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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7-0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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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언약을 향한 영적인 삶

본 문 :

창세기27:1-46

오승주 목사

 

. 눈이 어두워진 이삭_창세기27:1-4

 

이삭이 첫째 아들 에서에게 축복권을 물러주려고 할 때 그의 아내 리브라가 엿듣고 가로채게 해서 이삭을 속여 야곱에 여우의 털을 붙여서 축복권을 빼앗은 장면이 27장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신앙을 점검하고 중요한 믿음의 고백을 드려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강남 잠원동에서 건물을 철거하는데 그 철거공사를 똑바로 하지 않아 무너져 도로를 덮쳤는데 4시간 만에 발견한 신부는 죽어있고 신랑도 의식불명의 상태였습니다.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려고 하다 봉변을 당했습니다. 장례식 장면을 찍어 뉴스에 나왔는데 철거업체 직원들이 장례식장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우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그 사건이 인재입니다. 우리나라 건축 기술은 탑입니다. 그런 일이 왜 발생했나요? 왜 정성을 다하지 않고 집중하지 못했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익숙해지면 대충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철거업체가 큰 업체인데 문제가 온다면 무너지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나중에 큰 사고가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육신적인 삶에 있듯이 영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기도 안 해도 되. 성경 매일 읽는다고 변하지 않아. 구원받았는데 예배 빼먹어도 되지. 이 정도면 이해해 주시면 안돼요? 교회가 어느 순간 90, 80, 70, 50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중세교회 때 그랬습니다. 중세교회는 원래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고 핍박과 고난 속에서 사도들과 교부들과 많은 제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헌신한 교회입니다. 그 초대교회가 재산이 생기고 국교로 인정되고 나니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복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신부들이 더 이상 구원의 교리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예배, 신비적이고 드라마틱한 예배, 감정을 하는 예배. 이것이 중세교회의 모습입니다. 건물도 화려하고 여기에 현혹된 순간 내 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보지 못하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고 전략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이 시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초라고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예전에 들은 기초메시지라고 생각하지 더 이상 교회에서 목사님들도 말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많아지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교회에 왔는데 전혀 내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고 조명해준 메시지도 없어졌습니다. 교회에 왜 오셨나요? 교제라고 오셨습니까? 위로 받으러 오셨습니까? 우리 죄를 조명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깨닫고 우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기 위해서 다시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예배를 통해서 회복하고 갱신하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교회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중세교회는 화려해지고 커졌는데 영적인 침체기를 겪게 되고 죄의 종노릇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반박문을 발표했는데 제 1번이 회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한순간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니 신앙이 떨어지는데 모릅니다. 영적으로 재앙이 닥치고 믿음도 사라지고 그 때가서 땅을 치고 우는데 그때는 늦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_창세기27:1-4’

 

이삭이 눈이 어두워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130세 밖에 안 되었는데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지금 성경에 딱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27장 내용을 봤을 때 영적인 눈도 어두워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보려고 합니다.

 

. 인생의 두 갈래 길

 

야곱의 속임수와 당연한 고통_창세기27:5-7,창세기47:9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_창세기27:5-7’

 

오늘 이삭이 눈이 어두워져서 가정에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보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이삭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상태로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 결과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보는데 첫 번째가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일을 만들었습니다. 가정을 다 불러놓고 전달해야할 축복권을 이삭이 에서만 불렀습니다. 리브가가 이를 엿들었습니다. 갑자기 엿들었을까요? 이 리브가는 이삭이 늘 불안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고 늘 에서만 편애하는 이삭이 불안했습니다. 이삭이 한 이야기가 엿듣고 야곱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형에게 축복을 주려고 하는데 네가 가로채야 한다. 내가 다 준비해줄게. 야곱은 엄마의 극성스런 속임수 때문에 야곱은 그 때부터 속이는 자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리브가 때문에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비극을 낳는지 아세요? 솔직히 하나님께서 축복을 야곱에게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리브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하고 순리대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준비했어야 합니다. 리브가도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면 야곱을 속이게 만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는데 평생 야곱은 남을 속이고 속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_창세기47:9’

 

야곱이 불신자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 못지않게 야곱의 이야기가 길게 나옵니다. 야곱이 계속 남을 속이고 계속 속임을 당합니다. 인생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야곱을 두 번이나 만나주십니다. 꿈도 주시고 하나님이 답답하니까 직접 만나기도 하십니다. 심지어 뼈가 부려지는 증거까지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영적인 체험까지 주시는데 그리고 그 체험을 하고 나서 야곱의 이름까지 바꿔주셨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좋은 이름 가장 복된 축복된 이름,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하나님도 속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때문에 그 아버지를 속이는 속임수를 인해 평생을 속이고 속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볼까요?

 

이삭의 실수와 당연한 아픔_창세기27:18-29,창세기35:27-29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_창세기27:18-29’

 

이삭이 멀쩡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야곱의 속임수로 인해 야곱을 축복하게 됩니다. 에서인지 야곱인지 분별하지 못해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삭이 만약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언약을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인생을 조명했으면 에서에게 양해를 구하고 야곱을 축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자기의 상처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사실 두 아들 중에 야곱이 이삭을 닮았습니다. 이삭도 마마보이였습니다. 상처가 많고 여리고 심지어 부인 얻을 때에도 아버지가 얻어준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이삭을 닮은 아들은 야곱인데 그러니까 반대로 자기는 그렇게 살았기에 태어나자마자 장수하고 힘 있고 잘생긴 에서를 훨씬 더 편애했습니다. 자녀를 차별하면 그 집안에 재앙이 생깁니다. 자녀를 편애하시면 안 됩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이삭은 자신의 아들을 엄청 편애했습니다. 야곱뿐 아니라 에서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은 두 아들이 나중에 원수가 됩니다. 그 차별 때문에 문제가 옵니다. 이삭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살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고 영적인 지혜까지 사라져서 그리고 오늘 본문에 원래 유대인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평균나이가 될때 축복합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90세에 죽었으면 80세에서 100세 사이에 축복합니다. 이삭은 얼마나 조급했던지 135세에 축복했습니다. 이삭은 180세에 죽었습니다. 무려 45년이나 빠르게 축복해버렸습니다. 이 말은 이삭이 영적으로 완전히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에서를 축복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그 인본주의, 육신적인 이익, 자기의 상처 이것으로 에서를 축복한다는 마음으로 축복해버렸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나았을까요?

 

3. 에서의 뒤늦은 후회와 당연한 선택의 결과_창세기26:34-35,27:30-45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_창세기27:34-41’

 

에서가 절규하는 장면입니다. 이 에서가 어떤 사람인가요?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사냥을 잘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실력이 있는 남성다운 사람입니다. 그 실력을 믿고 장자권을 장난식으로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니 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분노입니다.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저 같으면 이것은 갱신의 시간표 아닙니까. 야곱이 자기를 에서라 속여서 이삭이 축복권을 주었다면 제가 에서라면 두 번씩이나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게 아닙니까. 아버지, 제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지 못해서 제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고 교만한 인생을 살아서 하나님이 이 사건을 주셨군요. 제가 정신 차리겠습니다. 이것이 정상 아닙니까. 결과가 무엇인가요? 그의 본심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내 동생 야곱을 죽여 버리겠어. 이것이 열매입니다. 에서는 겉으로는 반듯한 척 신앙생활을 잘 하는 척 아버지를 위한 척했지만 속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축복권을 빼앗기자마자 본성이 드러났습니다. 교회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있는 척 사회적으로 힘 있고 지위가 있으면 에서처럼 사냥도 잘하고 인기도 있고. 그러나 나중에 어려움이 오게 되면 속의 것이 다 드러납니다. 분노하고 화를 내고. 왜일까요? 평상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어려움이 오면 이렇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_창세기26:34-35’

 

왜 문제인가요? 아브라함은 언약을 위해서 이삭의 아내를 저 고향 땅에 가서 언약의 딸을 리브가를 데려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언약의 가문인데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 언약에 관심 없었습니다. 그냥 헷 족속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_창세기 27:46’

 

에서는 부모의 언약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육신적으로 아내를 맞이하고 즐기고 사냥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산 것입니다. 그 결과가 축복권을 빼앗겼습니다. 영적인 것을 다 놓쳤습니다. 잘나간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잘나는 순간 영적인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에게 응답으로 주면서 세상적인 축복을 주면서 영적인 것을 다 빼앗아 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에서는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기회인데 이것마저 놓쳤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생을 죽이려는 마음과 계획을 가지고 쫓아다닙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때문에 , 잔머리를 쓰고 속임수를 쓴 어머니 때문에. 이런 비극이 아버지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면서 어머니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속임수를 쓰면서부터 이 비극이 생겼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은혜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틀린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데 과정이 중요해? 과정 필요없어 응답만 받으면 되. 틀린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에 과정이 중요합니다. 운동선수가 땡땡이를 치면 경기할 때 결과나 나타납니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뮤지컬 배우가 연습할 때 힘들다고 연습하지 않으면 뮤지컬 할 때 실수 하겠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성실하게 예습, 복습하지 않으면 결과가 시험 볼 때 나타납니다. 이 가정, 가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 신앙의 자세 : 언약을 향한 영적인 삶_히브리서11:20-21,12:1-17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100 90 80 70 괜찮지 않습니다. 신앙은 반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110 120 가야 합니다. 이것도 같습니다. 갑자기 응답이 오느냐. 성경책 한 장 읽는다고 삶이 변화 되겠습니까. 매일 기도한다고 될까요? 매일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산다고 별 변화가 안 일어나는 것 같은데 재앙도 그렇게 오지만 축복도 그렇게 옵니다. 매일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의 때에 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고백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지점에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결과가 오듯이 신앙도 깨어 있으면 응답이 옵니다. 이것을 무엇이 방해할까요? 죄가 이것을 방해합니다. 창세기 27장은 히브리서 11장이 이 본문을 설교한 장면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_히브리서11:20-21’

 

죽을 때에 축복했습니다. 이 말은 평생 살아 있을 때에는 손주들을 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겨우 야곱이 하나님을 경배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본문을 설교하는 것이 12장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_히브리서12:1-17’

 

에서가 얼마나 음행했고 얼마나 하나님의 장자의 명문, 언약의 축복을 망명되게 여겼는지 나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장자 에서처럼 교만하면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 죄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창세기 3장에 내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죄는 악한 영 사단의 무기가 죄입니다. 그래서 죄를 그만 두면 우리를 어둡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그래서 영적으로 미련하게 만들어서 영적 게으름 무능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부지런한 것과 다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게 만듭니다.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이 안 풀리니까 영적으로 무지하고 지혜가 없으니까 분별하지 못하니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죄를 따라 살다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를 내고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영적인 기쁨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없으니까 그 즐거움이 없으니까 찬송이 안 나오고 화가 나오는 것입니다. 차타고 출근하면서 마음에서 찬송이 나오시는 분이 계시나요?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죠? 왜 죄와 싸우지 않죠? 죄가 그런 것입니다. 괜찮아. 이번 한 주는 패스해. 괜찮아. 한번정도는 괜찮아. 80 70 60 50 괜찮아. 괜찮아. 아직 안 무너졌어. 40 35 33 32 31 꽝 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장례식에 와서 무릎 꿇고 울어도 이미 죽은 목숨은 살릴 수 없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영적인 것은 더 무섭습니다. 우리를 피곤을 가져다주는 낙심을 가져다주는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서 예수를 바라보자. 죄와 싸워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으니 예수를 붙잡자.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 앞에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 남들 보일 때에는 징계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인데요. 교회 바닥에서 울면서 기도하는데 얼마나 미련하고 슬퍼 보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연단을 받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심지어 이삭과 리브가도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인생을 조명하고 그 언약을 지혜롭게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놓치고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왜 이것이 기록되었습니까? 죄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삭, 야곱이 특별한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약을 향해서 깨어있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립니까? 왜 성경을 보고 기도합니까? 영적인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운동도 하루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저는 요즘 운동을 안 하면 피곤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2시간씩 뜁니다. 그래야 그 다음 날에 하루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청소하는 것도 매일 청소해도 먼지가 나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세상에서 존경 받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독서해야 합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내적인 수양을 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중에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책 읽는 것이 힘들어 다들 껍데기로 대충 삽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학 때 바이블 스쿨, 여름성경하고, 말씀 사경회를 하는데 우리를 조명하는 말씀 앞에 깨우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점차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게, 내 삶을 말씀으로 조명하지 못하게,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명료하게 깨닫지 못하게 갈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두리뭉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분별해서 정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정확하게 내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내 가정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충 살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죄가 가져다주는 공격무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분명히 가지고 계세요. 주일 설교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어서 주일 설교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명료하게 가지고 계셔야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이길까 말까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면서 사장이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파악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운동선수도 룰을 정확히 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언약을 향해서 영적인 삶을 회복해야합니다. 명료하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계시고 정확하게 기도생활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 망합니다. 영적으로 망하면 이런 가정이 됩니다. 어두워져서 눈이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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