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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Letter. ' 이제는 몸도 살고 싶다 '

Gospel Letter. ' 이제는 몸도 살고 싶다 '

 

왜 나는 변화되지 않을까? 여전히 은밀한 죄들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고,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지 못하고 있다. 분명 말씀을 보고 들었을 때는 '아멘'이라고 깨달음이 있는데 막상 내 삶에서는 그 말씀을 외면하고 살아간다. 그런 시간이 아깝지 않고, 안타깝지도 않다.

 

선교라는 단어를 들어도, 불신자들을 봐도 안타깝지 않은 것은 왜일까? 어느 순간 전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여러 가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표라 스스로 생각한다. 말씀이 아무리 내게 주어지지만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내 패턴대로 살아간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인양 말이다.

 

속상하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속상하다. 무지막지 하게 속상하다. 신앙생활이 이런 것은 아닌데.

 

이유를 생각해본다. 내가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예수님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무엇인가? 성공인가? 남들보다 잘남인가? 세상적인 그 무엇인가? 세상이 제시한 행복의 기준인가?

 

그러니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된다. 귀로는 들리고 이해도 된다. 그러나 몸이 듣지 않는다. 삶이 듣지 않는다. 그저 내 편한대로 살면 그만이다. 교회가 어찌 되든 간에, 내가 먼저다. 내 영혼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먼저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것들이 이제는 나를 이끌고 있다. 내가 끌려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다처럼 되지 않을까? 그렇겠지. 백성들의 장로들이 꼭 그랬다. 자기들이 살려고 예수님을 죽여야 했다. 그렇게 하면 잠시라도 부유를 누리고, 잠시라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겠지. 그게 인간의 죄라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보이는 것 곧 육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영을 버리고 살아간다. 교회도 그렇다. 전부 보이는 것을 위한 프로그램이요, 시스템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_로마서8:7-8'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길이다. 보이지 않아서 다들 그렇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 않나.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힘없는 바보 같은 길이요, 멍청한 길로 보인다. 그러나 모두를 살리는 길이지 않는가? 신앙생활은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이기도 하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은혜다. 십자가는 매일 나를 새롭게 하는 비밀이다. 그 십자가가 적용되는 삶을 살고 싶다. 살리기 위해서라면 변화되고, 바뀌고 싶다.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고, 세상에 사로잡힌 사상과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 육이 아닌 영을 좇아 살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가 성취되는 참된 신앙의 길을 가고 싶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_로마서8:11'

 

 

 

 

_ 마음, 생각뿐이 아닌 내 몸까지도 순종하는 참된 신앙의 길을 소망하며,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