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호질기의(護疾忌醫) '
‘병이 있는데도 의사 앞에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라는 사자성어입니다. 쉽게 말해서, 문제가 있음에도 충고를 듣기 싫어하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전에 마태복음을 설교할 때 가장 의아한 사람들이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헬라와 로마의 통치세력과 결탁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기득권 사람들이었지요.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얼마나 좋고 행복했는지 그들은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고, 즐기고 누리는 것들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_마태복음22:23’
팀 켈러 목사님이 쓰신 ‘거짓 신들의 세상’을 읽으면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사두개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저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부여한 가치 그런 것들이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 오직 예수, 오직 복음 그렇게 말하고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부여한 가치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선할수록, 논리적일수록, 합리적일수록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착각입니다. 예배 한번 드렸다고 메시지 들었다고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삶의 왕이 되려 하면 심한 거부감이 듭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려 하면 불신앙이 생깁니다. 환경 탓, 상황 탓, 남 탓을 하며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려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는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가 내 인생에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잘 믿지 못합니다. 위대하신 왕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셨기에 설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거미줄 같은 우리 인생을 붙잡기 위해 영원한 생명 줄인 말씀으로 오셨음에도 정말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거부하고 왕이 되려는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왕을 따르는 일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갈등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은혜가 없고, 말씀이 들리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공격하는 영적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공격은 우리 마음을 주로 공격합니다. 예수님 앞에 내 마음을 오픈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또 예수님이 없어도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내 의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왕을 따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_마태복음9:12-13’
_날마다 말씀을 처방받는 행복한 환자,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