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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08-1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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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과 싸운 야곱

본 문 :

창세기 31:43-32:32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훈련_창세기31:43-55

 

야곱의 여정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여러분의 삶에 만끽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내용들은 결론에 가서 통합적으로 깨닫는 바가 있겠지만 말씀을 시작할 때 야곱을 주로 볼 것인데 에서라는 인물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라반과의 겨우 인간갈등을 해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라반이 야곱을 보내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걸림돌이 에서입니다. 에서의 상황이 심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따져보겠지만 20년이나 에서를 피해서 야곱이 라반의 집에 잠시 갔는데 20년이 지났습니다. 리브가가 형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 삼촌 라반의 집에 잠깐만 있어라. 형의 마음이 풀리면 사람을 보내줄게.’ 라고 했습니다. 여태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 에서의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20년 동안 화, 분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에서라는 인물은 등장하는데 야곱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조명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조명하실 때 주변 인물들을 잘 살펴봐야합니다. 에서가 20년 동안 화, 분노, 복수심에서 살았습니다. 혹시 에서처럼 복수심, 화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나요? 저는 저의 아버지를 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늘 화가 있으셨습니다. 그 화가 나라에 대한 화, 자기는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못 배운 것에 대한 화, 그 화와 복수심에 늘 사로잡혀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화와 복수심을 떨치고 성실하게 사셨으면 새로운 삶을 사셨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가실 때까지 그 화를 못 떨쳐냈습니다. 우리 안에 화, 분노, 복수님이 들어오면 사로잡혀 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복수님, 화가 마음에 들어오면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분명히 인생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삶이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20년 동안 복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20년의 세월을 사백 명의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동생 야곱을 이겨보려고 살았으니까 얼마나 20년이 아깝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화가 많은 나라입니다. 저는 목사니까 포장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차에 타면 찬양 크게 틀어놓고 소리칠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한강에서 토막시신이 일어나 건졌는데 이유가 였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못 견뎌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가하고 폭언을 하고 그것이 복수가 되어서 상대방을 죽이고. 그런 화, 복수심을 가지고 있으면 진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과거를 떨치면 좋겠는데 원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늘 원망이었습니다. 얼마나 원망했는지. 제가 볼 때는 성실하시고 머리도 좋으시기 때문에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인데 원망에 사로잡히니까 늘 술로, 남 탓하고 진짜 인생이 주는 축복을 찾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상황이 그렇습니다. 식민지 생활은 오래했고 남북은 분단되어 있고 주변 정세가 좋지 않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주시고 성경을 주시는 것은 말로 표현 못하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쓰시는 것이 아니라 훈련해서 쓰십니다. 이 훈련은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훈련이 아니라 교회 와서 23일 훈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발목을 잡고 있는 어둠들을, 분노, 상처들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은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신앙생활이 희열입니다.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신앙이 가장 높은 단계가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산다는 것은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감사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연단된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빗으시고 다듬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상태를 그대로 두고 쓰시지 않습니다. 군대만 가도 군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훈련을 받습니다. 책보고 총은 이렇게 쏘는 것이야. 책을 1000번을 읽어도 총을 못 쏩니다. 총을 책 읽는다고 총을 쏘지 못합니다. 책 안 읽고 실전에서 배우면 총을 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경기하는 자가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받으려면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섭리를 위해서 부르셨는데 그것을 위해서 훈련하시는데 그 훈련 중 가장 핵심 되는 훈련이 마음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좌정하시고 내주하시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세요. 마음대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과 반대로 가니까. 육신으로 죄악으로 가니까. 교회가 훈련을 하면서 육신의 훈련을 하는데 하긴 해야 하지만 그 육신의 훈련이 본질은 아닙니다. 다시 원 위치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갈아엎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잘 아시죠? 우리가 대학에서 실력을 준비해야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살아야 하나. 어떤 마음으로 이 시대에 유익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성공된 삶을 살아도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그 기술을 악한데 사용합니다. 돈을 이상한 곳에 씁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으니까. 그래서 그 마음을 채우려고 불법을 하는데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에서라는 인물을 두고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야곱이 라반과 헤어지고 나서 고향으로 아버지의 이삭에게 돌아가려고 합니다.

 

. 벧엘로 돌아온 야곱

 

마하나임_창세기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_창세기32:1-2’

 

야곱이 생각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으니. 그런데 갑자기 길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은 천사입니다. 3절에 야곱이 에서에게 보내는 사자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만나러 길을 가는데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보니까 얼마나 많은지 군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충격이 되니까 그 땅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꽤나 충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천사의 존재를 믿으세요? 우리는 이 천사의 존재를 너무 신비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천사에 대해서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모든 일을 합니다. 말씀을 성취하는 존재가 천사입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길을 떠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가 이미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연약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군대를 동원해서 함께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신약에 와서는 천사의 존재가 듬성듬성 드러납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주하고 동행하시기 때문에. 그럼에도 지금도 천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존재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너무 성경의 내용들을 신비적으로 생각합니다. 저 멀리 있는 신비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길을 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늘 배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가다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나서 야곱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3절에 보세요. 거의 야곱은 저희와 비슷합니다.

 

에서가 너무 두려운 야곱_창세기32:3-12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_창세기32:3-8’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야곱이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사백 명을 에서가 집합시켰습니다. 사백 명의 군대를 집합했다고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움, 답답함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의 습관이 나왔습니다. 전략을 짰습니다. 두 떼로 나누어서. 야곱이 바로 기도합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_창세기32:9-12’

 

야곱이 진짜 겁먹은 이유는 죽을까봐. 여러분, 영적인 축복을 받았지만 천국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저는 이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예배 때 눈물 흘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 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문제가 오면 두렵습니다. 답답합니다. 떨립니다. 낙심이 되고 마음이 상합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마하나임을 외쳤어도 하나님 군대가 보호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멘 했지만 막상 가정에 가서, 현장에 가서 적들로부터 사단이 우리를 정죄하고 공격하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조치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기도할 때 보니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 때 약속했지만 나와 약속한 것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 아버지가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제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아세요? 핑계를 아버지, 할아버지로 돌립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지팡이만 가지고 왔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두 떼나 이루게 되었는데 에서가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저 죽기 싫어요.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라반과의 사건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여전히 연약합니다. 그 연약함의 이유가 에서라는 사람입니다. 형이 20년 동안 복수심, 악한 마음으로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형의 에서는 사실은 야곱이 만들었습니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쓰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잔머리를 쓰고 형을 속여 형이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인과응보의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매 맺히는 신앙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니 결산을 받으신데요. 우리의 말, 행동에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왜 두렵냐면 자기가 잘못한 것 때문에. 에서가 동생을 미워서 동생의 재물로 뺏으려고 했다면 야곱이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것이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과거에 했던 죄악들로 인해서 그 결과가 20년 만에 걸림돌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 있으세요? 저는 너무 많습니다. 제가 목회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제가 목회자의 그릇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전도하고 양육만 하면 쉽겠지만 목회는 완전 다른 것입니다. 성도님들을 기다려주기도 해야 하고 말해야 될 때도 있지만 침묵으로 눈물로 기도해야 할 때도 있고 하나님이 일 하시도록 인내해야 할 때도 있고 가슴 아프지만 죄악을 설명해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목사의 인품이 그릇이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고 배우고 터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 야곱이라는 인물을 이스라엘의 존재로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시기 위해서 훈련시키시는데 자기의 과거에 마주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해서 또는 축복하셨지만 에서를 보고 두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야곱의 행동을 보세요. 사실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따져 물은 것입니다.

 

3. 압복 나루에서의 야곱_창세기32:13-21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_창세기32:13-21‘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 우리 인생에 형과 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그동안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군대까지 동원해주셨는데 야곱은 자기의 재물을 여러 떼로 나눠서 보내는 것입니다. 떼를 다 합쳐보니 580마리 이상이나 됩니다. 엄청난 짐승들을 수 십 떼로 나누어서 계속 보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자기 부인과 종 처자까지 보냅니다. 야곱이 혼자 남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에 대한 잘못, 상처로 인해 두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야곱이 홀로 남았습니다.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내가 인간적인 노력을 해도 이 상황을 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깨지고 상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때가 중요 합니다. 보통 이 때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이런 때가 다 있으시죠? 이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이 때 하나님 앞에 서야할 기회입니다.

 

. 하나님과 싸운 야곱 : 창세기32:22-32, 히브리서4:11-16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_창세기32:24-32’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고독하고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주셨는데 야곱의 수준대로 찾아오셨습니다. 군대를 보고도 안 믿으니까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찾아오시는데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문제와 환경을 통해서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주시는 방법이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씨름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씨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기도입니다. 고독할 때, 깨어진 마음으로 상한 마음으로 남았을 때 어떤 사람과 씨름했는데 야곱이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 힘줄을 끊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허벅지 관절 힘줄을 끊으면 주저앉습니다. 관절 둔부의 힘줄을 끊었는데 야곱이 이겼다고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진짜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응답하면 무엇을 쟁취하고 얻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내가 힘이 세지고 부유해지는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네가 이겼어. 이겼다는 말은 응답받았다는 말인데 기도해서 하나님 편에서 야곱이 이겼는데 야곱 편에서는 잃었습니다. 평생 절뚝거리며 살았습니다. 주저앉았습니다. 기도 응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야곱의 힘을 빼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응답입니다. 그마저 남아 있는 힘을 빼버리셨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아직도 야곱으로 살고 있구나. 내가 너를 이스라엘이라고 사용할 것인데. 그래서 야곱의 마지막 남은 힘을 빼버리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나의 힘이 되신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를 치유하시고 나의 주인 되시며 고백하는 것이 기도응답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지고 하나님의 힘이 내 삶에 공급되는 것이 진짜 기도응답이 아닌가요? 마지막 남아있는 야곱의 힘, 인본주의, 내가 재물이 많다는 것까지 모두 다 빼앗아갔습니다. 축복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려면 영적으로 축복받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을 승리했다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천국에 입성했을 때 면류관을 주시고 상금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때 네가 진짜 승리했구나.’ 그 승리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하물면 이 땅에서 믿음의 승리, 믿음의 경주를 했다고 고백하려면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자꾸 기도를 잘못 가르치다 보니 무엇을 잃어버리나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성경은 힘을 빼버립니다. 하나님이 욥도 사도바울도 힘을 뺐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에게는 눈에 질병을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너무 사랑하셔서 야곱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이 바라보지 않으니 힘줄을 끊으셔서 네가 이긴 것이야. 라고 한 것입니다. 에서라는 존재. 에서는 야곱의 상처, 야곱의 발목을 붙잡은 상처잖아요. 그것을 우리의 재물로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있나요?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상처 때문에 인생이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과거의 상처때문에 분노 속에서 살고 절망 속에서 살고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은혜 앞으로 가야합니다. 지성소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를 떨치고 새로운 삶을, 이스라엘의 삶을 살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 안에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을 훈련시키는데 늘 말씀으로 훈련시킵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유럽의 전역에 전염병이 돌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시달렸는데 교회들은 헌금들을 모았습니다. 성전을 지어야 하고 돈으로 황제들과 권력싸움에서 이겨야 하니. 믿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루터가 갑자기 깨달은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 100년 전부터 수많은 인물들로 종교개혁 전단계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고 깨닫고 신부들이 화형을 당했습니다. 신부들이 성경으로 반항했다고. 그런 일들이 100년 전부터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루터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맞습니다. 두려워서 안했을 것입니다. 했다고 하더라도 교황청에 의해서 암살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성주들이 루터를 보호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했을 때 루터를 사용하시려고. 우리는 세상과 싸워야 할 것이 아니라 분노와 상처와 원수들과 싸워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싸워야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싸워야 할 것은 하나님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싸운다는 것은 치고 박고 싸우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승부를 봐야 합니다. 구원사역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정리가 안 된 신상생활을 합니다. 내가 자꾸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와 싸우고 싶어. 너에게 약속한 말씀, 너를 통해서 할 일이 있는데 너를 훈련시켜서 변화시키고 싶은데. 여기에 야곱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에서의 악한 영이 역사한 것이죠. 믿음으로 살려고 한 야곱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면 될 것인데 환경을 보니 에서의 군대를 보니 초초하고 불안했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 문제가 왔을 때 여러분의 과거에 상처들이 발목을 붙잡을 때 이로 인해 두려움이 오고 상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으로 힘을 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빠져야 하나님의 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옵니다. 나의 힘, 경험, 재산을 의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는지. 하나님이 다윗을 광야에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아무것도 없게 하셨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과거의 전적을 빼내시려고 광야에서 13년 동안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나올 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신앙이 회복하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_히브리서4:11-16’

 

하나님이 우리의 결산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개 들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상금 받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다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우리와 같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에게 보내주겠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로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붙잡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긍휼하시기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위기 때에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싸우셔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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