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불편함이 주는 선물 '
저는 설교준비가 저의 삶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립니다. 그런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과정은 참 불편하고 귀찮습니다. 성경도 수십번 들여다봐야지요. 원어도 찾아봐야지요. 관련서적도 봐야지요. 하나님의 시간표인 교회와 성도, 세상과 시대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설교로 살아나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니 너무 행복합니다. 불편한 시간이 아닌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에게도 참 편리한 시대가 되었지요. 조금 성공(부흥)했다 하는 수많은 선배목사님들의 설교를 그대로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의 모든 과정은 생략해버린 채 문서만 베끼는 것입니다. 편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목사들이 과연 건강한 목사일까요?
신앙생활은 어떨까요? 요즘은 대형교회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예배에 못나오는 성도를 위해 인터넷 생방송같은 너무 좋은 서비스를 합니다.(물론 우리교회도 당연히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여 예배드리는 척하는 신앙인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예배가 끝나고 돌아갈 때면 설교요약부터 기도문까지 작성해서 손에 쥐어줍니다. 새신자들에게는 그것이 너무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신앙생활을 제법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문제만 생겨도 넘어지고, 작은 시험에만 들어도 신앙생활을 포기해버리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굳이 말씀을 두 번, 세 번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기도제목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만들어서 먹여주는 편리함 때문은 아닐까요?
아무리 불편해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편하게 시켜먹는 음식은 우리 몸을 절대 건강하게 해줄 수가 없답니다. 너무 불편하지만, 운동을 해야 질병을 이기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설교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정이 불편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있어야 영혼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러합니다. 불편함이 생명을 줍니다. 예배도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계속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기도도 직접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영혼이 치유되고 살아납니다. 기도할 때 응답도 받게 됩니다. 복음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뿐인가요? 어려운 성도가 있다면 돌봐야 하겠지요. 불신가족들이 있다면 섬겨야 하겠지요. 그것을 위해 우리 삶도 가꾸어야 합니다.
너무너무 불편한 신앙생활같지만, 그렇게 할 때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신앙생활이 곧 건강한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_마태복음7:6-7’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 역시 개, 돼지가 아니란 법은 없지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는 건강한 신앙인인가요? 아니면 불편하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로 밟고 사는 종교인인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_히브리서4:16’
_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음에 행복하고,
예수님을 전하며 살 수 있음에 감격스러운, 오승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