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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11-2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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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블레셋_곤고한 자들아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본 문

이사야14:28-32

 

 오승주 목사

 

Ⅰ. 블레셋_곤고한 인생

 

이사야 13장부터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살펴보는데 바벨론 다음에 앗수르가 나오는데 앗수르는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앗수르는 계속 나오는 국가이고 이사야 초반에 설교할 때 앗수르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바로 블레셋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제가 96년도에 신학교에 처음 들어갔습니다. 그 시대가 그런 것은 아닌데 저희 집이 시골에서 살다 보니 많이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교회 다닌 지 3년밖에 안 된 상태에서  신학교를 갔기 때문에 되게 많이 혼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혼란이 있었습니다. 신학교에 갔더니 대다수의 아이들이 모태신앙이거나 교회에서 활동이라든지 후견인이라든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친구들이 왔기 때문에 그 친구들하고 저하고 어떤 괴리감이 느껴지니까 그런 것들이 되게 혼란스러웠고 공부 적으로 교회를 다닌 지 3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기본 성경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들을 따라가는데 벅찬 시기였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와중에 저희 집 문제인데 저의 어머니가 시골에서 남의 일을 돕고 번 돈으로 저를 키워주셨는데 한 달에 저에게 보내 주신 돈이 15만원 정도를 보내셨습니다. 사실 제가 아무런 연고 없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 기숙사비가 10만원 대 했는데 결국은 기숙사비를 못 내서 기숙사를 나왔습니다. 15만원가지고 숙박비도 해야 하고 세 끼 밥도 먹어야 하고 책도 사야하고 하는데 어머니한테 돈을 보내달라고 해도 보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가끔 누나들이 돕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학비로 쓰게 되어서 경제적으로도 녹녹치 않았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하루에 한 끼 이상 먹어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 학식이 저렴하니 학식 먹고 너무 고기가 먹고 싶으면 영도에 고기뷔페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수요일부터 굶어서 토요일에 가서 먹고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그런 상황들이 가난하다. 힘들다. 이런 것이 ‘곤고하다’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아이러니하게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 때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던 때입니다. 지금도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도 내 영혼의 상태가 어디로 돌아가야겠다 하면 그 때를 떠올릴 만큼 그 때 새벽에 기독교 학교니까 기숙사 학생들이 새벽기도를 해야 하는 룰이 있었습니다. 새벽기도에 가면 기독교 학교라 참석은 하지만 가서 자고 있고 그랬습니다. 새벽기도가 6시에 시작을 했는데 새벽예배는 15-20분 정도 했었습니다. 새벽기도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가고 남아서 기도하는 친구들은 교회 관련된 아이들이 남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 기억에 음악 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습니다. 기도하면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는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많이 만나주시고 은혜를 많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기도를 얼마나 한지도 모르는데 사람들 소리가 들립니다. 9시 수업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수업 들으러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 뜨면 7시 반, 8시가 되었습니다. 새벽예배 끝나고 한 시간 반, 두 시간 늘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기숙사나 자취방에 가는데 가는 길에 찬송을 안 부르고 간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공부하고 과제하고 모임도 다 하고 나서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대학 안에 있는 교회를 갔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이 학교학생들이 많이 기도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면 저녁에 1시간 기도하고. 그 때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상황이 저를 기도로 인도했던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보면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개량한복 같은 것을 입고 운동권하는 신학생들도 많습니다. 신학생들이 밖에서 놀기 뭐하니 고신대 밑 자취방에 전부 도박하는 친구들도 있고 음란한 친구들도 있고 술 먹는 친구들도 있고. 많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진짜 은혜입니다. 나는 그런 쪽으로 빠질만한데 신기하게 기도하는 친구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인도받으려는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곤고한 인생이다’ 라고 생각했을 때에 우리가 생각하면 가난하다, 힘들다, 어렵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성경은 곤고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윤택하고 풍성하고 풍족한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곤고한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실은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의 어려움을 아시지 않냐고 기도하다가 삶이 풍성해지고 윤택해지면 하나님을 멀리 떠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 인생을 보고 성경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생을 보고 곤고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꾸 세상에 기웃거리고 자기감정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의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무섭고 나쁜지를 아셔야 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상실한 인간은 자꾸 마음이 세상을 향하고 우상을 향하고 인간의 욕구를 향해서 행복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곤고한 인생인 것입니다. 부자로 살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인생을 곤고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내세는 영원하다고 합니다. 신학자들이 이 땅에서 80-100년 사는 우리의 인생을 점으로도 표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영원 속에 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풍족하게 살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영원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지 않고 그러니 그 결말이 곤고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한두 가지를 빼앗아 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로 왔습니다. 이 땅에 아무것도 소유 없이 빈손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살면서 소유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유를 시작하는데 소유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소유한 것을 한두 가지 뺏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심방을 갔었습니다. 그 부모님이 어려움 중에 예수님을 믿고 신앙으로 그 친구를 키웠습니다. 이 친구가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지 본인이 열심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결혼도 했습니다. 제가 왜 심방을 갔냐면 이 친구에게 병이 생겼습니다. 큰 병도 아닙니다. 제가 심방을 갔는데 대뜸 저에게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하길래 그 친구는 너무 잘 아는 친구라 알기에 정색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 이 모든 것이 너의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사람이 그렇게 악합니다. 하나 빼앗아 가면 이런 마음이어야 하잖아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는데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회개해야 하는데 그 쪽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부터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교회를 오래 다니시거나 성경을 읽으셨던 분들은 구약성경 내내 접했을 것입니다. 블레셋은 뜻 자체가 나그네, 외국인, 이주자입니다. 블레셋의 원래 이름은 필리스티아입니다. 필리스티아가 지금의 팔레스타인입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블레셋이 나그네, 외국인, 이주자라는 뜻이 구약성경은 특히 나라이름이나 사람이름이나 지명 이름이 특히 중요한데 왜 나그네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졌는지 너무 놀랍습니다. 원래 블레셋 사람들은 그리스계의 사람들입니다. 헬라인입니다. 이 그리스계의 사람이 가나안 땅에 이주해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주 해 와서 가나안 땅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을 전부 멸망시키고 죽이고 자기가 그 땅에 원래 주인처럼 살았던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바닷가 쪽의 5개의 도시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이 도시의 연합국가가 블레셋입니다. 강력한 해양 강대국이 되었고 이들은 해양 강대국이다 보니 다곤 신을 섬겼습니다. 다곤 신은 인어공주입니다. 다리는 생선 모양이고 몸은 여자 몸. 블레셋이 섬겼던 신입니다. 삼손이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은 사건이 유명합니다. 블레셋이 언제부터 성경이 나오냐면 아브라함 때부터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갔을 때 그 곳에 있는 민족이 블레셋 민족입니다. 저는 창세기 공부할 때 원주민인 줄 알았습니다. 이번에 살펴보고 알았습니다. 원래 원주민이 아니고 블레셋이구나. 블레셋과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갔을 때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습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자. 블레셋이 처음 성경에 나오는 모습이고 출애굽기 때에는 강력한 가나안의 원주민이었습니다. 출애굽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가나안을 정복할 때 싸웠던 민족이 블레셋 민족입니다. 사사기 시대 때에는 블레셋이 계속 나옵니다. 블레셋이 해양 강대국으로써 철기문화가 제일 먼저 발달 되었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무기가 나무였다면 블레셋은 철을 사용한 무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삼손이 나귀 턱뼈를 가지고 600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기적 같은 일입니다. 600명이 모두 철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삼손이 엄청나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이긴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블레셋의 군사력은 강했습니다. 삼손이 여자에게 속아서 머리카락 잘리고 눈 뽑히고 그래도 하나님에게 저에게 힘을 주세요 라고 해서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면서 같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블레셋입니다. 또 사울 왕 때에 나옵니다. 사울 왕이 초대 이스라엘 왕이 되어서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제일 곤혹을 치른 민족이 블레셋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골리앗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장수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나와 활약을 합니다. 놀랍게도 블레셋이 제일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통일왕조를 이루는데 남북을 통일해 강력한 왕조를 이루었을 때에 역사에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앗수르를 쫒아가고 바벨론을 쫒아가다가 나중에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흔적도 없이. 바벨론은 유물도 남아있지만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사라집니다. 블레셋은 원래 자기 땅에서 산 것이 아니라 이주해 와서 나그네로 떠돌던 블레셋이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언약의 땅을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늘 분쟁하고 있습니다. 원래 원주민이었던 아위족속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렸습니다. 원래 가나안 땅의 원주민은 아위족속입니다. 미국에 가면 미국 사람들은 그 나라 그 땅이 자기들 것 인줄 압니다. 원래 미국의 원주민들이 있는데 영국 사람이 들어온 지 200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그것이 자기 땅인 것처럼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원래 그 땅에는 미국의 원주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레셋 사람들은 그 땅이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땅에 정착해서 강대국이 되어서 주변의 연약한 민족들을 엄청 괴롭혔습니다. 블레셋은 약한 민족을 엄청 괴롭혔는데 강대국하고는 절대 싸우지 않았습니다. 강대국에게는 바로 고개를 숙입니다.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들한테는 강하고. 전형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조 때에 강력한 왕조가 되니 바로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칩니다. 그리고 자기를 괴롭힌 강대국이 멸망했을 때 엄청 좋아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Ⅱ. 블레셋 성문 안에 사는 사람들아

 

-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_이사야14:29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누가 기뻐하고 있냐면 블레셋이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무너졌다고 기뻐하고 이스라엘이 고통당하고 있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괴롭히던 나라들이 멸망하면 너무 좋은 것입니다.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뻐하지 마. 그 나라보다 더 강력한 나라가 너희를 칠거야. 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합니다. 사실 블레셋을 보면서 저는 우리 세상의 인간,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블레셋을 통해서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나그네로 왔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실은 블레셋입니다. 외국인으로 왔고 이주자로 왔습니다. 원래 우리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와서 살면서 소유하기 시작하고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소유하고 그래서 뭔가 영원히 살 것 같은 이 땅에서 소유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정착할 줄 알고 영원히 내 땅이라고 생각하며 인간은 삽니다. 심지어 열심히 살아서 강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데 빼앗기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블레셋처럼. 그것이 인간들입니다. 원래 가지지 않았는데 그것을 빼앗기면 어떻게 되나요?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자신의 땅인 것처럼. 그것이 인간의 오만이다, 교만이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 살면서 참 많이 곤고합니다. 지금도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가 휘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이러스 하나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만 봐도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곤고한지 자료만 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간 암으로 죽는 인간이 8만 명입니다. 심장질환으로 죽는 인간이 3만 명입니다. 당뇨로 만 명이 죽습니다. 교통사고로 5천명이 매년 죽습니다. 감기, 독감으로 한 해에 3천 명씩 죽습니다. 올해 코로나로 500명을 죽은 것은 코로나가 치사율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독감으로 3천 명이 죽습니다. 지난주에도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진짜 놀라운 것은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인구가 만 오천 명입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30명 내지 40명이 자살을 합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정말 곤고하죠. 허무하죠. 한해에 만 오천 명이 자살로 죽습니다. 우리 인생이 곤고합니다. 사실은 나그네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이 땅에 와서 살아가면서 곤고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합니다. 왜요? 암으로 죽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죽기도 하고 자살로 죽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이 주는 유혹이 진짜 강력하기 때문에. 풍요롭고 풍족하기 때문에 무언가 계속 소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내세에 우리의 영혼, 우리의 마음에 별 관심이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이 무엇이냐면 그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더 좋은 기회를 찾으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블레셋은 늘 그런 역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강대국에는 조공을 바치고 약한 민족들은 괴롭혀 가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갔고 다곤 신을 섬겨서 해양 강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결국 블레셋은 미래가 없이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멸망을 성경이 진짜 기가 막히게 설명하고 있는데 블레셋이 왜 망했냐.

 

-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_이사야14:30-31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_이사야14:30’

 

블레셋 안에 남은 자들이 다 살륙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기근으로 다 죽었다고 합니다. 진짜 아이러니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아시나요? 블레셋은 언제부터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죠.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민족 중 하나가 블레셋입니다. 아브라함,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수아, 갈렙, 사울, 다윗,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과 늘 가까이 있었던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런 블레셋이 하나님이 계속 기회를 주셨는데 오랜 세월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악연이었지만 바로 옆에 이스라엘이 늘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시온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피난처가 되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내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옆에 있었는데 블레셋은 외면했습니다.

 

Ⅲ. 여호와께서 피난처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세우셨습니다_이사야14:32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_이사야14:31-32’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는데 시온은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가 시온입니다. 그래서 시온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에 있는 사람들이 믿어야 구원을 받으니까 점진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 시온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어떤 특별한 성읍, 산, 여호와의 임재가 있는 성읍, 성전. 이런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저와 여러분이 이해하는 시온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시온이라고 합니다. 지금 시온을 특정한 건물이나 지역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에서 시온은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때부터 블레셋은 옆에 있었습니다. 그 시온이 시작 할 때부터 블레셋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불가침 조약을 맺을 때부터 블레셋은 시온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남은 자가 다 죽었습니다. 기근으로 죽었습니다. 영혼이 다 메말랐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남은 자 다 살륙 당했습니다. 그 좋은 기회를 블레셋은 다 날렸습니다. 구원 받을 기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기회를 날렸습니다. 블레셋이 얼마나 곤고한 나라입니까? 곤고한 나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강대국이고 골리앗이 있는 나라였고 다곤 신을 섬기는 나라였고 해양 강대국이었고 철기문화가 발전된 나라였지만 대단했지만 화려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영적으로 곤고한 인생이었습니다. 결국엔 기근으로 죽었습니다. 뿌리가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남은 자들이 살육 당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성공해야 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공하고 다른 사람보다 잘 살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기회를 엿보고 머리 쓰고. 블레셋의 소원이 앗수르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셋의 소원이 바벨론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약샥 빠르게 이주자였던 그들이 그 땅이 자기들의 땅이라고 우겨가면서 머리 쓰고 기웃거리고 아부하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살았던 인생이 곤고한 인생이고 마치 하나님을 상실한 죄인의 모습이 아닌가요? 우리 인생의 모습이 아닌가요? 그 블레셋 옆에 항상 시온이 있었습니다. 

 

-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_로마서1:28-32, 호세아5:3-6,15

 

그 나라 사신들에게 대답해줘라.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라(32) 그 시온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곤고한 인생이 평안을 얻고 안식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블레셋은 한 번도 맛보지 못했습니다. 뿌리가 말라서 죽었습니다. 로마서 1:28-32에 왜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왜 그들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 않는지 기록하고 있는데 비단 블레셋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영혼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_로마서1:28-32’

  

모든 불의, 악독, 탐욕, 분쟁, 살인. 이런 일을 행하면 사형에 해당한다. 영적인 죽음,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라고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 받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아니어도 구원받을 수 있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길이 많아.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그 상실한 마음들을 하나님이 두셨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_호세아5:4-6‘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행위라고 합니다. 악독, 비방, 수군거리고 살인하고. 이런 행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이 음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적인 음란이 아니라 구약에서 음란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것을 성적 교배, 음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우상 다곤 신을 섬기거나 신들을 섬기는 것을 음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_호세아5:15’

 

- 하나님을 힘써 알라_호세아6:1-3, 요한복음17:2-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_호세아6:1-2’

 

기독교 신앙에 두 기둥이 있는데 공의와 사랑인데 공의. 왜 우리를 찢으시고 치시나요?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를 다시 싸매어 주신다고 합니다. 도로 낫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곤고함이 있습니다. 곤고함이 깨달아 지는 것.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지옥에 간다고 이야기를 해도 천국이 어디에 있어 이런 식입니다. 지옥에 간다고 해도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만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합니다. 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냐면 하나님의 존재를 마음에 두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도 짓고 싶고 쾌락도 가지고 싶고 내 마음 뜻대로 살고 싶으니까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 때 마다 엄청난 양의 제물을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피 비린내가 나도록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죠? 너희들이 산더미같이 제물을 쌓아놓고 내 마당만 밟고 가는구나. 너희들이 역겁다고 했습니다. 호세아서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난 너희들의 제사를 원하지 않아. 나는 인애를 원해.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너희들이 변화되기를 원해.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화되기 싫었습니다. 바벨론처럼 앗수르처럼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망치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온갖 짓거리를 다 하면서 예배 때에는 신실한 척하는 것이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어쩌면 블레셋도 피해자 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너희들 어떤 민족이냐. 하나님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떤 사람이냐? 너희가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느냐? 너희가 교회가 맞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_호세아6:3’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하나님은 새벽 빛같이 어김 없으시다고 합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1센티미터만 달라져도 지구는 다 타버립니다. 얼마나 과학이 정확하지 아시나요? 태양과 지구와 달이 얼마나 정확한 거리가 유지가 되고 있는지 아시죠. 개기월식이라고 그러죠. 달이 정확히 태양을 가립니다. 많은 우주과학자들은 누군가가 창조한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1센티미터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약에 새벽 빛같이 어김없지 않고 변화 된다면 하나님이 늘 변심하고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성경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 의미 없습니다. 늘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실지 이 방법으로 구원하실지 저 방법으로 구원하실지 인간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것이 시온입니다. 시온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실 메시야. 오신 메시야. 장차 재림 주로 오실 그리스도. 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구속사적인 장치를 해놓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 우리만 변화되면 됩니다. 인간이 변질되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 변함없습니다. 공의.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힘써 알자는 것입니다. 힘써 알자는 표현은 그만큼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다니면서 쉽게 구원받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누가 교회를 다니면서 쉽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를 합니까. 아닙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고 다윗의 하나님이고. 베드로의 하나님이고 바울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변함없으시니까. 우리가 그 신앙만 회복하면 우리도 만날 수 있고 바울처럼 변화될 수 있고 베드로처럼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시대에 사두개인.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속사가 완성이 안 되는데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뭐라고 질문하냐면. 그 당시 율법입니다. 형과 형수랑 결혼했는데 형이 죽어버렸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고. 그러면 둘째가 형수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법입니다. 둘째가 죽으면 셋째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셋째가 죽으면 넷째가 결혼해야 합니다. 이것을 의도적으로 예수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형제가 다 죽었습니다. 천국 가서 진짜 남편은 누굽니까? 장난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에게 그랬습니다. 부활도 믿지 않더니 천국도 믿지 않는구나. 천국은 그런 것이 없어. 천국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육신적이고 쾌락적인 곳이 아니야. 천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지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잘못하면 성경.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주관적인 생각대로 우리의 배경과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교회입니다. 방언이 끝났나요? 방언 안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나서 오순절에 방언이 있었는데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방언이 있었고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방언이 있었는데 지금도 방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성경을 읽고 해석해버립니다. 교단의 교리에 맞게 성경을, 하나님을 제한해버리고 난도질합니다. 안산홍 이단 사이비가 있습니다. 찬송을 이렇게 부릅니다. 안산홍 찬양이라고 부릅니다. 신천지 이만희는 살아있는 보혜사, 성령이라고 합니다. 안 죽는다고 합니다.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할 수가 있나. 어떻게 안산홍 찬양이라고 노래를 부를 수 있나. 그러나 놀랍게 그런 신천지, 안산홍 이런 사람들이 엄청 깨끗합니다. 제가 광주에서 저희 교회 성도가 장례식이 있어서 갔는데 신천지에 다니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 교역자들과 몇 분 장로님들과 함께 갔는데 저희들이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따라 장례식인데 옷을 형형색색 입고 오셨습니다. 나이 드셔서 돌아가신 호상이니까 그냥 다들 편하게 간 것입니다. 장례식에서 식사 먹고 있는데 신천지에서 들어오는데 백 명이 들어오는데 올 블랙으로 입고 와서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예배를 드리는지. 줄 맞춰서 앉았습니다. 나갈 때 신발정리며 쓰레기 정리며 다 하고 나가는데 사람들이 다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가짜입니다. 비록 교회가 성숙하지 못하지만 성경을 말해주고 예수님을 말해주는 것이 진짜입니다. 블레셋이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이 연약해보이고 볼품없거든요. 시온. 볼품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볼품없습니다. 블레셋이 행여 그 곳이 시온이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그 곳에 안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안에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안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까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우리의 인생은 안 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목사들이 교회들이 건방 떨고 오만한 것입니다.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우리의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교회를 30년 다녔는데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매일 수 십장씩 읽었는데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앞에 구원이 있는데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수십 년 다니고 성경을 매일 읽었으면 하나님이 알려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잘 했는지 모릅니다. 철저히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십일조. 기도. 예수님이 뭐라고 했죠? 너희들 누군지 몰라. 기도한 것 들어본 적 없어. 그리고 예수님은 그 시대에 병든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다 까발리셨습니다. 가난한 자들, 죄인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아는지 성경에 3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첫 번째는 은혜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만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알려주셨나요?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인간이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Incarnation(성육신). 그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지셔서 우리를 대신 해 죽어주세요. 우리가 못합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것이 믿어지고 그것이 지식으로 들어와서 제 자신이 깨지고 울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믿어지고 나서는 죄를 짓지 못합니다. 내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를 30년 다녔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오늘 교회에 와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그것이 믿어져 엉엉 울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식이 좋다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알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막 쏟아지는데 컵을 뒤집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컵을 뒤집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은 성경에서는 진리의 영이라고 합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진리를 만나면 우리의 인생은 가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죄가 죄로 보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단 한순간도 떠나지 말라. 성령을 떠나는 순간 죄의 노예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죄가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야 죄가 구분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회개가 됩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때 쪽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요한복음 한권도 번역이 안 되어서 번역되는 대로 해서 투입시켰습니다. 그것을 쪽복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부상을 통해서 퍼뜨렸는데 사람들이 누워서 읽다가 누워서 읽을 책이 아니네. 앉아서 읽는데 앉아서 볼 책이 아니네. 무릎 꿇고 읽으면서 성령을 받아서 엉엉 우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고 깨지고. 그런데 신기합니다.  똑같은 성경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벽지로 사용하고 화장실 휴지로 사용하였습니다. 똑같은 성경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성경 주석도 보고 아무리 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열어주시는 만큼 믿어지는데 성령께서 오셔야 합니다. 은혜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만나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주일예배를 많이 바꾸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1세기 예배에 관한 책자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예배드렸습니다. 말씀하고 있다가 누가 말씀 듣다가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면 설교자가 설교를 멈췄습니다. 다 같이 기도하고 성령 구하고. 그리고 다시 말씀 전하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40분 설교가 제일 좋은 설교야. 50분 설교가 제일 좋은 설교야. 예배는 1시간 반 안에 끝나야 해. 예배 프로그램은 이래야 해. 성령의 역사. 신학교에도 성령이 없고 신학에도 성령이 없고 교회에도 성령이 없고 설교에도 성령 없고 목사님들이 인터넷으로 자료 준비해서 설교 준비를 하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도들에게 어떤 영양식을 먹일까. 기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진짜 많이 이상해졌습니다. 예배시간에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에 내 안에 오셔서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려도 되고 손을 들어도 됩니다. 신학은 지식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입니다. 인격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나는 주님 안에 있어.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 이것이 믿어지고 나는 옛날과 달라졌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에는 1번, 2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령이 가난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블레셋이 왜 하나님을 못 만났나.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펀지형, 스티로폼형 성도.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 스티로폼. 제가 목사가 되고 잠깐 타락했는데 그 제 마음이 스티로폼 같았습니다. 교만했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스펀지 같은 것입니다. 그냥 막 은혜가 스며드는 것입니다. 교역자님들, 장로님들 뒤에서 일한다고 뒤에서 예배드리는데 그러지 마세요. 영적으로 잠자면 안 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나무뿌리가 물을 찾아 내리는 것처럼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을 찾고 천국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심령이 부유하면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너무 가진 것이 많고. 역설적으로 뿌리가 메말라서 블레셋은 멸망했습니다. 남은 자들이 다 살륙 당했습니다. 내 영혼이 살아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_요한복음17:2-3’

 

교회는 회사가 아닙니다. 목사님들이 무슨 일하면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이거 왜 내가 해야 해? 이미 썩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부 붙이는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목사, 부교역자. 다 잘못 된 것입니다. 교역자는 회사 조직과 다릅니다. 제가 전도사님들한테 함부로 심부름 시킬 권한 없습니다. 저는 주일 날 아침에 우리 교회에서 제일 빨리 옵니다. 제가 개척 때부터 교회를 위해서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교회 앞에 쓸고 닦는 것 내가 하자. 청소합니다. 의자 줄 마치고. 그것이 기분 나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의의 면류관으로 영혼을 위해서 눈물로 남모르게 교회에 와서 기도했는데, 전도사들 나는 2시간씩 교회에 나와 기도했는데 너희들은 기도 안 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제 상급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을 의의 면류관이고 축복입니다. 청소하는데 있어서 빼기지 않으려고 전도사님보다 더 일찍 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합니까. 교회가 계급사회인가요? 블레셋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사함도 첫사랑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풍요롭고 풍족해져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곤고함. 이것이 저주입니다. 내가 신학교 때에 이렇게 기도 했으니까 너희들도 이렇게 기도해가 아니라 저는 지금도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이 회복되는 것은 교회가 시스템화 되고 교회가 마케팅을 잘하고 교회에 엘리트들이 많이 와서 실력 있는 교회가 되어서 교회가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하고 다시 시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라고 다시 고백할 때야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다시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블레셋처럼 기근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남은 자가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잔머리 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계산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곤고한 우리의 인생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은혜를 사모하고 목마른 사슴처럼. 다윗이 왕궁에 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 왕국에 천년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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