헌신도 조용히 숨어서 하시길 바랍니다. 소문내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노아의 입장에서 봤다면 자녀의 입장에서도 봐야 합니다.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성정부패의 상징적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은 단지 아버지의 허물을 보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간음하는 여인을 잡았지 않습니까? 덫을 놓고 걸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와 같이 아버지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본 것입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문제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하는 것처럼 하며 말을 만듭니다. 형제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냐?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의 사고입니다. 진짜 사랑하면 그 자리에서 끝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덮어주고 감싸줘야 합니다. 아버지를 그대로 둔 채 나와서 형제들에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_요한복음12:43’

 

그러나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큰 실수에도 그들은 아버지를 덮어주었습니다. 부모님을 용서하셨습니까? 그것은 더 이상 상처를 가지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성경은 그것은 축복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감춰주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하십니다. 정의란 이름으로 남의 허물을 들추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 육신적인 삶을 넘어 영적인 삶

_잠언30:7-9,에베소서2:8,열왕기상18:21,고린도전서15:58,잠언28:14’

 

오늘 말씀은 첫째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와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말씀의 진짜 중요한 메시지는 육신적인 삶을 넘어 영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신앙의 성숙이고 성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직분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노아가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살만하니까, 이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니까 방종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정치인도, 경제인도, 연예인도 전부 전문가들이 그 분야에서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증거로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증거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안 된다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교역자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늘 부탁합니다. 교만하지 말거라. 교만하면 끝이다. 그래서 은혜 받아라. 그리고 두 번째는 자녀들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고 살면 부모라도 살리지 못합니다. 육신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에서 다단계나 뭐 경제활동 같은 거 하면 바로 치리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다단계물품을 씁니다. 제가 그것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다단계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역예배 같은 데 가서 설명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 선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끗하고 정확하고 올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단지 다단계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상처 하나가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일진들은 하나같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들입니다. 부모에게 맞았으니까 다른 아이들을 꼬집고 때리는 것입니다. 훈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아니 진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정말 너무 사랑하십니다.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의인이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_잠언30:7-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_에베소서2:8’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_열왕기상18:21’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_고린도전서15:58’

 

항상 경외하는 자에게 복되거니와 마음이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_잠언28:14’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데, 도무지 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신적인 삶을 넘어서 영적인 삶으로 가야하는데 무엇이 걸림돌이 됩니까? 내일 저녁은 2018년 한해를 마감하고 2019년 새해를 맞이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송구영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 마음 아픈 것은 송구영신과 같이 중요한 예배도 드리지 못할 만큼 육신적입니다. 상처 때문인가요?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릅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상처가 은과 금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육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길 원합니다. 우리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뜨겁게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육신적인 삶을 넘어 영적인 삶으로 믿음의 도전을 하길 원합니다.

 

 

주님 육신적인 삶을 벗어나 영적인 삶을 살길 원합니다. 연약한 내 자신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며 오로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비록 연약할지라도 예배를,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삼아 살아가게 하시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깊이 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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