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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6-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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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본 문 :

창세기26:1-33

오승주 목사

 

. 언약의 땅 : 또 흉년이 들었더니_창세기26:1-11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가는 말씀 중에 우물에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으니 집중해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 세대가 넘어가면서 주신 말씀이기에 많은 청년들에게 젊은 세대에게 주신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집중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랄, 브엘라헤로이, 어디인지 궁금해하실까봐 지도를 하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브엘라헤로이가 하갈이 살았던 곳이고 그 밑이 애굽입니다. 이삭이 브엘라헤로이에 있다가 흉년이 들어 그랄로 갔습니다. 그랄이 바다가 있으니 먹고 마실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서 그랄골짜기로 그리고 브엘세바로 이동하는 장소입니다. 헤브론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한 입구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이 범했던 실수를 그대로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기 전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로 흉년이 들어 그랄로 갔습니다. 흉년이라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흉년이 있죠? 시험에서 떨어졌거나 사업이 무너졌거나 가정문제가 왔거나. 그런 흉년이 이삭은 언약의 백성이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아브라함의 자녀로 언약의 대를 이어받았는데 그런 이삭에게 또 흉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죠? 아버지의 신앙을 자식이 그래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식이 똑같이 가지지 않습니다. 기회를 더 줄뿐입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겪었던 사건을 자식도 겪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합니다. 치부가 있고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넘어지고 실수하고 그런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이 온전함이라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온전함은 perfect (완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십니다. 인간에게는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방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잘못하다가는 완전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삭도 아버지가 범한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어제 유명한 배우가 자살했습니다. 공연이 있고 좋은 영화를 개봉하는 연기파 배우인데 제가 좋게 보았습니다. 배우가 남편과 러브스토리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톱스타일 때 결혼을 촬영감독하고 했습니다. 톱 배우가 미남 배우나 돈 많은 사업가와 결혼하려고 하지 촬영감독하고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배우가 명예나 어떤 화려함을 추구하지는 않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자살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자살 1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겉치레가 심하기 때문에 포장하기 심한 나라입니다. 유교문화가 발달해서 포장하고 감추는 것이 능숙합니다. 겉으로는 배우이고 칭찬받고 실력이 있지만 속이 내 영혼이 내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은 자기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 어둠이 몰려오면 살 길이 안 보이지 않습니다. 그 여배우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내게도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일을 많이 겪습니다. 화려한 스포츠스타가 은퇴를 하고 돈이 적은 코치를 하면 힘든 것입니다. 이제는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것입니다. 가치 있고 귀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시선이 그렇습니다. 그런 시선을 우리 교회에서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그런 완벽한 perfect한 완전한 삶을 추구하고 살다보니 나중에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우리 청년들이 그 완벽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perfect 할 수 없습니다. 병 하나 오는 것도 막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갈 때, 그 생명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건져내주신 십자가의 보혈 앞에 갈 때 살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세가 있다는 것, 죄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고 영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복음 앞에 살 길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너에 몰릴 때 어려움이 몰릴 때 복음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복음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는 교회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저를 의지하면 큰일 납니다. 복음으로 안내해주는 목회자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향해서 우리가 온전한 상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신앙생활입니다. 이삭에게 흉년을 주시고 perfect 할 수 밖에 없는 이삭에게 사건을 주십니다. 아버지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삭에게 아버지가 겪었던 똑같은 일을 겪게 하십니다. 리브가를 누이라고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다행인 것은 아버지처럼 실수하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용서도 될 것이고 아버지가 이해도 될 것이고 나도 연약한 존재라고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_창세기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_창세기26:12-13‘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그랄이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에서 아비멜렉을 만났습니다. 거기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 때도 만났던 아비멜렉의 자녀입니다. 그랄의 왕 이름이 아비멜렉입니다. 다른 아비멜렉입니다. 거기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삭은 목동입니다.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동 친 사람이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오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농사하다는 단어의 원래 정확한 뜻은 히브리어로 자라라는 것인데 씨를 뿌리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서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얻었고마차라는 히브리어인데 거두다. 추수하다.’ 라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고 백배나 추수했다는 뜻인데 여기서 백배는 숫자 백이 아니라 많다라는 히브리어 뜻입니다. 그 땅에서 씨를 뿌리고 그 해에 백배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농사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아십니까. 이삭은 씨를 뿌리고 백배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 농부의 심정으로 애쓰고 신실하게 준비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비옥한 땅도 중요하고 관리해야하고 씨앗을 뿌리고 일조량도 체크해야하고 햇빛이 나는지 비 오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쏟아 부은 노력을 다 하고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농사입니다. 그 노력을 했는데도 이른 서리가 오면 가뭄이 오면 농사가 망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고 복 주시기를 기도해야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내일 기말고사인데 당구장 가서 놀고 친구들하고 수다 떨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이것이 복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최선을 다하고 백배의 결실을 내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에 대해서 정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실하고 인정받는 기독교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잘못 배웠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나요? 씨앗을 뿌리고 가만히 있으면 신앙의 열매를 맺나요? 내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해요.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내 인생이 복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삶을 살다가 복 달라고 해서 받은 것은 그 사람에게 재앙입니다. 그릇이 준비되지 않고 감당하지 못하는데 복이 왔다면 재앙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삭에게 어떤 신앙생활을 가르쳐주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_창세기26:12-13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_창세기26:15-18’

 

아브라함이 죽고 나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 메웠다고 합니다. 주석에 보니 흙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쓰레기, 오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물들을 다 메웠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응답을 받았는데 그랄 사람들이 이삭보고 왕성하고 축복을 받았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경계하고 질투하고 시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기 시작하면 복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세상 사람들과 갈등이 생깁니다. 가는 길이 다릅니다.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기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변화의 과정을 겪었는데 주변에서 신학생이 된다고 인생이 변할 것 같냐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런 시기, 질투를 받습니다.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이 아버지의 우물들을 다 메워버렸다고 합니다. 이삭이 그 우물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3. 샘 근원을 얻었더니_창세기26:17-22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_창세기26:18-22’

 

쫒아내서 이삭이 그랄 골짜기로 왔습니다. 그랄 골짜기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입니다, 농사지은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 그랄 골짜기로 와서 흙으로 메워져 있는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샘의 근원을 얻어 물이 나오니 그랄의 목자들이 와서 빼앗아 갔습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또 파고 또 파고 또 팠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파서 그랄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들이 이익을 취하지 않아도 되니 더 이상 뺏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았던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넓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축복이 넒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눠주어도 또 있는 것입니다. 샘의 근원을 얻었기 때문에 계속 나눠주어도 복이 내 안에 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물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왜 하나님이 이삭으로 하여금 다시 파게 만드셨나. 블레셋 사람, 이방 사람들이 메워놓은 쓰레기더미를 다시 들춰서 다시 파게 했느냐. 새 땅에 파는 것이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을 다시 파게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 이 우물은 생명의 생수가 흘러나오는 우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오는 구원의 은혜, 십자가에서 흘러오는 생명의 생수. 아브라함 때에 철철 흘러넘치게 하셨던 하나님이 세대가 지나고 불신자가 다 메워버렸습니다. 교회가 이 생명의 생수,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가 철철 흘러 넘쳐야 하는데 세상의 문화가 들어오고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오고 세상의 쓰레기 같은 것이 들어와 다 메워버렸습니다. 이삭이 그래도 살면 복음과 상관없는 종교생활 할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이 흉년을 통해서 그랄 골짜기로 내몰았습니다. 거기서 우물을 다시 파게 하셨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부모세대가 믿었고 그 것을 우리가 이어받았으니까 우리가 이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쓰레기 같은 그 오물들로 막혀 버린 우물을 다시 파서 샘의 근원, 구원의 감사, 감격, 십자가의 복음이 다시 흘러가도록 원색적인 복음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회복해야 하고 다시 오직 예수그리스도 신앙이 회복해야 하고 다시 뜨겁게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기도하고 고백하는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우상을 넘기는 단체와 비슷하게 인본주의가 들어오고 발전된 경제관념이 들어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는 것이 식상한 소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물에 쓰레기들로 다시 메워져버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파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우물이 파지길 원합니다. 직장에서 그 우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 우물을 파야 합니다. 가스펠 교회에 와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프로그램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곳에 와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왜 강남에 서울에 교회를 세우셨냐. 연예인이 죽은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합니다. 압도적으로 이 나라가 1위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병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삭이 상처 속에서 인생의 고뇌를 하고 있는 동안에 블레셋에 전도, 선교하는 것을 다 까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흉년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우리는 우물을 파야 합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예수그리스도에 관심 있지 않습니다. 복음의 열매. 외적인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 브엘세바를 회복하여_창세기26:23-33, 사도행전19:21, 23:11,27:24, 로마서15:14-33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_창세기26:26-29’

 

그랄 골짜기까지 와서 샘의 근원을 얻고 나니 왕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도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세상 사람처럼 돈을 많이 벌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 샘의 근원을 소유할 때 저들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명예가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실력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생이 끝나면 다같이 끝납니다. 유명한 배우가 돈이, 명예가, 친구가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생명의 복, 구원의 감사를 하찮게 여깁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_창세기26:23-25’

 

이삭이 그랄에서 멀어지니 두려웠겠죠. 그 때 이삭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삭은 그동안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제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부르고 간구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드디어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제단을 쌓고 나서 아비멜렉이 브엘세바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_창세기26:30-31’

 

이삭과 같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변에 그랄과 같은, 블레셋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브엘세바를 회복해야합니다. 우리에게 현실은 먹고 사는 것인가요? . 그래서 유대인들은 먹고 사는 직업을 우선적으로 가집니다. 재능은 여호와를 위해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영적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이삭에게 어디서든지 우물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을 해도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신실한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라. 뭐가 되어라. 여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복음에 사로잡혀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축복된 인생에 사로잡혀야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흉년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_사도행전19:2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_사도행전23:11’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_사도행전27:24’

 

사도행전에서 보면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부르십니다.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사건, 풍랑이 올 때마다 계속해서 로마, 가이사 황제 앞에 서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_로마서15:16’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_로마서15:22-23’

 

하나님께서 계속 로마에 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_로마서15:28-29’

 

바울이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왜 로마에 가지 못하게 하셨나요? 로마는 강대국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상태로 갔을 때에는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울의 지경을 넓히시고 팀을 준비해서 기도와 복음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준비될 때까지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열매들을 이방인들에게 증거를 가지고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나아가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복음의 사람으로 언약을 전달하는데 사용하시려고 하는데 이삭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상처 속에 있으니 흉년을 주시고 아버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판 우물이 있는 그랄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이 시간표입니다. 우리의 시간표가 무엇입니까. 세계복음화, 민족복음화, 가족복음화 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_시편 126:3-6‘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때 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로 된 사람 중에 기도하면서 복음을 놓쳐서 그렇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내 자녀가 포로가 되지 않도록, 노예가 되지 않도록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해방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 이야기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복음의 확신, 어떤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준비되었을 때 로마의 문을 여셨습니다. 지금 우물이 막혀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물이 다 막혀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오물로 다 막혀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데 답답합니다. 우물이 터지지 않는 것입니다. 갱신과 개혁이 무엇입니까? 우물을, 쓰레기를, 오물을 다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 생수를 마시는 신앙. 그 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는구나 세상이 보고 그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됩니다. 이것을 두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에 우물이 세워지길 원합니다. 막혀진 우물이 뚫리기 원합니다. 마음에 우물들이 터져 샘의 근원이 터져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그 생수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우물이 우리 안에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두고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언제 다시 회복되나요? 우리가 복음으로 완전한 답을 내릴 때. 복음의 생수가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이웃에게 들어갈 때. 제가 몇 년 전에 친한 선배가 상담학 박사가 되셔서 상담 센터를 차리셨습니다. 선배가 자꾸 검사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검사를 받아보니 제가 집에 와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검사지에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내 말은 내 아내와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습관이 되고 내성이 되어있는 것이기에 그 검사지를 가지고 치료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주신 팁이 집에 가기 전에 차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던 것을 의식화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살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 우리는 우물 안에 있는 오물들을 파야합니다. 내 안에 있는 쓰레기를 파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찌꺼기를 다 끄집어 내야합니다. 그래서 생수가 있어야 성령의 충만함이 있고 은혜가 있고 그래서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안에 이삭과 같이 우물을 파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복음의 은혜를 만나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으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기를 합니다. 르호봇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브엘세바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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