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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07-31 주일예배


2016-07-31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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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에서 나오는 힘_히브리서6:9-12

 

사람들은 수고와 인내를 요구하고, 종종 지루한 듯 하면서도 언제나 놀라운 효력을 나타내는 수단들을 배재해버립니다. 신앙생활을 항상 극적인 경험에만 근거한다면 그런 경험을 끊임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장 곡선이 서서히 증가하기 보다는 단번에 정점에 이르기를 원하기 때문에 늘 또 다른 위대한 역사를 찾기 바쁩니다. 그러는 동안 내 가족, 내 교회, 작은 만남들을 그냥 지나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내 평범한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평범한 주일에 평범한 교회에서 평범한 수단을 사용하여 평범하게 예배한다고 해서 그때 일어나는 일 자체도 평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배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진정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성령과 말씀을 통해 죄인들을 감화시키시고 자신의 양 떼를 불러 모으셔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작업을 하십니다.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영의 양식을 먹이시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깊고 넓게 확장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건들을 통해 내세의 능력 곧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이 악한 세대의 가장 어두운 곳에 침투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청년들이 결혼에 대한 잘못된 개념,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혼식을 화려하게 하는 것이 결혼일까요? 신혼여행을 끝내주는 곳에 다녀오는 것이 결혼인가요? 막상 결혼해서 살다보면 힘든 일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획기적인 무엇인가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결혼에 대해 이미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졌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라도 하면 되지만, 가정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혼생활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주셔서 가정을 통해 우리의 후대들이 자라고, 가정을 통해 복음의 빛이 전달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획기적인 무엇인가로 해결하려고 하니 답이 나지 않습니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대화를 하면서 그러한 세월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존중하며, 아끼며, 기도하며 섬기는 것이 가정이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가정에서 올바른 후대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여러분에게 하찮은 예배 같다면 정말 잘못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_히브리서6:9-12’

 

제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저희 교회는 조립식으로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예배드리던 주일학교는 선교원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일찍 가서 의자도 치우고, 중간에 달아놓은 커다란 문도 분리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또 원 위치해야 합니다. 그걸로 회의하면서 싸웠습니다. ‘누가 하냐? 순번을 정하자?’ 그래서 저희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왜 문제일까?’ 그때 제가 은혜를 받고 있을 때인데 그런 작은 일이 매우 좋았습니다. 제가 불신자 가정에서 누나와 자취를 하고 있을 때인데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나? 머리가 좋아서 뭐 리더를 할 수 있나?’ 사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청소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그 건물이 없어질 때까지 했습니다. 누가 알겠어요? 그런 일을 하면서 제가 지금의 목회자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유치부 예배에 참석하면 정신없지요? 초등부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무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틀린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우리 가정을 섬기는 일을 배우고, 학교에서 불신자 친구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교회에 제일 먼저 와서 준비하고 기도모임하면서 저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고 제 신앙도 자라게 되었습니다. 제 영혼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지만 영혼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에서 나오는 힘으로 가정도 복음화 하게 되었고, 사람도 살리는 목회자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새로운 삶이 시작된 맹인

 

1. 바리새인들의 착각_요한복음9:18-19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_요한복음9:18-19’

 

영적인 눈을 열지 못하면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가 내 눈에 크게 보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당연하게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죄를 짓든, 부모가 죄를 짓든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어서 눈이 멀쩡하고 손, 발이 멀쩡하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맹인이 나았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냐? 심지어 부모를 찾아가 확인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켜온 것들을 깨질 수 있으니 중대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른 것을 안식일에 했다고 고발까지 하였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맹인은 두 번 눈을 뜨게 됩니다. 처음에는 육신의 눈을 뜹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서 영적인 눈을 뜹니다. 여러분 솔직히 육신의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인가요? 영적인 눈을 뜬 것이 기적인가요? 우리는 육신의 눈을 뜨는 것을 더 큰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죽고 나면 육신의 눈을 뜨든 그렇지 않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혼에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맹인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지금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워낙 육신적인 기준으로 사니 영적으로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2. 예수님이 오신 이유_요한복음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_요한복음9:39’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눈을 떠서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맹인이 되게 한다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화를 내고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맹인이 된다는 말이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죄인이라고 고백하여 예수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믿느냐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허물을 지적할 때 기분이 나쁠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 말이 맞을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죄인임이 인정되어질 때 얼마나 제 삶이 달라졌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표적과 같은 기적을 봤음에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지 못했음에도 믿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여야 하는 죄인으로 봤습니다. 안식일에 침으로 흙을 짓이겨 눈에 발라줬다고 그것을 안식일을 어긴 죄라 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이런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실제로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육신의 눈이 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3. 차라리 맹인이 되었더라면_요한복음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_요한복음9:41’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육신의 눈이 밝았습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양에게 먹일 수 있는 초장도 많고 큰 도시도 가깝고 거기 가면 정말 잘 살 것 같았습니다. 그 땅이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실 땅이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땅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결국 다 망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 그런 것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 삽니다.

이제 비브릿지가 법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중요한 사역을 시작합니다. 사실 예산이 풍성하고 넘치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못하잖아요. 신천지에서 수십억을 후원하면 어떻게 하실래요? 세상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입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수십억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작은 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왜 제사문제가 힘들지요? 예수 믿기 전에는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모신다 해서 좋았는데 눈을 뜨고 보니 그것은 부모님께 하는 것이 아니고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눈을 뜨고 나면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의지해서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육신의 눈이 밝아서 육신의 눈을 의지해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차라리 맹인이 되었더라면 그것이 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맹인은 정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 그것을 정죄하면서 내 죄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속아 살았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예배든, 전도든 잘할 때입니다. 그때 제가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 왜 그렇게 사냐? 너 왜 그렇게 밖에 신앙생활 못하냐?’ 말로 사람을 죽인 것을 몰랐습니다. 칼로 죽인다고 해서 죽이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래전에 한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에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얼굴로 다니냐?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거 모르냐?’ 웃고 지나가거나 맞대응하지 못하고 이 아이는 그 말을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내 얼굴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얼굴인가보다.’ 이 아이는 교회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도 사람들이 얼굴만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가슴에 못을 박고 삽니다. 가만 보면 우리가 더 심합니다. 말로 괴로움을 준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영적으로 눈을 열어서 계속해서 얼마나 우리가 악한지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으로 죽으라고 죄인 됨을 깨달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자유 하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리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영적으로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세의 한 수도원이야기입니다. 가정도 버리고 세상도 버리고 모여서 사는데 왜 기쁨이 없을까 매일 기도하고, 예배드리는데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를 찾아갔더니 큰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무슨 죄인가요?’ ‘예수님이 수도원의 누군가로 변장해서 함께 하시는데 수도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죄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수도사들에게 했습니다. 그러니 수도원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말씀을 보고 기도생활을 하는 것은 그대로인데 서로를 향하여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지요. 정말 은혜로운 수도원이라고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열어 진짜 교회가 되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제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면 그 사실이 믿어집니다. 더 이상 염려 근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맹인이 완전하게 새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 영혼의 건강은 인생이 달린 문제입니다_이사야55:1-2, 히브리서6:19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_이사야55:1-2’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모든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신랑 되신 예수님과 혼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로 준비시키신다. 우리가 겪게 되는 일들조차도 궁극적인 의미는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는 과정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정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영적으로 눈을 떠서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혼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혼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저는 이제 겨우 그것이 보입니다. ‘목사님 정말이세요? 네 정말입니다.’ 그동안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던 이유가 믿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바쁘고 분주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외면했습니다. 문제가 생겨서 내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짜증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자꾸 영혼보다는 육신적인 것에 관심을 더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내 삶에 중요한 분이 아니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도, 그분께 드리는 예배도 점차 형식적이게 됩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내 죄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충현교회 원로목사였던 김창현목사님이 몇 년 전 공개석상에서 회개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신사참배를 한 목사님들을 마귀당이라고 함께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평생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았는데 가장 무서운 교만 죄를 지어서 지금 회개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한국교회를 이끌겠소라고 했지만 진짜 교회가 세워졌나요? 교만한 죄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때부터 한국교회가 얼마나 뿔뿔이 찢어지고 갈라지고 얼마나 싸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공개석상에서 회개하는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을까?’ 예수님은 맹인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바리새인들에게 정직하게 말하였습니다. 그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변화가 됩니다. 정직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축복된 인생이 되는 것은 잘 먹고 잘사는 결과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도 나중에 이상한 문제에 걸려 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 질문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지요. 세상의 기준으로 살려하면 언제나 부정하고 부패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제대로 시작합시다. 그것은 큰 집회나 큰 사건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시작되는 묵상일기라든지, 이렇게 드리는 예배 속에서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성장하게 하며 훗날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날 때 아름다운 신부가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게 되면 남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기 위해 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늘 예수님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_히브리서6:19’

 

주님께 소망을 가지는 것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영혼이 중심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맹인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새로운 시작을 하길 원합니다.

 

주님 바리새인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해 나는 거룩하고 남은 거룩하지 않고, 나는 깨끗하고 남은 더럽다고 착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남을 정죄하며 살아 정작 자신의 영혼의 상태는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배척하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세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날마다 예수님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영혼이 살아나며 날마다 안전하여 내 모든 인생이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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