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2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
제 목 : | 이사야서의 결론, 거룩하게 사는 것 |
본 문 : | 이사야 66:15-24 |
오승주 목사
Ⅰ. 무엇이 신앙인가
이사야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하고 같이 고민하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한 어떤 깨달음들이 있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굉장히 길고 지루한 이사야 설교를 함께 들었고 또 저는 준비를 했기 때문에 신앙이 무엇인가? 이게 목사인 저에게도 되게 많이 고민스러운 시대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일까요? 예수 믿는 게 무엇일까요? 교회는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되게 많이 했고 코로나 때문에 2년 가까이 너무 어려운 시기였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학교 갈 준비를 하게 된 시간이어서 그러면서 마주한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시대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마주했는데 아, 신앙은 이런 것이구나, 교회는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많이 깨닫게 된 이사야 설교를 하는 동안의 저의 시간표가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 즉 신앙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죄에서 건짐 받아서 하나님 자녀, 백성이 되는 거고 또 지옥에서 건짐 받아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구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모하고 흠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으로 오신 그 성경과 동행하고 함께 하는 삶입니다. 이 구원은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여러분 신앙을 가진 사람이 구원을 깨달은 사람이 겸손한 것이지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것이지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을 아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지혜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애씁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러나 그런 모습이 무능력하거나 교만하거나 이런 모습은 아닙니다. 남들이 볼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위선이라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만약에 신앙이 위선이 된다면 그것은 정말 패역한 시대, 포악한 시대,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말 엄청나게 무서운 심판을 받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학이다, 수학이다 이런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지금 시대를 보고 기독교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평가해 놓은 신학 잡지의 글이 있는데 많은 목회자와 교회가 거룩함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거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함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해서 목적을 이룰 거야 가 아니잖아요. 아내와 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거룩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한국 기독교가 거룩하게 사는 것을 잃어버린 때부터 한국 기독교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라는 잡지의 기고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 어느 나라나 기독교가 쇠퇴할 때 오는 징조는 뭐냐면 목회자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이 올 때. 복음에서 윤리와 도덕을 빼버리면 하나님이 빛에서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목사님 무슨 말이에요. 빛에서 생명이 어떻게 없을 수 있어요. 그런데 마치 그것과 같습니다. 복음은 윤리와 도덕이 함께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 뭐냐면 교회 다니면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이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무언가, 대단한 무언가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뭘 이야기 하냐면 원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착한 행실을 가지고.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세요. 원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모습으로.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살도록. 복음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선한 양심, 착한 행실. 그런데 복음에서 도덕과 윤리를 빼버리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가 항상 쇠퇴하고 엄청난 위기가 왔을 때는 목회자들의 도덕적인 문제들, 윤리적인 문제들. 그 말은 뭐에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도덕적인 문제이고 윤리적인 문제지만 내면으로 마음으로는 거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이 있으면 착한 행실, 선한 양심, 죄책감 이런 것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굉장히 정상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맞잖아요. 교회를 섬기고. 가장 정상적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복음을 받은 사람의 변화된 삶입니다. 그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을 받으면 우리는 특별히 방언을 한다든지, 대역사가 일어난다든지, 사역을 많이 해야 한다든지 우리는 한국교회는 늘 그런 쪽으로만 성도들과 교회가 방향을 가지고 갔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이 많은 열매도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사야서를 설교하면서 신앙의 개념이 정리가 안 되면 잘못하면 그릇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다움이 없는 복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그런 사상, 이념 이런 것들이 우리를 패역하게 만들고 범죄하게 만들고. 또 그런 것들을 옹호하고 지지하고. 저는 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목사님 너무 훌륭한 일을 많이 했어, 우리 목사님 되게 훌륭해. 그래서 다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물론 목사님이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라는 단어는 신약의 목사라는 단어는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Slave, 노예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장로, 목사는 다 종입니다. 한국교회 수석장로 이런 단어가 있잖아요. 진짜 코미디입니다. 제가 성경을 공부하고 원어를 공부하다보니까 그것은 범죄입니다. 장로에 계급이 어디 있어요? 다 종인데. 노예입니다. 목사의 계급이 어디 있어요? 제가 그나마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제 자리도 따로 특별하게 만들지 않고 제가 교회 헌금도 잘 들여다보지 않고. 스스로 그렇게 제한하는 이유는 목사가 종의 자리에 가 있지 않으면 정말 무서운 결과들이 발생합니다. 여러분 독재자가 중국과 북한, 러시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독재가 있고 독재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함, 오만함.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원래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종, 그리스도의 종, 주님의 종.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창조주께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섬기셨고. 그게 장로들, 목사들이 할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입니다. 가장 인간다운 것입니다. 인간이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착한 행실을 회복하면 그런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복음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들었다면 우리는 그런 삶, 거룩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신앙은 거짓 신앙이라고 저는 여러분에게 확신합니다.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기독교는 병든 것이고 타락한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개인 성도들도 예수님 믿으면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거룩을 상실해버리면 그것은 크리스천의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 자체가. 신앙은 거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오늘 이사야 결론에 나와 있는데 그게 무엇이고 얼마나 싫어하시냐면 15절에 보니까.
Ⅱ. 거룩하게 사는 것
-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위선_이사야66:15-16
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불로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엄청난 군대를 동원해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불길로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책망하실 것이라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불로만 아니라 칼까지 동원해서 모든 혈육에게 모든 육체에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_이사야66:15-16
여러분 신앙은 심판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구원만 이야기하고 구원 받은 복음만 이야기하는데 복음 안에는 구원도 있지만 심판도 들어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심판을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누가 당하냐면 17절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_이사야66:17-21
17.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이 스스로는 인간 자체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은 위선을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거룩하다고 이야기하고 스스로는 정결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여러분 거룩과 정결은 누가 판단하시는 거죠?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거예요. 오승주 목사 제가 사람들에게 가서 저 거룩한데요? 저 정결한데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오목사 거룩해, 오목사 정결해. 누가 판단하셔야 되죠? 심판 주께서 판단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 최주은 준목 되게 거룩하네? 제가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게 위선인지 거짓인지 진심인지 다 알고 계시잖아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거룩하게 되고 스스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타락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가 복음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거룩하고 스스로 정결하다고 합니다. 그게 기독교가 타락하는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가 다 그랬습니다. 목회자들이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그런 교회는 위험한 교회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 설교만 들으세요, 제 설교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러면서. 이렇게 말하면 저희 교회를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미 거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위험한 것입니다. 스스로 거룩하고 스스로 정결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여기서 동산에 가운데 있는 자는 뭘 상징하냐면 원어에 보니까 우상을 이야기합니다. 목상, 아세라 목상 이런 우상들을 이야기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창세기에 동산에 악한 영이 뱀 뒤에 숨어서 나와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그 유혹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스스로 구별해서 동산에 들어가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서. 악한 영들을 따라서, 귀신을 따라서, 마귀를 따라서 뭐한다는 거예요?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싫어하시는 것들, 부정한 것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위선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사람들의 위선입니다. 이거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위선만 이야기합니까? 아닙니다. 모든 인류의 위선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특별은총이 있고 일반은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교회 안의 성도들 이야기만 성경이 우리에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다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위선도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이 위선과 반대되는 단어가 정직입니다. 지난주 설교처럼. 정직과 반대되는 것이 위선입니다. 앞에서는 거룩한 척, 스스로 정결하다 거룩하다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모략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나쁜 짓을 하려고 그들이 스스로 연합하고.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겠죠. 여러분 제가 깜짝깜짝 놀라는 게 독재자들을 옹호하는 목회자들이 있더라고요. 러시아를 옹호하고 푸틴을 옹호하고. 푸틴은 능력이 있는 대통령이다. 능력 있죠. 그러니까 독재를 하는 건데. 그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어떻게 독재자를 옹호할 수 있죠? 이 땅에서 가장 사라져야 할 것이 독재자입니다.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자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어떤 이유이든지간에 어떤 정치적인 이유이든지간에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독재를 하는 사람을 옹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위선,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상과 이념들. 하나님은 그 위선을 얼마나 싫어하시냐? 불에 둘러 싸여 강림하셔서 심판하시는데 다 죽이신다고 합니다. 불과 칼로. 심판은 뭐에요? 죽음을 상징합니다.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서 죽는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예수 믿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아셔야 하는데 18절을 보세요.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하나님이 영광을 또 보여주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세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니까. 19절을 보세요. 그런데 어떻게 여시냐? 19.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이거는 우리가 읽으면 알겠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패역한 시대에 위선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뭘 세우신다고요? 징조를 세우신다고 합니다. 이 징조는 뭘 상징하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의 징조, 우리 가운데 세운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징조를 세우는데 이 징조에 도피한 자들. 예수 그리스도께 도피한 사람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도피성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죄를 지어도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그 죄에 대해서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이스라엘의 법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수많은 위선 속에서 살고 있다가 정직하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도피하고 그 징조로 도피해야 하는데 그러면 세상은 그런 저와 여러분을 연약하다, 미련하다, 교회 가서 기도하냐? 예수님 믿냐? 네가 네 주먹을 믿어야지, 네가 네 돈을 믿어야지, 네 능력을 믿어야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 도피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냐면 여러나라 다시스 같은 나라. 이 다시스는 금속 제련이라는 뜻을 가진 성읍의 명칭입니다. 이 다시는 야완의 아들이 세웠습니다. 야완의 아들 그의 자손이 세운 성읍인데 다시스 너무 잘 아시잖아요. 요나 선지자가 가려고 했던 그 다시스. 예루살렘에서 무려 3520km나 떨어진 지중해 서쪽 끝에 있는 오늘날로 말하면 스페인의 작은 도시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거기는 금속이 풍부하고 금속가공업이 성행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나라들, 엄청난 무역이 발달하고 그 당시에 최첨단이었습니다. 그 당시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을 다 지혜자라고 했습니다. 금속을 아무나 다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 그 당시에 최고의 존경하는 사람,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다시스라든지, 뿔과 활를 당기는 룻, 전쟁에 능통한 민족이라든지. 두발과 야완 여러분이 다 아시는 민족들이잖아요. 그 당시에 뛰어난 민족들, 나라들, 부자 나라들 이런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영광을 보지도 못한 모든 섬나라들. 거기에 하나님의 징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피난처 삼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전파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하나님이 영광을 누구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시냐? 위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징조를 피난처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여러분 복음은 윤리와 도덕이 빠지면 썩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물인데 썩은 물입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됩니다. 저는 목사잖아요. 고등학교 때 예수님 영접하고 평생 신학 공부하고 교역자 생활을 하고 전도사, 강도사, 목사 이러면서 평생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제가 30대 중반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이었냐면 복음이 메시지인줄 알았습니다. 단비야, 너 복음 들어볼래? 이렇게 해서 메시지 막 하고. 너 나 따라서 영접 해 그럼 너 하나님 자녀 될 수 있어. 저는 그 메시지가 복음인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이 복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공부하고 30대 중후반 넘어서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내 삶이 위선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징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피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이구나. 그게 복음이구나. 여러분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 영혼이, 내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피난처 삼고 살아가는 게 복음이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제가 되게 깜짝깜짝 놀랍니다. 엄청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들을 통해서 엄청난 부흥과 경건주의, 대역사 이런 것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설교를 들어보면 정말 설교들이 말도 안 되게 어렵고 간단명료하지 않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런 설교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성도들이 다 같이 성경을 읽고 같이 있는 직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잖아요. 그게 무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 아니요. 메시지가 아니라 거룩한 삶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오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징조를 우리 인생 가운데서 세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피난처 삼아서 우리가 거기로 도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위선 없이 살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위선 없이, 거짓 없이 살 수 없는 곳이에요. 여러분 다시스에서 룻에서 두발에서 야완에서 우리는 위선 없이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도피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은 그 일을 감당할 제사장과 레위인을 찾으십니다.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21.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에 예물을 담아 여호와께 드리면 그것처럼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한 그 모든 나라와 섬들에서 너희처럼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예물을 드리는 그 사람들을 통해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또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헌금하는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세우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저희 교회와 성도들과 저희 교역자들이 한다면 네팔에 있는 따루 목사님도 그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히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나라의 영광을 드러낼 레위인과 제사장으로 따루 목사님과 그의 성도들을 사용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메시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으면서 당신들 복음운동에 쓰임 받아야 돼, 따루 목사님 목회 잘해야지, 목사 잘 해야지 성도 몇 명 새가족 왔어 이런 거 물어보면. 따루 목사님이 처음에는 자꾸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요즘은 아예 안 하십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서로 각자가 부족하니까 각자 나라에서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각자 나라에서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렇게 대화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의 영혼들을 사랑해서 하는 모든 그런 마음가짐과 행동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입니다. 깨끗하게 예물 드리는 자, 그러니까 이 말은 위선이 없는 자가 레위인이 될 수 있고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위선이 없는 자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위선이 없어야 됩니다. 지금은 위선을 가진 자들이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기 때문에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이고 우리는 스스로 거룩하고 스스로 복음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밖에서는 교회를 손가락질 하고 개독교라고 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메시지가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리를 잘해서 메시지를 잘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렸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 중에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요? 아마 여기 결혼하신 분들은 다 자녀라고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살면, 위선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도피성 삼아서, 징조 삼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레위인처럼 제사장처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심심하겠잖아요? 그런데 복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22절 보세요.
-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_이사야66:22
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여러분 세상에는 패역한 자들이 계속 있습니다.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그래서 공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계속 꺼지는 것 같은데 계속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나쁜 짓을 계획하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범죄자들이 계속 있고.
Ⅲ. 신앙의 모습_이사야66:23-24, 히브리서10:19-25, 12:1-13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 앞에 항상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을 앞에 두시겠다고 하십니다.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이름이, 우리의 후대의 이름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그게 없다면 우리의 금은보화나 우리의 명예나 우리의 건강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결혼해보신 분들은 다 그 마음이잖아요. 제가 목회를 성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내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는데. 우리 한빈이, 윤빈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희 교회가 만 명이 되던, 이만 명이 되던, 삼만 명이 되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 내 자녀가 지옥에 간다면, 내가 세계를 호령한 위대한 목회자가 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이 말입니다. 목회자는 거룩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내 자녀들 앞에서. 위선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그런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냥 예배드리는 거 같죠? 주일마다 모여서?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정신 조금 많이 차리셔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많이 사수하고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모습은 무엇일까? 히브리서 10장 19-25절에 보면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_히브리서10:19-25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담력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게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담력을 얻으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 피, 십자가 은혜를 받으면 담력이 생기잖아요. 그것으로 뭐하라고 하냐면 예배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예배를 설명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잘 보세요.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예배가 뭐냐? 우리가 마음에 무언가 뿌림을 받아서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리고 뭘 이야기해요?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게 뭐에요? 예배에요. 여러분 주일에 교회 오실 때 이렇게 오셔야 됩니다. 우리의 양심,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물로 씻음 같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죄를 안 지을 수 있겠어요. 이 말이 가장 무서운 말이에요. 그 말은 뭐에요? 죄를 계속 짓겠다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거잖아요.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히브리서 10장 24절-25절에 그래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사랑과 선행. 우리는 그 동안 복음이 누군가를 영접 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하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합니다.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에요? 말세 때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_히브리서12:1-13
히브리서 12장에는 또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왜요? 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냐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서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죄는 우리를 금방 옭아맵니다. 한 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또 짓게 만들고 또 짓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삶이 없으면 그 죄가 중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늘 회개를 해야 오늘 죄 지은 것을 깨닫고 벗어낼 수 있는데 회개하는 신앙이 없다보니까 내가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르고 죄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바라보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12장 마지막 12-13절을 가보면 그 일이 되게 피곤하고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피곤하고 어렵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우리 성경 읽기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기 힘들고 그렇잖아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 그 일이 너무 피곤하고 너무 힘들고 징계처럼 느껴지지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으려면 믿음을 위한 삶으로 탈바꿈해라. 이렇게 히브리서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너희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라,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라. 저는 다리로 하여금 다시 어그러지지 않도록 고침을 받아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인가? 예수님 잘 믿는 삶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늘 의지할 수 있는 삶으로. 예수님을 나의 도피성 삶을 수 있는 삶으로, 예수님을 나의 징조로 여기고 늘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삶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삶으로.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피곤한 삶이죠, 피곤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계속 그런 느낌이 듭니다. 마귀는 세상은 정말 그게 피곤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 TV가 없고 제가 드라마 볼 시간이 없는데 제 친구가 얼마 전에 이거 꼭 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좋아할 만하다고 해서 제가 정주행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김혜수를 좋아하기도 하고. 거기에 보면 실제 사건, 소년 범죄를 다루는 드라마입니다. 13-14살이 초등학생을 유괴해서 도끼로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은 촉법이라고 해서 미성년자는 소년원에서 2년 이상 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을 실제로 다룬 드라마입니다. 제가 보면서 아이들이 진짜 악하다 생각했습니다. 법을 다 이용해서 초등학생을 유괴해서 죽이고. 중학생들이 초등학생들 셔틀 같은 거, 심부름 시키고. 말 안 들으면 담배 빵 이런 거 하잖아요. 무섭습니다. 제가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거 드라마 보는 것은 시간이 잘 간다는 것입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 드라마 1시간 몇 분짜리 보는데 한 5분 지나간 것처럼 몰입해서 봤습니다. 지금도 생각납니다. 결론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성경 읽으면 와 한 시간 읽은 거 같은데 10분밖에 안 지났습니다. 성경 읽고 있으면 빨리 읽고 해야 될 것이 머릿속에 계속 생각납니다. 그 말은 뭐에요? 아직 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직 나의 양식이 아닌 것입니다. 그 정도로 피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이.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뭐라고 해요? 그거 고쳐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안 고치면 어떻게 된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에게 갔더니 생활패턴 다 고치세요. 음식 습관 고치세요. 안 고치면 병 못 이겨요. 맞잖아요. 지금 성경은 우리에게 그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 다 고쳐줄 건데 너희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멋진 크리스천으로 만들어 줄 건데 신앙생활 해야 돼. 어그러진 다리로 살면 안 돼. 분노하면서 위선적으로 살면 안 돼. 그렇게 살면 너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될 수 없어. 예수를 바라봐야 되는데, 예수를 의지해야 되는데. 신앙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스펠교회 다니시면 엄청 힘드실 것입니다. 오목사가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해줍니다. 저도 거룩하게 사느라 바쁩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여러분도 여러분 나름대로 거룩하게 사셔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기 바쁩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야 여러분 앞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종이 될 수 있겠잖아요. 그냥 거룩함 말할 수 있죠. 인터넷에 자료가 얼마나 많은데요. 주석이나 책 좀 정리하면 메시지 잘 할 수 있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제 메시지가 아닙니다. 제 간증이 아닙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메시지로 사람을 전도했어요. 그런데 전도한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와서 삶을 보고 다시 세상으로 다 떠났어요. 다 떠났습니다. 시험 들고 오히려 더 멀리 갔습니다. 원래 10m 있던 사람들이 교회 왔는데 교회 와서 시험 들어서 30m로 떠나 가버렸습니다. 어떻게 할 거에요. 그들이 잘못 했다, 안 했다 그 이야기가 아니라 기독교가 거룩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이야기합니다. 복음이면 되지. 네 맞습니다. 복음이면 됩니다. 복음은 완전해요. 복음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완전해요. 그러나 예수님이 완전하다면 우리는 그 예수님을 더 따라야 되고, 우리는 연약하니까. 더 닮아가야 되고 더 의지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복음이 완전한 것은 오승주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완전한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니까. 예수님은 완전하세요. 그런데 나는 연약하잖아요. 나는 복음이 아니에요. 목사는 복음이 될 수가 없어요. 저도 사람인데 제가 어떻게 복음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이 강단에서 내려가면 예수님 닮아가려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고 기도해야 되고 노력하고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신앙이잖아요. 신앙은 거룩하게 사는 것이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삶에 필요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닮아가고 하나님의 징조를 우리 가운데 세워주셨다면 그 징조를 도피성 삼아서, 피난처 삼아서. 시편을 읽어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라. 계속 그런 문장들, 단어들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신앙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죠. 저와 여러분이 세상의 위선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징조로 도피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징조이신 예수 그리스도,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죠? 하나님의 영광을 뭇 나라들에 전파하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 그곳이 다시스든, 룻이든. 또 뭇 나라의 섬들이든. 그 말은 여러분의 직장이든, 여러분의 가정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룩하게 사는 아름다운 인생이, 거룩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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