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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12-0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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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0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1부예배)

제 목

모압_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본 문

이사야15:1-16:14

 

 오승주 목사

 

Ⅰ. 뿌리를 바꾸지 않으면 열매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모압 알은 모압의 수도이며 모압 기르는 두 번째 큰 도시입니다. 그 당시의 지명들이 많아서 여러분이 성경 읽을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여러 번 읽다보면 익숙해지면 이것이 무슨 내용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같이 모압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유심히 자세히 살펴보면 모압에 관한 예언이 예레미야에도 있고 스바냐에도 있고 창세기에도 나오고 출애굽기, 민수기에도 모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압이 왜 망했는지 모압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우리가 모압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모압이라는 심정으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모압과 같이 죄악이 가득하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듣는다면 여러분에게 큰 은혜가 있을줄로 믿습니다. 뿌리를 바꾸지 않으면 열매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뿌리가 중요합니다. 뿌리가 바뀌지 않으면 열매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우리 인생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살아가는 우리 인생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어쩌다보니 태어났고 태어나서 죽는 것도 자기 의지로 죽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 인생을 정확히 해석한 사람도 없고 인생이 뭐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정의를 내렸지만 사실 답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뿌리는 성경에서 밝히기를 마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영혼이 혼동이 되는 이유는 우리는 영적인 존재로 창조 받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영이 죽은 상태입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지만 도대체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보이는지 아담과 하와가 육신을 입을 때부터 영혼에 대해서 무감각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 말씀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마음에 거주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마음도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느끼기는 합니다.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즐겁다. 마음이 우리 인생에 끼치는 모든 것입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우리의 육신이나 우리의 삶도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실 우리 육신도 어디가 아프면 치통이 생기면 누가 건들기만 해도 짜증납니다. 제가 군대 가서 손에 염증이 생겼는데 고참 때 염증이 생겼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텐데 일병 때 염증이 생긴 것을 참았습니다. 말을 못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건들기만 해도 짜증이 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찢어서 염증을 빼고 꿰매는데 제 마음 같으면 살살 해주면 좋겠는데 확 찢고 확 소독하고 했습니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그게 아프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짜증이 나고 무슨 일이든 신경이 여기에 곤두서있습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군 생활은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몸이 아프니까 짜증이 나고 힘들던지. 그런데 마음이 아프면 더 영향이 갑니다. 우리가 그것을 숨기고 감출 뿐이지 사실 마음을 감추지는 못합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저 사람 왜 저러지? 왜냐하면 다 드러납니다. 인생의 뿌리가 마음인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나요? 심장? 머리? 쪼개면 나오나요? 사실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있기는 있는데 마음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 거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쪼개면 나오지는 않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있습니다. 영혼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에는 마음, 영혼을 거의 동일시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근동에서는 마음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뿌리는 마음, 영혼입니다.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풀리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은 음식, 외부로부터 옵니다. 마음이 다 병들었는데 마음의 질병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가 우리 마음, 영혼에 병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을 신경 쓰는데,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말하고 약물치료를 하던 수술을 하던 고침을 받으려고 하는데 우리 마음은 병을 가지고 있는데도 죄로부터 병에 걸려 있는데도 그것이 무감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그냥 관리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병에 걸려있는데도 내버려두고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관리하지 않습니다. 겉만 관리하고 육신적으로만 삽니다. 겉은 성공도 하고 돈도 벌지만 마음은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심각한 병이 걸려 자살하기도 하고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왜 포기해? 월급도 저렇게 많이 받고 가정도 행복해보이고 부족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음에 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은 누가 병을 주냐면 죄가 병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는 것입니다. 마음은 죄가 병을 가져다주니까 일반병원에 가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_이사야 53:5’ 

 

이 나음은 육신의 질병이 나음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영이 나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채찍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가 표현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채찍에 낚시 바늘처럼 갈고리가 다 있습니다. 채찍을 때리면 살에 박힙니다. 이것을 떼어내면 살점이 떨어집니다. 누구에게 이 채찍을 사용 하냐면 십자가형을 당하는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사용합니다. 채찍도 단계가 있었습니다. 채찍을 때려서 살점에 박히고 살점이 떨어집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죄로 인해서 마음에 병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병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죄 문제는 다른 것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의 문제는 다른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조금 괴로워, 바닷가를 보고 오면 좋아진다? 그때뿐입니다. 마음의 병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_로마서3:10‘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_야고보서5:15’ 

 

믿음의 기도는 병을 낫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기도를 다 육신적인 것에 적용해서 목사님들이 어디 아프시면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말을 해석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뒤에 뭐라고 써있죠? 죄 사하는 능력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병이 육신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야고보서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죄 사하는 기도. 육신의 질병이 아닌 마음이 질병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마음으로 교회를 다녀야 되는데 육신으로 교회를 다니는 시대입니다. 예전하고 지금하고 차이가 있는 게 예전에는 교회를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괴롭고 힘들 때 주님 만나고 은혜 받고 내 마음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녔는데 요즘은 교회 갈 때 육신으로 교회를 갑니다. 마음은 다 감춥니다. 여러분 주일에 교회 갈 준비하실 때 오늘 신발 뭐 신고 갈까, 옷 뭐 입고 갈까 하지 않으시나요? 물론 그것을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파자마 입고 교회 오시면 안 되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갈 때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마음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 하나님이 역겹다고 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너희가 절기 때 제물을 내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가지만 너희가 내 마당만 밟고 가는 구나. 나는 제사를 원하지 않고 제물을 원하지 않아. 나는 인애를 원하고 순종을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그대로입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3-5년을 다니면 안수집사, 권사, 장로도 주고 교회 성실하게 다니면 직분도 맡지만 마음이 그대로입니다. 마음이 병든 상태로 그대로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섭섭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문제가 잘 안 풀리면 하나님이 왜 그러시니, 살아계시니 살아 계시지 않니 합니다. 왜요? 내 육신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내 마음을 고치려고 내 마음을 치료하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가면 다 육신 문제 때문에 교회를 옵니다. 그리고 그 육신 문제가 해결되면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뿌리는 마음입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영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를 받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바울이 주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 짐이니라. 뭐가요? 우리 마음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으면 삶의 그릇이 커지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 때 수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복음서를 언제 또 설교할 기회가 있겠지만 예수님이 만난 인물 하나하나 기록해 놓은 것이 우리와 관련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삭개오는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니까 삭개오는 분노, 악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수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왜냐면 삭개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던 일들인데 민족을 팔아먹은 놈이라고 욕하고 비난하고 이러니까 분노가 가득해서 더 악하게 재물을 모으고 더 악하게 자기 민족 이스라엘에게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민족 배반해서 돈은 많이 모으고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했지만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까 예수님이 지나갈 때 예수님 한 번 보려고, 예수님 말씀 한 번 들으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변화되었는지 어떻게 문헌에 기록되었냐면 그 마음이 자유를 얻고 안식을 얻고 평안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복수로 바뀌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 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삭개오는 신경 쓰지 않고 남은 인생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복음 전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새로워졌다, 저 사람 변화되었다. 육신이 변화된 것인가요? 아니죠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마음이 우리 인생의 그릇입니다. 저도 제 마음, 영혼이 은혜를 못 받을 때 진짜 화가 많았고 분노가 많았고 억울함, 짜증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은혜를 못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공급받고 있지 못할 때. 여러분 우리는 마음을 가꾸고 영혼을 지켜야 됩니다. 사단은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지 육신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자꾸 육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고 우리의 영혼을 공격합니다. 육신은 부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온통 신경이 육신에 가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를 그렇게 꼬셨습니다. 네가 눈이 밝아서 하나님처럼 될 거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 갑니다. 영혼이 빼앗기면 지옥입니다. 우리 영혼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기면 이 땅에서 늘 섭섭하고 짜증내고 원망하게 됩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아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씹지도 못합니다. 모압이라는 나라, 모압이라는 사람, 모압의 역사, 뿌리를 찾아서 볼 건데 우리 마음, 인생의 뿌리를 찾아보시고 혹시 우리가 모압처럼 살고 있지 않는지, 암몬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모압을 통해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이 마음이고 중심입니다. 

 

Ⅱ. 모압_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 그들의 자랑은 무엇인가_이사야16:6, 창세기19:30-38, 예레미야48:26,29,42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_이사야16:6’ 

 

이 교만은 육신의 교만이 아닙니다. 그냥 교만한 것이 아니라 심히 교만하였습니다. 심지어 분노까지 있고 자랑도 있습니다. 자랑이 뭐라고 기록되어 있냐면 헛되다고 합니다. 모압이 무엇을 자랑했고 왜 그 자랑이 헛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구절이 많아서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가정에서 예배하시는 분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압을 설명하기 위해서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_창세기19:30-38‘ 

 

모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압이라는 인물이 암몬과 형제나라입니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같은 신을 섬깁니다. 모압이 어디서 나왔냐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손주도 아니고 아들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살펴봐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해서 우상의 땅에서 나와서 믿음의 땅으로 가게 했을 때 누가 따라나섰냐면 롯이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롯은 아브라함이 바라보던 언약,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온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따라 나왔지만 더 나은 삶, 육신의 번영, 성공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땅을 선택했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떼어 내려고 했습니다. 왜냐면 신앙생활을 하는데 롯이 늘 방해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떼어 냈을 때 롯이 선택한 곳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이 말은 그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여정으로 갔던 아브라함과 다르게 롯은 아브라함 옆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면서 결국은 그의 마음이 번영, 성공을 쫓았다는 것이 마지막 열매로 무엇으로 나타났냐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 도시였냐면 음행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동성애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성애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 근친상간. 이것이 성행하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겉으로는 소돔과 고모라가 대도시였고 화려한 도시였고 번영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내부적으로 가면 음란하고 쾌락의 끝이었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강의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동성애가 제일 짜릿한 성행위라고 합니다. 별 희한한 성행위가 많다고 합니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행하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에 유황불로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알려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알려주십니다. 거기에 조카와 조카의 가족이 있기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50명만 있으면, 40명만 있으면, 결국 의인이 없어서 롯 가족에게만 미리 알려주고 유황불로 멸하십니다. 롯 가족이 나오다가 누가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나요? 소금기둥이 스바냐에도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과 두 딸이 나왔는데 나왔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브라함에게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민족에게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산속으로 갑니다. 세 명이서 동굴로 갑니다. 왜요? 죽어도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가 싫은 것입니다. 자존심. 그래서 거기서 두 딸이 생각한 것입니다. 언약의 자손을 낳기 위해서 아버지와 근친상관을 해서 자손을 낳자?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익숙해진 딸들은 순순히 쾌락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딸들이 주는 술에 얼마나 취했는지 몸이 동침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완전 타락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들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이것이 뿌리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뿌리입니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 거리가 되리로다_예레미야48:2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_예레미야48:29’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_예레미야48:42’

 

모압이 교만한 이유는 그의 뿌리가 소돔과 고모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뿌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롯이 유황불로 다 불 타는 것을 보고 나왔으면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데 같이 술을 먹고 같이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이 어떻게 자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롯을 사랑하고 롯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롯을 예수님, 시온으로 인도하려고 했던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이때부터 모압과 암몬은 이상하게 롯을 미워하고 자기 엄마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롯과 자기 엄마들이 아브라함보다 더 어렵게 산 것을 보고 아브라함 가문을 싫어하기 시작합니다. 질투도 아니고 이제 이 모압이 자기 민족을 이뤄서 아브라함 가문을 질투하는 장면이 창세기부터 계속 나옵니다. 대표적인 장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악착같이 성공해서 모압과 암몬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나라를 이루는데 나중에 이스라엘을 적대시하고 그들이 은혜 받는 것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방해하고 그들이 타락하고 멸망하도록 계속 교육을 했습니다. 

 

- 이스라엘과 그릇된 관계_신명기23:3-4, 민수기21-24장, 열왕기상11:3-8,33, 스바냐2:8-9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_신명기23:3-4‘

 

이것은 저주입니다. 암몬과 모압은 여호와의 총회, 천국에 입성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이 민수기 21-24장까지 나옵니다. 무슨 사건이냐면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을 합니다. 광야를 지나면 딱 만나는 민족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삼촌이고 같은 민족이니 당연히 물과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고  직접 공격하기가 힘들고 괴롭히기가 힘드니까 발람에게 뇌물을 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도록 타락하도록 뒤에서 조종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_민수기25: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여자들과 음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략을 가지고 접근을 한 것입니다.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을 청했다고 합니다. 몸을 섞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모압 신, 암몬 신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모압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에게 제사하고 절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냥 광야에서 뺑뺑이 돌리고 너희들 가나안에 들어가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 불평했으니까, 원망했으니까 들어가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쪼잔하신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그들이 섬겼던 신을 섬겼습니다.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_열왕기상11:3-8’ 

 

다윗 왕조 때는 모압이 다윗 왕조를 섬겼습니다. 솔로몬 때도 다윗 왕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왕조를 이뤄서 모압이 조공을 바치는데 모압 여자를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다윗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솔로몬이 허락한 유일한 잘못은 그 여자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예루살렘 바로 앞에 조공으로 온 여자들 모압 여자들이 그모스와 몰록의 산당을 지었습니다. 그모스는 모압의 신이고 몰록은 암몬의 신입니다. 어떤 신인가요? 똑같은 신입니다. 황소 안에 불을 태우는 신인데 어린 자녀들을 바쳤습니다. 번영의 신, 성공의 신입니다. 모압이 왜 그렇게 성공하려고 자기 자식까지 받쳤을까요? 왜요? 분노, 복수심.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는 원망.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했습니다. 이 그모스라는 신이 어디에서 왔냐면 시돈과 두로에서 왔습니다. 시돈과 두로는 그 당시에 번영된 항구도시였습니다. 원래 부산도 가면 우상이 심합니다. 창녀촌이 많습니다. 그리고 바다의 태풍을 다스리고 위해서 사람을 빠뜨려서 바다의 신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의 신을 암몬과 모압이 받아들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완전 안 믿는 민족입니다.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백성, 롯의 자손인데 세상 신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왜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악독했냐면 자기 어린 자녀들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까지 성공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게 모압입니다. 그 뿌리가 어디서 왔어요? 왜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태웠냐? 우리가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을 원망하는데서 왔습니다. 너무 기분 나빠서 거기서 탈출 시켜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은 곧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은 것입니다. 모압은 여전히 뿌리를 소돔과 고모라에 두고 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악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_열왕기상11:33’ 

 

누가요? 솔로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과 암몬 신을 섬겼습니다. 출애굽해서도 광야에서도 모압과 암몬의 신에게 경배했는데. 모압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고 계속해서 우상, 번영, 성공으로 공격하고 복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음행했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롯이 소돔을 찾아간 이유와 같습니다.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_스바냐2:8-9’

 

놀랍게 예언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실 때 모압은 소돔과 같고 암몬은 고모라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인생이 그 뿌리로 돌아갑니다. 모압과 암몬이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가서 나중에 찔레 같고 소금 구덩이 같다고 합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무섭습니다. 인생이 어떤 기회를 만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태어나서 사람들이 성공, 번영하려고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다시 어디로 돌아가나요?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태어나서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을 때 이 땅에 벌어놓은 돈 한 푼 가져갈 수 있습니까? 나폴레옹이 그래서 죽을 때 유언했습니다. 내 관짝에 구멍을 뚫어서 두 손을 내고 갈 수 있도록 해라.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 땅을 정복하고 세계를 호령했던 나폴레옹 장군이 죽을 때 손안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함을 자기의 허무함을 자기 백성들에게, 사람들에게 교훈하기 위해서 유언을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곧 음행이고 타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늘 그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지 못한 아브라함, 다윗,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모압은 늘 조롱했습니다. 얼마나 조롱했는지 모릅니다. 가지고 놀았습니다. 뒤에서 권모술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믿음의 땅으로 가? 우리가 한 번 꼬셔보자 해서 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넘어갔습니다. 모압 여자들과 음행했습니다. 음행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섬겼던 우상을 섬겼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하는 겁니까? 모압이 자랑하는 것에 무엇인가요? 우리가 그 자랑에 다 넘어갑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소돔 봐라, 고모라 봐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아브라함에게 직접 설명하시지 않았으면 아브라함도 소돔과 고모라를 육신의 눈으로 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지 않고 시온을 택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믿음을 택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스바냐의 말씀처럼 맹세하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성경 어디를 봐도 이렇게 저주하신 것을 처음 봤습니다. 내 삶을 두고 맹세 하노니. 하나님이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체 존재를 두고 맹세한다고 하십니다. 모압은 소돔이 되고 암몬은 고모라가 되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 인생은 은혜를 힘입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신 겁니다. 그리고 인생은 찔레가 됩니다. 찔레는 남을 찌르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마음에 질병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남을 찌르는 인생이 됩니다. 모압처럼, 암몬처럼. 남을 찌르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조금만 악독하거나 병이 있으면 내 주변 사람들을 찌릅니다. 아닙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저희 와이프가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아, 내 마음에 짜증 섞인 행동과 말을 왜하지? 내 마음이 뭔가 불편한 겁니다. 마음이 속이 시끄러운 겁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찌르는 겁니다. 작은 하나에도 내가 남을 찌르는데 마음에 죄가 가득하고 악독이 가득하면 찔레 같은 인생이 됩니다. 나중에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우리가 잘못하면 은혜를 향한 신앙,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향한 신앙을 다 잃어버리고 세상 쫓아가다가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뿌리, 우리의 근원을 바꾸지 않으면 찔레가 나고 다 돌아갑니다. 미국에 대형교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홉(Ihop), 조엘 오스틴이 강조하는 것이 전부, 유튜브에서 집회하고 있는 것들 잘못 들으면 사람들이 수천 명씩 들어가서 밑에 댓글에 아멘, 아멘 하는데 설교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전부 육신적인 축복, 예언, 은사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전부 번영, 물질축복. 조엘 오스틴 목사 교회는 3만 명이 주일에 모입니다. 그 광경이 보고만 있어도 은혜가 됩니다. 3만 명이 농구 경기장에 꽉 차서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설교의 내용은 예수님 단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회개라는 단어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예수라는 단어가 설교할 때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큰 대형교회들이 수  만 명이 다니는 교회가 생겨났지만 미국사회는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약, 동성애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왜요, 원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마음의 죄, 영혼의 질병을 고쳐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목사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내 영혼이 병에 들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영혼이 모압 같구나, 암몬 같구나를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육신의 질병이 있으면 병원에 갑니다. 내가 암에 걸렸는데 쪽팔리고 창피해서 병원 어떻게 가냐? 이렇게 합니까? 내가 지금 쪽팔리고 창피한게 어디에 있습니까? 고쳐야지, 빨리 나아야지, 병원에 가잖아요. 이빨 썩었는데, 이빨 안 닦아서 창피 하니깐 참아야지 이렇게 하나요? 가잖아요. 그런데 영혼은 감추어 버립니다. 자존심입니다. 내 영혼이 아예 피폐해지고 황폐해질 때까지. 이상한 자존심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마음을 오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도 마음을 오픈하지 않습니다. 전부 교회 시스템이 육신화 되어 있습니다. 육신화 되어있다는 표현을 하자면 마음 사역을 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다른 교회를 섬기고 오시면 시무장로가 되려면 2년이나 있어야 합니다. 2년이 되어야 시무장로가 됩니다. 좀 지루합니다. 내가 장로인데, 시무장로가 될 때까지 2년이나 기다려야해. 사실 그냥 새신자로 등록을 해도 교회가 할 일이 없습니다. 개척해서 몇 분이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저에게 찾아오십니다. 내가 그래도 장로, 권사인데 할 일이 없을까요. 제가 예배 잘 드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거 말고 알겠는데 할 일을 달라고 합니다. 그거 못 견디어 하십니다. 늘 육신적으로만 교회를 다니는 겁니다. 할 일이 없습니까? 우리 마음이 병 고침 받고 은혜 받으면 내가 시무장로가 되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는 것이 직분이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 신앙이 회개나 십자가가 없어졌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저는 다른 지역에 이사 가서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그 교회가 성경을 읽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그것이 1번입니다.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히지 않다면 문제 있다고 봅니다. 주로 조엘 오스틴 교회가 그렇습니다. 성도들에게 절대 성경을 읽히지 않습니다. 내 설교만 들으라고 합니다. 내 설교를 들어야 너희가 번영하고 축복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압과 암몬을 반드시 자기 삶을 맹세해서 멸망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 그런 와중에 그리스도의 계보에 든 모압 여인 룻_룻기1:1-4,16-17,2:7,10,3:9,4:10

 

그런 와중에 그리스도의 계보에 든 모압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룻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신기한지. 하나님은 멸망한 롯의 가문 중에, 모압사람 중에서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게 룻기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룻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요? 룻이 모압 여자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_룻기1:1-4’

 

이스라엘이 가뭄으로 모압으로 먹을 것을 얻으러 갔습니다. 모압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둘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 시어머니 나오미가 오르바와 룻을 불러서 모압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나오미가 그렇게 열심히 육신적으로 해도 아들들까지 죽어버리니깐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되겠다는 회개의 장면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갈테니 너희는 너희 민족에게 가라. 오르바는 당장 갔습니다. 우리 신앙에 다 교훈을 주는 겁니다. 오르바는 세상으로,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나는 어머니의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나도 어머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러 가겠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 그 당시 정책 중에 나오미 가문 가운데 부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보아스였습니다. 당시에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제도입니다. 과부들이 이삭을 줍도록 땅에 이삭을 남겨놓고. 당연히 나오미가 룻과 함께 보아스의 땅에 이삭을 주으러 가는 겁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_룻기2:7’ 

 

이방여자 룻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삭을 주었는지 보아스의 눈에 띈 것입니다. 도대체 저 여자가 누구냐. 그래서 나중에 보아스가 다른 땅에서 줍지 말고 자기 땅에서 계속 이삭을 주으라고 허락을 해줬더니 룻이 이야기 합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_룻기2:10’ 

 

여기에서 보아스는 누구를 상징하나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보아스가 다른데 이삭을 주으러 가지 말고 여기에서 주으라고 하니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돌보시나이까. 나중에 보아스가 술을 먹고 짚더미 같은 곳에 자는데 그 때 룻이 그 옆에서 충분히 악하고 음란할 수 있었는데 그를 지켜줍니다. 충분히 악하고 음란할 수 있는데 그를 지켜줍니다. 그것이 보아스가 감동이 되어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냐면.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_룻기3:9’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_룻기4:10’

 

말론은 룻의 남편입니다. 말론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법칙 중에 누가 죽고, 누가 죽으면 그 아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인 것을 알고 룻이 거기를 사모, 흠모해서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나오미의 가문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같이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겁니다. 룻기의 교훈은 우리의 신앙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예수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의 기업을 물려줄 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연합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룻이 그것을 알고 보아스와 결혼했고 죽은 남편 말론의 기업까지 세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사는 우리를 이 땅에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워주십니다. 오르바처럼 모압으로 다시 돌아간 여인과 별 볼 일 없던 시어머니를 따라왔던, 하나님을 따라왔던 룻은 언약의 계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룻의 자녀가 누구인가요, 룻이 누구의 할머니가 됩니까? 다윗의 할머니가 됩니다.비록 모압 여자지만 하나님은 모압사람이라고 황폐하게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거기에 나와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자는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교훈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모압과 암몬의 자랑이 헛되다고 합니다. 이사야 본문을 다른 성경에서는 너희들의 허풍이 헛되도다. 허풍이라도 표현되어있습니다. 자랑이 아닌 허풍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모압과 암몬이 평생 허풍을 치면서 사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두로와 시돈처럼.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겉모양, 육신 때문에 이것 때문에 우리 영혼이 병들어 죽은지도 모르고 마음, 영혼이 황폐해져가는 줄도 모릅니다. 계속 새 옷을 입고 새 옷을 사서 입고 또 사서 입지만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육신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에서 예수님을 안 찾아도 됩니다. 육신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면 성경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교회 다니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목사도 성도들 많이 모으려면 예수님 이야기 안해도 됩니다. 회개의 이야기, 십자가이야기. 그냥 복 주고 축복해주고 예언해주면 됩니다. 미국에 아이홉(IHoP)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그렇게 예언을 합니다. 당신은 큰 인물이 될 거다, 당신에게 재물이 모일 거다, 위대한 사람이 될 거다. 이렇게 예언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 신학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큰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좋을 것입니다. 오승주 목사 큰 인물이 되고 싶겠어요, 안 되고 싶겠어요. 되고 싶습니다. 안 되고 싶은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적이 없어야 합니다. 목적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이며 은혜 받는 것, 주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첫째 계명, 둘째 계명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상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여러분 뿌리가 바뀌려면, 다시 말해 우리 영혼이 치유 받고 고침 받으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치료받는 것은 은혜를 받는 것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죄가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죄가 마음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은혜 밖에 없습니다. 영화 한 편 본다고 마음이 치료되지 않습니다. 제주도 바닷가에 2박 3일 놀고 오면 마음이 치료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치료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섭섭한 마음, 자존심,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모압과 같은 분노, 복수심 다 죄가 주는 것입니다. 치료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치료 받아야 합니다. 유일한 길은 십자가 보혈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처럼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Ⅲ. 은혜를 받는 것이 자랑이어야 합니다

 

-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_히브리서12:1-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_히브리서12:1-4’

 

우리가 무거운 것과 억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기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부끄러웠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과 억매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 바라보지 않고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의 징계를 기쁘게 여기며_히브리서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_히브리서12:5-11’

 

병원 가보셨습니까? 한빈이가 1,2살 정도에 열이 오르는데 마침 애가 아플 때 저희가 한의원에 갔습니다. 한의원에 가면 열이 오르면 그것이 지나가야 열에 대해서 강력한 면역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의원에서 주는 무엇을 먹이면 열이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열이 39도가 올라가는데 한의원 말을 듣고 버티고 견뎠습니다. 무식했습니다. 애가 고열이 계속 있는데 나중에 눈이 돌아갔습니다. 아내가 한의원 카톡방에 물어봤는데 한의원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애기가 경기를 일으키는데 어머니 아실 겁니다. 119를 불렀는데 우리 마음만큼 오지를 않습니다. 제가 차에 실어서 진짜 신호를 위반하고 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가서 간호사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열에 대해서 몰랐을 때, 한번 경험을 해서 지금 한빈이 37.5도만 되면 병원에 갑니다. 그때 얼마나 울고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40도를 찍었습니다. 아들이 아프니까 아빠가 어떤 심정이었냐면 계속 눈물이 나는데 내가 대신 주사를 맞고 아팠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이제 돌이 지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속 탑니다. 미칩니다. 오늘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이 그런 심정으로 자기 독생자 아들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희를, 우리를 그 아들과 같이. 그래서 그 징계를 참고, 인내함으로 버티라는 겁니다.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 맞는 것 아프니까 가지마라고 합니까? 이빨이 다 썩었는데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마음의 질병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 하십니다. 은혜를 받아야 우리 마음이 고침을 받고, 영혼이 소생함을 얻게 됩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그래서 우리가 고난이라는 것을 겪고 광야라는 것을 겪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신앙의 갈등이 그렇게 많이 옵니다. 모압이 그게 싫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갔으면 살았을텐데, 아브라함에게 가서 신랑감을 찾아서 애기를 낳았으면 롯의 딸들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 뿌리를 바꾸기 위해 은혜 받는 삶을 회복하라_히브리서12:12-29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12:12-29’

 

한 마디로 은혜 받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은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_히브리서_12:28-29’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아브라함이 이것을 받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이것을 받고 소돔, 고모라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가 다 심판을 받고 죽음 앞에 섭니다. 불이시고 소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천국,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것을 받아놓고도 은혜를 거부해서 소돔, 고모라가처럼 되는 모압이 되지 않고 모압 여인 룻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사모해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보아스는 기쁘게 롯을 섬기고 영원한 기업을 받았던 것처럼 뿌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은 모압과 암몬처럼 육신적인 것을 자랑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거기에 속게 만듭니다. 육신적인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가 아브라함이 선택한 시온보다 화려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속을 수 있습니다. 시온 별 볼일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아서 마음과 영혼이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악한 영들, 세상 것들, 우리 육신에게 우리 마음과 영혼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있는 겁니다. 우리 마음과 영혼을 돌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돌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입힌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있다면 인생을 다 살아도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생자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바꿔줘야 합니다. 우리의 뿌리가 비록 소돔과 고모라였을지라도 룻처럼 뿌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건함과 기쁨으로 섬길 때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이 소멸되지 않는 나라를 알고 그 은혜를 받을 때. 그래서 우리가 크리스천의 자랑은 은혜 받는 삶입니다. 은혜 받는 삶이 회복되어야 그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쓴 뿌리가 계속 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귀, 사단이 우리에게 쓴 뿌리를 계속 주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매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가 이야기합니다. 매일 예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 받아놓고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면 안됩니다. 소돔, 고모라 때문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은혜 받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음과 영혼을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왜 성경을 읽나요? 일독하기 위해서 읽지 마세요. 일독해서 자랑해야지. 그 교만과 오만이 모압이었습니다. 왜 성경을 읽습니까? 은혜 받으려고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고 내가 오늘도 내 마음을 관리하고, 다스리고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는지 확인하려고 성경을 읽고 확인, 예배드리는 겁니다. 육신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우리 영혼이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그런 가스펠교회가 되고 성도들,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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