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덜 정확해도 괜찮아, 사랑하면 돼 '
오래전에 한 자매가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목사님, 너무 힘들어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요.’ 무엇이 그렇게 힘들까? 신앙생활도 잘하게 보였고, 다니는 직장도 좋았고, 가정은 누가 봐도 좋은 가정인데 이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심각한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자매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훨씬 더 의식하고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란 생각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매우 정확하고 논리적인 것들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고 논리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느 순간부터 교회도 세상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역시 성공하기 위해 매우 정확하고 논리적인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성도들의 삶은 피폐해져 버렸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성도들의 삶은 놀랍게도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왜 힘든가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기준은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_요한일서4:9-10’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사역을 잘하고, 아무리 큰 역사가 일어나고, 아무리 대단한 교회로 성장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랑이 없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느니라_베드로전서4:8’
사실 이 말씀에 앞서 살펴봐야 할 구절은 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_베드로전서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 때, 우리가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하는데 무엇을 위해서인가? 바로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는 것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교회에 무서운 세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은 복음을 깨닫지 못했어, 저 사람은 영적인 문제가 심각해, 저 사람은 수준이 떨어져서 우리랑 맞지 않아.' 그러면서 자신은 깨끗하고 제대로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정죄합니다. '저런 친구가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나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쉽게 정의해버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 안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무시해버립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_요한일서4:20a'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테레사수녀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고요? 조용히 집에 가서 당신의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강한 바람은 오히려 외투를 벗기지 못하지만, 따뜻한 햇빛은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한다는 교훈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습니다. 그 사랑이신 예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있다면, 그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세워가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_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갈 교회를 꿈꾸며,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