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맡기신 소임(사명은 저에게 너무 큰 단어여서)
주님의 복음으로 생명을 얻고, 천국을 바라보고 또 그 천국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 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날마다 찾아오는 세상의 기준들,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말들, 무엇보다 마귀가 주는 시험들로 인해 성공으로, 우월감으로, 보다 나은 생활과 높은 자리로 가려는 그 시험에 내 인생이 빠져들게 됩니다.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_시편18:32’
왜 저는 자꾸만 속게 될까요? 그것이 가치 없는 것임을 알지만, 저는 보이는 것에 순간, 순간 속아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그것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싸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님께 날마다 매달립니다.
‘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는 도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_시편18:34-35a'
사실, 베드로는 대단한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 이후에 3천명, 5천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이 회심하는 역사를 이끈 장본인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행정책임자도 되었을 것입니다.
‘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지 여덟 해라_사도행전9:3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사울의 회심사건 이후에 다시금 그의 소임으로 돌아갑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가 중요할 까요? ‘어 나는 저 사람보다 조금 전도를 잘해, 봉사를 잘해, 돈을 더 잘 벌어..그래서 헌금도 더 많이 해’ 그러나 주님은 그런 것에 관심은 없습니다. 주님에게 관심은 나의 한계 안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내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게 맡겨진 내 가정, 내 현장, 내 교회...
사장, 회장, 부자, 스타..심지어 대통령이라도 된다 싶으면 복음을 전하는 삶에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꾸 내 의가 들어나 비교하여 우월감을 가지든지, 혹은 상처를 받든지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병든 신앙생활이지 않을까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연약한 영혼을 보는 시야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_사도행전9:34-35’
우리에게는 무엇이 소중합니까? 저에게 우리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고, 제가 감당해야할 소임은 애니아같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애니아 같은 마음의 병, 영적인 병, 육신의 병...수많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 받고 일어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복음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주님은 그보다 더 원하시는 것이 있으신 듯 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_시편18:1’
바로 이 고백속에 변하지 않고 살길 원하시는 것이지요. 다윗은 격정의 광야생활동안 저 고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윗이든, 베드로든...그리고 복음을 가진 우리 모두의 소임은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요?
- 주님이 주신 소임을 감당하길 원하는, 오승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