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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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바벨론_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 |
본 문 |
이사야 14:3-23 |
오승주 목사
Ⅰ. 이스라엘 주변국에 대한 경고
오늘 13장부터 23장까지 어떤 신학자는 25장까지도 보지만 저는 23장까지 이스라엘 주변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가 펼쳐집니다. 12장까지는 이스라엘의 내부 남 유다, 북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예언했다면, 오늘 13장부터 바벨론을 시작으로 23장까지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하나님이 예언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바벨론에 관한 내용이 제일 많은데 제가 14장을 읽었지만 13, 14장 모두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 심판의 메시지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사야를 설교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많은데 아프로 이사야를 1년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년 가까이 해야 이사야가 끝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놓쳤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이 단지 성경구절 몇 개 뽑아서 그것을 언약이라고 붙잡고 가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이 우리를 깨닫게 하는 바가 너무 많고 우리의 인격, 삶들을 하나님이 변화시키려고 하시는 메시지들이 성경 전체에 깔려있기 때문에 성경을 놓치지 않고 확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낄 때에 지금 우리의 주변 크리스천을 만나고 대화 해보면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 하나님의 부르심과 맞닿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 음성과 맞닿은 지점이 없이 내 삶이 내 영혼이 변화가 없이 그래서 설교 시간에 구원의 감사, 찬송을 이야기하는데 도무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하나님의 음성과 부르심에 맞닿아 있지 않는 것을 대화만 해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이 계속적으로 관념화가 되어있고 주문 외우듯이 신앙생활이 그렇게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성도님들이 카톡을 저에게 종종 보내십니다. 기도제목이나 자신의 근황을 보내시는데 저에게 카톡을 보내시는 경우 목사님, 너무 좋아요 라고 보내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00건이 온다면 1-2건 정도입니다. 98-99건은 어렵고 힘들어서 눈물 흘리면서 보내는 카톡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카톡이 저에게 오면 읽고 있으면 제가 답장을 길게 안하는 편입니다. 어떤 느낌이 드냐면 하나님이 이 권사님, 집사님 삶에 일하기 시작하셨구나. 이런 느낌이 듭니다. 거기에 제가 답장을 길게 써버리면 그 분들이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일 하시는 것을 방해할 수 있으니까. 그 대신 제가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면 눈물이 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면 힘든 상황이니까 참 힘들겠다, 어렵겠다. 하나님, 이 가정에 성도님을 하나님 도와주세요.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긍휼을 베풀어주세요. 기도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기쁜 것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 성도님에게 일하고 계시는구나 이것을 느끼고 있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기쁩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생활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고 그 일하심으로 내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이 강해지고 성숙해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늘 그런 시련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목표지점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과정이고 신앙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천국입니다. 신앙의 목표는 천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것은 앞으로 확신 있게 더 이야기 할 것인데 목사님, 천국가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고 사명이 있고. 아니요. 이 땅에서 어떤 사명도 가지지 마세요. 우리의 오직 한 가지 사명은 천국입니다. 천국에 입성하도록 살면 이 땅에서 삶은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 쪽으로 추구하지 않더라도 천국이 가까우면 내 영혼은 기쁠 것이고 감사가 나올 것이고 찬송이 나올 것이고 천국이 내게 가깝다면 내 언어는 바뀔 것이고 내 영혼도 새로워질 것이고 그런 내 삶을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멀면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동기가 되고 야망이 되고 오히려 예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그릇된 신앙생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과정들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 자녀들이 크면서 모든 과정을 겪어야 성숙한 좋은 어른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바벨론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주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주변 국가를 하나님이 미워서, 이스라엘을 괴롭혔어? 이스라엘을 포로로 삼아 괴롭혔어? 너희들 다 죽어봐. 이런 내용이 한 개도 아닙니다. 본문을 잘못 설교하다보면 우리의 주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려야 해. 우리를 괴롭히니 저들이 다 어렵지 않느냐. 이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가 성경을 시대에 잘못 반영해서 기독교가 얼마나 악행과 만행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게 중세교회의 십자군 전쟁 같은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이 장로교를 만들었고 저도 신학교 내내 칼빈에 대해서 배웠지만 칼빈이 기독교 도시를 세우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는지 모릅니다. 칼빈이 이 땅에 유토피아 같은 기독교 도시를 만들 수 있습니까? 칼빈의 유일한 오점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니 천국과 예수님이 목적이 되는 삶에서 벗어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해야 할 기독교인의 삶, 기독교인이 살아내야 할 삶에서 벗어나버린 것입니다. 목적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사복음서를 읽어보시면 단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 종교 지도자들, 장로들. 철저하게 신앙생활 얼마나 잘했습니까? 자기들은 너무 깨끗하고 바르고 의롭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이 덮고 있던 모든 것을 다 까발리셨습니다. 고아를 찾아가시고 과부를 찾아가시고 범죄자를 찾아가시면서 그 당시에 귀신들리고 억압당하고 눌려있는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미움 받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신앙생활 잘 한다고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형성했지만 그들의 살고 있는 시대상을 예수님이 사복음서에 다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우리가 교회를 세워가는 것. 많은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흔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가 3천명, 5천명 되었더라. 그래서 어떤 교회에 가보니 3천 제자를 위하여서 교회 표어가 걸려있었습니다. 정말 어리석습니다. 초대교회가 과연 3천명을 목표삼아 전도를 했을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3천, 3백 제자를 달라고 기도했나요?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의 삶이 너무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한 영혼 한 영혼 전도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기록한 누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교회에 유입이 되니까 숫자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파악해서 누가가 보여준 내용이지 초대교회는 3천명, 5천명을 목적 삼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10년 내에 1000명의 성도를 만듭시다. 1000명의 제자를 만듭시다. 그러면 우리는 늘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이고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릇된 목표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천국을 놓칩니다. 교회에서 숫자 놀음 하는 것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이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삶에서 멀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죠? 예수님이 삶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일이 발생하죠? 그 목적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상에 아주 많은 피해를 준 역사적인, 시대적인 증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를 다시 생각해야 하고 기독교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고 성경과 역사와 교회사를 공부 하고 있는데 기도해주시고. 논리적이고 계획을 세워서 하는 목회를 못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자녀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고 천국이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여러분, 천국이 가까이에 있어야 세상의 유혹도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천국이 가까이 있어야 우리 속에 나도 모르는 변화들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천국이 가까이 있어야 우리 인생의 삶의 가치관이나 목표들이 달라지겠죠. 천국이 가까이 있지 않으면 늘 죄를 가까이하고 세상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모하라고 합니다. 흠모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을 상실한지 조금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의무감이나 다른 목적들로 교회에 다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음성과 마주하고 있는가? 천국을 사모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늘 질문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주변 국가에 대한 경고는 남은 자들에게 주신 예언입니다. 바벨론이 실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예언입니다. 다니엘서에도 같은 예언이 있고 이사야를 통해서도 예언을 주셨고 다니엘을 통해서도 예언을 주셨고 바벨론이 강대국이 되기 전입니다. 이 예언의 말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안에 믿음의 사람들, 남은 자 교회에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벨론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너무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달라. 쟤네들은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그렇게 손가락질하면서 우리도 똑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 국가가 멸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지 13장, 14장의 바벨론의 심판의 메시지가 그들을 죽이려고 하시는 멸망시키려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한 절 한 절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바벨론을 살리길 원하시고 한 영혼 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장치들을 넣어 놓았습니다. 오늘 그것을 살펴 볼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13장에 바벨론에 대한 경고를 이렇게 시작하고 계십니다.
Ⅱ. 바벨론에 대한 경고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_이사야13:2’
민둥산은 남은 자를 이야기합니다. 민둥산은 아무것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산입니다.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는 것으로 심판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단지 바벨론을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바벨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의 뜻은 ‘혼란스럽게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단어가 왜 ‘혼란스럽다’ 인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너희는 애곡할지어다_이사야13:6-1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_이사야13:6-16’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보니 바벨론을 보고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애곡은 슬피 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바벨론은 예언을 받을 때 이제 막 성장하는 도시입니다. 바벨론은 함무라비에 의해서 형성된 신생 도시였지만 사실 바벨론은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이 강력한 힘과 권력으로 세운 도시 중 하나가 바벨론이었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고 흩어져 있다가 함무라비에 의해서 유프라테스 강 근방에 엄청난 도시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왕조가 되어 가는데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산헤립을 통해서, 에살핫돈을 통해서 바벨론은 거대하고 강력한 왕조가 됩니다. 바벨론은 엄청 고급스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대 도시들도 많은 도시를 건설할 때 바벨론의 도시를 모델삼아 그것으로 건축학자들이나 도시공학자들이 활용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대한 문화를 지칭할 때 바벨론 문화라는 명사처럼 바벨론을 사용합니다. 역사적으로 바벨론이 얼마나 대단한 왕조였는지. 바벨론을 과학적으로 복원한 영상이 있습니다. 반듯하고 정갈하고 모든 균형이 맞았습니다. 지금도 신생 도시를 지을 때 도시 공학자들이 바벨론의 도시를 참고할 정도로 완벽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특히 바벨론의 성벽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견고하게 지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허물지 않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벨론의 문화가 강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엄청 고급 졌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문화를 접하면 다 혹하고 빠졌다고 합니다. 바벨론에 살았으면, 바벨론의 문화에 접해봤으면. 마치 우리가 젊은 청년들이 런던이나 뉴욕에 갔다 오면 거기에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런 환상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남 유다, 북 이스라엘은 저급한 사람들이고 저급한 문화인 것입니다.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날 정도로 바벨론의 문화는 고급스러웠고 대단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통해서 주신 바벨론의 예언은 놀랍게 100% 다 이루어졌습니다. 메대에 의해서 바벨론이 멸망했는데 어떻게 그런 강대국이 순식간에 멸망하고 사라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경 예언 그대로 바벨론은 멸망했습니다. 나중에 이것을 다 살펴볼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지 아셔야 합니다.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전시킨 나라인데 이런 강대국이 왜 애곡해야 하나? 그들은 슬피 울어야 하나? 여러분 하나님이 바벨론을 이유 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서 멸망시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멸망시키고 이유 없이 애곡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겉으로는 고급스럽고 최고의 문명을 형성했지만 잡다한 신을 섬겼습니다. 어떤 신을 섬기느냐에 대한 내부 분열로 인해서 멸망했다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신들을 섬기는 문화로 인해서 바벨론의 성문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동성애뿐만 아니라 쾌락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지금 나와 있는 음락한 타락한 성문화는 이미 바벨론 때에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쾌락문화, 타락문화가 엄청났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한민국에서는 문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이면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큰 길로만 다니고 집만 왔다 갔다해서 몰랐는데 강남에 가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이상한 술집들이 많고 얼굴이 예쁘게 생기면 전부 술집에서 일하고 땀 흘려 애써서 노동해서 번 돈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을 팔고 그것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벨론의 이면에는 그런 삶들도 이미 겉으로는 고급스러워 보이고 실력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은 쾌락문화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신학자들이나 기독교문학자들이 세상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바벨론의 문화라고 표현을 합니다. 제가 유튜브를 보니 어떤 사람이 상류층 사회의 유튜브를 하는 것입니다. 슈퍼카도 여러 대를 끌고 다니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집을 수십 채 가지고 있고 나중에 보니 다 사기였다고 유튜브를 닫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것이 좋다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 사람의 끝은 허무함입니다. 빈껍데기였으니까. 그것이 진짜라도 빈껍데기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성실하게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동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땀 흘린 대가로 누리고 즐겨야 하는데 불법적이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애곡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죄악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세상을 좋아하지 마세요. 세상이 진짜일 것 같죠? 영원할 것 같죠? 이 문화가 영원할 것 같고 대한민국이 영원할 것 같습니까? 고급스런 문화 같지만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바벨론. 허무하게 만드는 바벨론. 오늘 성경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왜 멸망했느냐. 그들이 교만하고 오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순금인줄 알았습니다. 오빌의 금인 줄 알았습니다. 오빌의 금은 그 당시 가장 값비싼 금이 나는 지역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순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지렁이가 바닥에 깔려있고 지옥에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슬피 울고 애곡한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 도다_이사야14:1-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라_이사야14:1-2‘
남은 자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인데 갑자기 왜 야곱이 나오고 이스라엘이 나오나. 야곱을 긍휼을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리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남은 자들을 다시 택하시고 다시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누구였습니까?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 세 친구와 같은 신실한 남은 자,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는 바벨론 안에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이방인 중에 구원받을 자들입니다. 나그네 된 자들이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예속될 것이며.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우리는 끌려간 것 같지만 하나님이 다시 택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바벨론에 나그네 된 자를 우리에게 예속시켜주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_이사야14:3-7’
우리보고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에 있는데. 우리가 포로가 된 것입니다. 안식을 주시는 날에. 포로가 무슨 안식이 있나요? 그런데 안식을 얻었단 말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안식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천국을 가까이 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냐면 바벨론 왕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대한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합니다.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질러 높여 노래하는 도다. 무리가 누구인가요? 무리가 예수님 믿는 저와 여러분, 교회입니다.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유는 어쩌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시는 것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벨론의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벌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을 긍휼히 여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저는 가스펠 교회 성도님들이 이 말씀에 해당되는 성도님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다시 택하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바벨론에 들어간 포로들을 통하여 은혜를 그 땅에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로들에게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합니다. 무슨 노래냐. 바벨론 왕은 무너질 것이다. 고요할 때 이 노래를 다 같이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캐럴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 동방박사들이 와서 캐럴을 불렸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여러분 그 땅이 결코 고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이스라엘은 가장 부패했고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실 때 찬송을 불렸습니다. 누가요?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 찬양을 불렸습니다. 남은 자들을 보고 구원을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노래로 만들었고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노래로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고 들려주었으며 부르게 했습니다. 잊지 말라고. 이 노래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이 노래가 무엇인가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삶이 찬송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으로 사는 삶이 어둠을 이기고 바벨론의 유혹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_이사야14:12-20
바벨론에 대해서 더 정확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_이사야14:12-20‘
계명성은 요한계시록에 사단을 지칭합니다. 바벨론의 국가에 대한 내용인지 사단에 대한 내용인지 잘 보세요. 너 열국을 엎은 자여. 누가 열국을 엎었나요? 사단. 열국을 엎고 땅에 쫓겨났습니다. 뭇별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북국 집회의 산은 시온의 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산입니다.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누가요? 계명성 바벨론이. 지극히 높은 이가 하나님입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 관한 예언 같지만, 바벨론 왕에 관한 예언 같지만 하나님은 지금 구속사를 관통하는 악한 영 사단에 대한 예언으로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도 이사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성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세상에 바벨론과 같은 거대한 문화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나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이 땅의 정치, 경제, 문화를 누가 장악하고 있나요? 사단입니다. 속지 마세요. 그 문화는 늘 계명성처럼 존재합니다.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려고 하고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존재, 곧 사단. 그러나 그는 스올에 떨어지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집니다. 사단을 숭배하고 사단을 쫒아가고 사단의 문화에 현혹된 사람은 같이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인간도 사단과 같이 교만하고 오만하게 되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보세요. 전부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문화이지 않습니까? 그 문화가 겉으로는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뒤에는 쾌락, 보이지 않는 공허함, 허무함. 연예인의 삶이 좋아보이나요? 아이돌의 삶이 좋아 보이시나요? 티비로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지요? 끝내 애곡하리라. 지옥에 가면 늘 애곡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봐야 100년인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계명성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Ⅲ. 가장 슬픈 일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
- 가장 슬픈 미래_이사야14:21-22
슬픈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_이사야14:21’
조상의 죄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손들을 도륙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문화입니다. 조상의 죄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자녀들을 계명성으로 바벨론으로 몰아넣습니다. 이해되시나요?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_이사야14:22’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바벨론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끊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론과 가까워지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_이사야14:23
‘내가 또 그것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_이사야14:23-24’
하나님이 죄를 청소하십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조상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손들을 도륙으로 내려 보내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과 오만입니다. 우리 조상의 죄는 교만과 오만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문화로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자녀들을 바벨론으로 밀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후손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가장 큰 슬픈 미래는 나라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문맹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빗자루로 청소해버리셨습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이 시대와 이 문화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가 영원할 것 같은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것을 청소하고 계시는데 그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 바벨론과 이스라엘 주변 국가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주시는 메시지가 이사야 40장입니다.
-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축복_이사야40:1-8, 로마서15:14-19
남은 자에게 주신 구체적인 메시지가 이사야 40장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_이사야40:1-8‘
바벨론의 문명, 문화를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것인데 그 위로를 받는 길이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인가요?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닿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닿아있기 위해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을 평탄하게 하고 높고 낮은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에 닿기 위해서 천국에 우리의 마음이 닿기 위해서 평탄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설교는 결코 성전 건축을 위한 설교본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릇을 키워야 된다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전건축은 숫자가 늘어나면 하는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서. 이 설교는 그런 설교가 아닙니다. 대로를 수축하라고 해서 성전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에 닿아있도록 우리의 마음속에 오물을 제거하고 죄악들을 제거하고 그 길을 수축하라는 것입니다. 왜요? 그 예수님께 닿아야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믿음의 길을 살면서 얼마나 고단했습니까? 저들은 발전된 문명에 살았고 대단한 바벨론에 살아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눈물로 씨앗을 뿌리며 살았으니까 우리의 고단함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천국이 여러분에게 위로입니다. 천국에 입성하는 그 날, 장례식을 치르고 모든 위로를 다 받으실 것입니다. 천국을 맞이하는 순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수고와 희생, 헌신에 대한 위로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쫒아서 계명성을 쫒아서 살았던 사람들은 계속 지옥에서 애곡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다.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고급스러운 문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우리가 보는 영광은 바벨론의 저급한 문화, 서울의 문화, 대도시의 문화, 텔레비전, 유튜브에 나오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천국에 마음을 닿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닿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야 우리의 죄악, 교만, 오만을 용서해주시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이사야의 말씀을 다니엘이 안 것이구나. 그래서 하루에 창문을 3번씩 열어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한 것이구나. 이제 다 풀리고 이해가 됩니다. 그냥 믿음이 좋아서 창문을 열고 기도해야지 가 아니라 이 이사야 말씀을 노래로 불러서 듣고 알았던 것입니다. 느혜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고 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떵떵 거리며 살지만 나이가 들면 다 늙습니다. 몸도 늙고 세상에서 손에 쥐고 있던 권력도 놓아야 합니다. 힘없을 때가 옵니다. 그 때에도 여러분, 영혼이 강건하셔서 천국으로 인해 감사하며 기뻐하며 힘 있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진짜 위로를 받을 때, 나이가 들어 위로를 받을 때, 죽고 나서 우리의 자녀들이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진짜 위로가 아닌가요? 우리 후대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하며 우리가 가르쳐준 노래, 우리가 삶으로 불렀던 찬송, 우리가 삶으로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리라 라고 불렀던 찬송을 우리 자녀들이 부르는 것이 우리가 죽을 때에 진짜 위로가 아닌가요? 그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마쳐질 때 그것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 마음을 닿기 위해서 천국에 마음을 닿기 위해서 대로를 만드는 것이 길을 만드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말씀을 누가 또 인용을 했냐면 사도바울이 인용을 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_로마서15:14’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교만과 오만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인을 보고 똑똑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로마는 바벨론입니다. 그 당시 최고 강대국에 사는 로마 성도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예루살렘인 시골에 있던 제자들이 와서 말씀을 양육하니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듣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_로마서15:15-19’
바울이 이사야의 예언을 적용해서 뭐라고 하나요? 서로 똑똑하다고 지식 많아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있는데 진짜 은혜 받았냐, 정말 은혜 받으면 이방인들이 보이게 되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정말 천국을 가까이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의 주변이 보이게 됩니다. 어떤 권사님이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큰 교회의 권사님이 되셔서 권사회 활동을 하는데 권사회 회장님이 교회에서 탑클래스 사역자라고 했습니다. 전도도 잘하고 사역도 잘하시나 봅니다. 권사회 임원들끼리 해외집회에 가고 겸사겸사 여행도 가고 하나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그 권사님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회장 권사님이 승무원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갑질을 했습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예의 없게 하고. 권사님, 권사님 하는데 너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3박 4일 내내 호텔에 가서, 식당에 가서 처음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가 마치 지금 우리의 삶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 그것이 신앙인인가요? 우리가 정말 예수님께 마음이 닿아있다면 그 은혜로 내 삶이 변화되고 있다면 그런데 우리는 심각한 영적 메마름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이 닿아있어야 하는데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 우리의 마음이 닿아있고. 그래서 은혜의 물줄기가 끊어져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들이 우리에게 종속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다시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목적 삼고 신앙생활을 할 때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천국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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