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1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음성 다운로드 http://bit.ly/2cOqjJu
가스펠워십 다운로드 http://bit.ly/2cavaVs
Ⅰ. 믿음의 가장 큰 장애물: 욕심_야고보서1:15, 누가복음12:21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_야고보서1:15’
말씀에서 멀어지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은 매우 작은 단어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똑똑하여서 재정을 담당하고 있던 가룟 유다는 재정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욕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감당할 수 없는 죄가 되버린 것입니다. 욕심이 커지고 급기야 오늘처럼 돈궤에 돈을 더 넣으려고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이처럼 욕심은 죄를 낳습니다.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제자라 할지라도 욕심이 자라도록 그대로 두면 예수님의 길, 생명, 말씀을 전혀 보지 못하고, 받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섭리겠지만, 개인을 두고 봤을 때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나 존재냐’라는 책을 20대 후반에 읽었습니다. 그 책은 철학책이지만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를 위해 살아갑니다. 소유하면 행복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지요? 욕심은 끝이 없고 죄를 낳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메이커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흔한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이런 것도 신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메이커 운동화를 처음으로 샀는데 잠이 안 왔습니다. 밤새 신어보고 또 신어보고 다 큰 청년이 그러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신나던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평생 행복할까요? 저는 차를 좋아합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봉고차(이스타나)를 주셨습니다. 거의 매일 세차하고 아끼고 그랬습니다. 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지금의 차인 소나타를 구입했습니다. 신발은 하루였지만 차는 이틀 동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욕심이 생깁니다. 더 좋은 것을 원합니다. 그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중요합니다. 복음은 원래 인간이 존재한 이유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으로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고 죄의 종노릇 곧 욕심의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깨달으면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누구냐는 소유한 것으로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는 돈이 많은 사람보고 잘 산다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못 산다 합니다. 맞는 표현입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부자이고 없으면 가난한 것이지 잘 살고고 못 살고의 문제는 돈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연간소득 3만 불 시대에 육박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인들의 구호는 경제문제가 압도적입니다. 여전히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온 나라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편리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_누가복음12:21’
솔로몬은 당대의 부자였습니다. 그는 더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의 고백을 아시지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느니라’ 돈이 있으면 행복하냐? 그러면 우리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재벌들이 자살을 하고, 정치인들이 자살을 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범죄를 저지릅니다. 욕심은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존재의 가치를 깨달으면 만족하고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은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가치를 회복시켜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게 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엄청난 신분이라는 사실도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존재의 가치를 누가 부여하나요? 이 마이크의 존재 이유는 이렇게 목소리를 크게 해주는 것입니다. 마이크를 집에서 장난감으로 쓰면 그것은 존재의 이유가 아니겠지요. 만든 사람은 그 존재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의 가치를 마이크를 만든 사람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을 존재하게 한 이가 그 목적을 알고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의 목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예수 잘 못 믿는 겁니까? 부자 되면 예수 잘 믿는 것입니까? 그건 사람 나름이지요. 불신자가 훨씬 잘 될 수 있어요. 예수 믿었더니 부자 되었네. 사실 정말 멍청한 간증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마리아 사건을 두고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가장 귀하고 복된 삶은 주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Ⅱ.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나요?
1. 마리아의 믿음_요한복음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_요한복음12:3’
마리아의 믿음은 이제 확고해졌습니다. 예수님이 깨닫게 해주신 십자가를 통해 틀린 믿음을 수정했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갱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예수님 시대니까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셨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전부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믿음의 갱신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 곧 십자가의 일을 깨닫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마리아가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했을까요?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저는 구원받고도 늘 가난한 가정과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구원받고도 뭐든지 힘든 제 삶과 능력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감사보다 불평을 찬송보다는 신세한탄을 더 많이 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에 확신을 하게 됩니다.
신학생 때 시골집에서 품팔이 하셔서 보내 온 돈은 항상 부족한 상태입니다. 제 성격에 더 달라고 말도 못합니다. 집 사정을 뻔히 아는데요. 그런데 십일조를 내려고 하니 그게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 중심을 아시지요?’ ‘그래 너의 중심을 알지. 넌 날 믿지 못하는구나.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그 말씀이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엎드릴 때 들렸습니다. 제가 그때는 믿음보다는 용기였고 패기였습니다. 그래 어차피 부족한 거, 좀 더 굶지 뭐 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내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 뒤로 죽지도 않아 이렇게 몸이 거대한 사람으로 살아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는 나드 향유의 값어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시집가기 위해 조금씩 향유를 모았습니다. 그렇게 가득 찬 나드 향유를 다 주님께 쏟아 부었는데 그 값이 무려 장정 한사람이 일 년 동안 일한 값입니다. 요즘으로 계산하면 4-5천 만원은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향유가 더 있었다면 전부 드렸을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것은 천국만 가게 하는 티켓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감사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늘 말뿐이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욕심, 내 동기, 내 꿈이 중요하지 한 번도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찬양하지 못했습니다.
2. 가룟 유다의 해석과 동기_요한복음12:4-6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_요한복음12:4-6’
그러나 가룟 유다의 해석은 논리적으로는 정확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비싼 향유를 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말리셨어야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라고 말하였지만, 진심은 그 돈을 훔쳐가는 습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입니다. 은밀한 죄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우리는 항상 가족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 보면 예수님을 위하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는 없습니다. 저는 항상 복음을 위하여, 렘넌트를 위하여 뛰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지 못했다면 저는 평생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물론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은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주신 것이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하여 일수록 주님을 위하여가 되어야 합니다.
3.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나요?_시편23:1, 시편119:130-131, 148, 165, 시편146:5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변화되면 제일 먼저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특징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삶이고, 목적이며, 방향이 됩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_시편23:1’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승승장구할 때, 부자라고, 편안해서 그런 고백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고난을 당하던 광야에서 받은 은혜를 주체하지 못해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그에게 은혜가 넘쳐서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 한분이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잔이 이미 넘칩니다. 은혜가 차고 넘치고 계십니까? 그것은 무엇인가를 소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_시편119:130-131’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빛이 내 삶에 비치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사모하여 헐떡인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냐?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_시편119:148’
사람들이 있으면 방해가 되니까 조용히 읊조리기 위해 새벽녘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만듭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묵상하시나요? 바뻐서요. 분주해서요. 아이들 때문에, 먹고 사느라, 사업 때문에 라고 말씀들 하십니다. 다 이해는 됩니다. 사실 목사님들도 그렇게 변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로다_시편119:165’
주님과 사랑하게 되면 평안 그것도 큰 평안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아도, 가난해도, 질병이 있어도 상관없어 하는 줄 아십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을 받기만 합니다. 받기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기도할 때도 우리는 ‘왜 이거 안 해주세요. 왜 저 사람처럼 안 해주세요.’ 늘 그렇게 소유개념으로 기도합니다. 받기만 하려고 합니다. ‘은혜 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축복해주세요.’ 소록도에 가면 나병환자분들이 계십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손톱, 발톱도 다 빠지고 얼굴이 녹아서 문드러져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신학교 때 거기 가서 예배드리고 오는데 우리 보고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할머니 한분과 대화하고 기도해드렸습니다. ‘전도사님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시는데 제가 속으로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야.’ 복음을 전해주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할머니가 그러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만나고 천국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이렇게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매주 오시니 너무 행복해요.’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_시편146:5’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Ⅲ. 욕심이 믿음으로 바뀔 때를 소망합니다._요한복음12:7-8, 잠언30:8-9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_요한복음12:7-8’
반드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 오늘 예수님이 이 마리아 사건을 복음이 전하는 모든 곳에 꼭 전해지게 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생각해보았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도해보고, 정리하면서 제 삶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십자가의 사랑에 대해 감사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렸잖아요. 그 감사가 느껴지십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다라고 다들 고백하잖아요.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감사가 아닐까요. 그런데 대부분 감사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아니 감사를 다 빼앗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엄청난 사랑을 받아 놓고도 가룟 유다처럼 비참한 생의 마감을 하는 것입니다. 다들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감사절을 절기로 지키기까지 합니다. 구원에 대한 은혜가 감사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진짜 구원인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욕심이 믿음으로 바뀔 때 삶의 감사가 회복됩니다. 찬송도 회복됩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_잠언30:8-9’
아굴이 하나님을 깨닫고 평생 소유하려고 사는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기도는 정말 멋지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불의 전차에 보면 에릭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삶의 원칙을 가졌습니다. 첫째,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침묵을 먼저 하라. 사람들이 말씀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기도해도 변화가 없는 것은 침묵의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회개하게 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 마음을 올바르게 세울 수 있고 올바른 자세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펜이나 연필을 들고 마음속에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적어두라.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라. 마지막으로 기도의 열매는 행동으로 맺어져야 한다. 뭔가 생활 주변에 구체적인 당신의 일을 찾으라. 그것이 작은 일이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당신의 시간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인내와 사랑을 테스트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에릭은 이것을 하기 위해 매일 꼭 30분 일찍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매일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일하면서도, 공부하면서도 함께 하시지만 집중해서 하나님과만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침이든 밤이든 언제라도 좋습니다. 그 시간이 없으면 우리 영혼은 계속해서 무엇인가에 빼앗긴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마음을 계속해서 짜증과 분주함에 빼앗깁니다. 믿음은 그것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더라도 다시 하나님 앞에 그것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릭은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았습니다. 소유개념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더 인기를 얻으려고, 더 모으려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신 목적을 알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의 목적을 따라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중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결과가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의 목적은 중국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 곧 감사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믿음의 길입니다.
✔ 주님 가룟 유다가 가지고 있었던 욕심과 은밀한 죄가 우리에게 있다면 오늘 십자가 사랑으로 돌이키게 하여 주세요. 결코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은혜를 주시길 간구합니다. 욕심과 죄로 살던 우리가 마리아처럼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합니다. 구원의 감사가 넘쳐 마음과 삶이 변화되어 우리를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영광스런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이제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진실된 믿음이 회복되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