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19-12-08 주일예배

음성다운로드: https://bit.ly/2Lyd8uV

2019-12-08 주일예배.hwp
0.08MB

2019120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소제 : 여호와께 감사하라!

본 문 :

레위기2:1-16

오승주 목사

 

. 소제는 어떤 제사인가?

-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상징하고 또 구원 받은 이후의 달라진 삶을 상징합니다.

- 제사장 임명할 때, 성막(성전)을 짓고 봉헌할 때, 나실인의 서약 이후,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입은 후 : 예배 이후의 삶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오늘 5대 제사 중 소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소제는 유일하게 짐승, 다시 말해 피를 뿌리지 않는 유일한 제사이고 곡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 받으신다면서요. 갑자기 곡물제사를 왜 받으세요? 라고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소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제는 독립적으로 드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주로 번제와 함께 드립니다. 번제를 드리고 나서 곧바로 드리는 제사. 옵션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제를 언제 드렸냐면 중요한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제사장을 임명할 때. 우리로 말하면 목사가 안수식을 할 때나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이 안수를 받고 난 후에. 제사장을 임명하고 반드시 소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성막, 지금으로 말하면 성전을 짓고 나서 봉헌할 때 소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실인으로 서약할 때, 나실인은 칼을 몸에 대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께 드린다. 이 아이를 하나님이 다 쓰세요. 라는 개념으로 인생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겠다. 깨끗하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겠다 라고 하는 것을 나실인이라고 하는데 나실인으로 서약하고 나서 소제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병 환자. 문둥병은 성에서 죄를 상징합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입고 나서 반드시 소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제를 드려야 할 때를 4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제사장은 지금 신약에 와서 우리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 그리고 성막, 성전을 짓고 봉헌 할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나서 소제를 드리고 합니다. 나실인 서약.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서약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되겠습니다. 서원하고 서약을 합니다. 그때 소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을 때. 우리의 죄 문제가 씻음을 받을 때. 죄로 얼룩진 우리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함을 받을 때, 죄사함을 받고 나서 소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임명, 봉헌, 서약, 깨끗함을 받은 후 왜 소제를 드리고 할까요? 이 소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면 이 후에 제사장으로 임명받고 성막을 짓고 봉헌하고 나실인으로 서약하고 나병 환자로 깨끗함을 받고 난 후에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인가 도전하는 것이 소제의 역할입니다 소제는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도전하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거룩하고 성화된 삶을 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변화된 삶의 핵심을 마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변해야 삶이 변합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행동이 변화되고 마음이 변화되어야 삶의 양식도 변화됩니다. 마음이 그대로면 잠깐의 변화는 다시 원 위치됩니다. 우리의 겉모양 바꾸는 것 금방이죠. 저의 와이프의 고모님이 미국에 사실 때에 옷가게를 하셨는데 계절마다 옷을 보내주십니다. 저는 오직 블랙인데 고모님이 보내주신 옷은 알록달록한 것을 보내주십니다. 이번에 연두색을 보내주셨는데 주변에서 예쁘다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두 번 정도 입고 잘 입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아직은 블랙인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주변의 것은 잠깐 바뀌고 원 위치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잘 변하나요? 제일 변화가 안 되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상처도 인생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다 마음 안에 담겨있습니다. 마음이 곧 터질 것 같습니다. 다 마음 안에 담겨있습니다. 사상이나 그릇된 것 올바른 것 다 마음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죄가 마음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죄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도 모르게 먹고 있습니다. 과자가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저도 모르게 먹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는 행동들입니다. 마음이 뭔가 어렵고 힘들면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나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마음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강팍한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강팍한 마음이 어디에서 온가요? 저도 모르게 사역을 하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고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와이프와 아이한테 짜증을 냅니다. 그들은 똑같이 행동을 하는데 나는 반응을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다쳐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이 중요하구나. 마음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들어다 볼 수 있고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차장에 주차하면 반드시 20분정도 시간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기도하고 갑니다. 나 집에 갈 때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야. 이 마음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을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말이 바뀌게 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8개의 복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을 받는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땅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마음이 온유해야 우리의 가정이, 직장이 하나님의 나라로 확장됩니다. 마음이 온유해야 구원의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내 마음이 온유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복음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왜 강조하냐면 소제는 우리의 마음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삶이 변화되니까. 번제가 구원을 상징한다면 출애굽을 상징한다면 소제는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도전과 같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의 삶은 어떤 삶인가요? 우리가 거룩해야 하고 의로워야 하고 충만해야 하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_레위기2:1-12,누가복음4:17-18,에베소서5:2-5,시편141:2,고린도전서5:7-8,히브리서11:25

- 곡식을 맷돌로 갈아서 고운가루로 드려라.

- 기름과 유항을 넣어라.

- 누룩과 꿀을 절대 넣지 말라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_레위기 2:1’

 

고운 가루를 한 움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고운가루를 만들죠? 맷돌로 갈라고 합니다. 제가 주석에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본인이 고운 가루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_에베소서5:2’

 

예수님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고운 가루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겠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명예, 자존심을 다 버리셨습니다. 우리 인간도 십자가에서 죽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사람들이 침 뱉고 모욕하고 능욕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 자신을 내어버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_갈라디아서2:20’

 

이것이 바로 고운 가루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체가 없습니다. 땅콩인지 쌀인지 보리인지 갈아버리니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곱게 갈았습니다. 원래 있던 형체를 안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승주라는 사람을 죄인인 오승주를 안 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갈아진 새 사람인 고운 가루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예배가 되고 하나님 앞에 소제가 되기 위해서는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고운 가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위에 유황을 놓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2:1) 기름은 성경에서 성령, 유황은 기도를 상징합니다. 간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고운가루에 기름과 유황을 넣으라고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_누가복음 4:17-18’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야라는 성경을 끄집어 들었습니다. 이사야가 본인을 십자가의 사건을 예언하는 성경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이후에 하늘로부터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보혜사로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지 우리가 죽고 새사람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나요? 수도 없는 유혹들, 수도 없는 사상들, 수많은 사단의 공격들 우리가 어떻게 이기나요? 보혜사 성령.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인도하시는 성령이 오셔야 우리는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유황으로. 간구, 기도로.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황을 넣는 것입니다. 유황은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저는 요즘 기도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데 진짜 기도를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저 청년이, 권사님이, 장로님이, 진짜 기도생활을 하고 있나? 저는 저의 하루의 삶을 펼칩니다. 묵상이 없는 사람은 펼치는 장면이 없습니다. 내 삶을 내 마음의 상태를 들어다 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인지 성령이 원하시는 삶인지.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생활이 없으면 그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멈추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왜 기도가 없어지고 사라질까요? 이것이 엄청난 공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_시편141:2’

 

기도가 분향과 같다고 합니다. 저의 학교 후배들과 상담하고 모임하면 기도생활 어떻게 해? 라고 물으면 무시로 기도해요. 마음으로 생각으로 기도해요. 애들이 늘 이런 식입니다. 무시로 기도하고 묵상하고 깊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고수들이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내가 수영을 배워야 하는데 수영 기초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기초를 배워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운동 하나 해도 자세와 폼을 갖춰야 나중에 운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의 시간이 있으시나요? 사위를 아들처럼, 며느리를 딸로 여겨라. 라고 하는데 사위가 처가에 가서 소파에 누워서 라면 끓어달라고 하면 쫓겨납니다. 최소 3년은 예의바르게 하고 3년 정도 지나서 괜찮은 사위구나. 마음이 교감이 되면 소파에 드러누워도 됩니다. 지금 기도에 대해서 그런 과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굉장히 형식이 필요합니다. 목사님, 형식이 중요하나요? 중심이 중요하지. 형식이 없는 중심이 있나요? 룰이 없고 법이 없는 자유가 있나요?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중심이 깨끗함을 무엇으로 확인할 것입니까. 자식들이 부모님 사랑해 하고 용돈 안 드리면 부모님이 싫어하십니다. 자녀들도 똑같습니다. 너를 사랑해 하지만 밥도 안 해주고 청소도 안 해주고 자녀에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기도는 주 앞에 분향함과 같다고 합니다. 분향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고 있잖아요. 기도가 이런 것도 같다는 것입니다. 정말 시간을 갖추고 자세를 갖춰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삶이,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기름과 유황을 섞은 가루 한 움큼을 화덕에 굽기도 하고 철판에 넣어 볶기도 하고 냄비에 넣어 끓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온갖 수모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화덕에 넣어 굽기도 하시고 철판에 볶기도 하시고 냄비에 넣어 끓이기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가나안으로 바로 가라. 그러면 가나안에 가서 또 우상을 섬겼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가서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화덕 같은 광야, 철판 같은 광야, 팔팔 끓은 냄비 같은 광야에서 연단하시고 단련하셨습니다. 이것이 화덕이고 철판이고 냄비에 넣고 끓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껍질을 벗기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벗기시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구원받은 나, 새 사람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것만 보고 사는, 가면 쓰고 껍데기만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비교하고 열등감가지고 살아야 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벗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과 하반 절에 보니 절대 넣지 말라고 하는 것이 2가지 있습니다. 누룩과 꿀입니다. 이것을 넣는 순간 하나님이 태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_고린도전서5:7-8’

 

누룩은 좋은 예화로도 쓰였지만 소제에서 누룩은 악의에 찬 누룩. 누룩은 부풀려 줍니다. 허황됨.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의 생활을 하려면 허황됨을 버려야 합니다. 가면을 벗고 겉치레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누룩은 부풀립니다. 순결함과 진실함이 아닌 것입니다. 꿀은 성경에서 쾌락, 죄의 결과를 표현합니다. 꿀을 넣으면 교회가 세속화가 됩니다. 세상의 쾌락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소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 소금언약 :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_레위기2:13,역대하13:5,레위기6:20-21

- 예수 그리스도의 변질하지 않는 삶, 변하지 않는 약속, 일관성 있는 헌신

- 소금 맛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 여호와께 감사하라 : 감사의 소금을 내 삶에 넣어라. 감사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_레위기2:13’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소금은 변질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관성 있게 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말씀을 상징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소금을 쳐야 변질되지 않고 썩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_역대하13:5’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주셨는데 까먹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것도 까먹기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소금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셨지. 나 구원 받았지. 까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자손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여호와께 드릴 예물은 이러하니라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항상 드리는 소제물로 삼아 그 절반은 아침에, 절반은 저녁에 드리되 그것을 기름으로 반죽하여 철판에 굽고 기름에 적셔 썰어서 소제로 여호와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_레위기6:20-21’

 

한 움큼을 아침과 저녁에 매일 드리라고 합니다. 대 제사 때만 번제 때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고운 가루를 들고 다니면서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드리라고 합니다. 소금 친 언약, 소금 친 고운 가루. 다윗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소제는 무엇이냐면 소제의 다른 이름은 감사제입니다. 번제를 드리고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소제입니다 출애굽한 백성이 광야에서 감사를 했나요? 감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감사했습니다. 소제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컨트롤하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이 성경은 감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소제를 발전시켜 절기를 만드십니다.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유월절은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하나님께 첫 수확물을 드렸습니다. 초막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경사회를 이루고 첫 수확물을 드리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소제가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일주일동안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집밖으로 꺼내셨습니다. 들판이나 논이나 마당이나 초막은 요즘말로 텐트를 치고 일주일동안 소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도. 짐승을 잡기도 하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너희가 광야에서 이렇게 텐트 속에서 살았는데 너희를 지키고 인도하고 믿음이 없어서 불신앙하던 너희를 가나안에 들어와서 영원한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축복을 누리는 이때에 광야생활을 잊지 말라고 만드시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지금 제가 기록을 찾아보니 지금 유대인들도 초막절을 지킵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건축물은 베란다가 있습니다. 텐트를 칠만한 큰 베란다. 초막절에는 베란다에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일주일동안 말씀 듣고 예배드리면 삶이 변할까요? 변하지 않을까요? 일주일동안 과거의 죄와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을 감사하고 떠오르는 멈춤의 7일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가나안은 영원한 안식, 천국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성할 천국의 안식을 감사하면서 잊지 말고 해야 하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소제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한 움큼씩 들고 다니라는 소금을 친 소제. 기름과 유황을 넣은 소제. 누룩과 꿀을 뺀 소제. 감사입니다. 구원의 감사. 깨끗하고 바르게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기도제목. 소제. 정말 중요합니다. 감사가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부모와 자녀사이에 감사가 없으면 관계 무너집니다. 부부 사이에도 감사 없으면 관계가 무너집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사이에 감사가 없으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데 감사한 마음이 있나요? 이 나라에서 이상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에서 살아보실래요? 제 친구는 미국에 일본에 선교사로 갔는데 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감사가 없으면 마음에 죽음의 병이 찾아옵니다. 우울증이 심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우울합니까? 감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구원의 감사를 놓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감사를 가르쳐 주십니다. 감사하는 삶을 위해서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화덕에 굽기도 하고 철판에 넣기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광야의 삶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야. 기도해야 해. 소금을 뿌려야 해. 그래서 우리가 감사가 회복될 때, 감사를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있으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11-13 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의 사람. 영원한 본향에 입성할 것이라는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소제가 회복되길 바랍니다. 아침, 저녁으로. 다윗이 소제를 알았던 것입니다.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시간. 소제가 여러분에게 회복되길 바랍니다. 그 감사의 삶이 놀라운 기적을 우리의 삶에 일으킬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를 위해 우리는 늘 소제를 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정하고 때를 정하고 예물(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서. 말씀의 소금을 치면서 소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묵상을 이야기합니다. 예배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문의 / 윤덕현 전도사 010.9899.3951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12-15 주일예배  (0) 2019.12.15
2019-12-08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2.08
2019-12-01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2.01
2019-12-01 주일예배  (0) 2019.12.01
2019-11-24 주일예배(전체영상)  (0) 201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