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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0-2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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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믿음의 사람

본 문 :

창세기 39:1-18

오승주 목사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_창세기39:2,5,21-23

- 믿음으로 살았는데 억울할 때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보이지 않는 신앙생활이 보이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제 요셉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사실 요셉에 관한 설교를 굉장한 성공하기 위한, 언약을 이렇게 붙잡으면 총리처럼 될 수 있어 라고 꿈 이야기를 성공 이야기를 할 때 요셉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음으로 살았는지 믿음의 삶에 대해서 성경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오늘 믿음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는데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의도치 않는 고난을 당하거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고난을 주셔서 그런 하나님은 안 믿어 해서 교회도 떠나고 신앙에 등 돌리는 사람도 많이 봤는데 그런 경우가 많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에게 엄청 사랑받았던 요셉입니다. 하루아침에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당황합니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노예의 개념이 아닙니다. 돈을 주고 판매를 했으니까 짐승보다 못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의 시장에서 가격을 측정하고 노예는 인구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사랑받았던 요셉이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노예가 된 요셉의 이야기를 창세기 39:2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_창세기39:2’

 

성경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이것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종으로 갔는데 우리 같으면 종이 되면 환경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환경이 아닙니다. 요셉은 환경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도 종이 되어도 하나님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 확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직장생활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6일 동안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같나요? 알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 알고는 있지만 솔직히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희망되지는 않습니까. 세상은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은 더 악해집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같은가. 요셉은 종으로 갔으면 종으로 살아야 하는데 요셉은 종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종으로 갔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보디발은 권력을 가진 장군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감옥이 있었습니다. 그 감옥에 정치범이 수용되었습니다. 애굽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집에 종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종 중에서 보디발의 중에 띈 종이 요셉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린 소년이 종으로 왔는데 보디발의 눈에 띄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그가 형통했데요. 형통은 이 사람 때문에 주변이 다 잘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 내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우리 회사가, 우리 집이 잘 되는 것 을 말합니다. 요셉이 왜 형통했나. 요셉은 종으로 갔지만 종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쉽나요? 어렵습니다. 직장생활, 6일에 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가 쉽나요? 보이지 않는 신앙생활이 보이는 삶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영상연속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 수건을 보면 보입니다. 이것을 숨겼습니다. 그러면 없어졌나요? 여러분은 오 목사 뒤에 수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폐아들은 영상연속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18개월-20개월 이전 아이들은 영상연속성이 없습니다. 엄마가 있다가 엄마가 없으면 없어진 줄 알고 웁니다. 그러면 진짜 없나요? 그 아이들은 믿음이 없기에 없는 거지 실제로는 엄마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앙도 마차간지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안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항상 함께 하십니다. 종 된 삶을 살아도. 노예 된 삶을 살아도. 요셉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요셉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지키는 시간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노예생활하면서 성경 읽고 찬송할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6일 동안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신앙생활이 보이는 삶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요셉이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쁘다 잘생겼다. 이것은 20대까지입니다. 30대가 넘어가면 사람을 볼 때 예쁘고 잘생김은 쓸모없습니다. 30대가 넘었는데 속이 텅텅 비어있으면 밉게 미련하게 보입니다. 남자가 능력 없거나 이상한 짓 하거나 나쁜 짓 하면 사람을 볼 때 매력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렇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으냐가 그 사람을 상징합니다. 잘생긴 것 예쁜 것 그 때뿐입니다. 결혼해서 살면 아무 쓸모없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안에 무엇을 가지고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면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사귀면 사귈수록 괜찮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멋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환경이 그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들이 있었지만 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보디발 같은 사람들은 노예 중에 일을 맡길 때 안정감 있고 성실한 사람을 찾습니다. 엘리트일수록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 종과 노예 같지 않았던 요셉_창세기39:9,19,40:23,히브리서11:1-3

- 종은 거절할 수 없습니다.

-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 요셉은 상관하지 않았더라.

- 믿음 : 하나님을 내 삶에 최고로 두는 것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_창세기 39:9’

 

보디발만 요셉을 좋게 본 게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을 좋게 보았습니다. 그를 남자로 보았습니다. 그와 동침하자고. 그 아내를 나쁘게 볼 게 아닌 것이 그 문화를 보니 남자들도 여자를 여러 명 두었습니다. 이 종은 그 집의 재산입니다. 그러니까 장군이 전쟁터에 나가고 바깥일을 하다 보니 여자가 종을 들어서 잠자리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해도 잘 보이기 위해서 종으로써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잘 풀리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사모님이 나랑 잠자리를 하자고 했더니 요셉이 하는 이야기가.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요. 요셉은 성공하기 위한 성실함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종은 거절할 수 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욤이라는 단어인데 원어에는 욤욤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얼마나 지속적으로 요셉을 유혹했는지 모릅니다. 그 정도 되면 넘어갈 법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죄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그래서 죄를 한번 받아드리면 그것에 무뎌집니다. 술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기 시작합니다. 처음 죄를 지을 때에는 떨립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나님도 없고 죄가 완전히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제가 청소년사역하면서 아이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고 해서 이것이 죄는 아니지만 청소년이니까 그런 부분을 다루려고 이야기했습니다. 애들이 전도사님, 술 먹으면 죄 아니라면서. 담배 피는 것은 성경에 안 나와 있잖아요. 술은 죄는 아니지만 죄가 언제 나오는지 아니? 범죄가 술 먹고 나온다. 술 먹고 나서 예배드리고 찬양할 수 있나. 아이들이 남들 다 하는데 어떠냐는 것입니다. 남들 다 종으로 삽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복종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보디발 장군을 섬기는 종을 어떻게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 되었으면 요셉은 삶에서 최우선 순위로 하나님을 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풀어야 하잖아요. 잘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본격적으로 꼬시려고 사람들을 다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요셉이 일하러 들어갔는데 야한 옷을 입고 앉아있었습니다. 요셉이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옷을 잡아 당겨 가로챘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해서 우리가 받아들이면 같은 편이 되어 좋아하지만 거부하면 우리를 완전히 죽입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랑은 세상이 주는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거부하니 보디발의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히브리 종이라고 표현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이 들어오게 하고 겁탈하려다가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그 상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보디발에게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이 요셉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죠? 신앙생활을 내가 얼마나 잘했는데 하나님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살았으면 도와주셔야 하고 잘되게 해주셔야 하는데 감옥으로 가고 억울하다고 할 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감옥에 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확신했는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_히브리서11:3’

 

믿음은 하나님을 내 삶에 최고로 두는 것입니다. 종으로 갔지만 종으로 살지 않았고 감옥에 죄수로 갔지만 죄수로 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번역을 하면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는 것을 말합니다. 애굽에 힉소스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힉소스왕조는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왕조가 애굽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 힉소스 왕조가 감옥을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감옥에 요셉이 갇혔습니다. 감옥에 있는 수많은 죄수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죄수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도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형통했냐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꾸었다고 했는데 요셉에게 찾아갔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큰 위기나 문제를 당하면 안정적인 사람을 찾아가게 됩니다. 저도 제 삶의 위기가 왔을 때 장로님이나 목사님, 선배들을 찾아갑니다. 요셉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왜 요셉에게 가서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하고 정치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요셉이 거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 것입니다. 요셉을 가두고 죄수까지 되었는데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대요. 우리의 일상에, 직장에,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구하고 두드리고 찾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앙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저는 요즘 마음이 아픕니다. 제 후배들이 술자리에서 복음을 위하여 이런다고 합니다. 옳지 않습니다. 신앙은 거룩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세상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 실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로 복음이면 괜찮지. 그러면서 더 불법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죄수로 살아야 합니다.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요. 다 술 마셔요. 이것은 아닙니다. 40장으로 넘어가면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이 요셉에게 주님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 기쁨과 감사가 있는 사람, 안식과 안정이 있는 사람을 찾았겠죠? 그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한 명은 죽는 꿈이고 한 명이 복직한 꿈이었습니다. 얼마나 꿈 해석이 확실하냐면 술 맡은 관원장에게 이야기합니다. 곧 복직할 때 나를 기억해달라고. 요셉이 약간의 소망을 사람에게 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신속하게 정리하십니다. 창세기40:23 술 맡은 권원장이 요셉을 잊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너를 잊지 않겠다. 너를 자유케 해 주겠다고 했는데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계절이 두 번이나 지나고 만2년 후에 힉소스왕조의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이 매일 밤 반복된 꿈을 꾸는데 꿈이 선명했습니다. 왕이 꿈을 해석하는 사람을 다 불렀지만 해석하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죽였습니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했습니다. 요셉을 불러오는 장면에 요셉이 덥수룩하게 길었던 수염을 잘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2년의 감옥생활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하고 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요셉이 기다렸을까요. 요셉이 그 안에서 포기했을까요.

 

. 하나님의 계획_창세기41:14-16,37-45,시편50:22-23

-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 2: 힉소스 왕조의 바로 왕이 요셉이 꿈을 해석했다고 국무총리 시켰을까요?

-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년 만에 왕 앞에 가서 꿈 해석을 합니다. 꿈 해석은 7년은 풍년이 오고 7년은 흉년이 올 것이다. 7년 풍년이 오면 뒤에 흉년이 온다는 것을 모르면 풍년에 그냥 흥청망청 썼을 것입니다. 그러면 뒤의 흉년에 다 죽는 것입니다. 요셉이 정확히 이것을 해석합니다. 아무리 힉소스 왕조의 왕이 똑똑한 사람을 거느리고 있을 것인데 요셉에게 총리를 맡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이면의 억울한 시간 2년 동안 요셉은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힉소스 왕조의 정치범이 있었습니다. 힉소스의 문화, 정치, 상황을 배웠을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 2년 동안 그런 사람과 교제하고 교류하면서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께서 요셉을 꿈만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실현할 사람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애굽이라는 나라가 시, , , , 리 까지 쌀을 모으고 저장하는 기술, 판매하는 기술. 그것을 14년 동안 정책을 펴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나요. 우리는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감옥의 2년 생활이 하나님이 정금같이 단련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왕이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합니다. 요셉이 그 꿈 제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을 것 같죠?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_창세기41:16’

 

왕의 꿈을 듣고 처음 한 말을 들어보세요. 여전히 그는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꿈은 총리하고 생각하는데 요셉의 꿈은 총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의 꿈은 총리였으면 이미 감옥에 있을 때 낙심 했을 것입니다. 노예에 있을 때 포기 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총리가 아니라 총리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요셉의 꿈은 하나님 이었습니다. 꿈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꿈은 감옥에서 못 꿉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꿈은 노예는 못하나요? 지금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이 잘될 때만 하나님이나요? 고난이 왔을 때에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공부도 못하지 학교는 실업계 다니니까 아무도 저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서러움을 몇 번 느꼈습니다. 서러울 때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였습니다. 제가 나중에 신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은 날고 깁니다. 전도사 때부터 갖춰서 사역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도서관에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때 책을 읽고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우리는 많이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 속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서나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잊지 않으십니다.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2년 동안 힉소스 왕조의 모든 것을 배우게 하신 것. 우리가 고난 속에서 있을 때,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그냥 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형통한 자로 살았습니다. 종으로 노예로 살지 않고 죄수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실력을 갖추고 내용을 갖추고 하나님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청소년부서를 맡았는데 고3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고3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배 안 드리고 공부해서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합시다. 무엇을 잃어버리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험기간에 예배 안 드리는 것이 정상인가요? 이것이 맞나요? 시험 점수 조금 떨어지는 것이 두려우신가요? 진짜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고 구원자이신가. 우리가 진짜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성공을 위해서 총리가 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가. 요셉은 총리가 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삶에 최고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로 살면 안 됩니다. 신앙은 말씀입니다.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배경인가요? 환경인가요? 하나님 아닌가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고 천국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비전이 우리 인생의 꿈이 될 때 우리가 나답게 되는 것입니다.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복음인데 과정이 엉망이야. 종교야. 자기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고. 그러니 남들 하는 그대로 하고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절대 종으로 살지 않고 죄수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혹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잃지 마세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_시편50:23’

 

우리의 행위를 옳게 할 수 있나요? 인간은 절대 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옳게 한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신앙입니다. 신앙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존하셔서 살아계시기에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있으니 교역자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해서 물어봅니다. 살아있으니 말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 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의 말이 더 클 수 있나요? 어떻게 전통이 더 클 수 있고 교회의 조직이나 시스템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클 수 있나요? 이것은 종교입니다. 다 세팅해놓고 하나님 섬기는 것은 종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총리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요셉이야기를 해주시기 마시고 요셉 이야기의 핵심은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분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길 때 영적인 세계가 보이고 미래가 보이고 세상의 것들이 사람들의 말 이면의 것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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