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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2-2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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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속건제_주님 사랑해요

본 문 :

레위기5:14-6:7

오승주 목사

 

. 속건제의 의미

- 왕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거룩으로, 멸망에서 축복으로

- 우리의 왕은 누구신가요?

 

지금 저희가 레위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로 5대 제사가 끝나고 다음 주에는 제사장제도에 대해서 제사장을 임명하고 세우는 과정이 나오고 그리고 나서는 절기에 대해서 설명하게 됩니다. 5대 제사, 제사장제도, 절기를 설명하면 레위기가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끄집어내어서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고 레위기 통해서 5대 제사와 절기, 제사장 제도를 디테일하게 가르쳐 주시는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신명기, 민수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이렇게 정확하고 답답한 율법과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레위기인데 이것을 왜 가르쳐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쉬운 곳에 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다 잃어 버렸습니다. 예배도 하나님 자녀 백성의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노예로 400년을 살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건지셨습니다. 출애굽해서 온 남자만이 60만 명입니다. 세상 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완전 도적떼무리와 비슷했습니다. 노예였기에 내 물건, 네 물건 없습니다. 말도 함부로 하고 물건도 함부로 가져다 쓰고 도적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보내시려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보내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내면 될까요?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상상했을 때 성경을 통해서 유추 했을 때 제가 설명한 것보다 훨씬 심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지도자도 없고 법도 없고 전부 다 노예생활만 하던 사람들이 광야에 나와 있으니 그 상태로 가나안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성막을 짓게 하고 노예의 삶, 도적떼 같은 삶을 바꾸시려고 레위기를 주셨습니다. 이 배경을 이해하고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이해를 하실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대사라고 하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대사를 아무나 뽑지 않습니다. 가장 실력 있는 사람. 대한민국을 대표할 성품과 인격, 실력을 갖춘 사람을 보냅니다. 대사관이라고 하면 나라의 수준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대사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적 무리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5대 제사로, 제사장 제도를 통해서 절기를 통해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제 아들이 맨 날 이상한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깡패 같은 집단에 이상하게 살면 그냥 제가 둘까요? 패서라도 옳은 길을 가도록 하겠죠.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거룩하게 되고 예수 믿고 응답받는 삶을 사는 단계를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속은 안 그런데 겉은 잘하는 것처럼 말도 바꾸고. 엄청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안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본에 갔다 오면서 신명기와 민수기랑 모세 5경을 살펴보니 하나님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그리스도. 그 분을 모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내가 변화되어야지. 거룩해야지.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내 삶에 오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그냥 교회를 다니지 하나님의 터치, 하나님의 개입하심, 하나님의 찾아오심. 이런 것을 싫어합니다. 갈수록 더 그럴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받아드리고 내 삶을 내어드리고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신앙고백들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터치는 싫어요. 신앙생활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교회 다닐게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니 광야로 나왔지만 여전히 노예의 습관, 노예의 생각, 노예의 마음, 그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그래서 그들의 사회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거룩으로 멸망에서 축복으로 인도하시고 싶으시다고 히브리서 1:1-3 말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니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_히브리서1:1-3’

 

옛적은 구약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아들은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기셨냐면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시고. 누가요? 예수님이요. 여러분, 우리의 왕이 누군가요?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예배드리고 있나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왜 교회 다니세요? 행복하려고요. 왜 예배드리세요? 응답 받으려고요. 경배의 대상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만왕의 왕 되신 주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의 고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다들 응답받으려고 예배드린대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왕이 누구신가요? 이 부분이 정리되지 않으면 내 맘대로 살게 될 것이고 그것의 실상은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악한 영 세상의 임금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는데 구원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해서 오늘 제사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 속건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할 때_레위기5:15-19

-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착취하고 사실을 부정할 때_레위기6:2-7

- 하나님 앞으로 가서 지가 드러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속건제를 봅시다. 앞서 4가지 제사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속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레위기를 읽었을 때 하나님의 억양이나 관심이나 속건제에 대해서 설명하시는데 강도가 4가지 제사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은혜 받고 이런 것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우리가 범법한 우리의 삶의 잘못한 것에 대한 제사이기 때문에 교회들이 약화시켰습니다. 이 물건 손대지 말라. 훔치지 말라. 훔쳤으면 이렇게 보상을 해주고 이렇게 제사를 지내라.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왜 이 시대에 속건제를 약화시켰는지 오늘의 말씀을 들으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적떼 같은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제사를 가르쳐 주신 것이 속건제입니다. 속건제를 이스라엘백성이 들었을 때 왜 필요한가요?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보통 군대에 가면 네 물건 내 물건 없습니다. 군대는 주인이 없습니다. 군대는 다 하나입니다. 마치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를 사도행전 2장 말씀을 가지고 사회주의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엄청 잘못된 해석입니다. 기독교는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 구원받은 것이 좋아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고 베푼 것이지 성경은 내가 노력해서 번 것은 내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처럼 다 통용해야 한다.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내가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을 위해서 베푼 것이지 사회주의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속건제를 왜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을까요? 첫 번째는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 할 때. 성물은 거룩한 성, 구별된 물건을 말합니다. 우리도 구별된 사람이라고 해서 성도라고 합니다. 이 건물도 예배당도 성전입니다. 예배만 드리기 위해서 구별된 것입니다. 저는 토요일 밤에 양복을 준비해서 구별해놓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해 놓은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인데 이것을 침범하고 빼앗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의 것을 침범하고 빼앗긴 것이 예배였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세요.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노예를 일요일도 일을 시켰으니까. 주일을 다 빼앗겼습니다. 광야에 나와서 안식일을 회복해야 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예화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가장 먼저 정복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무너뜨리고 그 다음성이 아이성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성입니다. 조그마한 성이니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정복해야 하는데 물어보지 않고 갔습니다. 대패하였습니다. 박살난 원인이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면 너희 중에 범죄 한 자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중에 내 물건. 그 물건에 손댄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아간이었습니다. 아간이 외투 한 벌 훔쳤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이성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엘리제사장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망나니였는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이스라엘백성들이 제물을 준비했는데 제사 드리기 전에 먹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전쟁에서 같은 날 죽이십니다. 또 사도행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습니다. 내가 밭을 팔아서 이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밭을 팔고 돈이 들어오니까 드리기 아까워했습니다. 거짓말로 일부를 떼고 일부를 드리면서 이것이 전부 판돈이냐고 했을 때 전부 팔았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침범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 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이것을 다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배상하고 그냥 배상이 아니라 이것의 5분의 1을 더하여 배상하라고 합니다. 100만원을 침범했다면 120만원을 해야 합니다. 배상을 하고 또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다른 제사는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서 비둘기를 잡아도 되고 염소도 잡아도 되지만 속건제는 흠 없는 숫양만 잡아야 합니다. 엄청 까다롭다는 것이 느껴지시죠. 이것이 성물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의 물건에 대해서 개념도 없는 시절입니다. 그 당시에는 은행이 없으니까 어디 외출을 하려면 돈을 맡겨놓고 가야합니다. 돌아와서 달라고 하니 이것이 네 것이냐. 증거 있냐. 이런 식인 것입니다. 많은 도적떼 같은 무리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이웃의 물건을 착취하고 심지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주운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하나님나라의 대사로 가야하는데 물건 훔치는 수준으로 가서는 복음 전하는 삶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이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것을 훔쳤는데 속건제를 드리기 전에 다 배상하는데 배상의 5분의 1을 더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가져갔으면 더 해서 주어야 하는데 조금만 훔쳐도 내 입장에서는 손해가 너무 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100만원을 훔쳤는데 120만원을 주어야 하고 또 비싼 숫양을 잡아서 각을 떠야하고 내장 끄집어 내야하고 복잡한 과정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숫양을 잡아서 내장 꺼내면서 생각하겠죠. 다시는 안 그래야지. 그러면서 하나님이 죄의 삯은 죽음이야.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노예로 살던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야. 생활습관, 마음 다 바꿔. 라고 속건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속건제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왔는데 예수님이 돌려보냅니다. 형제에 원망들을 일 있으면 화목하지 않으면 해결하고 와서 예배드리라고 가르칩니다. 형제하고 갈등 있고 원수지는 일이 있으면 예배 안 받으신데요. 해결하고 와서 드리라고 합니다. 속건제입니다. 네가 남의 물건 훔쳤으면 네 예배는 안 받아. 다 해결하고 와서 예배드려.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어떤가요? 어떤 분하고 약속을 했는데 2시간을 늦게 왔습니다. 그런데 와서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내 삶이 감사하고 임마누엘의 삶이 너무 기쁘고. 제가 속에서 욕이 나왔습니다. 이 내용을 고발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밀양. 이 속건제의 부재에 대한 한국교회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전도연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이 죽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 고향에 가서 살아야지 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누가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습니다. 그 때 예수를 믿고 신앙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자기 아이를 죽인 유괴범을 용서해주려고 면회를 갔습니다. 유괴범이 저 감옥에서 예수 믿고 죄 문제 해결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전도연이 미칩니다. 전도연한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이 예수 믿고 다 용서 받았데요. 그러면 이 피해자는요. 성경은 하나님은 정확하게 여기에 대해서 속건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앞선 4가지 제사만 있으면 말씀대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감사해. 죄 문제 해결 받았어. 라고 하면 괜찮을 텐데 제사에는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다 배상해야 합니다. 5분의 1을 더해서 배상하고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사울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 죄수가 와서 바울은 전도자니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알고 보니 감옥에 왜 왔냐면 주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종입니다. 그 당시에 노예제도가 있으니까 집에서 노예가 도망치면 그냥 죽여도 됩니다. 그냥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니라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쳤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었으니 너는 이제 자유야 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너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 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 오네시모가 바울이 주인에게 돌아가라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돌아가면 맞아 죽습니다. 그러지만 바울이 넌 자유야. 나와 복음운동하자. 라고 하는 게 아니라 주인에게 가서 해결 받고 오라고 합니다. 그 주인이 신기하게 바울의 제자, 빌레몬입니다. 바울이 그 제자에게 친필로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다른 서신은 더디오 라는 사람을 통해서 대필했습니다. 유일하게 빌레몬서 1장은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친필로 직접 썼습니다. 우리 같으면 예수 믿었으니까 괜찮아. 라고 했을 것인데 주인에게 가서 사죄하고 와. 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네가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어. 하나님이 이렇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속건제는 앞의 4개의 제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고 죄 사함 받으면 끝나는 것인가요? 진짜 회개의 삶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와 삶이 연결이 되어야 하고 은혜와 우리의 행함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변화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왕이신 하나님 그 분을 왕으로 모시면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큰 죄인 두 가지 직업이 있었는데 하나는 창녀고 세리입니다. 로마가 이웃나라를 정복하고 세금을 걷는데 그 나라 사람 중에 나라에 불만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그 사람에게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세금을 내고 그 이외의 더 돈을 받는 것은 너희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 중에 세리를 선발해서 세리가 세금 이외의 돈을 가져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악해져 세금을 막 걷는 것입니다. 이 삭개오라는 세리가 늘 마음에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많은 부유한 물품과 큰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세리니까. 이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 받을까 하는데 소문이 들립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데. 예수님께 갔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까이 갈 수 없으니까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나에게로 가까이 오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밤 삭개오 너희 집에 가서 유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그 때 삭개오가 엎드려서 고백합니다. 부당하게 취한 것은 4배로 갚겠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두 배로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삭개오가 속건제 이야기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삶이 분리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안다고 해서 아무런 기준 없이 막 살면서 전도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전도자라고 띠 두르고 나가면 세상의 어둠이 물러가나요?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악한 영, 흑암, 어둠입니다. 영적인 세력이 있습니다. 띠를 두르고 가면 어둠의 세력이 물러나가요? 만왕의 왕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지 않으면 어둠을 우리가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도덕성이 아닙니다. 이것이 도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제사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제사 제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살리시는 제도입니다. 너희 축복된 민족으로 만들고 싶어. 하나님의 나라의 대사로 만들 거야. 너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들고 싶어. 그래서 주신 제사 제도. 그 중의 마지막 속건제. 너희 노예처럼 살지 마. 도둑놈처럼 살지 마. 하나님의 선물을 함부로 훼손하고 가져가고 훔치고 도둑질하고 살지 마.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숫양을 잡는데 생각해보세요. 성막은 영적으로 거룩한 것이지 실제 성막은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매일 짐승을 잡으니 동물의 피가 적셔있고 얼룩져있고 얼마나 더럽고 역겨운 곳이 성막입니다. 죄를 해결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깨끗한 것인가요? 죄인들, 강도를 사형할 때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가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안 받으려고 나를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그릇된 것, 우리 안의 죄, 우리 안의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은 괴롭다는 말입니다. 깨끗하게 얌전하게 있어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 체질 하나만 바꾸려고 해도 힘들잖아요. 그것 하나 바꾸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데 우리의 인생이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된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가기 위해서 하나님 우리를 바꾸시는데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먼저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할 때 그 일이 가능하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_레위기21:26’

 

하나님이 소유 삼으려고 만민 중에서 우리를 구별하시는 작업인 것입니다. 죄가 드러나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바늘을 훔칠 때 부모님께 걸려야 합니다. 나중에 소도둑 되어서 걸리면 소 훔친 맛이 있기에 못 고칩니다. 죄가 드러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죄책감이 들면 이것은 복인 것입니다.

 

. 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하시나?

- 하나님의 나라(기업,축복)를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것

 

하나님이 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하시나요? 제사의 목적이 무엇이죠?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노예 같은 우리의 인생, 생각, 마음을 바꿔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살도록. 그런데 자꾸 자꾸 남의 것 탐하고 애굽처럼 살려고 하면 안 되죠. 그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건제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잠언21-22장에 그런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_잠언21:31’

 

우리 인생의 승패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해 마병을 예비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_잠언22:2’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_잠언22: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_잠언22:6’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지 않으면 율법(복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_잠언22:12’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_잠언22:17-18’

 

네가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_잠언22:21’

 

속건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이유. 깨달으라고 합니다. 돌이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네가 자기의 일을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_잠언22:29’

 

이 왕은 하나님 앞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에 능숙한 사람. 속건제 제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도 반복하면 신호등 자꾸 어기면 못 고칩니다. 교통질서 어기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예수 믿어라. 이러면 믿겠습니까? 지금 한국교회가 이 모양입니다. 밤마다 술 먹으면서 밤마다 묵상하세요. 설교하면 듣겠습니까? 속건제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일에 능숙해야 합니다. 죄가 반복되면 능숙하게 되고 그러면 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에 능숙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말씀 깨닫는 것이 도대체 뭐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성령 하나님, 도와주세요. 우리가 죄악 된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가능하나요? 십자가를 사랑하면 가능하데요. 십자가를 사랑하는 일을 반복했더니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후의 승리까지 인도하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험한 십자가를 붙들라고 하세요. 십자가를 능숙하게 반복하다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영적인 승리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자식이 암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하루 3번씩 약 먹고 하루에 1시간씩 운동하라고 하면 패서라도 시키잖아요. 안하면 죽으니까.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분들이 계시지요. 바꾸셔야 합니다. 속건제 드리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속건제를 드리는 것은 쉽지만 속건제 드리기 전에 가서 화해하고 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삶을 노예처럼 마음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삶에 대한 회개도 진행이 되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부적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일본을 갔습니다. 청소년 수련회 강의를 하고 친구선교사가 자기가 사역하는 곳이 있다고 가서 말씀을 전해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조그만 집에 열 몇 명이 있는데 그 날 메시지를 준비를 안 해서 신앙 간증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울고 난리였습니다. 들어보니 거기에 마을에 아주머니 한 분이 사는데 엄청 못된 아주머니였습니다. 돈은 많은데 사람들에게 못되게 하는 아주머니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느 날 깨달은 것입니다. 속건제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여전히 욕하고 자기가 복음을 전해도 받지 않고. 이 아주머니가 자기 집 하나를 교회로 만들고 자기 집 하나를 카페로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과부도 돌아오고 병에 걸린 할머니도 예수를 믿고 아이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고 싶어 했더니 어린이집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아주머니 한 사람이 마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자기가 하는 이야기가 자기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커서 다 갚고 사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마을의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습니다. 옛날에서는 못되게 했는데 지금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복음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속건제를 묵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속건제를 삶이 아닌가.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이웃에게 부모 형제에게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들을 섬기고 용서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속건제의 삶이 아닌가. 속건제를 통해서 임하는 얼마나 큰지 신기하죠. 성경 곳곳에 속건제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속건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앞의 4개 제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면 속건제는 받은 사랑에 대한 은혜를 갚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살 수 있는 삶들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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