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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5-01-16 금요예배

< 금요예배 >


  일시:  2015년 01월 16일

제목 : 기업 무를 자

말씀 : 룻기 4:18-22

설교 : 황안나 전도사


2015-01-16 금요예배.hwp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1KTHZuw

영상 다시보기 http://vimeo.com/116959956



2015-01-16 금요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 룻기서 시대적 배경-21:25

 

룻기서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쓰여진 성경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_사사기 21:25’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하면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신정시대를 버리고 이웃 이방나라들의 왕처럼 사람의 왕이 통치하는, 그래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왕정시대를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기를 거치는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시고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에게 재앙도 주시고 또 사사를 세워 다시 언약을 주고 세워줍니다. 이렇게 사사시대가 이런 일들로 늘 반복이 됩니다. 그래서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라는 구절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룻이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즉 사사시대에 살고 있던 룻의 이야기를 통하여 기업 무를 자의 말씀을 함께 붙잡으려고 합니다.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는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야기라고 하면 옛날 이야기, 즉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옛날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걸로 심지어 성경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야기, 즉 내러티브는 고대에 구약 성경을 기록 할 당시 글 쓰는 장르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내러티브와 다르게, 구약시대 이야기라는 장르는, 있었던 사실을 인물이나 사건중심으로 적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룻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함께 언약을 붙잡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업 무를 자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름은 나오미였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그들이 모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엘리멜렉이 죽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오미의 두 아들이 두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거주한지 10년이 지나 이 두 아들도 죽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가문에는 여자 셋 만 남게 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그리고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입니다. 이러던 중 나오미의 고향, 즉 베들레헴에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을 돌보아 양식이 생겨서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룻기1:8절에 보면 너희는 각각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제 이 세 여자가 부둥켜 안고 가지 않겠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룻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오늘의 제목 기업에 관하여 나옵니다. 성경에서 기업은 재산, 자녀, 땅 등의 내용을 지칭합니다. 룻기1:11-13절에 보면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도 없고 늙어서 더 이상 남편도 두지 아들도 갖지 못하고 남편을 두어 아들을 낳는다 하여도 며느리들이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리겠냐라고 합니다. 즉 나에게는 이젠 아무 기업, 즉 남편도 재산도 땅도 아들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때 룻이 이런 나오미에게 고백을 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_룻기1:16-17'

 

이 내용은 단순한 고백이 아닙니다. 이것은 룻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단순히 룻이 의리가 있어서, 착한 며느리여서가 아닙니다. 이방 여인 룻이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들어와 십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또 여호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이 가진 믿음과 신앙을 평상시에 듣고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최대의 위기가 닥쳐올 때 그는 한 여자의 인생을 걸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나섭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미와 룻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이스라엘의 관습 중에 추수할 때 일부러 보리를 조금씩 흘려서 가난한 자나 과부들이 와서 줍게 합니다. 그래서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밭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보아스는 성경에서 유력한 자라고만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아주 신실한 신앙인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등장하면서 보리 베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 룻을 발견하고, 그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는 그냥 평범한 이삭 줍는 소녀도 놓치지 않습니다. 룻에 대하여 듣고 그가 더 줍도록 더 많이 흘려놓으라고 은혜를 베풉니다. 그리고 룻을 불러다가 말합니다. 여기서 줍고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룻이 겪었던 일을 다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나오미의 집, 또 즉 자기의 친척 엘리멜렉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 알고 다 듣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보호받으러 온 룻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해줍니다. 룻이 저녁에 돌아와서 시어머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줍니다. 나오미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_룻기 2:20'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은 대신 무언가를 행하여 준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나의 제일 가까운 친척이 가서 복수를 해줍니다. 그러면 이 친척이 기업 무를 자입니다. 또 한 사람이 땅을 경영할 힘도 없고 땅을 팔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대신 땅을 사고 경영을 하여 희년이 오면 다시 돌려줍니다. 그러면 이 가까운 친척이 바로 기업 무를 자입니다.

또 한 여자가 남편이 변고를 당해 아들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아들을 낳아주고 그 가문에 씨를 남겨 대를 이어가게 합니다. 그러면 이 가까운 친척이 바로 기업 무를 자입니다. 하지만 기업 무를자가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본인이 아무 대가를 원하지 않고 자원해서 대신 행하여야 합니다.

이제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모든 말에 순종을 합니다. 본문에 보면 룻이 보아스를 가리켜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니라 라고 합니다. 시어머니의 말대로 룻은 타작마당 곡식 단 더미에 누워있는 보아스 옆으로 갑니다. 보아스가 자다가 일어나서 깜짝 놀랍니다. 룻이 말합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어떻게 보면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는 겁니다. 이런 룻에게 보아스는 룻이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말하고, 룻이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들이 다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가문에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 즉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기업 무르기를 거절하면 보아스가 기업을 물어준다고 약속을 합니다. 결국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은 자기에게 손해가 올까봐 기업 무르기를 포기합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기업무르는 모든 절차를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서 행하고, 즉 증인들 앞에서 모든 기업 무를 자가 행할 것을 행합니다. 결국 엘리멜렉 가문의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고 혼인하게 된 것입니다.

 

. 진정한 기업-룻기4:18-22

 

우리 본문 18-22절은 계보가 나옵니다. 여러분이 보면 이 많은 이름 중에 아마 보아스와 이새, 다윗만 들어봤고 나머지는 다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18절 처음 계보에 등장한 사람이 베레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베레스가 누구냐면, 다말과 유다가 낳은 아들입니다. 다말과 유다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기생처럼 분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꼬셔서 아들을 낳은 다말입니다. 사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도 기업 무를 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말이 유다의 며느리인데, 남편과 유다의 아들들이 다 죽고 어린 막내아들을 시아버지가 더 이상 주지 않자, 이 간 큰 며느리 다말이 가문의 기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시아버지를 꼬십니다. 시아버지를 꼬셔서 시아버지가 직접 자기 가문의 기업 무를 자가 되게 만듭니다. 기업 무를 자가 반드시 자원을 해야 하기에 그는 기생으로 분장하는 방법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유다가 이 기생이 자기 며느리 다말이란 것을 알고 나보다 더 옳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다말과 유다사이에서 낳은 사람이 바로 본문에 첫 등장하는 이름 베레스인데, 이 베레스가 바로 보아스의 할어버지의 할어버지의 할아버지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보아스가 왜 그냥 룻을 지나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그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신앙이 좋고 현숙한 여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이방 여인 룻에 대하여 잘 안다고 말하고 그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까요? 보아스는 룻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반대로 말하면 왜 룻도, 왜 다말도 여자의 인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아들을 낳으려고 했을까요? 그냥 이 가문에 기업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랬을까요?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왜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 땅에 가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또 모세와 맺은 언약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메시아의 언약을 알고 기다리고 실제로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살고 있던 삶이 그 증거입니다. 그냥 허황되고 말뿐인 언약이 아닌, 실제로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그들의 인생 속에서 삶속에서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절 뱀의 머리를 깨트릴 메시아가 반드시 온다는 언약을 그들이 붙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붙잡았을까요? 그냥 머리로만 말로만 붙잡았을까요? 위기에 그 언약이 드러나고 신앙고백으로 되어질 만큼입니다. 평상시에 그 언약을 붙잡았다는 신앙인의 삶을 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도 나오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아스가 이 언약을 붙잡았기에 늘 은혜 베풀기를 좋아했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복을 받으라고 말하고 이방 여인 룻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기 친척 엘리멜렉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룻도 이방여인이지만 알고 있었기에 나오미를 따라가고 순종합니다. 결국 그들은 진정한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함께 본문을 본 것처럼 그들의 계보에서 이새, 또 다윗이 등장합니다. 왕의 계보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왕의 계보입니다. 이 계보에서 메시아가 탄생합니다. 이 언약을 붙잡고, 또 평상시에 언약을 붙잡은 신앙인들이 메시아 계보에 들어섰습니다. 진정한 기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결론

 

결론을 맺겠습니다. 룻기에 나타난 룻도, 보아스도, 나오미도 그들은 진정한 기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사사시대에 그들은 언약을 붙잡고 언약을 붙잡은 사람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늘 은혜 베풀기를 좋아했고 하나님에게 은혜를 구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여호와의 은혜가 임하길 원한다고 늘 말했습니다. 룻기에서는 인애라고 나오지만 인애라는 말이 바로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업 무를 자는 누구일까요?

본문의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인생에 여러분의 기업 물를 자는 누구입니까? 아무런 대가와 아무런 동기 없이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기까지 한 그 기업 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마귀 손에 잡혀 죽을 수밖에 없던 지옥에 갈 수밖에 없던 여러분의 인생의 죄 값을 생명의 값을 치러준 그 기업 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드려진 그 희생 제사,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구원이라는 인생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마태복음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1:4에 보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가스펠 여러분들은 이 기업을 이미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룻처럼 보아스처럼 우리 믿음의 조상들처럼, 나에게 복음을 전한 그 친구처럼, 그 목사님처럼 여러분들도 육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자들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단 한 번의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저 제3세계, 말없이 조용히 고통스러운 발버둥치는 엘리트들에게,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기업을 그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우리 인생에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 대가 없이 전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고 사람을 돕는다면 늘 한계가 오고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모스37절 말씀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업 무를 자로 살아가기 위해 말씀으로 우리에게 신앙인의 삶을 알려주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언약을 늘 가슴에 새기도록 강단에 서는 목사님을 위해 정말 여러분들이 마음을 담고 기도하십시오. 그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기 바랍니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평상시에 언약을 전달해주는 나오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이 이유가 있기에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한 명이면 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알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삼은 기업 무를 자 한명이면 됩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사사시대에, 언약을 붙잡은 룻기의 주인공처럼, 내가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업 무를 자가 되게 하세요. 다른 이유가 아닌, 다른 목적이 아닌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이 충분하기에, 내가 이미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한 사람이 기에 이 은혜와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나 한 사람을 통해 교회가 살아나고 가정 가문이 회복되며 이웃에게 소망이 되어주는 기업 무를 자가 되게 하소서. 매일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그 은혜와 행복이 나의 오늘 속에 가득차고 넘치게 은혜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