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Letter. ' 좋은 땅이 되기 위해 함께 기도해요 '
신학교에 다닐 때 한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신학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의의 병기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육신의 마음을 따라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신학 지식을 자신의 박식함과 탁월함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으며, 자신보다 지식이 열등한 사람들을 친절하고 겸손하게 이끌어 주기보다는 그들을 지식으로 납작하게 깔아뭉개며 쾌재를 부른다. 병든 인격은 정통신학마저 왜곡시켜 다른 이를 정죄하고 죽이며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도구로 악용한다. 성령의 빛 가운데 거짓된 자아가 벌거벗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신학 공부는 거짓된 자아가 상승하기 위한 발판으로, 다른 이를 죽이고 교회를 허무는 병기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학은 그 탐구의 대상인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깊이 연락하고 교제하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의 호흡으로 얼룩진 순례의 여정이다. 신학 사상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라는 공기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그러므로 신학 공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배양되는 활기찬 영적 삶에서 끊임없이 온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학은 그것을 입은 우리를 짓누르고 얼어붙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얼음 갑옷이 될 수 있다.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말씀 선포의 기반암 위에 세워진 신학, 거룩한 진리의 산맥 정상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거기서 맑은 공기, 즉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함으로 빚어지는 신학만이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산 지식이 될 수 있다._박영돈교수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교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반석 같은 말씀의 뿌리와 그로 오는 은혜 그리고 하나님과의 호흡이 없으면 지식이 됩니다. 그것으로 정죄하고 그것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 당시 교수님의 말씀이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 되었습니다. 아마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되돌아보며 감사합니다. 엄청난 복음의 진리를 가졌다고 큰 소리 치고 살았던 그때에 교만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 실상은 제 모습, 제 인생길, 심지어 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의 진실한 신앙생활은 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사명자, 겉으로는 대단한 사역자라고 돌아다녔을 때입니다.
그것이 제 삶으로 살아내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때 해주신 교수님의 이야기가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설교말씀이나 복음의 진리가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인가 질문해봅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신앙의 출발선에 다시 서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배양되는 활기찬 영적 삶에서 끊임없이 온기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은혜의 삶입니다. 공동체 강단의 말씀과 그리고 거기서 배양되는 활기찬 영적 삶은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공급해줍니다. 그때라야 좋은 땅이 될 수 있고,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달란트들이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줄 아름다운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_마태복음13:15-23’
_축복된 신앙생활을 소망하며, 오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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