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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8-1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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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야곱과 라반의 분리과정

본 문 :

창세기 31:1-42

오승주 목사

 

. 내가 대답하기를 있나이다_창세기31:1-42

 

우리나라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각 국가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들은 그 나라의 민족성은 지형적인 영향을 많이 받겠고 그 나라의 역사가 주는 영향들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민족성이 형성이 됩니다. 그것이 수백 년 수 천년동안 형성되는 것이기에 민족성이 바뀌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느끼는 우리나라의 민족성,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분석하고 분리하고 나누고 쪼개는 것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수학 세계 1위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리고 반도체를 잘합니다. 그것이 민족성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 자꾸 나눕니다. 저희 교회는 조금 덜 하는 것 같은데 난 대구사람. 넌 전라도사람. 넌 서울사람이다. 자꾸 나눕니다. 조금만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분리하고 나눕니다. 전 세계에서 색깔론이 강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룹 안에 조금만 색깔이 다르면 끄집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도 어제는 동지였는데 손해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나눕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나라사람들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이익과 손해를 보고 사는 것입니다. 약점은 큰 그림을 볼 줄 모릅니다. 미래를 잘 볼 줄 모르고 당장 손해가 오면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든지 신경 쓰지 않고 해버립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개가 넘습니다. 나누고 쪼개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 하는데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큰 경륜을 보지 못합니다. 마치 무당집에 가서 점쳐서 응답받는 것은 잘하는데 하나님의 큰 그림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으로만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만 우리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디어가 발달하다보니 주입식으로 듣기만 합니다. 자기 인생을 성경으로 직면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실제로 말씀 묵상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합니다. 실제로 성경에 대해서 물어보면 모릅니다. 말씀에서 오는 자양분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묵상하면서 오는 영양분이 얼마나 빈약한지 사람들이 모릅니다. 마치 유튜브 보면서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몸 좋다고 하면서 자기 몸은 그렇지 않는 겁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한 정보들을 얻지만 내 삶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셀럽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요. 내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서 내 삶이 변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데 왜 하지 않죠? 힘드니까. 수영선수 자격증 줄게. 그런데 수영은 할 줄 몰라.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보드는 못타는데 자격증을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을 직면해서 내 삶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님 앞에서 성경적인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고 성경적으로 사는 삶을 살고 있어야 우리의 삶들이 우리의 일들이 우리의 증거들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 갈 것인데 그냥 듣고 보고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직면해서 한 절 한 절 보고 성경을 묵상해서 내 삶을 바꿔내려고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우리의 삶에 성경으로 직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되 100% 의존하지 마세요. 성경을 100% 의존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뚫어야 합니다. 성경 한 절을 읽고 묵상에서 오는 감동과 희열을 아셔야 합니다. 저에게 있는 악습들을 성경을 읽으면서 다 고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고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큰 그림이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큰 섭리와 경륜과 상관없이 나만의 자기의 소견대로 마음대로 나의 브랜드의 기독교를 만들어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아니라 내 브랜드의 복음을 만들어 냅니다. 성경이 자리잡아놓은 기초, 튼튼한 반석에 닻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내 생각 내 감정에 휘둘리게 됩니다. 평상시에 성경을 묵상한 적이 없으니까. 수영강사 자격증을 받고 수영장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수영을 못하니까. 마치 이것처럼. 오늘 야곱의 스토리는 이런 교훈을 줍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굉장히 귀담아 들으시고 자세히 살펴보셔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야곱과 라반이 분리되는 과정을 많은 절을 할애해서 자세히 기록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으로 지금 변화되어 있죠? 야곱아,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사람으로 야곱이 바뀌어 있습니다. 이제 야곱이 라반을 떠납니다.

 

. 야곱과 라반의 분리과정

 

라반을 떠나다_창세기31:17-21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_창세기31:17-21’

 

왜 떠났냐면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난 것입니다. 지혜롭게 떠났습니다. 야곱이 양치는 목동현장과 라반이 양 치는 현장이 삼 일길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가족들을 자기가 양치는 곳으로 오라고 해서 그곳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면 차이가 3일차이니까 잡히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정직하게 품삯으로 받은 가축들만 데리고 라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 네 아버지 이삭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정상적으로 가지 않았냐면 정상적으로 가면 라반이 못하게 하니까. 6년 전에도 못 가게 하였고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점차 야곱의 재산은 늘어나고 라반의 재산은 줄어드니 라반의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야곱도 느꼈고 두 부인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때 떠나라고 말씀하셔서 떠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특징이 있습니다. 라헬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 라헬이 드라빔을 도둑질을 합니다. 드라빔은 사이즈가 제 손바닥만 합니다. 가정의 수호신 같은 것입니다. 귀신을 부르는 것입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는데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드라빔을 훔쳤던 것 같습니다. 훔칠 것이 없어서 야곱의 아내로 무려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우상을 섬기는, 귀신을 부르는 드라빔을 훔치는가요?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라헬의 상태입니다. 라헬의 영적인 상태를 짚고 넘어 가야 합니다. 라반은 우상을 넘기는 사람으로 치지만 자기 아버지가 섬기는 귀신의 문화에 영향을 라헬은 정확히 받았습니다. 이 라헬의 영적인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드라빔을 훔쳐서 떠납니다. 그리고 삼 일 길을 라반에게 누군가가 말해주었습니다. 쫒아갔는데 어떻게 쫒아갔는지 보세요.

 

 

하나님께서 야곱을 돕다_창세기31:22-25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_창세기31:22-25’

 

라반이 화가 났습니다. 삼 일 차이인데 길르앗 산에서 만난 것입니다. 얼마나 빨리 쫒아갔으면 이 밧단 아람과 길르앗 산의 거리가 550km인데 이것을 7일 만에 쫒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삼촌의 라반이 화가 났는지 29절에 나옵니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야곱을 죽이려 간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일 것입니다. 야곱의 재산을 야곱 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또 다른 하나는 드라빔을 훔친 것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기 전 날 밤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성경에는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우리 야곱을 건들면 죽인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곱을 건들었을 것입니다. 7일 동안 힘들게 낙타타고 쫒아 와서 내일 야곱을 만날 것인데 하나님이 7일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는 많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야곱이 라반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직접 라반을 상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라반이 훨씬 힘이 있기에 라반이 주인공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 중심으로 일하고 계세요. 왜요? 야곱이어서 그런가요? 20년 동안 고생해서 보상해줄게. 인가요?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떠나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직접 하나님이 라반을 상대하십니다. 그렇게 야곱을 지켜주세요. 이 라반은 손해를 보고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상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상 섬긴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무당집에 가서 점을 치고 종교 기관에 가서 비는 것은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내 이익을 위해서 가집니다. 기독교 빼고. 기독교는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 퍼주고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을 읽으면 요즘 시대 트렌드와 맞지 않습니다. 영적 문제가 영적인 어려움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비밀이 성경에 있는데 우리에게 공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라반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7일 만에 쫒아갔는데 분노, 복수심, 혈기. 이것이 라반의 성품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안이 있기가 힘듭니다. 이런 라반이 야곱에게 하는 태도를 보세요.

 

3. 라반의 대도와 야곱의 변화된 삶_창세기31:26-37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_창세기31:26-37’

 

진짜 라반이 자기 손자와 딸들을 찾았을까요? 관심이 있었을까요? 드라빔에 관심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라반이 야곱의 장막이 드라빔을 찾기 위해서 뒤지지 시작합니다. 라반의 태도를 보세요. 왜 내게 정식적으로 말하지 않았냐. 네가 간다고 했으면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한 마디로 가식덩어리. 그러면서 왜 그냥 가지 내 신을 훔쳐갔냐고 합니다. 이것이 라반의 태도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왔지만 인간적으로는 라반의 거짓된 인격. 무려 6년 동안 품삯을 10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야곱의 두 아내도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라반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서 그런데 너를 죽일만한 힘이 있는데 라고 합니다.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강해도 손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일본이 침략했습니다. 그럼에도 강하면 승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건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섭리와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야 하기에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고 해하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직접 상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사건이 없으면 본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손해가 난다면 180도 바뀝니다. 교회를 30년을 다녔는데 문제가 없어서 편하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집에 문제가 왔다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주셨는지 생각하지 않고 180도 바뀝니다. 본성이 드러납니다. 믿음의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라반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31절에 야곱이 말합니다. 삼촌이 내 아내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을까 두려웠다. 라반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식으로 말하지 않았냐고 했을 때 야곱이 도망친 것을 후회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반이 무엇을 상징한지는 지난주에 공부를 하셨죠. 라반의 목적은 드라빔이었습니다. 야곱은 드라빔이 라헬이 훔친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 드라빔을 가져왔으면 가져온 사람이 죽일 것이고 훔친 것이 있으면 다 가져가세요. 뒤져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딸 라헬이 생리한다고 해서 못 찾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말이 성취가 되어 라헬이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었습니다. 말은 무섭습니다. 말은 성취가 됩니다. 화가 나도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위해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부싸움해도 독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부부의 예의가 필요합니다. 선을 넘으면 영혼이 다칩니다. 다 찾고 없으니 반격을 합니다. 야곱이 삼촌에게 간증을 합니다.

 

. 하나님을 상대하는 야곱 : 하나님 앞에서_창세기31:38-42,로마서16:17-20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_창세기31:36-42’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지금 야곱이 지난 6년 동안 외삼촌의 양떼를 치면서 한 번도 거짓을 한 적이 없고 심지어 라반이 품삯도 바꾸고 못되게 굴었는데 화가 나면 라반이 삼일 길에 있으니까 낙태도 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양 한 마리 잡아서 양꼬치 해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숫양을 먹지 아니하였고. 밤에 도둑을 맞든지 낮에 도둑질을 맞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찾았을 때에 내 것으로 보충하였고 심지어 더위와 추위를 무릎 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내가 당신의 양떼를 지키지 않았냐. 야곱이 엄청 변화가 되었습니다. 라반이 보든지 보지 않던지 성실해졌고 진실해졌고 최선을 다하지 시작했습니다. 라반과 상관없이 야곱이 자기에게 맡겨진 현장에서 자기의 삶을 진실하고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을 신경 쓰고 잔머리를 쓰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는 야곱이 얼마 전까지 해서 남을 속였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제는 보지 않아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라반에게 신세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인간 중심으로 살았던 제가, 사람중심으로 살았던 제가 이제는 삼촌과 상관없이 나를 괴롭혔지만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라반이 아닌 하나님을 상대했습니다. 우리는 불신자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에서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상대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가 예수님을 믿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에 술 마시고 와서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이것이 사무쳐서 아버지를 보기도 싫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상대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보고 영적인 세계가 믿어지고 복음을 깊이 이해하고 나니 아버지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상대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 가정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상대했습니다. 그 때부터 기도도 달라지고 아버지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야곱은 사람을 상대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상대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으로 살았던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삼촌, 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성실히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어서 성실히 일한 것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고는 신앙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고는 신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라반과 라헬입니다. 하나님도 모시고 드라빔도 있어야 하는데 다 내 것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나요? 성경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고 나누고 십자가를 지라는데. 나를 버리라는데. 그래서 세상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사는 세상이 왜 끝에 가서 어렵나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우리 안에 화, 분노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행위들은 그 결과를 얻어야 하기에 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에 관해서 말씀사경회 때 이야기 할 것인데 율법주의는 무서운 것입니다. 40일 금식 기도 했다면 사람의 심리가 40일 금식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리고 응답이 오면 당연히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은 나를 죽여야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을 입은 저와 여러분이 죄에 결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영적인 세계를 보려면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악 속에 있으면서 거룩을 볼 수 없습니다. 같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살리는 사역자는 반드시 신앙인격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라반의 집에서 인격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주 인간 말종 같은 라반 밑에서 야곱이, 라반을 위해서 살았던 야곱이 나중에는 더 이상 라반이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저는, 중직자가 될 분은, 교회의 리더가 될 분은, 영혼을 살릴 사역자가 될 분은 가장 큰 시험은 돈이 없는 건가요? 질병이 있는 건가요?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과해야합니다. 그것을 통과해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되어야 영혼을 살리는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별 사람이 옵니다. 목사가 힘든 것은 여러 종류의 인격들을 상대해야 하기에 힘이 듭니다.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고난도 통과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사건을 만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나요?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 그 원수들을 상대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사역을 위해서 쓰셔야 하기에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인간중심, 인간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 소견대로 그런데 예레미야에는 이 땅에서 가장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싫어지는 단계에 접어들면 강아지를 키웁니다. 강아지는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강아지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강남에 강아지 호텔이 있습니다. 하루가 20만원입니다. 강아지를 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죄악 속에 물들어서 다 부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을 살리는 사역자가 되려면 인격훈련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더니 그 독한 저의 아버지를 하나님이 다루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하려고 무릎을 꿇는데 놀랐습니다. 라반을 경험한 야곱은 누구든지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이삭 때에 약속했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약속했는데 야곱 때에 이루십니다. 12지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로 이룰 수 있나요? 진짜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로마서 16장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_로마서16:16-20’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영적인 세계가 있고 사단이 실제 존재하는데 언제 결박되고 언제 무너지냐면 우리가 악한 자들에게서 떠날 때.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할 때. 19절에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린다고 합니다. 내 삶은 개판같이 살았으면서 말로 전도하잖아요. 네팔에 사이비 종교가 들어오나 봅니다. 신옥주라고 이단 목사인데 돈이 얼마나 많은지 그 나라 총리를 만나서 10만 달러를 주었다고 합니다. 한 달 월급이 20만원인 나라에서 1억이 얼마나 큰지 상상이 안 됩니다. 돈을 주면서 힌두교를 까고 자기 교리를 가르쳐서 감옥에 갔습니다. 네팔을 복음화하려면 눈물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악한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떠나라고 합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 말은 사람을 떠나라는 말이 아니라 불신앙에서 신앙이 아닌 인간중심의 영적인 분위기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앙 생활하라고 교훈하시냐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고 사단이 우리 발아래에 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야곱이 고백합니다. 42절에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이것이 고백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세요.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합니다. 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하죠? 우리가 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죠? 이 답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야곱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상대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앞에서. 그런 간증이 있는 인생의 여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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