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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금요예배

<금요예배>


일시:  2014년 7월 11일

제목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말씀 : 시편 25 : 1-13

설교 : 오승주 목사



2014-07-11 금요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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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교회 금요예배 20140711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과연 나는 구원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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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준비하면서 한주동안 많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저도 목사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회복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늘 결단하고 다짐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금세 유혹에 넘어져 실수하고 죄짓고 낙심하는 삶, 인생이 반복되곤 합니다. 특히 마태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목사인 저도 그러는데 현장에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이 성경(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입니다. 그냥 주일에 교회 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주일에 교회만 오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처소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주일에만 그리스도인인 척 하는 것이 아닌 내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복음이니까 괜찮아.’가 아니고 복음으로 내 삶을 가꾸어 어찌 하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담이고, 그것이 힘들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세대에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습니다. 아예 교회를 안가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세대이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니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님이 내 삶을 바꾸십니다. 그것이 작은 걸음이고 작은 도전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빛 비추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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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_시편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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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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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을 우러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묵상을 통해 깨닫고, 또 우리 삶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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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를 의지하는 자_시편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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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신앙생활의 기준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니 주님을 의지하는 삶보다 그렇지 않은 삶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7일 동안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일에 교회 가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지한다는 뜻을 아실 것입니다. 돈에 인생을 의지하면 항상 , , 할 것입니다. 저는 돈에 제 인생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금방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을 잘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없이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저는 의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의지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가장 의지합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전화하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힘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납니다.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고백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마음을 주님께 고백하십니까?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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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의 진리로 살아가는 자_시편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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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주의 진리로 살아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의 진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식으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가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건강으로 살아갑니까? 인간관계로 살아갑니까? 사람들은 변하는 세상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심지어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자꾸 변화하고, 문화는 날로 발전하기 때문에 그것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그것을 좇아 살다 인생이 이상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이 그렇습니다. 세상 풍속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기준 삼으려 노력합니다. 목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의지하는 것은 곧 주의 진리인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면 우리 인생이 복되다고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진리로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주의 진리로 산다는 말은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언약백성으로 그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삶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진리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서 있지 않으면 누가 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방황하는 불신자들이 우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진리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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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개하는 삶을 사는 자_시편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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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회개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늘 마음이 괴롭습니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교회들은 다들 좋은 것이 무엇인지,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고 죄에 대해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성도들도 자신의 삶에서 죄를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주일에 교회에 다녀오면 지옥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아서 죄인줄도 모르고 사는 이 시대에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이 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삶을 은혜로 바꾸어줍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신앙생활은 율법, 지식이 됩니다. 회개는 주님과 친밀하게 만들어줍니다. ‘목사님, 또 죄를 다시 짓는데요. 그래도 회개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날마다 해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대적인 전도자 바울도 자신이 곤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은 날로 퇴보하게 됩니다. 점차 예배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회개가 없다는 것은 주님이 필요치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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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_시편25:10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의 마지막은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대단한 것을 할 수 있나요?

내일 저희가 양화진에 갈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전 성도님들이 다 오셨으면 합니다. 그분들이 대단한 일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그분들은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작고 작은 일입니까. 어떤 분은 배우지 못해서 글도 모르지만, 단지 그것을 위해 평생 교회에서 기도만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이 넉넉하지 않아 언약과 증거가 사실임을 알고 수고로 대신 하신 분도 있습니다.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작은 일들을 주님이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지켜하는 것입니까? 언약과 증거를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주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세대에 그리고 다음세대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일이고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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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려 한다면 이런 각오는 하셔야 할 듯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여러분을 괴롭힐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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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로움과 괴로움이 많은 삶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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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만 그러한 줄 알았더니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근심이 많고 고난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안 하면 외롭고 괴로울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의 고백은 복음을 몰라서 외롭고 괴롭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을 우러러보는 사람이 세상, 현장, 직장에서 외롭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기 때문에 외롭고 괴로운 것입니다. 주님을 우러러 봄이 외롭고 괴로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데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저들과 같이 불법을 행하고, 쾌락을 좇아 살아야 하는데 말씀을 기준삼아 살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은혜를 구했습니다.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넘어지면 포기하지 말고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상처받아 낙심했다면 포기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삶이 어렵고 근심이 많다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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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_시편24: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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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디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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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영적싸움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을 사단이 너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해야 합니까? 여러분의 살아가는 삶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싸움을 한다고 삶을 회피하고 산으로 가지 마시고 그 현장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싸움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귀들과 싸워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우리는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싸우지 말고 마귀와 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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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_시편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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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디서 주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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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현장에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고, 오늘처럼 금요예배에 교회에 와야 하겠지만 점차 그 은혜를 현장으로 넓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셔야 한 영혼이라도 제대로 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전도하지 않으려 합니다. 형식적인 선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으려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것이 아닌, 믿지 않는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언약이 그들에게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약속은 그물에서 우리 발이 벗어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눈이 주님을 바라볼 때 벗어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영적인 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소임입니다. 현장에서, 여러분의 그곳에서 주님을 바라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것을 작은 일,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 작은 것들이 이 나라를 살렸습니다. 저의 그 작은 일이 저희 가족을 살렸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데 어찌 다른 마음이 들겠습니까? 왜 한국교회가 이상하고 왜 목사님들, 기독교인이 문제가 되는 줄 아십니까? 그들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주님을 바라보는 찬양팀을 바라보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프로그램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정작 자신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생활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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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_시편2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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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_시편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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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제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하여 내 삶이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그것이 비록 쉽지 않은 것 인줄 알지만, 그 길이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사명임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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