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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2-1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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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롯을 구한 아브람의 믿음과 그릇

본 문 :

창세기 14:1-24

오승주 목사

 

.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브람과 롯이 헤어졌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갈등을 해결할 때는 아브람처럼 내가 손해 보기로 하면 단순하고 쉽습니다. 롯은 소돔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동산 같기도 하고 풍요로운 애굽 같았습니다. ‘결정을 잘했구나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내가 원해서 가면 모든 것이 풀립니까? 그곳에는 뜻밖의 문제, 더 큰 문제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삶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믿음의 삶을 허락해주셨는데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과 다르게 믿음의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살아있는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의 주인삼아 살아갑니다. 롯은 그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리석게 생각했겠지요.

저는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전도사 때부터 학생들과 기도회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면 부모님들이 교회에 데리고 있다고 전화오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보니 그때 결단하고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저를 따랐던 친구들이 전부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개척해야겠구나!’ 그릇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참 쉽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다들 말들이 많았습니다. 왜 거기에 개척하냐?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단지에 개척해야해. 왜 청년들과 개척을 하냐? 청년들이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 중직자가 있어야 해. 왜 교회의 분위기는 그렇게 하냐? 사도신경 해야지, 뭐 해야지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경험하고 보았던 것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광주, 대구에서 본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기는 서울입니다. 그리고 전 미국, 유럽, 전 세계의 교회들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딪칩니다. 아브람과 롯이 부딪친 것처럼 부딪칩니다. 그때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 그리고 대충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 아브람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보셔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살았는지 보셔야 합니다.

 

. 롯을 구한 아브람의 믿음

 

세상의 전쟁_창세기14:1-12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이 년을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_창세기14:1-4’

 

롯이 잘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풍요로운 삶을 위해 그 땅에 갔는데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롯이 넉넉해 보이는 땅으로 갔는데 전쟁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9명의 왕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지금의 염해에 모였습니다.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전쟁입니까? 4:5의 전쟁입니다. 북부 동맹군과 남부 연합군으로 결성이 되어서 큰 전쟁이 시작합니다. 남쪽의 있는 5명의 왕들이 북쪽의 어떤 강력한 왕에게 더 이상 승복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_창세기14:4’

 

12년간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은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평화 같으나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힘의 균형이 깨지면 평화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이 그렇잖아요. 로마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지배하면서 겉으로는 평화라고 한 것입니다. 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구성원 전체가 다 만족하는 곳이 있나요?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12년 동안은 괜찮았지만 13년 때에 배신했다고 기록합니다. 5개의 나라의 왕들이 군사를 모았고 그돌라오멜은 4개의 나라 동맹군을 만들어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전쟁이 끊임없는 세상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를 꿰뚫어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 교회를 세우신 목적,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늘 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세상의 전쟁에 속해서 살다보니 진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죠? 모든 조직도 그런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은 초토화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꿈이 어디 있습니까? 롯의 비전이 어디 있습니까? 다 사라집니다. 생활의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전쟁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참상입니다.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무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_창세기14:8-12’

 

남부 연합군이 유리한 지형지물을 이용했는데 결국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지역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기가 잘 아는 것에,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걸려 넘어집니다. 역청구덩이에 빠지고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습니다. 건곤일척입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합니다. 확실한 계산을 하고 12년을 준비해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과는 다 잃었습니다. 성경은 이러면서 무엇을 기록합니까. 소돔에 살고 있었던 롯도 포로로 사로잡힌 것입니다. 전쟁중에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롯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촌을 따라가면서 또 삼촌을 떠나면서까지 죽을 똥 하면서 모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길이 아닌 세상의 질서, 곧 전쟁 속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다 얻을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이것이 인생 전체가 겪게 되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아브람의 믿음_창세기14:13-16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무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아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에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_창세기14:13-16’

 

아브람이 기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른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요단강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이기 때문에 끼어 들 이유가 없습니다. 아브람은 마므레, 에스골, 아넬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믿음의 포지셔닝을 진짜 잘하고 산 것입니다. 형제라고 합니다. 불화와 갈등이 아니라 형제라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맺고 살아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으니 세상을 섬기고 살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롯입니다. 조카 롯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사실 롯은 삼촌을 존대하지 않았습니다. 버릇없이 굴다가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잘 헤어졌지만 롯은 자기 마음대로 산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가더니 잘 되었네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끼어들면 안 되는 전쟁입니다. 끼어 들어서 유익이 하나도 없는 전쟁입니다. 세상의 전쟁에 끼어 들 이유가 있나요? 문제는 조카 롯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믿음의 사람, 교회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가장 곤혹스런 결정이 아닌가요?

롯의 소식을 아브람 귀에 들리게 하신 것처럼 저는 그런 소식을 늘 듣고 있습니다. 선교대회를 하면서 선교지의 소식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그것은 저와 어떤 이익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도와야겠다.’ 그래서 작지만 힘을 다해 돕습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아닌 아브람처럼 도와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개인의 감정과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만 잘살면 되지, 그것이 아닙니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기에 부딪혔을 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하러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아니고 나를 떠난 사람, 상처 준 사람을 위한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시켰다고 한들 318명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게임이 될까요? 안됩니다. 아무리 훈련했어도,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남부 연합을 물리친 엄청난 군대와 싸울 수 있을까요? 합리적인 인간은 계산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행동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가 질문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전략을 짭니다. 이 본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힘들 때, 정말 우리 공동체의 작은 힘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하거나 여러분을 미워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준비해야 합니다. 감정이나 기분으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3. 아브람의 그릇_창세기14:17-24

 

그런데 이렇게 한 이유가 아브람의 믿음입니다. 이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다음 믿음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릇을 깨고 더 큰 그릇으로 바꿔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318명을 데리고 떠날 때 전원 몰살할 각오를 가지고 가지 않았을까요?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모든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왔는데 가장 수지맞은 사람이 바로 소돔 왕입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의 상인이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집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알아줍니까? 가나안땅에서 누가 알아줍니까? 재산이 조금 있다고 알아줍니까? 그런데 결과를 보세요. 소돔왕을 비롯한 모든 왕들이 아브람에 대해 생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일순간에 아브람의 이름이 드러난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카 롯을 살리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이 엄청난 대전에 롯을 포로로 만드시고 믿음으로 뛰어들었더니 이런 열매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안보이면 믿음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상식의 삶을 살뿐입니다. 평생 예배드렸는데 믿음의 사건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에 복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설명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결단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또 그 역사가 조금씩 자신의 삶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렘왕 멜기세덱이 나오죠? 살렘왕은 예루살렘의 살렘입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_창세기14:19-20’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_시편11:4’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내 오른편의 앉은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_히브리서6:20-7:3’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준 자입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과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의 왕 소돔왕 하늘의 왕 멜기세덱이 마중하는 장면입니다.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가 감격해서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규정이 아닙니다. 감사해서 드린 것입니다. 찬송의 표시입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_창세기14:22-24’

 

아브람을 보십시오. 소돔 사람만 돌려주고 전리품은 다 가져가라. 그랬더니 아브람이 하나님께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땅의 왕 소돔의 것으로 부유함을 누리지 않겠다고 결정합니다. 하늘의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만으로 족하다는 것을 세상 왕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롯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겠다 그래도 난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나를 따른 318명에게 분깃을 주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분깃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아브람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진짜 더 큰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 사람의 그릇, 하나님의 그릇_잠언16:9, 잠언14:1, 26-27, 시편119:49-50

 

이 땅에는 늘 전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늘 전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전쟁에서 이기게 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전쟁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 때 하나님의 권능을 들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_잠언16:9’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_잠언14:1’

 

사람의 그릇을 준비하지만 진짜 그릇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자기 집을 세워야 합니다. 집이 허물어지면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_잠언14:26-27’

 

그래서 우리가 준비하는 최고의 그릇은 경외입니다. 견고한 의뢰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에게 단을 쌓는 것, 그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하는 것, 그리고 소돔 왕에게 했던 행동들입니다. 아브람은 이것으로 견고했습니다. 견고하기 때문에 롯을 구하러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은 결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은 전생의 이면의 것을 보지 못합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_시편119:49-50’

 

그것은 말씀을 통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전쟁 속에서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하고 준비하는 자의 고난에 위로가 됩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린 삶을 산다면 다른 사람을 살리러 가는 결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또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롯처럼 세상의 길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곳은 풍요로워보이고 모든 것이 다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전쟁의 터전입니다. 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 영적인 눈을 뜨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길을 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그릇을 준비하며 살길 원합니다. 세상의 전쟁에서 뛰어들어 생명을 살리는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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