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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3-1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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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지금 믿고 있는가

본 문 :

창세기 17:1-27

오승주 목사

 

. 13년의 공백_창세기17:1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갱신과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있는 어떤 두려움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인이 된 인간은 영적인 것에 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가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죄와 친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진짜 영광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거짓된 영광을 보면서 살게 됩니다. 거짓 신에 사로잡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갑자기 마음대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구체적으로, 전략을 가지고 작정하셨습니다. 그 작정이 바로 성경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성경을 뚫어내지 못하면 신앙이 더 이상 자라기 어렵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태어나서 교육을 받지 않고 거리에 방치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두렵습니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합니다. 교회 간다고 밥 먹여 주냐? 성경 읽는다고 변화 되냐? 기도한다고 응답 받을 수 있냐? 예배드린다고 되겠냐?

러나 분명하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고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도 살릴 수 있고, 세상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인가? 그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잔에 물이 있으면 물잔이고, 커피가 있으면 커피잔이지만, 오물이 있으면 오물잔이 됩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냥 삽니다. 내가 계획한 것이 최고 인줄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늘 문제만 생각하고, 늘 환경만 생각하고, 늘 내 앞길만 생각합니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인생이 끝납니다. 난 문제 많아, 난 힘들어, 난 안된다고 생각만 하다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생각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고 말도 바뀌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면서 말도 여전하고 행동도 여전하지요? 도무지 믿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쉽사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3년의 공백이 아깝지 않습니까? 아브람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도 상관하지 않고 13년 동안 살았습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 믿음으로 가는 길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_창세기17:1-2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_창세기17:1-2’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구십구 세 때에 찾아오셨습니다. 이때는 아브람이 믿음이 좋아서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반대였을 때입니다. 어쩌면 포기 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이제는 아브람이 하나님과 상관도 없이 살고 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는 아브람에게 갑자기 찾아오셔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이야기해주십니다.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13년 동안 형편없이 살았는데 무슨 완전인가요? 이 말씀의 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너는 스스로 어떠했느냐?’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완전하라고 한 것 아니라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경외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 두려움을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게 살면 재미도 없고 세상에서 누릴 수도 없고 성공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네 그럴 수 있겠지요. 그래서 천국에 못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티끌이 아닙니까? 벌써 까먹으셨습니까?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하시는데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주인 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항복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2.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_창세기17:3-8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_창세기17:3-8’

 

아브람이 엎드렸습니다. 그동안은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13년 동안 재미있게 살았을 것입니다. 언약을 까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드디어 이름을 바꾸어주십니다.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아니 아직 믿음도 없는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고 이름부터 지어주시다니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아직 믿음도 없는데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성도! 아직 경외의 삶도 살지 못하는데 그리스도인이라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번성과 축복의 언약인 것처럼 보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문을 세워 구원의 역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왜 오승주를 선택하셨을까요?’ 만일 제가 맨날 술이나 먹고, 이상한 짓이나 하고 다니거나 아니면 내 뜻을 위하여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살면 물론 구원은 받았으니까 성도긴 하겠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정말 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언약 때문이구나! 그래서 내 수준과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준과 기준을 가져야겠구나!’ 그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기의 수준과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뱃속에서 아이가 나올 것을 여전히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_창세기17:9-14, 신명기10:16, 30:6, 예레미야4:4, 6:10, 마태복음13:10-11, 골로새서2:11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_창세기17:9-14’

이상하죠?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지키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나도 너에게 증표를 받아야겠다.’ 이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할례입니다. 이제는 너에게 다짐을 받아야겠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대인들은 또 육신적으로 해석하여 팔일 만에 할례를 모든 남자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_신명기10:16’

 

진정한 할례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_신명기30:6’

 

어떤 할례인가요?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할례입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_예레미야4:4’

 

그래서 마음 가죽을 베고 여호와께 속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가죽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단절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죄가 아닌가요? 그래서 질긴 가죽으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춥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_예레미야6:10’

 

우리는 그 마음 가죽 때문에 듣지 못하고 보지 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들어도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례를 행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_마태복음13:11-12’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베푸신 것은 비밀입니다. 천국의 비밀입니다. 우리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_골로새서2:11’

 

어떤 할례입니까?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육의 몸을 벗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_창세기17:15-2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_창세기17:15-18’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_창세기17:19’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래도 엄청난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낳을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실 이 웃음은 비웃음보다는 에이 하나님, 농담도 심하셔!’ 정도겠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여기에서 또 하나님을 속상하게 합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이 모습을 저에게서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릅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저 다른 것 바라지 않아요. 그저 적당히 먹고 살면 되요, 그냥 남들 보기에 적당하면 되요, 그냥 저 자리에나 가게 해주세요, 이정도만 해주세요...정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아니 구원을 위해 살았나 생각해보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한,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그것을 위해 내 삶을 단 한번이라도 드렸나! 어쩌면 이름은 성도인데, 목사인데, 저는 여전히 오승주로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_창세기17:23-24’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좋습니다. 저도 이렇게 미련하고 바보 같아서 잘 깨닫지 못하고 오랜 공백기가 있지만 또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비록 그 말씀이 잘 믿어지지 않고 또 이해가 안 되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할지 분명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지금 믿고 있다는 표징인 마음의 할례입니다. 정말 믿음이라면 우리는 그 삶에서 갱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 그리고 부족한 것, 그리고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안에서 담임목사로, 영적인 리더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가 된 목사가 될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은 목사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개혁하는 목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면 언제든지 수정해야 하고 언제든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실수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또 도움을 구하는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정직하기 때문에 좋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공백기가 있었고, 또 말씀에 대해 믿음이 없음을 표시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나오면 갱신하고 개혁하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또 후손들에게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 끔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야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할례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고 영적인 눈을 떠서 보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임해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의 고집스러움 곧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내길 원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삶을 향하여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지금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오시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고 13년이나 하나님의 임재와 상관없이 살았던 아브라함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 관심도 없고 사모함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고, 세상에서 안정적이어야만 하고,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또 사단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정작 두려워해야 할 구원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또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말씀이 아니면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고, 말씀이 아니면 하나님의 작정을 알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를 알 수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과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데도 우리는 미련하여서 몸부림도 치지 않고 살아갑니다. 주님 마음의 할례를 받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를 허락해주세요. 이름만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정말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도록 오늘 믿음의 삶을 살게 해주세요. 말씀을 들으며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할례가 있는 순종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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