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9-11-03 주일예배

음성 다운로드 : https://bit.ly/2r3tows

2019-11-03 주일예배.hwp
0.12MB

2019110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본 문 :

창세기 41:37-57

오승주 목사

 

. 꿈과 꿈을 이루는 지혜의 삶_창세기41:32-37

- 요셉의 꿈은 성공이 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 은 항상 한결같았습니다.

 

지난 주 메시지는 요셉의 꿈은 성공이 아니고 총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려고 하는 계획이 총리였고, 하나님의 꿈이 총리였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야 야곱의 가문이 애굽으로 넘어와서 민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사용 한 것이지 요셉이 총리로 하나님의 꿈을 꿈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꿈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삶은 항상 한결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감옥에서의 삶이나 노예의 삶이나 애굽 총리가 되어 사나 똑같습니다. 노예로서의 삶도 죄수로서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총리가 되어서도 총리가 되어서 열심히 일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애굽 총리의 직업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증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_창세기41:32-33’

 

지금 바로가 꿈을 두 번이나 꾸고 해석 못한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 요셉을 불러와 꿈 이야기를 했더니 요셉이 정확히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7년 풍년이 오고 7년 흉년이 올 것이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요셉이 왕에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 있고 명철 있는 사람을 세워서 7년 동안 곡물을 저장해서 흉년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에 신하들에게 바로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가 해라 하면서 모든 것을 다 맡깁니다. 심지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왕좌일 뿐이다. 그리고 인장반지를 주고 버금수레를 줍니다. 이 나라 황제가 타는 황금마차 같은 것입니다. 수레 가면 사람들이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수레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줍니다. 지금 요셉이 이런 상황입니다. 이해가 잘 안 갈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 미국에 도피성 이민을 간 것입니다. 한국에서 실패해서. 창피해서 이민을 갔는데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너무 극적이죠? 오늘 장면이 이런 장면입니다. 지금 미국하고 그 당시 애굽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이 당시 힉소스왕조는 세계를 지배하던 왕조입니다. 오늘 보니 만약 저 같으면 꿈을 해석하면서 바로에게 제가 요셉이라면 지혜 있고 명철 있는 사람 세우시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자리를 맡겨준다고 해서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그 자리를 주어도 안 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자리로 줘도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감옥에서 막 나온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에서 보냈던 시간. 그것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고 어두운 과거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총리가 꿈이었다면 그는 이 꿈을 해석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 총리를 맡겨줘도 못했을 것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라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업만 환경만 바꿨을 뿐이지 신앙은 이미 감옥에서 하나님의 영에서 충만한 상태입니다. 총리가 되어서 충만해진 것이 아니고 이미 감옥에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합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서 살아서 노예가 되어도 감옥에 있어도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총리가 되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미 감옥에서 하나님의 영에 충만했기에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상황 탓 환경 탓을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가정이 어렵고 상황들이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자녀문제가 있을 수 있겠고. 제가 요즘 심방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가슴이 아픕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들이 어려움이 왔는데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거나 포기하면서 사는 모습이 가슴 아픕니다. 감옥에 갔더니 하나님이 함께 안하나보다 총리 꿈이 될 리가 있나 이런 식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어려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신 시간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을 제가 지켜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제가 말씀으로 개입을 하지 제가 직접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손 내미시는 것을 잡아야 합니다.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서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랬더니 요셉에게 그런 제안을 바로가 했습니다.

 

 

.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_창세기41:41,46:29-30

- 나의 꿈은 무엇인가요?

- 자기 패러다임에 갇혀있지 않았던 요셉

- 좋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 잘못된 것이라 생 각했던 요셉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목사의 꿈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꿈은 무엇일까요? 개척하기 전에 꿈이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도 받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제가 개척초기에 이런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가스펠편지를 쓴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 말씀으로 성령께서 깨우치시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 가운데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향하는 교회관이고 목회철학입니다. 그런데 올해 와서 왜 힘들었냐면 교회가 이사 와서 재정이 부족하다보니 얼마나 사람이 이상한지 제 마음에 빨리 부흥시켜야 하는데 성도가 늘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하던 대로 기도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영혼을 더 섬기면 될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드니 삶에 놓쳐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인생에 성공이 목적이라는 것이 생기면 원래 하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이유가 갑자기 변질 되는 것입니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_창세기41:41’

 

이것은 어떤 사건이냐면 이민 갔던 거지같은 사람이 미국대통령이 되었으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 대통령이야. 애굽 총리야 그 나라에서 권력가집안의 딸과 결혼하고 인장반지를 받았고 한방에 인생이 역전된 케이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같으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안 생길까요? 생깁니다. 교만하지 않겠습니까. 변질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는 많은 목사님이 총리가 된 이후로 설교를 안 하시는데 사실 총리가 된 이후의 사건들을 자세히 들어다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요셉은 자기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꿈이 비전이 하나님 이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총리의 삶이 감옥에서보다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그 나라의 총리가 된 것이 그다지 큰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으로 기쁨을 얻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증거를 대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많이 속습니다. 아이들의 창작동화에 어떤 가난한 사람인데 굉장히 착합니다. 돈을 조금 벌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들과 밥 먹으면서 대화하는 굉장히 착한 사람입니다.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너무 착하지만 가난하니까 금 항아리를 9개 반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진짜 감사하다. 이것으로 집도 바꾸고 외식도 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금 항아리 9개 반인데. 10개를 채우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행복했던 가족들과의 관계도 깨치고 더 악착같이 살았지만 10개를 못 채우고 죽었습니다. 인간의 욕심, 탐욕을 보여줍니다. 지금 사람은 그렇게 환경에 약하고 상황에 약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좋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요셉의 꿈은 총리가 아니기에 그의 삶은 늘 한결같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나 똑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가 남들보다 성공할 수 있었고 그가 남들보다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보디발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총리의 일이나 겉모양만 달랐지 항상 성실했고 진실했습니다. 다른 노예들이 욕했을 것입니다. 다들 쉬고 싶은데 요셉 혼자 걸레질하고 일하니 얼마나 싫었습니까. 그래도 요셉은 여기에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보일 때나 그러지 않을 때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미국에 이민 가셔서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얼마나 뜨겁게 하시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예쁘게 신앙 생활하는 분이 갑자기 자기가 하는 사업이 대박이 났습니다. 갑자기 큰 부자가 되어 차도 바꾸고 집도 크고 그리고 패러다임이 바꿔 버렸습니다.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기 시작하고 사업 때문에 기도회도 안 나오시고 주일 예배도 빠지기 시작하고 이런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더니 암에 걸리셨습니다. 시한부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 주님을 찾았습니다. 병상에서 다시 찬송하면서 우시는데 감사했습니다. 그분에게 암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는데 암이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축복된 죽음입니다. 지금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에 요셉의 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에 야곱의 집에서도 난리가 되었습니다. 작은 부족의 족장인 야곱의 집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기근이 온 땅에 있었기 때문에. 7년이나 풍년이 있었습니다. 다들 그냥 흥청 망청 먹고 쓴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래 생각한다고 막 쓰다가 갑자기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대책을 아무도 안했습니다. 그런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야곱의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하루 우리는 10끼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조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넘치게 주시면 저축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베풀 줄 알고.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 한 사람만 흉년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 한 사람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축해서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7년 동안 풍년이 와도 흥청망청 쓰지 않았습니다. 7년의 기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쌀이 떨어지면 금이 필요가 없습니다. 곡식이 다 메마른 기근이 왔습니다. 우리가 생수를 사먹을 줄 알았습니까. 그런 시대가 올 수 알았습니까.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애굽의 총리가 지혜가 있고 명철하다더라. 한 가지 의문은 왜 요셉이 총리가 되자마자 아버지와 형들을 찾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풍년일 때 아버지와 아들들을 찾았으면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셉이 잊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그래야 흉년의 때에 요셉과 가족들이 조우해서 구원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 흉년으로 인해서 온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킵니다. 그리고 고센이라는 땅을 준비해서 그곳에서 정착시킵니다. 이것은 훗날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민족, 나라를 이루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 요셉이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_창세기46:29-30’

 

요셉이 다 테스트를 합니다. 동생이 아버지가 살았는지 확인하고 형들이 회개한 마음인지 옛날 같은 마음인지. 아버지와 온 가족을 다 고센 땅에 정착시키고 아버지를 보러 갑니다. 아버지와 안고 우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사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을 괴롭힌 형들은 괴로운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없어지면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않는 인본주의를 가지고 살면 열매를 맺습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죠?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갔으니까. 그러나 인생은 역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교들을 많이 합니다. 한 가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학교리를 하나 짚고 가야 할 것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19편에 정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청소년 사역을 오래 했는데 사실은 지금 청소년 사역을 하면 안 됩니다. 후배들이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터전을 만들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것이 저의 사역이지 내가 제일 잘하니까 내가 해야지.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50대를 준비하고 목회를 준비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내려놓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요셉이 얼마나 형들하고 아버지한테 서운하고 섭섭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요셉은 아버지를 안고 우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요셉이 섭섭한 마음으로 노예생활을 했을까요? 감옥에 살았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사람들이 교회에서 굶고 있고 방학 때 해외캠프도 가고 비전트립 가는데 저는 못가니까 불쌍했나봅니다. 그런데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들 생각이지 그때 제일 많이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그때가 제일 충만할 때가 아니었나. 요셉은 감옥에 가서 노예로 가서 섭섭해. 서운해. 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안고 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로 왕에게 데리고 갑니다.

 

. 저에게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_창세기47:1-12

- 나그네 인생임을 고백하는 야곱 그리고 그런 야곱을 바로에게 소개하여 축복받게 하는 요셉

- 진정한 축복은 무엇인가요? ‘아버지 저에게 축복해주세요.’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_창세기47:9-10’

 

제가 요셉 같으면 볼품없는 아버지를 쪽 팔렸을 것 같은데 바로 왕에게 데리고 갔는데 바로 왕에게 축복 기도해달라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 말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가지고 있는 언약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축복권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도 그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제가 광주에서 목사가 되어 사역할 때 서울 KBS방송국에 초청해서 사역해 달라고 했는데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장로님께서 저를 소개하는데 이 분 젊은데 말씀이 좋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있는데 안에 들어다 보면 다 똑같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자신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를 데려다가 소개를 시켰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한결같은. 오늘 보면 바로에게 가서 야곱이 하는 말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 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 겸손하려고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엄청난 메시지를 바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에도 살아봤고 라반의 집에서도 살아봤고 야곱이 그래서 메시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인생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당신, 곧 죽는다 이 말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장례식 관에 구멍 뚫어놓고 손을 내 놓았습니다. 가장 많은 영토를 정복했던 왕입니다. 왜 손을 내놓았습니까? 빈 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죽음이 안 올까요? 옵니다. 우리는 다 시한부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로에게 이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축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나그네의 인생을 깨닫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라고 원해야 하는 축복은 무엇인가요? 요셉은 총리가 되어서 성실하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 노예였든, 죄수였든, 총리였든 감당했는지 그의 마음은 항상 은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 한국 기독교인이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신앙 생활하는 척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왜 우리를 개독교라고 할까요? 지식이 부족하고 신학이 부족해서 인가요? 70-80년대에는 기독교인들이 존경받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고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영에 감동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 축복을 추구하는 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_창세기48:1-3’

 

창세기 48장을 꼭 읽어보세요.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고 나중에 요셉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당시 축복기도는 장자권입니다. 구원입니다. 지금 요셉이 아버지가 늙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두 아들을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축복기도를 받으러 데리고 간 장면입니다. 요셉은 최고의 실력자인 총리였지만 그의 관심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구원받길 원했고 하나님을 섬기길 바랐습니다.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했으면 영향을 받을 법도 한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야곱도 일어나 힘을 내어 축복해주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요셉의 두 아들들이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아마 최고급의 학교를 다녔을 것이고 무엇이 아쉽고 부족했겠습니까. 그런데 고센까지 가서 아버지, 저에게 축복해주세요. 돌아가시기 전에 축복해주세요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결같은 신앙. 항상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고 산 요셉. 우리가 너무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회 안에 지식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들어와서 너무 지식적이고 논리적입니다. 예전에 교회에 갈 때 일이 있어서 갔나요? 저는 중학교 때에 고등학교 때에 매일 교회에 갔는데 일이 있어서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가서 은혜 받고. 요즘은 시간을 내어 와주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너무 엎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강대국이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나요? 불과 100년 전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조선시대 때에 늘 침략당하고 늘 다투고 수명도 짧고 병에 술에 취해서 살았습니다. 그런 민족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주시고 선교사가 처음 와서 기록한 조선 회상 같은 책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그런 나라에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모님께 주셔서 뜨겁게 기도를 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그래서 세계를 선교하는 나라가 되고 세계적인 신학자, 교회가 나왔는데 이제 와서 잘 먹고 잘 사니까 다들 축복받으니까 그 축복, 그 응답 나 때문에 그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인거 아시죠? 하나님이 축복도 주셨지만 축복을 가져가시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도 시켜야 하고 성공하려는 비전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구원을 모르고 교회를 떠나 살면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엄청난 슬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교만한지 얼마나 오만한지. 하나님에게서 축복이 온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얼마나 망각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께 축복받는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고 이것이 신앙이 아닌가요?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무엇이 부족하다고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라고 눈물로 기도했을까요? 하나님을 떠나면 끝입니다. 유럽보세요. 마약이든 동성애든. 하나님을 떠나면 끝입니다. 한순간입니다. 나라가 위기 왔는데 개인이 잘 살 수 있나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옥에서부터 이미, 이미 노예생활을 하면서부터 바로 앞에 섰을 때 이미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다는 것은 한결 같은 그의 신앙, 상황이나 환경에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고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흠모하고 산 그의 신실한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총리가 하이라이트가 아닙니다. 총리가 되고 나서 그의 아버지와 울고 아버지를 바로 앞에 데리고 가서 축복기도 하게하고 아들들을 아버지에게서 축복받게 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런 축복이 노년에 있기를 원합니다. 부모에게 그런 축복이 있기를 원하고 자식들이 그렇게 존경하길 원하고. 우리는 항상 한결같은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데 환경적으로 성공이 아니라 내면이 속사람이 항상 주님을 더 사랑하는 일에 성공하는. 이것이 기준이 되어야, 이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건강하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우리가 부패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합니다. 인간의 동기가 생기면. 우리의 내면, 속사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셉이 창세기에 그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11-10 주일예배  (0) 2019.11.10
2019-11-03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1.03
2019-10-27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0.27
2019-10-27 주일예배  (0) 2019.10.27
2019-10-20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