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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11-13 주일예배


2016-11-13 주일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2016-11-13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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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_요한복음14:23-24

 

유석경 전도사님이란 분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인데 그가 말기암으로 천국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기록한 책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아니 유석경전도사님을 만나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신앙이 생기면 이처럼 의연할 수 있구나. 정말 신앙이 마음에 있으니 고백도 다르고, 삶도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 마음에는 신앙이 있을까? 우리들 마음에 신앙이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환경과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유다의 질문이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이것은 두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겠는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저 험한 세상은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가시고 나면 우리끼리 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어찌합니까?’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가 수능시험입니다. 전국의 수험생, 재수생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왜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도사로 부름 받아 모교회에 갔습니다. 가서 처음 맡은 부서가 중고등부입니다. 50여명쯤 되는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30%는 설교하기 전에 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30%는 아예 잡니다. 나머지 30%정도가 초롱초롱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조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전부 밖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예배 마치면 학원가야 한다고 1부 예배 마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설교가 30분 이내로 하셨다 하는데 저는 1시간 정도 했거든요. 그러니 부모님들이 항의하시기도 하고, 시간 맞춰달라고 하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전부 집사님 권사님 그러신데 과연 저분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저도 그때는 그것이 두려워서 설교시간도 줄이고 그랬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저 때문에 좋은 대학 못 간다. 그럴까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하루 종일 성가대 하고 오후 예배도 드리고 지네들끼리 기도모임 하고 그런 아이들이 걱정이 된 것입니다. 너희들은 학원 안가니? 공부안하니? 지금 보니 저희 교회에 중직자가 되신 분들이지요. 두려움 가득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입니다.

 

가룟이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_요한복음14:22-24’

 

하나님을 사랑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신가요? 사랑은 두려움도 이기고, 허다한 죄도 덮고, 사랑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도 준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너무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사랑하고 계시지 않다면 여전히 오늘 말씀이 두려움으로 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어떻게 평안을 주시는지 봐야 합니다.

 

. 무엇으로 평안하신가요?

 

1. 보혜사 성령으로만_요한복음14:26,로마서5:5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_요한복음14:26’

 

평안이 어떻게 내게 임하는가? 바로 보혜사 성령으로만 임하는데,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는 두려움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마귀는 우리를 속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적인 외로움, 두려운 일들이 닥칠 때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반응하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때 말씀이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구나! 이것은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구나!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이 임한 것을 단회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고, 또 성령은 어떤 물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보혜사로 보호하시고 은혜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_로마서5:5’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너무 작아 보였고, 로마는 거대했지 않습니까? 로마 황제의 핍박은 날로 더해 가는데 예수 믿는 것은 정말 보잘 것 없어보였습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그 안에서 로마를 살리는 소망을 가지라는데 세계적으로 발전한 로마의 문화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으시니 그 작은 로마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평안이 마음에 임하였습니다. 로마서16장에 보니 가장 먼저 자신이 변화되고 가정과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작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작은 일이잖아요. 그것이 마귀의 궤계를 무너뜨렸습니다.

 

2. 나의 평안_요한복음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_요한복음14:27’

 

이 평안은 예수님의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이요? 십자가를 지시는데 평안이요? 제가 아직 많이 어리지만 교회를 지켜보면서 매년 성도들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비율이 줄고 있고, 그마저도 밝지 않음을 느낍니다. 요즘 정황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상황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의 얼굴도 더 어두워지는 것인가요? 깊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니 우리도 소망을 잃어야 할까요?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디서 안정을 얻고 있습니까? 어디서 평안을 얻고 있나요? 사람들은 평안을 삶의 편안함 쯤으로 생각합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 내 마음대로 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평안도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요? 예수님의 평안은 어떤 평안이었을까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근심도 두려움도 가지지 않을 평안입니다. 그것은 곧 천국의 평안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평안입니다. 십자가를 지셔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근심이 올 때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번 주에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한 젊은 집사님이 상담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던 때라 그런 전화를 자주 받곤 했는데, 그분도 자기의 딸에 관한 고민 때문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느 날 착하고 신앙 좋게만 생각했던 고등학생 딸이 음란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그분에게 딸을 사랑해주세요. 하나님을 잘 믿도록 안내해주세요.’ 라고 말해주었는데 충격적인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 그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통곡하며 울더라고요. 제가 그때 딸이 문제였나요? 아니지요. 하니까. 사실 그때 남편의 외도로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고, 경제문제가 있었다고 실토를 합니다. 딸에게 거는 기대가 무너져서 너마저 왜 그러니 하고 심하게 했더니 딸이 그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점차 이상해지더니 결국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있을까요? 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주일에 학원에 간다고, 공부해야한다고 하지요? 부모님들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요? , 성공, 명예 하는 욕심 때문이 아닌가요?

 

3. 세상의 평안_요한복음14:27,누가복음12:16-21,이사야39:6-7

 

세상의 평안이 주는 평안은 거짓 평안입니다. 요즘 메시지들을 듣다보니 참 두려운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제쳐두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을 제쳐두고 그것이 가능한가요? 영적인 세계를 제쳐두고 육신의 세계를 잘 살아 보자가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_누가복음12:16-21’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라고 하는 것이 평안인가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안이 더욱 심해지고, 그래서 이처럼 문제가 많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할까?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_이사야39:6’

 

히스기야왕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때 바벨론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고와 온갖 보석과 보화들이 가득한 창고를 보여주고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엄청난 분노를 하셨습니다.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 않습니까? 세상의 평안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정말 평안은 어디에 있습니까?

 

. 우생마사_요한복음14:30-31,로마서1:28,2:5.사사기17:6,21:25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_요한복음14:30-31’

 

이 세상의 임금이 있습니다. 세상의 임금은 순리가 아닌 역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소보다 말이 훨씬 수영을 잘한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말은 홍수에서 물을 거슬려 올라가다 지쳐서 내려오고 또 올라가다 지쳐서 내려오고를 반복하다 탈진해서 익사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소는 물을 따라 가다가 얕은 곳이 나오면 기회다 싶어 빠져나온다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질서를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을 어기는 것이 역리입니다. 광우병이나 환경 문제 같은 것들이 역리로 나온 결과들입니다. 가장 큰 역리는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 우상숭배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_로마서1:28’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_로마서2:5’

 

여러분 우리가 진짜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저 지금 마음이 정말 편해요. 두려운 것도 없고 근심도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소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마음을 열어 저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말을 잘 못합니다. 대부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합니다. 거짓평안으로 말입니다. 저도 처음엔 거기에 속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면 속았습니다. 서울대라도 다닌다 싶으면 속았습니다. 좋은 차라도 타고 나타나면 거기에 속았습니다. 거짓평안에 속았습니다. 진짜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 앞에서 평안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말씀 앞으로 갈 때 내 영혼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의 임금은 자꾸 거짓 평안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영적인 역리입니다. 돈을 섬기고, 문화를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존 하이드 선교사님의 전기 기도로 매일 기적을 체험한 사람에 보니 그가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여 인도로 가는 배를 타고 갈 때였습니다. 그 순간까지 그는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스스로가 대견하였습니다. 아버지도 목사였고,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선교사로 헌신했고. 그것도 아주 훌륭한 선교사, 위대한 선배 선교사들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인도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위대한 선교사가 되는데 장애가 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용인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그의 야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밑바닥에는 흉물스러운 자아 추구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존하이드 선교사가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편지 한 통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배에 오르자 아버지 친구 목사님이 보내 서신이 선실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즉시 뜯어서 읽었는데, 편지 내용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짤막한 몇 마디 말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잿더미가 되었고 맹렬한 분노가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편지에는 단지 사랑하는 존, 네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까지 너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을 거야!"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편지를 구깃구깃 구겨 선실 바닥에 던져버리고, 분을 주체 할 수 없어서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이 말은 그가 지금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갑판을 거닐면서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나는 선교사로 인도에 가고 있어. 그저 그런 선교사가 아니라 최고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겠어? 그런데도 내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고 주제넘은 말이잖아!’ 분노가 치밀어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맹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평생 신실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다시 선실로 내려가, 구깃구깃 구겨 던져버렸던 편지를 다시 집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아버님 친구 목사님이 옳다는 것과 자신이 선교사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려가 자신을 성령으로 채워달라고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가 품었던 것이 이기적인 야망이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배가 항구에 당도하기 전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리라 결심하고 더욱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보게 될 언어 시험에서 낙방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무명의 선교사가 되어도 좋으니 다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이 영적 몸부림은 항해가 끝날 무렵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순간, 존하이드 선교사의 마음의 거짓 평안은 깨어졌지만, 위대한 선교사가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_사사기17:6’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옮은 대로 행하였더라_사사기21:25’

 

그래서 신앙에는 항상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평안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섰을 때 평안하다면 정말 평안한 것입니다. 죄를 짓고 있다면 말씀 앞에 설 때 평안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죄를 짓고 있는데도 말씀 앞에 섰을 때 평안하다면 그것은 거짓 평안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마음을 주님께 드러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말씀이 들리셔야 합니다. 마음으로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새벽기도회를 두고 진실하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고 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과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기준으로 삽니다. ‘저 사람은 변화가 안될 거야. 우리 가정은 절대 행복할 수 없어. 우리 교회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 과연 그런가요? 어떤 기준으로 살고 계신가요? 어떤 평안을 누리고 계신가요? 예수님의 평안으로 정말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에 속아 살고 있는 저희에게 예수님의 평안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거짓 평안으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씀 앞에 서서 점검되어지길 원합니다. 이제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말씀이 생각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마음과 생각에 말씀으로 비추는 신앙생활이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겉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과 모든 삶에서 신앙이 고백되어지는 평안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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