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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예배 드림이 기쁨 됩니다'

가스펠편지 Gospel Letter

- 예배 드림이 기쁨 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1시간이 넘도록 복음을 깨달은 것에 대해 열성적으로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 간증(?)은 저에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과 또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지식이 생겼다는 것과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 대견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날 한 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신감도 필요하고, 또 대단한 사역을 위한 응답이 필요한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명을 위해 흔들림 없는 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전진해야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잠을 이룰 수 없는 고민의 내용은 내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남 이야기가 입에 가득하고, 여전히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고, 여전히 은밀한 죄의 유혹을 탐하고 살아갑니다. 너무나도 잘 안 되는 내 모습을 보면 복음을 과연 깨달았나 한심한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_이사야2:8-9’

우리가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이 어쩌면 어둠의 도구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응답 때문에 예수님의 침 뭍은 손을 거부하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요? 응답이 자존심이 되고, 응답이 비교하는 도구가 되고, 응답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신앙의 증거가 무엇인가요? 내가 거룩하게 되고, 내가 도덕적이 되며, 세상 기준으로 더 잘 살게 되며, 잘 되는 것인가요? 또 많은 지식과 경험이 쌓여 남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결국 나 아닌가요!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_이사야2:10-11’

신앙의 증거는 내 연약함을 깨달아 예수님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베푸신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 아래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신앙의 증거는 예배입니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불렀던 찬양처럼 예배 드림이 기쁨이 되는 것이 신앙의 증거입니다. 그런 우리라야 매일 새롭게 될 수 있고, 매일 주님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로 고침받고, 그 은혜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 와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주 계신 곳엔 기쁨 가득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네 예배드림이 기쁨 됩니다.’

복음을 말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이고, 복음을 깨달았다는 말은 예수님만 필요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홉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_이사야2:22’

#예배는 #우리네모든삶의 #방향목적이유가 #예수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