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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6-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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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본 문 :

창세기25:19-34

오승주 목사

 

. 하나님 나라의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관해서 설명된 책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들은 하나님 나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정확히 확인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일은 어떻게 깨달아지고 이해될까요? 복음 있는 사람들이 이해되고 깨달아집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은 아무에게나 맡겨지지 않습니다. 복음이 결여된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부자에게도 아니고 지혜가 많은 교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겸손하다고 해서 가난하고 깨끗한 사람에게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드러내고 감춰진 것을 보여주십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_로마서3:10’

 

로마서 3:10에 보니 인간은 다 멸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_로마서 3:23’

 

구원받을 조건도 없다고 합니다. 구원받을만한 인간에게 의가 남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다녀서 기도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음을 가져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하시는데 믿음이라는 도구로 주셨습니다. 구원받는 방법으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_로마서5:8’

 

그 방법으로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십자가의 복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깨끗하게 살아도 스스로 인간의 도덕법으로 깨끗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나고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입니다. 내 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죄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_에베소서2:8-10’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_로마서8:31-39’

 

은혜 받은 우리를 승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택하시고 구원하셨기에 실패하게 하시고 구원의 계획이 필요하니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시고 사람의 문제도 주셔서 깨우시고 믿음생활을 하도록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하나님의 계획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복음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없이 삽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한 칼럼에서 현대인의 그리스도인을 영적인 소비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칼럼의 내용이 단지 자신의 감성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교회를 오가는 소비자. 내가 힘들어 위로도 받아야해. 교회를 그것만으로 다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머물러 버립니다. 얼마나 위험 한 것인지 칼럼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강한 군대로 만드셔서 이 땅에 영적싸움에 승리하도록 부르셨는데 감성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칼럼에서 첫 번째, 나는 변화되고 있는가. 칼럼을 쓰신 교수님은 미국에서 보수적인 교단 교수님이시기 때문에 언행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술을 끊으려고 노력 하고 있는가 라는 내용으로 적혀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현재 있는 곳이 선교지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변화된 사람의 하나님의 나라에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가정, 직장, 내 삶을 선교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특징은 선교캠프, 비전 트립을 가고 그 때 갔다 오면 나 선교 다 했어. 그리고 나머지 날은 내 가정, 직장이 선교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진짜 현장은 내 가정이 아닙니까. 내 남편, 아내이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아닙니까. 너무 이상한 것은 전도 현장 가서 불신자들을 보며 안타까운 척하는 거죠. 그리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는 차갑습니다. 그런 이중적인 태도들이 너무 아이러니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고 있지 않으니까. 변화된 증거는 내가 있는 곳이 선교지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선교지고 기도하고.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고 계셨습니다. 세 번째는 선교를 위해서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가. 내 있는 곳이 선교지인데 어떻게 선교해야할지 모르잖아요.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르니까 그것을 위해서 훈련받으려고 자세가 갖춰져 있는가. 존 맥스웰 목사님께서 이런 칼럼을 쓰셨는데 도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선교 부서에서 담당하고 몇몇 교역자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본질상 우리를 보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셔서 다시 보내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선교를 선교사 파송하고 특별한 사람들에게 국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으로 삶의 터전으로 힘들고 척박한 우리의 가문과 가정을 향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십니다. 창세기 12장 아브라함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가 너를 통해서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복을 주시나요? 이 말씀을 그런 의미를 가지고 보아야합니다. 19절에 아브라함의 족보를 이야기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잘 살 것만 같았는데_창세기25:19-23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_창세기25:19-23’

 

무려 20년간 임신이 안 되었습니다. 이삭이 40세에 결혼했는데 6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똑같이 그런 일을 겪는 것입니다. 무려 20년이나 하나님께 아기를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애를 많이 낳는 중동 시대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모든 재산을 다 물려받아 갑부였습니다. 잘 살 것만 같았는데 하나님은 아기가 안 태어나는 문제를 주셨습니다. 신앙은 아버지의 신앙이 다르고 아들의 신앙이 다릅니다. 내가 죽도록 믿음생활을 해도 내 자식이 하나님을 만나고 겪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했는데 리브가가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잖아요. 800km를 시집왔는데 20년간 자녀가 없는 문제가 왔습니다. 이것을 여호와께 간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고 목적도 방향도 없고 잘 사는 이삭으로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 아브라함이 누린 구원의 감사, 은혜를 이삭도 가지고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삭이 다 가졌는데 기도할 이유가 없잖아요. 내 삶이 건강하고 사역이 잘 되고 내 기준에 일이 잘 풀리면 기도하려 교회에 잘 안 옵니다. 기도라는 것이 축복인지 알면서도 기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입니다. 기독교 잡지에 한국교회에 30-40대 일주일 평균 기도시간이 리서치로 올라왔는데 평균 일주일 기도시간이 10분이 안됩니다. 실상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입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10분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고 감당해야 할 우리의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얼마나 기도를 하지 않았는지. 저만 봐도 제가 얼마나 타락했냐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신학교를 갔는데 그때는 저희 가족들이 다 불신자 가정이었습니다. 그 때 겨우 신학교를 갔습니다. 아이들이 다 똑똑했습니다. 후견인들도 있고 우리교단은 없지만 몇몇 교단은 신학생마다 후견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장학금도 주고 차도 주고 악기도 주고. 내가 이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문 닫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타락하고 변했습니다. 이삭이 20년을 기도했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_창세기25:21-22’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임신해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리브가는 남편이 기도해서 임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문제를 주셨습니다. 태에서 서로 싸우는 지라. 이게 이삭과 리브가가 아브라함과 다른 것입니다. 또 가서 여호와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고 계세요. 그때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에서는 붉은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뜻은 발꿈치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언약을 설명해야하니. 당신의 구원의 계획을 이뤄야 하니. 요셉이 태어나고 애굽에서 종 생활하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히 각인되도록 하셔야하니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야 하는데 이삭과 리브가가 잘 살았더라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내 후대들에게 내 자녀들에게 또 이 민족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일을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내 기도를 내 헌신과 내 사명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런 문제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봤지만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메시지를 많이 듣더라도 지식이지 내 삶에 녹아드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이 내 영혼에 내 삶에 흘러들어와 나를 변화시키고 쓰임 받는 준비는 기도를 통해서 밖에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_창세기25:27-28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_창세기25:27’

 

그 당시 문화로 따지면 에서는 엘리트가 된 것이고 야곱은 엘리트가 되지 못하고 집에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_창세기25:28’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강해서 힘이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국회의원이 오면 굽신 거리지만 목사님들이 고아와 과부가 오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은 사울을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동 다윗을 보셨습니다. 다윗이 여화와를 사랑하고 흠모하고 의지했기 때문에. 바벨론 앗수르도 있지만 작고 작은 이스라엘을 사용하셨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한 강대국이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와 같은 무능하고 무지하고 로마에서 봤을 때에는 버려진 그런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사람은 다릅니다. 강대국, 실력 있는 사람은 교만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에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 장자의 명문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_창세기25:29-34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_창세기25:29-32’

 

에서가 장자의 명문을 모릅니까? 압니다. 장자권은 그 당시에는 재산을 다 물려받는 것입니다. 상속권을 뜻합니다. 그 가부장 족장사회에서 이 공동체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_창세기25:33-34’

 

장자의 명문을 장난 식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문에 관심이 없었고 가볍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필요 없어. 나는 지금 사냥을 얼마나 잘하는데. 힘이 있는데. 그냥 장난 식으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교만이 무엇입니까. 돈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기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이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창세기 3장에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네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스스로 잘할 수 있어. 인본주의가 들어왔습니다. 나 중심, 나는 할 수 있어. 이런 것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우리를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에서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에서는 하나님께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의 기도, 아브라함의 기도에 관심 없었습니다. 반대로 야곱은 집에 있었지만 부족했지만 엄마와 예배 드렸을 것입니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마 나중에 살펴보아야겠지만 야곱은 이 때 언약을 전달받았을 것입니다. 엄마의 기도를, 믿음을 우습게 여기지 마세요.

 

.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_사도행전9:10-19,빌립보서3:1-21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인가요? 구원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왜 주셨는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잊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자꾸 잊는 것입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_사도행전9:10-19’

 

하나님이 바울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바울되기 전 사울은 모든 권한를 받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고 은혜를 끼치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 따져 묻습니다.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 당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지만 이방인을 생각하는 교회는 한군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교회를 핍박한 극악무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선택했을까요?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이것이 하나님 사명을 담당할 수 있는 흠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저희의 시간표입니다. 우리는 그냥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믿고 그냥 잘 살기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을 살펴보세요. 놓아버린 현장을 살펴보세요.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_빌립보서3:1-21’

 

3차 전도여행 후에 쓴 것입니다. 이방인을 위해서 택한 바울이 죽기 전에 고백한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발견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서 하나님 눈에 띄기 위해서 라고 말입니다. 엄청난 사역을 담당하고 하나님 눈에 띄기 위해서 오늘도 그리스도를 붙잡는데 구원의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밖에서 공격해 들어오는데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것이 깨달아지니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 받으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영화만 봐도 뮤지컬 하나만 봐도 힘이 나고 치유가 일어납니다. 노래 한편만 들어도 힘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인생의 본질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하고 구원의 감동과 감사 있으면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치유되고 아브라함이 그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사단은 우리를 속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죄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 결과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회복해야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구원을 위해서 기도는 은혜를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기도의 본질적인 내용은 우리가 은혜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자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은혜가 없어서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가정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 받을 수 있습니까? 해결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문제가 오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문제가 반복이 됩니다. 교회는 그 문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고 구원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변화시켜 신실한 주의 제자로 살기위한 은혜의 터전이 교회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통과해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부르짖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주야로 기도하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부모의 자녀로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합니다.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은혜 받아보세요. 그러면 다 달라집니다. 인생이 풀린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진짜문제는 경제문제가, 부부문제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껍데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적 조명이 필요합니다. 고난과 문제를 통해서 내적조명을 하고 속사람을 바꾸는 방법이 구원받는 것인데 그 구원을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구로 믿음를 주셨습니다. 그 때 내 교회가 선교지입니다. 교회에 믿음 좋은 사람, 새신자, 가정문제 있는 사람, 모든 세대가 다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이 이 교회의 가정과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 포기해도 가정은, 자식들은 포기하지마세요. 기도하세요. 눈물로 내 자녀 자식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세요. 장자권을 지키려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어떻게 했습니까? 언약을 상징합니다.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구원을 팥죽에 팔았습니다. 돈에 명예에 구원을 팔았습니다. 기본 베이스에서 구원을 빼버렸습니다. 왜 성전건축을 합니까? 왜 후대들을 위해서 투자하고 여름성경학교를 하고 왜 수많은 사역들을 교회에서 합니까? 구원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식들이 이 은혜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을 향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여러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생각해보세요. 천국과 상관없이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기도하게 하셨는데 무엇을 놓치지 말라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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