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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3-1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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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께 항복했는가

본 문 :

창세기 16:1-16

오승주 목사

 

. 여전히 깨닫지 못한 아브람.

 

독일의 종교학자 요하임 바흐가 신앙 체험의 본질적 요소를 네 단어로 정의했습니다. 첫째가 궁극성(ultimacy)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 체험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궁극적 존재에 대한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 경험과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체성(totality)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내 삶의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남녀 간에 사랑을 고백하고 그것을 확인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입만 웃습니까? 얼굴만 밝나요? 온 몸이 즐거울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체험한다면 그 체험이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셋째, 강렬함(intensity)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체험보다도 강렬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행함(action)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만나고 주인으로 모셨다면 주님을 주어로 삼아 동사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내가 주어이고 말씀이 동사인 분들이 많습니다. 잠깐 교회에서 열심히 하면 신자 같아 보이지만 지속이 되지 않고 세상과 환경에 흔들립니다. 신앙은 주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어이고 내가 동사가 되는 것입니다. 동사는 늘 주어의 영향을 받고 주어를 뒷받침해줍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하든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항상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은 아직 주님이 주어가 되지 않았고 또 주님이 주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반드시 체험시켜주시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아브람의 실수와 하나님의 역사

 

창세기16장의 해석_갈라디아서4:21-5:1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아브람은 육신적으로만 해석했습니다. 당연하죠. 그것이 우리가 실수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을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고난이나 갈등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게서 난 이를 씨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하인 중에 하나인 엘리에셀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내 사래가 그것을 듣고 여종 하갈을 통해 후사를 얻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보통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동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어가 되어야 하는데 동사가 되니까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람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사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후예들이 아닌가요.

사도바울은 사도행전20:30에 유언을 남기면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그러진 말을 한다는 것은 왜곡시키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동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 자기 야망을 위해 말씀의 주어가 되어 말씀을 왜곡시키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다 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동여매려는 굳은 의지를 날마다 실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말씀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을 자기도 모르게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과 하와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나_창세기3:1’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_창세기2:16-1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사탄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겨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_창세기3:2-3’고 사탄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하와는 먹고 싶은 마음에 설마 죽을까 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와의 후예들 아닌가요.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이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_갈라디아서4:21-5:1’

 

왜 사래인가?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사래는 무엇을 상징한가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 상태,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종을 후사로 삼으려했던 것인데 하나님은 그런 사래를 통해 이삭을 낳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성령의 잉태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인간이 노력해서 될 수 없는 구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도_히브리서5:11-6:20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닿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너희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_히브리서5:11-6:15’

 

그것을 위해 체험이 필요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초보를 이야기할 때 어떤 인간적인 머리와 지혜를 생각하는 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체험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얼마나 사탄이 방해를 합니까. 예전에 수련회를 다녀와서 은혜를 받고 오면 반드시 시험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시험거리를 통과할 정도의 은혜를 체험해야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맛보았기 때문에 가정복음화를 위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급함, 성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10년 기도하고 응답 없으면 초초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부부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_창세기 15:4’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참지 못하고 편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늘 그래서 갈등이 있습니다. 세상은 속도전이라고 하고 정보전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과 훈련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즉흥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응답을 쉽게 손에 쥐게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손들고 발 들게 하시고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진실 되게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의 인도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조급함이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라고 했습니다. 급하게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것_신명기12:8-14,20

 

우리는 복음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담기는 사역은 우리의 자세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요.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_신명기12:8-14’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생산할 능력도 떨어진 나를 통해 주시겠다는 것이 꼭 그런 말씀이 아닐거야.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그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흔들렸습니다. 16:2을 보세요.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더라.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사래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자기 소견대로 말을 합니다. 그 순간 감정적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합니다. 성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교회에 방향이 맞나 그렇지 않나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진리적인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서 풀어내는 편법 아닌가요. 꼭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나, 꼭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나, 신명기 말씀이 그렇잖아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_신명기12:20’

 

지경이 넓어졌다는 것은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이후 생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갈과 사래의 갈등, 후손들이 민족이 되어 갈등, 이스마엘을 낳고 99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놓치면, 믿음을 놓치면 그렇습니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 하나님께 항복 했는가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영적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지 평등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한국 사람이 평균적으로 일평생 살아가면서 쓰는 단어가 3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쓰인 히브리어, 헬라어 단어가 무려 14,298개입니다.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성경에 평등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평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큰 자도 있고 작은 자도 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던 사람과 그리스도인이라고 대충대충 살았던 사람과 천국에서 평등한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이 공평인가요. 하나님은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상 주심을 믿는 것이 제대로 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무엇으로 평가받고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세상의 박수갈채인가요? 이미 세상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면 하나님께는 작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스개소리지만 무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부르심을 받아갔더니 집사님들이 셀프로 음식을 가져다 먹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장로님이 음식을 서비스 해 주시길래 목사님들은 어디 갔습니까?’ 물으니 배달 나갔습니다했다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람들은 최고의 사람들이 아니라 최선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최고가 있습니까? 전부 최선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최고를 말합니다. 그래서 비교하고 경쟁하고 또 눌리고 교만합니다. 그것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불의와 타협하기도 하고 신앙양심을 삶의 현장에서 거리낌 없이 저버립니다. 최고를 바라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권력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최고를 추구한다는 것이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동사의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할 때, 나는 보잘 것 없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들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하나님의 상을 목표로 하고 소망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내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우리 삶에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생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신 생명도 달란트고, 시간도 달란트이며, 물질, 능력, 가족, 자녀, 사회적 직위 모든 것이 달란트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썼는지 반드시 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셈하시고 상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내 믿음이 깊을수록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호주와 하와이 사이에 나우루라는 조그만 섬나라가 있습니다. 울릉도의 3분의 1정도 되는 면적에 인구는 겨우 만 명 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산호초에 둘려 쌓여 있는데 새들의 천국입니다. 수세기동안 새들이 그곳에 살면서 배설물로 섬을 뒤덮어버렸는데 그것이 화학작용을 이루어 인광석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섬 전체가 노천 인광석 광산이 되었습니다. 인광석은 화학비료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인데 1888년 유럽제국이 아시아를 정복할 때 독일이 그 섬을 발견하고 그 섬이 노다지 인광석 자연 채굴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우루 원주민을 채굴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영국, 호주, 독일이 경쟁적으로 인광석을 퍼내었습니다. 19682차 대전이 끝나고 그 나라가 독립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다. 인부로 살던 원주민들이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았는데 노천광이어서 그냥 캐다 팔기만 해도 되는, 기술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80년대 이미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2007년에 2만 달러를 돌파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요. 모든 교육비, 의료비가 무료이고 전세기를 대절하여 해외로 쇼핑을 하러가고 호주로 럭비경기를 보러갔습니다. 그 섬의 길이 겨우 18킬로인데 고급 외제차를 모든 사람이 타고 다녔지요. 중요한 것은 아무도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음식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호주 등에서 가공식품을 100프로 수입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접어들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첫째는 인광석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둘째는 전 국민이 일하지 않고 놀고 먹어서 수입 가공식품만 먹으니 90프로가 비만증, 당뇨병 환자였고 마지막으로 아무런 기술이 없는 후대들은 미래에 대한 소망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2005년 공식적으로 파산하였습니다. 돈 잔치 30년 만에 나라가 완전 망했습니다. 그전보다 더 불행한 인생들이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 인생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영원한 줄 알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영원한 줄 알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힘이 드는 가요? 성도가 100명밖에 없다. 그래서 큰 교회가 부러우신가요? 터기에 가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시절 숨어서 예배드리던 동굴이 남아있는데 겨우 100명이 못 앉는 작은 공간입니다. 고린도, 에베소, 갈라디아 교회들은 전부 지금 우리 교회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 교회와 성도들이 엄청나게 언급되었지요. 세상의 평가와 세상의 박수갈채,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 하나님의 셈하심,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상주심을 푯대로 삼아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살아보셨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살아보셨습니까? 우리의 시간표, 우리의 환경, 우리의 상황 안에서 말입니다.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세우며,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창세기 3장의 하와에게 유혹한, 아닌 하와처럼 우리는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개혁해야 합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한 회개입니다. 저는 가스펠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바쁘고 분주하지만 그런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 하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래의 말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아브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으며 그에게 성취하실 말씀의 의미도 잘 몰랐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따른다고 했지만 여전히 주님이 주어의 자리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이 주어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래의 말을 들었고 무려 13년 동안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주님이 주어의 자리에, 주님의 말씀이 주어의 자리에 있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동사의 삶을 살아 세상에 빛이 되고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상을 받을 소망을 가지고 살 때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 이 교회를, 이 고백을 하는 이 아름다운 성도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격려하여 주셔서 최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걸어가야 할 최선의 길을 걷는 주님의 멋진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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