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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9-11-1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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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본 문 :

창세기50:1-26

오승주 목사

 

. 야곱의 죽음과 요셉의 위상_창세기50:1-14

- 요셉은 왜 이렇게 완벽하게 보였을까요?

그리고 그에게 약점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곱이 죽고 나서 요셉이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엄청난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애굽 총리니까 온 애굽 사람들이 70일 동안 애통하고 울었습니다. 이 말은 애굽에 있는 사람들이 요셉에 대한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서신을 보내어 아버지 야곱을 약속의 땅, 가나안땅 헤브론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요? 정확히 언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막벨라 굴은 천국입구를 상징합니다. 늘 천국입구를 향해 있고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요셉이 엄청난 기병들과 원로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갔다 오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형들이 상처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요셉에게 와서 우리를 죽이면 안 된다고 하니 요셉이 멋있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하였으니 걱정하지마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이라는 예표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요셉은 약점이 거의 없습니다.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약점이 없어졌습니다. 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냐면 그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가면 저를 기억 해 달라 하지만 감옥에 2년이 더 있었습니다.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감옥에서 나왔을 때에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꿈을 하나님이 해석할 것입니다. 2년 동안 요셉은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생각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면 우리에게 있는 약점들, 사연들, 상처들이 극복이 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은 그런 상처와 사연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이 내 인생에 점차 커지면 나는 작아지고 하나님의 존재가 진짜 믿어지면 내 신앙은 믿음은 강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을 따라 요셉 때문에 그는 상처와 상처를 극복했습니다. 저는 단지 기독교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이야 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구원 받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귀도 예수님이 주인이시며 창조주인 것을 압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아는 지식으로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삶은 변화되고 있나요? 상처와 사연에서 벗어나 있나요? 하나님을 진짜 알고 만나면 변화됩니다. 예수님 믿어도 별거 없더라. 내 인생이 변화되지 않더라. 아무런 감동이 없더라. 예수님을 안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왜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신앙이 성장하지 않을까? 저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도 인천에 있는 청소년집회에 강의하러 갔다 왔는데 진지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성경을 한번이라도 펼쳐보니? 놀랍게도 한명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성경을 일주일동안 한 번도 오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되나요? 머리는 엄청 커지고 주입식으로 교육받으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팔, 다리는 안 자라고, 아는 것 많아서 입은 커지지만 하나님을 모르니까 영적인 세계는 보지 못해서 눈은 실눈이고.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단지 성경을 읽어라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에 하나님이 십계명부터 해서 너희 하나님을 알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입니다. 모든 성경 전체가 성경을 읽으라 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목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기름 부어 왕으로 사용하시려고 했는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성경 읽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13년 동안 시키셨습니다.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말씀을 읽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끝에 이 백성이 망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라고 나와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습니다. 라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알 때 믿음은 생깁니다. 내가 저 사람이 신뢰가 되니 믿음이 생깁니다. 제가 저의 와이프와 결혼할 때 와이프에 대해서 알아야 믿음이 생기고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아는 과정이 연애하는 과정입니다. 알고 나서 믿음이 생기니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음이라는 것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그래서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주세요 하는 것이 구원 받은 자를 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그래서 내가 죄를 지었을 때. ,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지. 제가 힘이 들어요. 위로의 하나님. 성경을 통해서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겠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성경을 읽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속상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왜 떠날까요? 하나님을 모르니까. 교회에서 봉사도 했는데 정작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는 대상이 없고 하나님이라는 실존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연과 상처와 갇혀 살게 됩니다.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그런 상처와 사연을 뛰어넘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도서에 솔로몬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하나님이 일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아는 지혜라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는 아버지가 강한 왕권을 만들어서 솔로몬에게 물러줬는데 주변에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첩의 자식입니다. 그 당시 왕권은 재판권과 같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재판권으로 왕의 실력을 평가를 했던 실력입니다. 원래 다윗을 싫어했던 북부지역 부족은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그래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셔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첫 사건이 아줌마 둘이 와서 한 아이를 두고 서로 내 아이라고 하는 사건입니다. 솔로몬이 명쾌한 재판을 했습니다. 아이를 반으로 자르라고 명령합니다. 엄마가 아닌 여자는 왕이시여, 현명한 판결을 내려서 감사하다고 하고 진짜 엄마는 아이를 사랑해서 죽이면 안 되니 저 여자에게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 판결을 주변 모든 나라들이 보았습니다. 솔로몬이 그 지혜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고 주셨는데 그 지혜를 가지고 교만해서 나라를 키우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엄청나게 솔로몬이 후회를 하였습니다. 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솔로몬 다음 세대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그것은 영적인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일을 행하시는지. 이것을 보고 가는 사람은 사연이나 상처를 금방 뛰어 넘습니다. 본문에 요셉이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세요. 온 애굽이 동원되었습니다.

 

. 형들의 두려움과 요셉의 신앙_창세기50:15-21

-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상처와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

- 요셉의 눈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요셉의 눈물을 오해하고 요셉 앞에 엎드린 형들

그리고 요셉 의 고백

 

형들은 위압감에 눌렸을 것입니다. 장례를 치르고 와서 모여서 요셉이 우리를 죽이면 어떻게 하냐. 아버지가 죽고 나서 우리에게 복수하면 어떻게 하나. 요셉에게 사람을 한명 보냅니다. 요셉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요셉을 보고 당신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그 소식을 듣고 울었습니다. 이 눈물은 무엇일까요? 눈물은 형들을 향한 연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놓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흘리신 눈물. 백성들을 향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흘린 눈물. 요셉이 흘린 눈물입니다. 아무 대답이 없자 형들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요셉 보는 앞에서는 저희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유언을 남겼는데 요셉에게 전달하라고 했다고 우리가 당신에게 잘못했던 것을 용서하라고. 그 때 요셉이 이야기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_창세기50:19’

 

요셉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요셉의 고백을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다 감옥에서 정리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_창세기50:20’

 

요셉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고난, 여정, 총리가 된 것 하나님이 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앞서서 보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하셨다. 이것이 없으면 늘 과거의 상처에 묶여 살아야 합니다. 늘 사연에 갇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는 그 믿음.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그것을 신뢰했고 사모하고 실존적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왜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모르니까. 교회를 다니고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전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시대 문화가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설교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찬양하고 헌금하고 교제 하는 것도 헌신하고 봉사 하는 것도 하나님의 풍성함을 예배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누군가를 섬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 예배인데 그 예배가 우리의 삶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응답을 바라보고 목적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마치 부적같이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갔더니 한 강의가 끝나고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제 책상 위에 편지가 있었습니다. 기도수첩이 부적 같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충격이 되어 이 아이를 찾았습니다. 이 아이와 대화하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아이가 아침에 눈뜨면 목사님의 메시지가 나온대요. 학교 다녀와도 잠자기 전에도 하루 종일 틀어져 있다고 합니다. 엄마가 말씀을 너무 사모해서 틀어놓은 것이라 라고 설명했습니다. 눈 뜨자마자 기도수첩해라. 학교 가서 기도수첩 했어? 안했어? 시험보고 오면 수고했어 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험 못 봤다고 하면 기도수첩을 평상시 안 해서 그렇다고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이 기도수첩이 너무 무섭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질 거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엄마의 말이 달콤한 말이 될 거야.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복음을 받아서 그러겠니.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잔소리가 축복이라고 생각해보고 해보자라고 했지만 속에서는 부글부글했습니다. 이 아이는 사랑을 받고 싶은데 평생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거듭남,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는 곳을 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가족 등록 과정, 영접기도 이런 프로그램으로 성령의 역사를 대체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유사교인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새가족 교육 과정을 통과하면 이 사람 구원받은 것처럼 확정해버리고. 영접기도 하고 나면 이 사람 평생 천국 백성이라고 확정해버립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누가 저희 와이프에 대해서 소개 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이구요. 저런 사람이구요. 이렇게 이야기만 듣고 결혼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건 결혼이 아닙니다. 제가 만나서 확인하고 점검하고. 만나서 교제하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교만할 수가 없고 낙심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어떤 하나님으로 존재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래서 요셉은 총리 때문에 어깨가 으쓱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 민족인 유대인들 정치, 경제, 금융 다 장악하고 있는데 왜 어렸을 때 학원 안보내고 성경을 가르칠까요? 왜요? 그렇게 똑똑한 민족이 어렸을 때 특별한 전문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많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자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제 설교 안 들어도 됩니다. 창세기가 다 끝났습니다. 저는 가이드입니다. 이제 창세기를 읽어 보세요. 레위기를 못 읽으니까 레위기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사님이 강해설교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셔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삶에 계셔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이런 사역들이 벌어야 합니다.

 

. 교회는 유람선인가 구조선인가_창세기50:20-26

- 교회는 유람선인가 구조선인가

- 인간의 악함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바꾸는 것이 구원

 

구원은 신앙은 인간의 악함을 하나님의 선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는 다 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선함으로 바꿔집니다. 저 같은 게 목사로 쓰임 받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을 소개하고 말해주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악한 마음을 병든 마음을 선함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미련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 하나님이 이것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사실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죄에 저항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잘 믿었는데 지금은 잘 안 믿어지면 안 믿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뜨겁게 기도하지만 노년 되어 교만하고 타락하면 그것은 안 믿는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구원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놓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구원을 위해서 사용했어야 하는데 나라를 부강 시키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전도서를 묵상하고 새벽집회를 하면서 교회에 대한 방향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제가 교회에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놓은 것 같습니다. 저의 교회의 조직이 위원회가 5개 있습니다. 3천명 정도 되는 교회에 필요한 조직입니다. 실제로 조직이 거대하니까 백 명 밖에 안 되는 교회에 일하는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실이 아니라 허입니다. 부장인데 위원장인데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많은 분들이 지금 시간표에는 새 가족들이 오면 위로해주시고 장로님, 권사님들이 청년들을 돌봐주고 영혼을 섬겨주는 사역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교회 카페도 만들고 NGO도 만들고. 지난주에 결혼 학교 할 때 내려오는데 카페를 보니 예찬이가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훈련받으러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의 시간표상 심방도 가주고 젊은 청년들 마음도 헤아려주고 장로님, 권사님들이 그들을 위로해주고 양육해주고. 그래서 내년 교회의 조직을 심플하게 갑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전도서를 묵상하는데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다 그런 것에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 교회나 우리 인생을 하나님은 배로 표현하였는데 유람선인가요. 구조선인가요. 우리는 유람선처럼 오지마. 오지마. 이 정도가 딱 좋아. 놀기 좋아. 우리끼리 여행 다니는 유람선. 이것은 타락선입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될 수 없습니다. 새가족이 매주옵니다. 그러면 교회는 갖춰서 세팅하고 싶은데 새가족이 옵니다. 교회는 구조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큰 배로 만들어 주셨는데 요셉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이라는 배가 유람선이 아니라 구조선이구나. 영혼들을 태우는.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구조선이구나. 우리는 구조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구조선이 되어야 합니다. 시스템도 좋아야 하고 행정도 잘해야 하고 나름 디자인도 잘해야 되겠죠. 그런데 교회에 왔는데 은혜가 안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갈 곳 없어서 영혼이 방황다가 교회에 왔는데 은혜가 없다면 소용없습니다. 은혜가 안 되는데. 교회가 구조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니까 많은 자녀들이 메시지를 주입하는데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잘못된 것은 우리는 우리가 전도하려면 정치인이 되어야 해. 큰 전도하려면 의사가 되어야 해. 전문인이 되어야 해. 그것은 진짜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비성경적입니다. 마치 요셉이 이제 총리가 되었으니까 전도해야지. 맞습니까? 오늘 요셉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신앙은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예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신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총리가 되어도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섬기고 기쁨으로 살 수 있는데.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높이는 신앙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예배를 소홀히 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 구조선의 이름은 은혜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한마디로 은혜입니다. 은혜를 알기에 그는 전혀 그의 상처로 인해서 복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 광야 같은 과정이고 요셉에게 감옥 같은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알고 만나도록 시간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같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녀들, 형제들, 남편, 아내,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사역을 하자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주일마다 있어서 예배 오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고 주일 사역이 되도록 같이 집중하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고 다른 것 다 했는데 그것을 놓쳐버리면 희망이 없습니다. 구조선이 아니라 유람선이 될 수 있으니까. 인간의 악함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바꾸는 구원. 우리를 회개시키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구원은 놀라운 축복이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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