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처럼 '
'저 사람 예수님께 미친 거 같아'
'저 사람 교회에 미친 거 같아'
무엇인가를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은 어떤 옳고 그름과 다른 감정입니다.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와 다른 가치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고 싶고 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면 기분이 나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데리고 가면 사랑하시지 않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길이라고, 좁은 길이라고 불평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이런 갈등이 자주 찾아옵니다. 분명 이 길이 맞는데 이 길을 설명해주지 못할 때입니다. 말해주지 못할 때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하면 안 되요. 목사님 축복해주셔야죠. 목사님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그것은 옳지 않아요.’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인 나드 한 옥합을 들고 와서 깨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어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펄쩍 뛰었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유월절을 앞두고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데 그것을 깨버리다니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가룟 유다의 말은 사실 전부 다 옳은 말입니다. 수천만원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팔면 정말 많은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고, 또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유다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해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를 풀어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자기부정을 통해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겠노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누구보다 감사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에는 옳고 그름이 필요합니다. 합리적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십자가 사건 곧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들이 무슨 일을 했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아시나요?
저는 지금 제 인생을 되돌아보니 많이 후회되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드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지 못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돈은 없었을 지라도, 능력은 없었을지라도 시간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도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향유옥합처럼.
저는 사랑하고 살고 싶습니다. 사랑이 별거냐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사랑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사랑입니다. 그것을 알았던 마리아처럼 저도 그 십자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감사로 가슴 벅차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은 별거입니다. 그 사랑의 끝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끝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_마가복음14:6’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_고린도전서15:58’
_마리아처럼 내 향유옥합을 깨뜨려 사랑합니다,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