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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0-12-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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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구스_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 되어

본 문

이사야18:1-7

 

 오승주 목사

 

Ⅰ. 남유다의 복잡한 상황들

 

오늘은 구스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이번 주 구스가 다음 주 애굽에 관한 이야기인데 애굽과 구스가 조금 구별이 되기도 하지만 구스라는 민족이 애굽을 통치하던 시기가 있어서 조금 헤깔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스 이야기가 애굽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조금 분리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구스는 지금으로 말하면 에디오피아 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 이야기가 나오죠? 그 에디오피아가 구스라고 생각하시면 가장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나일 강을 따라서 위치한 아프리카 북동부지역을 통틀어서 구스라고 합니다. 구스가 나중에는 애굽, 이집트를 통치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애굽은 가장 강력한 시기였습니다. 구스가 굉장히 똑똑하고 오늘 성경에 준수한 민족이라고 나와 있는데 굉장히 준수하고 장성하고 또 외모적으로도 굉장히 잘생겼습니다. 여러분 아프리카 사람들이 키가 크고 되게 잘생겼잖아요? 그런 구스라는 민족입니다. 이 구스가 지금 사절단을 보내는 것입니다. 해상을 통해서 사절단을 통해서 유다에 도착하는데 오늘 이사야는 사절단을 되돌려 보내는 장면입니다. 다시 돌아가, 너희 민족에게로 돌아가 이런 것도 있지만 어떤 주석에는 너희 민족에게로 돌아가 이것도 있지만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고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 돌아가 이 말은 앗수르에게로 가서 연맹을 맺어, 동맹을 맺어 이런 말로도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뭐냐면 구스가 지금 애굽, 이집트를 통치하기 위해서 유다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집트, 애굽을 통치하고 또 이면에 더 큰 그림은 북이스라엘처럼 아람과 동맹을 맺었던 북이스라엘처럼 구스도 애굽을 통치하고 남유다와 동맹을 맺어서 그 당시에 가장 강력한 나라는 앗수르였거든요? 대앗수르 제국이었으니까 앗수르와 대항을 하기 위해서 구스도 밑 작업, 정치적인 동맹 작업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주변 정세들을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민첩한 사절단을 보내왔습니다. 나중에 유다가 구스가 장악한 이집트에 유혹당하는 장면이 이사야 28장부터 32장에 나오는데 그때 가서 또 설교를 자세하게 할 예정입니다. 이사야는 사절단의 발길을 돌려보냅니다. 오늘 본문만으로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구스가 이집트를 함락하고 먹기 위해서 정복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보내왔을 때 그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는 이 용기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오늘 본문 18장만으로만 봤을 때는 남유다는 아직은 살아있구나, 또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한 것이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정치인들이 사절단을 받아서 동맹을 맺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돌려보내라고 메시지를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실 어떤 나라, 세상적인 것, 세상 정치인이나 세상의 리더들이 헤깔리고 혼란스러울 때는 교회가 바른 길을 제시해야 되는 때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구스 사람은 외모가 굉장히 준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키가 굉장히 컸고 잘생겼고 또 지혜가 많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스사람이 결국은 애굽을 장악하고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맺는데 남유다가 굉장히 많이 어려움을 당할 정도로 굉장히 구스 사람이 똑똑합니다. 구스는 애굽을 통치하고 나중에 앗수르 사르곤 대제 때 주전720년경에 애굽은 완전히 망합니다. 애굽이 망할 때 구스도 같이 망했습니다. 애굽이라는 구약의 나라는 역사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관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남유다와 구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도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살고 있고 또 세상 공동체, 세상 리더십 속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관계를 맺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세상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운동도 해야 되고 집도 있어야 되고 차도 있어야 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인도 같은 곳, 섬 같은 곳 하나 사가지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 다 모여서 살자고 하는 데는 다 이단입니다. 그런데는 다 사이비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심지어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세금 문제를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과 같이 연합해서 살아가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인간관계하는 모든 것 직장, 사업, 심지어 가족들, 친구들. 사실은 세상 사람들은 구스와 같습니다. 구스 사람들이 사절단을 우리에게 보내오는 것과 같습니다. 남유다가 섬기는 하나님이 구스 사람들에게 관심이었을까요? 남유다가 붙잡고 있는 구원의 진리, 성경이 구스 사람들에게 관심이었을까요? 여러분 그것에 의지를 하려고 왔을까요? 아니면 그냥 남유다의 세력, 남유다가 가지고 있는 어떤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세력에 관심이 있어서 왔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구스 사람들이 사절단을 보냈을 때는 남유다는 이미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빨리 남유다라도 우리가 동맹을 맺어야 돼 하고 구스가 보냈을 때는 남유다는 그냥 하나의 세상 속에 세력일 뿐이었습니다. 남유다에 가서 하나님께 우리가 뭔가를 질문하자, 하나님께 물어보자는 것이 아니었고 남유다는 세력일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남유다가 구스와 연합했다는 기록이 외경에도 없고 성경에도 없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남유다가 굉장히 많이 버티고 용기가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교회도 그렇고 이 땅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를 세력으로 보느냐 아니면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가? 선거철이 되면 저희 교회 같은 데는 정치인들이 오지도 않습니다. 그것부터가 정치인들이 잘못된 것입니다. 큰 교회들, 최소 1000명이상 되는 교회들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무조건 갑니다. 왜? 표 얻으려고. 그래서 뭐 집사니, 저도 교회를 다니니 그래놓고 다음 날 절에 가서 합장하고 있습니다. 다 집사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신실한 국회의원 집사님? 저분 기독교인이야. 여러분 절에 가서 합장하는데 무슨 집사입니까? 절에 가서 나무아비타불하고 같이 불교에서 하는 예식을 진행을 하는데. 집사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그렇습니다. 교회를 세력으로 보고 옵니다. 저는 그래서 선거철에 저희 교회에 정치인이 왔을 때 인사 시킬 마음도 없습니다. 더 이상 교회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않아요 교회들이, 목사님들이.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구스가 그렇게 남유다에게 사절단을 보냈을 때 이사야가 경고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예루살렘 정치인들에게. 그 사절단을 돌려보내. 이 경고를 사실은 지금 오늘날 교회, 성도, 목사들에게도 하는 경고입니다. 세상의 잘난 사람들의 사절단을 돌려보내. 교회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사절단을 돌려보내. 그들과 관계를 그렇게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력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숫자적인 세력으로 정치적인 세력으로 지리적인 환경적인 세력으로 구스사람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세상을 쫓아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처럼 되서도 안 되고 교회는 성경이 주는 기준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는 굉장히 건강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목회자의 도덕적 지수도 높아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만 살면 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의 증거가 뭐냐면 육신적으로 건강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가 부패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깨끗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교회는 굉장히 건강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때문에. 여러분 웃기지 않아요? 복음을 가지면 도덕적으로도 건강해져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복음 가지면 도덕적인 게 문제 되는 것을 괜찮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이상합니다. 한국교회가. 목사님들 진짜 이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 물론 영혼이 구원 받고 복음을 깨달아서 사명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 육신이나 언행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목사님들이 30-40년 목회하고 뒤에서 욕하고 남 비난하고 이런 거 보면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막 입에서 상스러운 욕을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건강지수가 교회는 높아야 합니다. 세상 어떤 기관보다 교회는 투명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기준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희 임직자 피택선거 하는데 사실 제가 행정이 디테일하지 않습니다. 두리뭉실하고 가는 스타일입니다. 어떤 분들이 목사님 나한테 말도 없이 피택을 하시네.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도 있습니다. 장로님들과 같이 모여서 하나하나 점검하고 해야 하는데 지금 모임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명단 한명 한명 점검하고 장로님들이 피택 중직자들에게 전화도 해주시고 저도 전화도 해야 하는데 저도 사실은 그런 것에 디테일하지 못해서 죄송한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저는 자격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 좋은 것입니다. 사실 제가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교회 개척을 하는데 사역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게 뭐냐면 나는 목회자의 자질이 제로구나. 그리고 나는 어떤 은사가 없구나. 목회에 은사가 없구나. 나는 역량이 되지 않구나. 이런 것을 너무 많이 느낍니다. 그런데 왜 가스펠교회 담임목사를 하고 있냐, 목회를 하고 있냐고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것을 하고 있어야 세상 유혹을 견딜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상태를 아시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제가 제일 연약하니까 저는 세상 유혹에 약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가스펠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안 했다면 저는 정말 세상유혹에 쉽게 휩쓸려갈 그런 믿음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실력이 좋아서, 능력이 돼서 목회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너 신앙생활 똑바로 하라고 가스펠교회 담임목사 시켜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제가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데 물론 하나님이 충성하라고 하실 때까지 감당하라고 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겠지만 제 마음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신앙생활 밖에 없고 기도 밖에 없고 은혜 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나마 감사한 게 그러다보니 제가 의지할 게 필요한 것입니다. 약하니까. 여러분 제가 목사로서 약하니까 뭔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은사나 배경이 되면 그것을 의지하겠는데 의지할게 없습니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고 성경 밖에 없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 너무 헤깔리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말하면 저 말도 맞는 것 같고. 누가 와서 이 말하면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또 누가 와서 이야기하면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이랬다 저랬다 오우유부단이라고 친구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너같이 우유부단한 사람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우유부단한지 저는 진짜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 직원이 7명 되는데 이 간사님이 말하면 이 말이 맞다고 하고 전도사님이 와서 이야기하면 이 말도 맞아, 장로님이 이야기하면 장로님 말씀도 맞아요. 제가 이렇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굉장히 헤깔릴 것입니다. 이것도 맞다 그러고 저것도 맞다 그러고. 그래서 제가 의지하는 것이라고는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하나는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경이 우리의 기준이니까. 성경 편에 서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말씀하시는 것이 맞구나 하고 가지 않으면 너무 헤깔리더라고요. 잘못하다가는 우리 교회 성도들, 우리 교회 오신 수 많은 성도들을 제가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고 제가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두려움이 있으니까 저는 늘 성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건강지수, 교회의 건강지수의 기준은 성경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건강지수의 기준은 성경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은 내가 그런 교회가 되는 과정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건강지수로 교회가 진리를 선명하게 바라보고 진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구스 같은 잘난 사람들이 와서 사절단을 보내서 겸손하게 우리가 이러이러 하겠다 했을 때 훅 넘어가버리겠죠. 만약에 남유다가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없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유다에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없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북이스라엘처럼 금방 동맹을 맺었을 것입니다. 세력으로서 동맹을 맺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진리를 파수하고 온세상에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세우신 남유다가 어떻게 되겠어요? 겨우 한낱 애굽을 정복하는 일에 같이 쓰임 받고 겨우 한낱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해서 쓰임 받는 민족 밖에 더 되겠어요? 잘못하다가 교회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세교회 때 그것을 너무 많이 확인했습니다. 교회가 정치와 결탁해서 어느 한 편에 서가지고 그러면 그 시절의 교회가 휘황찬란한 영광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사람의 영광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께 오는 영광은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진리로, 하나님 말씀으로 그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진리 편에 서서 선택하고 바른 말을 하고 그것이 비록 고난이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진리를 선포하면서 가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그 어떤 정치조직, 세상에 그 어떤 좌우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붙어있는게 교회입니다. 구원을 이야기하는 곳이지 천국을 이야기하는 곳이고 예수님을 설명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남유다가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굉장히 건강해야 합니다. 이 건강지수에 대해서 이해가 가시겠습니까? 우리가 행정을 똑바로 하자. 우리가 질서를 잘 갖추자, 시스템을 잘 갖추자 이 말이 아닙니다. 온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건강해야 합니다. 진리에 있어서. 사람들이 조금 실수를 해도, 성도님들이 교회 와서 물의를 일으켜도 괜찮습니다. 교회는 그런 연약한 분들이 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조금 부족한 분들이 오시는 곳입니다. 은혜 받으려고 예수님 만나려고 오는 곳 아닙니까. 고아와 과부들도 오고 창기들도 오고 강도들도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냐? 진리 앞에 건강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명하게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그 건강지수가 굉장히 높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왔을 때, 이곳에 와서 진리를 마주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진리를 접촉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야 합니다. 왔는데 세상적으로는 우와 이 교회 문화사역 잘하네, 뭐 잘하네, 뭐 잘하네, 밖에 세상에서도 잘하는 거 교회에서도 잘하네 아무 쓸모 없습니다. 교회는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쫓아가버리면 교회는 진리를 절대 사수하지 못합니다. 

 

Ⅱ.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 되어

 

- 구스(애굽)의 사절단_이사야18:1-2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_이사야18:1-2’

 

날개 치는 소리. 구스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게 메뚜기 소리다, 곤충 소리라는 말이 있는데 구스를 상징하는 무엇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시끄러운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구스의 사절단을 보고 뭐라고 남유다가 표현해놨냐면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라고 표현을 해놨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복합적이고 이면적인 해석인데 이 구스가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고 두려움이 되고 강성하고 대적을 밟는 백성이기도 하지만 이들 사절단을 돌려보내면서 가라고 하는 백성이기도 합니다. 문법적으로. 그게 앗수르인지, 애굽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사절단을 다른 데로 가라. 우리 남유다에게는 오지 말고 너희가 생각하는 너희가 우리를 세력으로 보고 왔냐? 우리는 그런 세력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지 너희들이 생각하는 세력이 아니야. 세력에게 가, 강력한 나라에게 가. 앗수르에게 가. 너희 발길을 돌려서 너희가 원하는 세력에게로 가라고 돌려보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앗수르인지 애굽인지는 성경이 정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남유다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스의 요청이 세상적인 요청이었는데 그 요청에 사절단을 돌려보내는. 왜 구스의 요청에 사절단을 돌려보낼 수 있었냐? 그게 3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오늘 3절부터 7절까지는 진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 보이지 않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_이사야18:3-6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_이사야18:3-6’

 

이게 그 당시에 교회, 하나님의 백성, 시온 산에서 기치를 세우고 나팔을 불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것도 있지만 이것은 종말론적인 해석도 가능한 부분입니다. 왜냐면 인류의 끝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가지고 천년왕국을 해석하는 요한계시록과 연결해서 하는 설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4절 보세요. 일광 아시죠? 햇빛. 달빛. 그게 쬐이면 온 사방에 다 있습니다. 운무 같다고 합니다. 공기 같은 것입니다. 온 사방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감찰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류역사 속에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하고만 함께하고 계십니까? 불신세계, 온 인류역사 속에 하나님은 감찰하고 계십니다. 쬐는 일광처럼 운무처럼. 5-6절. 무슨 말이에요? 구스 사절단이 가지고 온 그런 세력들, 욕망, 욕심들은 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기치를 세울 때 다 심판 받고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걸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남유다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선택 잘해야 돼, 판단 잘해야 돼. 이러면서 메시지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들이 인간세상 자체를 움직인다고 착각을 합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 스스로 나라를 강한 나라를 만들어서 정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거민과 지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고 감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술집에 가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습니까? 우리가 혼자 있으면 하나님이 보지 않으시는 것 같으십니까? 우리는 걱정합니다. 저 악한 정치인들, 범죄인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다 셈하고 계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피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를 늘 감찰하십니다. 우리가 피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늘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구스 사람이든, 앗수르 사람이든 자기들이 세상을 정복한다고 생각해서 강성하고 사람들을 억압해서 자기를 두렵게 만들고 대적을 짓밟고. 하나님이 전부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나팔 불 때, 기치를 세울 때 하나님이 다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실제 주전720년에 애굽과 구스는 완전 멸망했습니다. 종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들짐승에게 준다고 합니다. 인류종말의 심판의 때를 예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냐면 구원의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들에 기치를 세우고 나팔을 불 때는 구원의 기회가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주로 오시면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톤을 이어받으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교회를 세워가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 언약을 전달해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해요? 교회를 상징합니다. 시온 산. 우리가 시온 산이 되어 기치를 세워 나팔을 불 때 그래야 저들이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 계시다고 그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 너희여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구스가 그런 시온 산의 은혜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러 회개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남유다가 어떤 하나의 세력으로 그렇게 오는 것입니다.  

 

-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 되어 시온산으로_이사야18: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_이사야18:7’

 

구스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앗수르, 애굽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구스가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이게 맞는 것입니다. 구스는 시온 산에 예물을 들고 와서 구원 받기 위해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곳 시온 산에 와서 엎드려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세상은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시온 산에 올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다면 교회가 진리를 투명하고 확고하게 붙잡고 간다면 불신자들은 교회 앞에 와서 예배할 것입니다. 그 건강성을 성경을 뭐라고 이야기하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이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의 이름이 있으면 안 됩니다. 오승주 목사의 이름이 있으면 안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가 진짜 멋있는 결정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자기 교회 성도들이 자기가 담임목사인데 담임목회를 20년 가까이 했는데 너무 담임목사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가면 성도들은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안식년을 5년에 한 번씩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제가 형님 너무 자주 쉬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했는데 그래서 이제 안식년을 1년씩 가면 그 교회 교역자들이 설교를 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의존증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그 형님에게 영향을 받아서 안식년을 가려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만큼 한국교회가 여호와의 이름이 아닌 목사님의 이름을 너무 의존합니다. 맹목적입니다. 저는 사람인데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놀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추위를 타고 감기에 걸리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면 저도 걸립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저도 먹을 것에 욕심이 많아서 식탐이 많습니다. 똑같습니다. 노는 거 좋아합니다. 교회가 여호와의 이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강대상에 제 의자를 놓고 제가 여기 앉아서 여러분이 찬양하는데 앞에 서 있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저도 여기 왔을 때 직분이 목사여서 설교를 하는 거지 내려가면 성도입니다. 성도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성도로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고 성도로 하나님 앞에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장대하고 준수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강성하게 보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장성하고 준수한대서 절대 멈추지 않고 강남들을 짓밟고 더 강력해지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욕망입니다. 맞잖아요?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때가 있습니까? 남을 짓밟고 더 강해지고 세력을 늘릴려고 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고 나라들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세력들과 동맹을 맺으면 그들은 갈 곳이 더 이상 없습니다. 교회가 문화사역, 전문사역 이런 것 잘합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그런 것 때문에 교회 오기도 합니다. 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안 됩니다. 제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교회가 문화사역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까? 해도 됩니다. 교회가 뮤지컬도 만들어서 복음도 전하고 미디어 사역도 해야 되고 수많은 사역들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이 모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건강지수에 있어서 깨끗한 교회가 되지 않으면 교회가 무슨 공연장도 아니고 불신자들이 교회 와서 보면 밖에서 하는 뮤지컬처럼 잘하네 하고 감동 받고 가지만 진리는 못 만나고 갑니다. 우리 교회하고 뭐 합시다, 조인합시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조인하려고 얼마나 많이 들어옵니다. 문화사역 합시다, 전문사역 합시다. 무슨 사역 합시다.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역이 많은지. 무슨 사역만 하지 않나요? 구원사역만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붙잡고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죄와 죽기까지 대항해서 피 흘려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런 세력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구원 받으러 오는 곳이어야 합니다. 은혜 받고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려고 오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이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 시온 산이 돼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이 돼야 됩니다. 이 교회에 다른 이름을 절대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맞죠? 

 

Ⅲ.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_이사야18: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_이사야18:7’

 

오늘 18장 7절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누가요? 그들이요. 언젠가는 그들이 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 받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 받으려고 왔던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이 된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떻게 구스의 사절단을 돌려보내고 , 세력으로 온 그들을 돌려보내고 또 나중에 그들이 구원 받으러 오게 만드는 그런 건강한 교회, 그런 건강한 시온 산,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 산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정금 같이 단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단련되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금같이 단련되어야 합니다_욥기23:8-17, 42:1-6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_욥기23:8-17’

 

진짜 엄청난 고난을 당할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는 이래야 합니다(11-12). 교회는 세상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정치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람을 두려워하고 그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구스가 잘생기고 준수한 백성이 사절단을 보냈을 때 남유다도 두려운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사방팔방이 다 적이니까 앞도 안보이고 뒤도 안보이고 좌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운무처럼, 쬐이는 일광처럼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니. 사절단을 돌려보내라. 하나님을 두려워해라 이 말입니다. 욥이 지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순금, 정금처럼 나아오리라. 교회는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욥기는 우리에게 단련을 요구합니다. 욥기서의 핵심은 교회의 단련입니다. 주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진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욥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앞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해 음식보다 말씀을 귀히 여겼고 흑암과 어둠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네 우리 앞뒤가 보이지 않지만 막막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 성경 편에 서서 가는 거에요. 그런 욥이 결론 부분이 이렇게 고백해요.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_욥기42:1-6‘

 

어떻게 눈으로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을? 6절에 답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가 깨끗해지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어떤 부분에 건강지수가 높아지는 거에요? 회개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우리의 죄를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교회는 그때가 가장 깨끗할 때입니다. 건강할 때입니다. 복음이 선명할 때입니다. 그 회개가 왜 중요하죠? 이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그때까지 단련이 되는 것입니다. 왜 회개가 있어요? 어렵고 힘드니까 회개하잖아요 우리가. 언제 죄에서 돌이키나요? 우리가 고난이 왔을 때 죄에서 돌이킵니다. 교회는 정금같이 단련되어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향해서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사람의 영광을 취하고 살기 때문에, 시온이 시온의 역할을 못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거기에 두지 않으면 사람의 영광을 따라갑니다. 

 

-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_요한복음5:41-47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_요한복음5:41-47’

 

건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배드리고 제사 드리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게 건강하지 않은 것입니다(41-42). 구스가 오면 영접하는 것입니다(43). 구스는 남유다에게서 영광을 취하고 남유다는 구스에게 영광을 취한다는 것입니다(44).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세오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45-46). 잘못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의 영광을 쫓아가기 시작하면 당연히 준수하고 장대한 구스가 왔을 때 그들과 동맹을 맺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교회를 치켜세우고 이 교회 목사는 훌륭하다, 이 교회는 이러면서 표 얻으려고 하는 말에 다 현혹되어서 예수 믿지도 않은 사람을 강대상에 세워서 인사시키고. 따끔하게 복음을 전하거나 진리를 말해주지 않고. 교회가 그러면 안 됩니다. 사람의 영광을 서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저 구스는 교회를 세력으로밖에 못 봅니다. 교회가 부패해버리면, 타락하면 정금 같이 단련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 있어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를 복음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로 봐야지. 하나님의 영광 위에서 오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무엇으로 볼 수 있어요? 예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하신 그 십자가의 고난이 우리에게 영광입니다. 그 십자가의 고난 속에 하나님의 큰 영광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능력도 안 되고 하나님의 어마무시한 창조주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영광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통해서 보는 영광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교회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모세오경을 읽어도 믿질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교회는 세상의 진리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의 진리를 따라가면 세상 속에서 교회는 찌끄러기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자기들끼리 자화자찬 합니다. 세상에서 교회 손가락질 아무리 해도 우리 교회는 몇 천 명 모여 있어, 몇 만 명 모여 있어. 맹종하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있으니까 목사들이 회개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빈 시온 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개 없는 교회, 정금처럼 단련됨이 없는 교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끼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보통 그렇습니다. 물건들도 경쟁이 없으면 기술이 개발이 되지 않습니다. 독과점이 되면. 껍데기만 바꿔도 계속 잘 팔리니까 기술 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세가 타락했습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교회를 나오고 그러니까 교회가 더 이상 기도하거나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때부터 교회가 완전 부패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저는 지지난주에도 제 학부 때 좋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말이니까.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제 상황들을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솔직하게 진실하게 이야기해달라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틀린 것 바르게 잡고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승주 목사가 그렇게 할 게 뭐가 있어? 잘하고 있는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뭐가 되야 되냐면 세상에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진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애쓰셔야 합니다. 이사야서 6장에서 그래서 어떻게 이사야가 이런 아름다운 용기를 낼 수 있었냐. 이사야는 무엇을 봤기 때문에요? 거룩을 봤기 때문입니다. 

 

- 세상의 진리가 되기까지_이사야6:1-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_이사야6:1-13’

 

여러분 이사야 6장 설교를 다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이사야 6장 같아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은 이사야 6장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 은혜로 주님 내가 여기 있으니 나를 보내소서 어디로요? 망할 세상으로. 그게 시온 산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그것을 위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씨, 이 땅의 그루터기, 남아 있는 자. 하나님이 그 교회를 유지하고 존속해 가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시작하면서 이사야가 본 거룩을 기록해놓았습니다. 6장에. 그 거룩을 본 이사야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고백합니다. 그런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황폐하게 될 것이다. 죄로 인해서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가 있을 것이다. 너를 부르신 이유가 구원 때문이다. 교회가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시온 산이 될 때 저들이 예물을 들고 왜? 감사하니까, 구원 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니까 찾아오는 것. 구스가 구원 받으려고 유다에 찾아와야 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거룩이 건강의 지표, 목표여야 합니다. 성도의 목표는 거룩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할 수 있습니까? 이게 지금 술, 담배 끊으라는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만 거룩이십니다. 그 예수님과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정금과 같이 단련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조금 더 진실하고 정직하게 봐야 됩니다. 욥처럼. 상처 받을 것이 아니고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고 감정싸움 할 것이 아니고 내 살아왔던 경험으로 따질 것이 아니고 욥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나,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지만 하나님의 뜻을 나는 신뢰합니다 하고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진실하고 정직하게 봐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숨기기 바쁘고 자기들끼리 세상적인 것 추구하고 부흥하면서 자화자찬하면 세상은 우리를 세력 이상으로 절대 보지 않습니다. 성도를 여러분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이 여러분이 교회에서나 장로, 권사, 집사이지 교회에서나 목사지 우리의 행동, 언행을 보고 저게 그럼 그렇지. 더 이상 우리를 진리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성도들은 말, 행동도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의지로 안 되니까. 우리의 의지로 우리가 무슨 도덕군자도 아니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래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시편과 잠언으로 묵상하며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됩니다.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뀌어야 되고 행동도 바뀌어야 됩니다. 진리인데 교회가, 교회가면 진리를 만나야 하는데 진리를 만날 수 없습니다. 교회 갔더니 세상보다 더 심합니다. 더 파벌이 심하고 더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교회 갔더니 더 심합니다. 왕따도 더 심하고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교회에 예수님이 안 계시니까 교회에 예수님의 이름이 없으니까. 교회는 진리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성공이냐? 부자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배할 수 있고 성경 읽을 수 있는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도 그걸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회사를 운영하고 부자여도 여러분 삶에 예배가 없고 세상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하루에 성경 한 장 못 읽는 삶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또 반대로 너무 가난해서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으면 그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삶이 아니라면 그것은 저주받은 삶입니다. 점차 마음과 삶을 가꾸고 예배하고 성경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여러분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공한 삶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성경 읽고. 내가 이 성경 읽고 어떤 결과를 얻어야지 가 아니라 그냥 성경 읽으십시오.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후세들이, 세상이 우리를 평가할 것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이렇게 평가를 받아야지 계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시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내가 평생 성경을 읽었다고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천국 가시는 것이 성공한 인생 아닙니까. 그런 예배하고 성경 읽을 수 있는 여유. 유대인들이 왜 성공합니까? 유대인들은 가는 지역마다 자기들이 모여 사는 곳마다 회당부터 지었습니다. 돈을 모아서. 그리고 그곳에 월급을 주고 랍비를 세웠습니다. 시나고개죠. 왜요? 거기 가서 하는 거라고는 성경 배우고 성경을 읽는 것 밖에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성공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부터 사고 부유하고 부자가 돼서 무엇을 하는 세상적인 성공보다 유대인들은 거기서 늘 역사를 배우고 교회의 역사를 배우고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성경을 늘 배우기 위해서 장소를 만듭니다. 그런 장소를 만들라고 하냐?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장소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모임들, 우리 성도들의 모임들, 우리가 주중에 성도들끼리 모여서 하는 은혜를 나누는 시간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 일에 성공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쫓아 사는 인생이 되어야 성공된 인생이 아닙니까. 흔들림이 없어야 됩니다.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연단되고 세상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우리가 부자가 될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삶이 병이 걸릴 수도 있고 건강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인생은? 남유다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고 저런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스사람이 사절단을 보내왔을 때 우리는 세력이 아니야 돌려보낼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우리는 진리야라고 그들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 신앙인이어야 되고 또 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러 왔을 때 그들이 구원 받으러 왔을 때 품에 품어줄 수 있는 그런 힘도 교회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해서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성공이 무슨 성공입니까? 진리가 우리 삶에 항상 반짝반짝 빛나게 있는 성공. 그것이 크리스천의 성공 방향이고 목표입니다. 이사야처럼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남유다처럼 이런 멋진 구스 사절단을 돌려보낼 수 있는 성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성공기준이 아니라 그들과 전혀 다른 성경의 성공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 죄로 황폐해져 가는 이 세상을 다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가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 산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연단의 길을 가야 되지 않을까요? 조금 힘들고 어렵지만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고 예배드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마시고 또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교회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조금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거 다 셈하고 계시고 감찰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실 것이고 영광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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