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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7-2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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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본 문 :

창세기 29:1-30

오승주 목사

 

. 돌 같은 내 인생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나눌 것인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를 바꾸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겠다는 것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습니다. 그 증거가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지속해야 하는 이유들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남편과 아내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 이것이 신앙생활의 여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개념이 없으면 내가 열심히 하면 교만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단면만 봅니다. 예를 들어 예찬이가 힘들어합니다. 그것만 보고 신앙이 왜 이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거하고 사는 것입니다. 완전히 비유가 될 수 없으나 부부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외모를 보고 결혼했지만 나중에는 사랑이 깊어지면 단점도 사랑하게 됩니다. 신앙은 마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시작과 그 과정이 다 신앙생활에서 다 중요합니다. 결과론적으로 설명하면 오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여정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도 같습니다. 창세기를 강해하는데 매주 말씀을 체크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를 단편적으로 듣게 됩니다. 자식이 부모님한테서 용돈 줄께만 듣지 충고와 나무라라는 소리는 듣기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흐름이 있습니다. 내 상황 속에서 신앙을 해석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사람마다 다 이해도가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야곱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만 어떤 분들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이 되었구나. 나를 부르셨구나. 이것조차 알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환경과 상황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은 다 다릅니다. 부자와 가난의 기준이 어디에 있나요? 없습니다. 누가 부자인가요? 대한민국에서는 가난하지만 아프리카에 가면 엄청 부자입니다. 이것은 기준이 달라집니다. 그런 상황과 환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이것으로 우리를 옮아 매는 것입니다. 환경이 상황이 그렇지 않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실재를 못 봅니다. 천국의 실재를 못 봅니다. 마음이 빼앗겨서 내 인생은 돌 같고 내 인생은 너무 불공평해. 이 말을 씁니다.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 갇혀서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상황과 환경이 힘들게 합니다. 더 힘든 것은 사람입니다. 상황과 환경의 절정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100%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의지한 것만큼 답이 오지 않으면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갑부들이 다 행복하고 살아야하는데 대다수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건희 회장님의 딸이 자살했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고 행복을 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돌 같은 내 인생, 불공평한 인생이라고 하면서 사로 잡혀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그 존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영적인 불화살을 우리의 마음에 쏩니다. 악한 영이 우리에게 쏘기에 불신앙의 화살을 맞기에 그런 환경에 갇혀 버립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제가 야곱 같으면 어떻게 살지? 하겠지만 야곱이 벧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 레아와 라헬

 

라반의 집에 들어간 야곱_창세기29:1-20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_창세기29:1-20’

 

창세기 291절에 야곱이 길을 떠나. 우리 같으면 벧엘에 집을 짓고 살았을 텐데 야곱은 길을 떠나가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으로 엄마에게 등 떠밀려 삼촌에게 가서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벧엘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확신을 가진 야곱의 태도가 오늘 29장에 나옵니다. 그래서 가자마자 동방에 이르러 양떼를 모는 목동을 만납니다. 야곱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에서에게 쫒기고 상황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바뀌고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라반을 아느냐 그가 평안하냐 라고 합니다. 지금은 지혜도 생겼습니다. 양떼를 물 먹이는데 틀린 것 같다고 합니다.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고 합니다. 야곱이 총명함까지 생깁니다. 이런 야곱이 라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아와 라헬_창세기29:21-30

 

야곱의 아내의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을 만납니다. 삼촌이 야곱이 조카인 것을 알고 생질임을 알고 와서 반가워했습니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_창세기29:14-15’

 

라반의 집에 가서 야곱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을 잘하지? 라반이 한 달 함께 거주하고 품삯 줄게 라고 합니다. 야곱이 그 때 말을 합니다. 저에게 당신의 딸 라헬을 주세요. 제가 칠 년 동안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왜 라헬을 위해서 일을 할까요? 이유를 다음에 설명합니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_창세기29:16-18’

 

라헬이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심지어 총명했습니다. 양떼를 몰만큼 똑똑했습니다. 그럼 반대로 레아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17절에 레아는 시력이 약하다고 나옵니다. 이 말의 원어는 눈에 총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삶에 의욕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 해석을 지지합니다. 그 말은 라헬에게 눌려있었습니다. 그러면 야곱에 보았을 때 자기하고 레아가 비슷합니다. 라헬은 자기 형 에서와 같습니다. 야곱은 그런 형의 삶을 동경하고. 그리고 또 다른 주석에 보니까 레아가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라헬을 달라고 해서 라반에게 약속하고 결혼을 했는데 유대인은 결혼을 7일을 합니다. 첫날밤에 들어갔는데 레아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얼굴을 보고 놀라겠죠. 그리고 가서 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_창세기29:25-27’

 

라헬을 아내로 데려가고 7년을 채우라고 해서 그 7년도 며칠처럼 보냈습니다.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럼 레아는 비참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요? 결혼도 못하는 사람이 아빠가 속여서 야곱에게 집어넣었고 결혼을 한지 며칠 만에 라헬이 시집왔습니다.

 

3. 하나님의 공평하심_창세기29:21-35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_창세기29:31-35’

 

어떤 주석에 보니 칠년을 살면서 하나님이 라헬의 태를 닫았습니다. 라헬의 태를 닫고 레아의 태를 먼저 여셨습니다. 라헬이 시집왔기에 야곱이 레아와 동침한지 4일정도 밖에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만큼 레아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레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곱과 비슷합니다. 영적인 총명을 잃어버릴 만큼 낙심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못생기고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레아를 향한 말씀을 나눌 것인데 레아의 이야기가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 일수 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면 레아가 축복을 많이 받았을까요? 라헬이 많이 받았을까요? 나와 남편이 연합하게 한 뜻이 레위. 제사장의 일을 했습니다. 넷째아들이 내가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이름인 유다인데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계보로 들어가도록 환경을 요셉이 조성할 뿐이지 하나님의 관심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에게 있었습니다. 유다를 낳으면서 레아가 깨닫습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인데 내 남편이 나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구나. 내 아내, 내 남편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이겠죠? 돈이든 꿈이든 지위든. 이것이 나를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레아는 깨닫습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뜻이 다 이루어지면 세상은 난리가 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수능기도입니다. 전국에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아들이 대학 잘 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 들으시면 서울대학교에 몇 만 명 다닐 것입니다. 점쟁이한테 가서 수능기도도 똑같습니다. 우리 자식 잘 되게 해주세요.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연민에 빠지고 상처 속에 있던 레아가 야곱에게 연합해보려고 애쓰고 기도했는데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남편을, 아내를 의지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나를 위로하시고 세상이 힘들고 연약한 내 돌 같은 인생 중에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성경에서 보세요. 연약을 깨달은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처럼 똑똑한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존귀하다는 것을 알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에 인물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_욥기42:1-16,예레미야4:14,시편119:129-148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_욥기 42:1-6’

 

교만과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을 다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는 욥의 상황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부족함. 거기서 내가 회개하나이다. 여기서 회개는 욥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_예레미야 4:14’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다 악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래요. 예수 그리스도 보혈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 사랑하심과 부르심 앞에서만 악이 씻겨 집니다. 우리의 영혼이 다른 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창조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만 우리의 마음이 채워집니다. 일을 하면 마음이 힘들잖아요. 그러면 짜증난 말도 나옵니다. 내가 눈을 감고 말씀을 기억하고 찬송을 부르면 내가 이것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고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했더니 교회가 부흥되면 내가 목회를 잘해서 내가 설교를 잘해서 부흥 했네 라고 여기에 사로잡힙니다. 악함이 마음이 스며드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는 실존하신 하나님을 보는 시야는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를 사랑하심, 부르심, 당신의 놀라운 섭리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지금 그런데 이 야곱보다 레아가 하나님 앞에서 빨리 믿음을 잡았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경험했지만 그 신앙이 굴곡이 있지만 레아는 빠르게 내가 이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으로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눈물 흐르는 분의 거의 자기 연민 때문입니다. 자기 연민이 나의 연약함을 묶어서 이렇게 살도록 만듭니다. 내 인생은 불공평해. 엄마가, 아빠가 왜 그래. 이렇게 살아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레아에게, 야곱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부르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나를 부르셨구나. 이것이 되면 그때부터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저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며칠씩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스페인에서 선교대회가 열렸는데 행정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제가 잘 보이고 싶어서 개막식에 목사님들이 걸어 나오실 때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폭죽을 사와서 설치하고 시작한다는 것을 알렸을 때 냄새가 독하게 났습니다. 알고 보니 야외용 폭죽, 화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텔 계단의 청소도구함에 숨어들어가서 멍하게 있었습니다. 30분 지나니까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다행히 혼이 안 났지만 소문이 얼마나 빨랐는지 저한테 폭죽 이라고 하는 것을 1년은 들었습니다. 진짜 은혜는 예배의 자리에 성경을 읽고 나면 내가 실수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실수들을 메모하고 점검하고 계속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의 응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아가 처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시집가도 라헬에게 밀리는 구나. 얼굴은 왜 이렇고 왜 이렇게 못났을까? 왜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라헬과 비교가 안 됩니다. 제가 보았을 때 레아에게 하나님은 모든 관심이 있었습니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_시편 119:129-148’

 

깜깜한 동굴에 있지만 내가 이 상태에서 머물러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 부르심을 알고 있지만 내가 주님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태어난 대로 자기 연민에 빠져 그대로 가버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하심으로 우리 인생이 점차 밝아지고 믿음이 성숙해지고 점차 자라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이 아내의 사랑이 세상의 어떤 것이 내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현실은 쉽지 않고 우리는 잘하고 싶고 잘되고 싶고 잘해보고 싶은데 잘 되지 않잖아요. 레아가 그랬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전도도 하고 싶고 공부도 잘하고 싶었는데 잘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아처럼 이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감격인지 그런 레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를 낳게 하시고. 중요한 가문은 다 레아의 자녀들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는 레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언약의 축복의 가문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마음이 하나님께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빛을 비추어 나약한 인생이지만 당신의 구원의 사역을 언약을 이루시는 인생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욥이 내가 다 거두어들이고 우리의 인생은 살면서 거두어들이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잘못 뿌린 씨앗들. 티끌과 죄 가운데 회개할 때 욥은 가장 행복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환경을 초월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고 가는 것이 믿음이기에 내 뜻을 이루는 것은 종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방향을 맞추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내 환경을 초월하게 되어있습니다. 내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당신의 선택하신 백성들을 훨씬 더 사랑하십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더 사랑하십니다. 그 은혜가 한 주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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