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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2-0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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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0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실망을 넘어 소망으로
본 문 : 이사야 65:1-25

 

 오승주 목사

 

Ⅰ.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왜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냐면 선순환과 악순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흔히들 세상 사람들이 그럽니다. 경제적인 것도 그렇고 경제도 선순환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악순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겠다 하고 그 일에 뛰어들었는데 사이클이 악순환인 거예요. 사이클이 악순환이면 잘 헤어 나오기가 어렵죠. 악순환이어서 계속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거기서 빨리 나와야 될 거 아니에요. 나와서 새로 시작해야 되는데 보통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악순환에 빠져서 계속 인생이 악순환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순환인 사람이 있습니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선순환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사이클이 잘 풀리고 하는 것마다 다 희한하게 시간표 이런 것들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선순환과 악순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개혁한다,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한다 이것은 선순환과 악순환을 보면서 우리가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벗어나야 되잖아요. 악순환이라는 것을 벗어나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문의 저주라든지. 우리 인생을 살면서 우리 가정에 내려오는 어떤 습관적인 죄들을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은 보지를 못합니다. 왜? 지혜가 없으니까. 이것은 지식이 있어야 보이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선순환, 악순환은 아는 만큼 보이고 공부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악순환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세상이 이러니까, 요즘 세대가 이러니까. 이런 말들을 달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도 그런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준 없이, 진리 없이. 남들 다 하니까, 남들 다 이렇게 하잖아. 이런 식으로 가는 거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젖어들고 어떤 사상과 이념, 세상 것들에게 잠식당합니다. 나도 모르게. 신앙은 잠식당하면 끝입니다. 진리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자꾸 진리를 무너뜨리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해야 되고 복음 전해야 되니까. 여러분 그거와 별개의 문제잖아요. 진리가 무너지면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악순환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톨릭이 그렇게 복음 전하기 시작했잖아요. 아시아에 왔더니 다 제사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어떤 결정을 했냐면 십계명을 바꿔서 제사 지내게 해줄게. 제사 지내면서도 가톨릭, 예수 믿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다 무너졌습니다. 모든 나라, 지역 그 향토 종교들을 다 인정해주고. 어떻게 됐어요? 결국 진리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고집스럽게 율법적으로 진리, 진리 이러는 게 아니라 그게 무너지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 악순환이 어느 순간부터 들어와서 시작이 되는데 그거를 늘 깨어서 지켜봐야 되고 하나님 말씀으로 확인하고 우리가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야 되는데 깨어 있지를 못하니까 어느 순간에 그런 것들이 잠식을 당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지금 보세요. 주일 예배가 이게 정상입니까? 한국교회가 드리는 주일 예배가 정상이냐 이 말입니다. 정상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정상 아닙니다.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온전한 주일성수가 아닙니다. 성경적인 주일 예배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문화들이 어디서 왔냐면 점차 타협하고 조금씩 조금씩 잠식당하고. 그런데 악순환이 결과적으로 우리 자녀들 신앙에서 다 떠나고 청년들 다 떠나고. 우리도 믿음이 점차 없어지고 있습니다. 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으니까. 믿음이 온전할 수 없는 거예요. 악순환인 것입니다. 신앙도 이런 악순환이 있는 것입니다. 잘못되게 배운 것, 이상하게 교육 받은 것은 우리를 이상하게 살아가고 잘못되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환경주의자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북극곰이 다 멸망했다고. 여러분 북극곰 개체수가 얼마나 늘어난 줄 아시나요? 그런데 환경주의자들은 북극곰의 앙상한 사진 올려서 지구 온난화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팩트도 있고 아닌 것도 있겠죠. 여러분 다 상술이고 전부 이해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북극곰은 꾸준히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시죠. 우리는 늘 북극곰이 죽어간다, 곧 멸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게 무서운 것입니다. 석유가 부족하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들은 것 같습니다. 석유가 계속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석유 아직도 쓰고 있잖아요. 펑펑 쓰고 있잖아요. 계속 뭐가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구를 줄여야 된다. 이런 말들입니다. 사실 무서운 말들입니다. 우리가 꾸준히 어떤 불안감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뭘까요? 계속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거죠. 저는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언론이나 이런데서 이야기하는 어떤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연예인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게 행복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렇게 살아야 행복한건가 보다. 여행 다니면서 캠핑 다니면서 살아야 행복한가 보다. 여러분 캠핑 가보시면 재밌어요, 즐겁고. 그런데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저는 연휴 때 아이들 둘 있으니까 연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설 연휴가 너무 길더라고요. 하루나 이틀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가식적으로 포장해서 우리한테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고. 정작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은 불행하니까 술 먹고 약하고 마약 같은 거 하고 이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게 행복인 것처럼. 우리 청년들이 어디가서 사진이라도 찍고 인스타에 그런 거라도 올리면 그게 행복인 것처럼. 그런 말들이 어느 순간 그릇된 진리가 되어서 뭘 외면하게 만드냐면 진짜 진리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짜 진리를. 자꾸 세상이 행복, 행복 이야기하니까 쇼핑하는 게 행복이고 뭐가 행복이고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천국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 교회 안에 영혼의 기쁨이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사라졌다니까요. 하도 육신적인 행복을 강조하다보니까. 그게 교회 안에까지 다 들어와 가지고. 여러분 맞습니다. 교회도 수준 높은 뭔가를 해야 합니다. 해야 되는데 대표적으로 문화 사역 이런 거 있잖아요? 교회 안에서 뮤지컬 같은 거 하고. 맞습니다. 교회가 큰 교회들이나 재정이 있으면 문화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문화사역도 해야 되고 그런 연예인들 사역도 해야 되고. 틀린 게 아닌데 제 말은 그게 진리냐는 것입니다. 뭐가 사라졌어요? 길거리 전도가 다 사라졌습니다. 막 수준 높은 전도, 전도 이야기하다가 진짜 우리가 직장에서 내 이웃에게 내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은 정말 중요한 거죠. 우리가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줌, 메타버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지금도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온라인으로 엄청 많이 보고 계십니다. 20분 가까이 지금 생방송으로 보고 계십니다. 자꾸 고민되는 것은 이런 쪽으로 자꾸 우리가 가다보면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리는 것이 뭔지를 모릅니다. 그게 뭐에요?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입니다.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서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 기도도 사라지고 그런 영적인 교제들이 점차 이런 것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경험이나 우리 논리, 어떤 합리적인 거, 논리적인 거 이런 것이 자꾸 들어오다 보니까 뭐가 사라지죠? 하나님의 기적 같은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기적, 신비한 은혜들. 와 저 사람이 새 사람이 됐네 예수님 만나고. 어떻게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태권도 한 10개월 다니면 검은 띠 딴다 이런 식인가요? 교회가 그런 곳인가요?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나중 될 수 있고 나중 믿은 사람이 먼저 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탐욕으로 생겨난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더 예배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하고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가족이 와도 제대로 심방하지 못하고 있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성도들을 심방하고 그들을 치유하고 같이 울고 같이 웃어야 하는데 그런 문화들을 싹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직장에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여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분 예배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1절에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노라 하나님 기회를 주시는 거잖아요. 기도하지 않고 부르짖지 않고 찾지 아니하던 사람에게.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나 여기 있다, 기도해, 나 여기 있으니까 나 지금 여기 있으니까 너희가 나를 찾아, 나에게 기도해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이잖아요. 복음은 메시지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어떤 메시지가 아닙니다. 누구를 영접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고 복음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이시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그 하나님을 설명하고 그 하나님을 간증하고 그 하나님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정말 이 복음을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어떤 표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 우리가 선교한다, 우리가 전도한다 우리가 이런 거 한다. 우리가 이런 거 한다. 이런 거 한다 라는 어떤 표어가 되고 껍데기가 되어버린 느낌? 그러는 중에 내 영혼이 죽는 줄도 모릅니다. 내 가족과 내 교회가 영혼들이 죽어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지고 어느 날 그런 표어 같은 것에 지쳐가지고 포장만 하고 살다가 안 되니까 사라지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지. 영적인 교제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 사실 인간은 흠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안에 상처가 정말 많습니다. 사람마다. 그렇죠 여러분?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상처는 잘 보이지 않고 남에게 있는 상처만 잘 보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남에게 있는 허물만 잘 보입니다. 내 상처, 내 허물은 잘 보이지 않고. 제가 신학교 때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기독교 종합대학이니까 기숙사에 살면 의과대 형도 있었고 다른 과 형님들도 있었습니다. 다 예수님 믿었습니다. 저희는 기독교 대학이니까 세례 받지 않으면 올 수 없는 학교였습니다. 의대 다니는 형은 의료선교사 준비하는 형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신학과 친구가 같은 방에 배정받아서 갔는데 그 친구가 밤에 맨날 늦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룸메이트들끼리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다녔는데 그 친구가 맨날 늦게 들어오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거는 괜찮은데 생활이 우리와 안 맞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수건을 빤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한 달을 똑같은 수건을 씁니다. 수건에서 당연히 냄새가 나겠죠. 여러분 수건은 하루 쓰고 빨아야 되잖아요. 한 번 머리 닦고 세수 하고 나면 빨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걸 한 달을 씁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시죠.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혼자 살면 그게 괜찮은데. 양말 이런 것 다 우리 꺼 가져다 신고. 그 친구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우리끼리 다들 예수 믿으니까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이 친구한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은데 너 더럽다, 너 진짜 더럽구나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의과대 다니는 의료 선교사 준비하시는 그 선배가 얼마나 신실하냐면 매일 성경을 한 시간씩 읽는 선배입니다. 의과대인데. 본과 다니는 선배입니다. 의과대는 다른 캠퍼스에 있는데 왜 영도에 있는 기숙사에 있냐고 했더니 거기는 새벽기도가 없어서 여기서 기숙사 신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진짜 특이한 선배입니다. 자기는 선교사가 될 거기 때문에 신학과 수업도 들어야 되고. 그래서 여기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는 정말 신실한 형인데 그 형님이 참다 참다 그 친구를 부르더라고요. 이제 신학과 1학년인 친구죠. 그 친구한테 그러더라고요. 너 그래서 전도사 되고 목사 되면 어쩌냐? 이러면서 호되게 혼을 냈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신학과 1학년 때부터 전도사를 했습니다. 주일만 되면 아침에 양복 빼 입고 머리에 무스 바르고 007 가방 들고 교회 가는 모습을 우리가 보는데 우리는 그 친구와 같이 생활해서 알잖아요. 빨래도 안 해, 새벽기도도 안 해, 양말도 맨날 우리 거 훔쳐 신어, 이런 친구인데. 자기 빨래 안하니까 우리 거 가져다 신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주일에는 전도사라고 교회 가니 의과대 선배가 호되게 혼냈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것은 의과대 선배가 혼내는 것이 감정적으로 혼낸 것이 아니잖아요. 며칠을 같이 기도했습니다. 우리 저 친구, 목사 될 친구니까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기도하고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반응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막 되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형이 뭔데 내 인생에 참견이야 이런 식인 것입니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신경 쓰지 마 신경 꺼 이런 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사실 아픈 거잖아요. 그 친구는 아픈 것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치유도 되고 고쳐지는데 그것을 고백을 못하는 것입니다. 고백을 못하니까 도와줄 수 없고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도 그런 모습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백을 잘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백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상한 심령. 자백하고. 하나님은 미쁘시니까 자백하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신데요. 지금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 모습이 그렇게 병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역으로 포장하고 복음이라는 어떤 표어 같은 것을 가져다 붙여 버렸기 때문에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장로님, 권사님들은 심방하고 성도를 위로하는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가서 권사님 기도해주세요, 장로님 기도해주세요 그게 정상인 것입니다. 우리 소그룹 안에 조금만 질병이 있어도 저 이런 아픔이 있습니다 기도해주세요 라고 기도제목을 나눠야 되는 게 원래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게 왜 부끄럽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와서는 이상하게 세상에서도 차리지 않는 체면을 교회에서는 차리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면 마치 내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가 봅니다. 아니 왜 기도제목을 내는 것이 믿음이 연약해지는 것이고 복음에 기스가 나는 거예요? 그런 거 있잖아요. 복음이 표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몸이 아파, 내가 어디 아파서 입원해야 돼, 이거 말하면 내가 복음의 사람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여러분 사도바울도 내 몸에 질병을 해결해달라고 기도부탁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여러분 복음 있으면 복음 가지고 있으면 병도 안 걸립니까? 무좀도 안 걸립니까? 무좀도 안 걸립니까? 흠이 없습니까? 그걸 왜 부끄러워하냐고요. 저도 살다보면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교통사고도 날 수 있고 제가 살다보면 실수해서 넘어질 수도 있고. 그럼 제가 장로님들께 저 이런 병 걸렸는데 장로님 기도 좀 해주세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여러분? 목사는 이야기를 못하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잘못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몰래 치료 받고 몰래 해결하고 나왔을 때는 나는 복음의 사람이니까 이런 식입니다. 그게 복음인가요? 복음은 하나님이신데. 우리의 약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그걸 서로 다 이해하고 오픈하고 기도하고. 뒤에서 쑥덕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참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권사님, 교역자, 소그룹 리더들은 진짜 성도들, 새가족들,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섬김의 자리로 가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영혼입니다. 다윗은 늘 내 영혼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내 영혼이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하나님이 떠나셨는지 안 떠나셨는지. 내 영혼이 지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지 기뻐하지 않는지. 내 영혼을 소성케 해달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내 영혼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다른 영혼입니다.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을 살리는 공동체잖아요. 그렇죠? 여러분 우리는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영혼을 살펴봐야 합니다. 영혼이 고침 받아야 돼요. 다 필요합니다. 돈도 필요하고 직장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남자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해요. 다 필요하죠. 그런데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이거를 교회가 모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영혼이 고침 받고 살아야 합니다. 진짜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는 영혼. 예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흠 많고 약한 우리를 치료 받게 해주셨잖아요. 고침 받게 해주시고 새롭게 되게 해주셨잖아요. 지금 우리가 수많은 뭔가를 해야 될 때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도 해야 되는데 교회 안에서도 전도가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이 전도라는 단어는 우리 밖에 있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복음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같이 예수님을 믿더라도 우리는 서로 간에 전도가 필요합니다. 권면하고 양육하고 돌봐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세상 험합니다. 오늘 찬송가처럼. 맞아요. 살기 힘들고 어렵다고들 합니다. 세상이 험하니까 힘들죠. 우리는 더 약해 보입니다. 주님도 아십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힘들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누구에게요?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상이 힘들고 어려운데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시고 나의 힘이시고 나의 소망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오늘 본문이 딱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야기하십니다. 너희가 나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있다. 

 

Ⅱ. 죄를 심판하시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위선적인 이스라엘의 신앙(종교적 관행)_이사야65:2-5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_이사야65:2-5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_이사야65:2

 

하나님은 계속 손을 펴고 우리를 불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배반했고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 우리 오늘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그들의 종교적인 관행이 문제가 있었는지 오늘 살펴볼 건데 3절 보세요. 왜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셨는지 보셔야 합니다.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그렇게 하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방인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이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말이에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 

 

여러분 지금 상황 이해 가세요? 꼭 누구 같죠? 한국교회 같고 우리 같죠. 얼마나 위선적이냐면 그들의 종교적인 관행이 얼마나 역겨웠냐면 동산에서 제사했다고 합니다. 동산은 뭘 상징하냐면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지성소, 성소에서, 성막에서 제사 지낸 것이 아니라 동산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서 예배하고 제사해야 되는데 우리로 말하면 멋지고 아름다운 곳, 교회가 아닌 세상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 드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 형태를 만들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가 아니라 그냥 자기들이 이렇게 예배드리면 될 거야 라고 생각하고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를 만들어냅니다. 어디 감히 주일예배를 토요일에 드립니까? 어디 감히 주일예배를. 마음대로입니다. 놀러가려고. 1박2일 놀러가려고 토요일 아침에 예배를 교회에서 서비스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에 이게 예배일 거야. 우리의 뭐가 예배일 거야, 뭐가 예배일 거야, 이렇게 해도 하나님 받으실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동산에서 제사한다고 합니다. 벽돌 위에서 분향한다고 합니다. 벽돌 위에서. 자기들의 삶 속에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문화와 건축물 위에서 거기서 분향한다고 합니다. 말은 멋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우리 직장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우리가 지은 이 성읍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말은 멋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거기서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음식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죠.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돼지고기 드셔도 됩니다. 우리로 표현할게요. 지금 무덤 사이에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합니다. 제사는 자기들 원하는데서 제사 다 드리고 예배드리고 무덤 사이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그런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표현을 안 하고 싶은데 밤새 은밀한 곳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쾌락을 즐기는 이 시대. 그러면서 주일날 와가지고는 거룩한 척. 나는 복음 가진 하나님의 자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자기는 거룩하다고. 너는 영적 문제가 많고 나는 복음 가졌으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패역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삶이 오픈되어야 합니다. 가까이 와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불신자와 이방인들과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삶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삶을 오픈하지 못하죠? 은밀하게 죄 짓고 있으니까. 복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요. 진짜. 누가 거룩한데요? 사람이 거룩할 수 있어요? 목사가 거룩할 수 있어요 여러분? 장로라는 직책이 거룩할 수 있어요? 하나님만 거룩하세요. 예수님만 거룩이세요. 거룩은 인간이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해요? 무덤 사이에서 돼지고기 먹고 술 먹고 놀면서 나는 거룩하니까 가까이 오지 마. 나는 복음 가졌으니까 너희들하고 달라.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느낌이 오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복음 가졌다고.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지. 우리 삶이 다 오픈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역자들 삶 다 오픈해야 합니다. 교역들도 성경 어떻게 읽고 있는지 기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성도들과. 하등 그것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왜 숨기죠? 안 하니까. 왜 숨기냐는 말이에요. 왜 선을 그어서 나누냐는 말이에요. 뭐 레위인과?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몇 규빗 거리를 두고? 그거와 같은 말인가요? 그래서 목사는 설교하니까 다 용납이 됩니까 여러분? 아닙니다. 똑같이 몸부림 쳐야 되고 똑같이 예수님 믿어야 되고 똑같이 엎드려 기도하려면 애쓰고 권면하고. 저도 아픕니다 여러분. 저도 몸이 아프면 드러누워야 되고 저도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야 되는 인간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나. 오늘 말씀 그대로 보세요. 내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이방인들 보고.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복음 가졌으니까. 그런데 하는 짓은 밤새 은밀한 무덤 사이에 앉아서 돼지고기 먹고 술 먹고.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요즘 청년들의 삶이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문제가 온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맞아요. 세상이 힘들어서 정말 세상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오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동안 우리는 정직하게 신앙생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열매 아닌가요? 위선인 거죠. 교회 다니는 거. 다 위선이었던 거죠. 진짜 정말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있었나요? 그러니 정말 제대로 된 거룩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진정한 거룩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게 없기 때문에 문제가 왔을 때 은혜를 구하지 않더라고요, 오직 예수가 아니더라고요. 진정한 거룩은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고 가까이 오지마라고 하지 않겠죠. 진정한 거룩은 그들을 가까이 오라고 하겠죠. 거룩하신 주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저 불쌍하고 병든 영혼들 죄악 속에 있는 영혼들 빨리 와, 내가 모시고 있는 하나님께 가까이 와 그럼 너희가 살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이스라엘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 심판의 목적_이사야65:6-10

 

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와 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9.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 10. 샤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_이사야65:6-10

 

6절, 7절에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위선적인 신앙생활. 다 기록하고 계십니다. 전부 다 셈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하나님은 분명히 성막에서 지성소에서 예배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뭐에요? 아이 하나님 쪼잔하시네 산에서 예배하면 안 돼? 벽돌 위에서 제사하면 안 돼? 이 말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지금. 그게 뭐에요 지금? 꼭 예수님 믿어야 구원 받아? 이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성경만 구원의 길이 있어? 이 말하고 똑같은 거잖아요. 점차 그런 것들이 우리 안에 잠식되어서 우리 신앙이 악순환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진리가 다 깨지는 것입니다. 사라지고. 계속 그런 식으로 갑니다. 한국 기독교가. 예수만이 길이냐? 아닐 수도 있다. 논리는 엄청 대단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꼭 예수님만 믿도록 구원 받도록 하셨겠냐? 다른 것으로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아니냐? 이렇게 신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맞는 말 같죠? 하나님 다 하실 수 있잖아요. 예수님 아니고도 구원 받게 하실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이런 논리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 그래서 다원주의로 가는 것입니다. 종교들도.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이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야 여호와 야훼이신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믿을 소망이 다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는데. 우리나라에 법이 없는데 정직하게 산 사람들에게 소망이 없잖아요. 법이 없으면. 같이 나쁜 짓 하지. 같이 못된 짓 하지. 남들 도둑질하고 나쁜 짓 할 때 법이라는 것이 없다면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억울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는다면 예수 믿는 사람,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겠죠.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평생을 살면서 저희와 비교했을 때는 많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두세 가지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다 보응하셨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 아시죠? 노년에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해서 왕궁에서 쫓겨나고. 다윗은 그렇게 쫓겨 갔을 때 알았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나를 심판하시구나. 그래서 충분히 실력이 있었음에도 그것에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습니다. 제가 인과응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게 없다면 우리 인생은 구원 받을 길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법이 없으면 사람들이 바르게 살 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다면 심판의 하나님, 심판주이신 하나님, 공의가 없어진다면 우리 진짜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헤아리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저도 이 부분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심판하시는 목적이 있겠잖아요? 그게 8-10절에 나와 있습니다.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와 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9.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여러분 야곱과 유다는 대표적으로 불신앙 하는 사람들이었잖아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는데 거기서 기업을 얻을 자를 낸다고 합니다.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 여러분 무슨 말이에요? 아골 골짜기 같은 곳, 샤론 같은 곳. 거기는 다 저주 받은 곳의 상징이잖아요. 아골 골짜기. 예수님이 아골 골짜기 빈들에도 우리는 가야 된다고 그러는데 다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양 떼가 있고 소 떼가 있고 나를 찾는 내 백성의 소유가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0. 샤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_이사야65:8-10

 

심판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거라는 거. 심판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도록 하시는 것이 심판의 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맞겠잖아요. 예를 들어서 학교 다닐 때 나쁜 짓을 하는 학생들을 내버려 둡니다. 내버려 두면 더 나빠지고 더 나빠지고 더 나빠집니다. 그 친구들을 불러다가 법적으로 너희들 이런 죄를 지으면 문제가 있어라고 이야기해줘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새롭게 살라고. 그러면 죄 속에 악순환 속에 있다가 이게 죄인 줄 모르고 계속 더 큰 죄 짓고 더 큰 죄 짓고 있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구나, 이게 죄구나 깨달으면 아, 죄 지으면 안 돼지 깨닫고 돌아오면 사는 것입니다. 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하도록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삭개오 같이 악한 사람, 수가성 여인. 요즘 같은 수가성의 여인은 살지도 못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끝장 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 있잖아요, 상처 많잖아요. 그런데 끝장내지 않으셨다니까요. 그러면서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 한 번 보시죠.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성경적으로 고증을 잘한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채찍에 보면 쇠인지 납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들을 갈고리처럼 다 걸어놨습니다. 가죽 줄에다가. 탁 때리면 살에 다 박힙니다. 그걸 쫙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살점들이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그 당시 십자가 틀에 박힌 사람들에게 쓰는 채찍이었습니다. 채찍이 종류가 다 달랐습니다. 예수님 그거 맞으셨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고증을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왜 맞으셨어요? 예수님이 죄 지으셨나요? 예수님이 부인이 다섯 명이셨나요? 예수님이 세금 거둬서 사람들 폭행하고 폭력하고 하셨나요? 다 삭개오 같은 사람, 수가성 여인 같은 사람 구원 하시려고, 심판에서 건지시려고. 그걸 아셔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기업을 다시 물려받는 존재가 되도록, 내 백성이 되도록.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도록. 심판은 그게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심판을 겪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면 하나님 앞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문제가 왔을 때, 실망스러운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뭐라고 했어요? 심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 행운이라는 우상, 운명이라는 우상_이사야65:11-16

 

11.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잊어버렸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님께 가식적으로라도 예배를 드렸던 이스라엘이 겉으로라도 예배를 드렸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진노하시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버려버리고 보세요. 갓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갓과 므니는 그 당시 이교도의 제사였는데 뭐냐면 행운을 기원하는 이교도의 제사입니다. 행운, 행운, 운명. 행운이 찾아오게 하는 제사가 갓이고 므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고 하나님 앞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아예 하나님을 버려버렸습니다. 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하나님이 칼에 붙이신다고 합니다. 다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다 죽이신데요.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4절부터 보면 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자는 즐겁고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갓에게 상을 베풀고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그런 사람들은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당연하죠. 15절에 보면 15. 또 너희가 남겨 놓은 이름은 내가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세상의 저줏거리가 된데요. 저줏거리.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리라 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_이사야65:11-16

 

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드는 우상이 진짜 강력한 우상이었는데 그게 바로 행운이라는 우상이었고 운명이라는 우상이었습니다. 그게 갓이고 므니입니다. 행운, 행운. 행운을 바라는 마음. 우리 청년들 마음속에 다 가지고 계시죠? 행운. 내 인생도 주식이라도 뛰어가지고 복권이라도 사가지고 남자를 잘 만나고 여자를 잘 만나서 행운이 오지 않을까. 행운을 바라는 마음. 잘 되고 싶고 멋지고 싶고 뛰어나고 싶은 마음 성공하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행운. 행운은 인간의 타락한 마음입니다. 참 어리석지만 그런 마음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포장하게 만들고 가식적으로 만들고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점술을 찾게 만들고. 그러는 동안 우리 영혼은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 행운입니다. 예배하지 못하게 만들고 공부하지 못하게 만들고 진리를 탐구하지 못하게 만들고. 머리는 텅텅 비게 만듭니다. 책 안 읽어요. 왜요? 행운에 빠져 있으니까. 행운. 여러분 죄는 거짓말을 말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도 죄지만 성경에서 진짜 죄는 행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연예인들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화려한 삶을 따라하고 싶고.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해요? 가짜 명품. 가짜 명품을 입는 게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심리가 있는 것입니다. 쪽팔리고 창피하고. 여러분 옷은 깨끗하게 입으면 됩니다. 수건을 한 달 동안 안 빨고 쓰지 마시고. 깨끗하게 다림질 잘 해서 입고 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수준에 맞춰서.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절대 만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행운이라는 것들이.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까요? 그 행운을 쫓아가고 행운이라는 우상을 섬기는데 뭐가 사라지냐면 주님을 향한 상한 심령, 통곡, 회개, 뜨거운 기도, 예배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금 그럽니다. 여러분. 주일날 오전예배 드리고 오후에 쇼핑몰 가서 사진 찍어서 올리는 시대입니다. 지금이. 오전 예배드리고 어디 유명한 데 가서 거기서 사진 찍고 맛있는 음식 먹고 커피숍에 가서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는 시대입니다. 예수 믿는 청년들이. 그게 우리의 주일인가요? 그게 우리의 예배인가요? 행운.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해요? 16절에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의 복의 근원이십니다. 맹세를 해도 진리의 하나님께 맹세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기뻐하신데요. 저는 청년들을 다시 깨우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청년들이 상처 받을까봐 이런 말을 잘 못했습니다. 저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까 제가 목회를 잘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예배 안 드려도 괜찮아, 힘들지. 직장이 그런데 어떻게, 예배 안 드려도 돼. 성경 못 읽어? 괜찮아, 괜찮아 이랬습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 같습니다. 너 왜 너에게 맡겨진 청년들 그런 식으로 신앙교육 했어. 여기 결혼하신 30-40대 아이 키우랴, 가정 살림하랴. 진짜 힘든 시대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리한테 핑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이 키우니까 당연히 예배 안 드려도 돼. 아이 키우니까 당연히 기도 안 해도 돼 이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의 어떤 합리적인 것입니다. 계산적인 것입니다. 이야기 들어보면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똑똑합니다. 그런데 예배는 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처럼 뒤에서 이방 종교의 제사를 드리는데 계속  뒤에서 행운을 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행운을 계속 쫓는 것입니다. 정말 이중적입니다. 그 결과가 어떨 것 같으세요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교회 다니니까? 주일날 예배 왔다 가면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데요.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하셔서 뜨겁게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데요. 맞아요 청년들이 바쁘고, 힘들고. 아이 키우고 뭐하고 뭐하고 사업하고. 그러다 장례식입니다 여러분. 바빠요 힘들고. 제가 영상 하나 보여드릴까요? 불과 20년 전에 우리 청년들이 어떻게 예배했는지. 긴 영상인데 얼마나 청년들이 같이 기도하고 예배했는지 한번 보세요(경배와 찬양). 그냥 뭐가 우리에게 문제일까? 우리는 과연 복음을 가진 사람인가? 저는 계속 퀘스천입니다. 복음이 뭐지? 복음이라는 어떤 표어를 가지고 그동안 우리는 살아온 게 아닌가? 정말 우리는 하나님을 복음이라고 생각하고 찾고 있는가? 간절히 바라고 의지하고 있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왜 실망하고 있냐면 지금. 행운을 쫓았기 때문에 실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고 왜 지금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실망이라는 것에 빠져 있냐면, 낙심에 빠져 있고, 실족해 있냐면 그동안 우리가 정직하게 신앙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Ⅲ. 실망을 넘어 소망으로_이사야65:17-25, 골로새서3:1-25, 히브리서12:15-17, 28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실망이 다시는 거기 없다는 것입니다. 뭐에요? 영적인 충만함. 영적인 충만함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기 때문에 그 영적인 충만함으로 세상을 능히 승리하고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에 이런 악순환에 빠져 버리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예배할 때 우리를 기뻐하신데요. 우리보고 쁄라라 헵시바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내 가정을 기뻐하시고 우리 교회를 기뻐하신데요. 하나님이 나의 백성을 기뻐하신데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 줄 아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인생?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겠죠. 그러니 실망을 넘어 소망으로 가려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가야 돼요. 여러분 인생에 실망들이 소망이 되려면 악순환이 선순환이 되려면 우리는 다시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시 뜨겁게 예배하고 찬양하고 무엇보다도 내 영혼이 우상에게서 행운에게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장로님, 권사님 우리 그렇게 기도하고 다시 우리의 옛 신앙을 회복해야 되지 않을까요? 정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열심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복음 가지고 열심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열심이 복음이 아니래요.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복음이 아니래요. 그런가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열심히 예수 믿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기도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상합니다. 너무 아이러니 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 어떻게 복음을 가졌는데 기도가 사라지지. 뜨거운 열정들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답은 하나님인데 내가 마치 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23절에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우리 기도하는 게 헛돼요?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내서 예배하는 게 헛된가요? 우리가 평일 날 우리 직장에서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게 헛된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재난당하지 않고 우리의 후손을 복되게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우리의 후손이 복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수고가 헛되지 않냐?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뭘 죽이라는 거예요?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다 행운입니다. 행운이라는 이름 아래 있는 것들입니다. 저도 개척해서 교회 재정이 어렵다고 할 때 무슨 마음이 드냐면 복권이나 한 번 사볼까? 하나님이 혹시. 저도 그런 상상을. 얼마나 저도 죄인인지. 1등 20억 되면 세금 내고 얼마 남아서 교회 헌금을 이렇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행운입니다. 그 시간에 와서 엎드려 기도해라 오목사야. 하나님께서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정신차리고. 돈은 때가 되면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실 거야. 그런데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이런 행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행운 안에 뭐가 있냐? 음란. 여러분 무덤 사이에서 밤새 돼지고기 먹고 술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음란했는지. 숨어서 무덤 사이에서. 왜 무덤까지 갔겠어요 여러분. 왜 숨어서 합니까? 왜 떳떳하지 못합니까? 그것만 있어요? 8절에 보니까.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똑같은 것입니다. 쾌락이나 남을 비방하는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지식까지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육 받아서 지식까지.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든 인류를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_골로새서3:1-17 엄청납니다. 히브리서는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쓴 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더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한 그릇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 행운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해버린다는 말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_히브리서12:15-17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_히브리서12:28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고 합니다. 그게 은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살피라는 것입니다. 살피라는 말은 무슨 말이죠?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주일날 모여서 예배하는 이 시간에 살피는 시간이 되잖아요. 그냥 묵상이 멋있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 성경 3장 읽었어 자랑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 시간이 살피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위선에 빠진 이유는 이런 살피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회개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늘 가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소그룹에서는 이런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어렵고 힘든 일을 나누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도해주고 축복해주고 심방해주고. 교회 성도들은 그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예수 안에서 서로 이제는 누구나 다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얻어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가까이 하면 할수록 실망한다고 합니다. 연예인이든 누구든. 내 자신도. 오승주 목사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실망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실망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약점이 있고 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뭐라고 그래요?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만이 소망이세요. 저는 저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라고 믿고 사역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은혜 받고 있고 저도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아야 되는데 그게 뭘까?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실망. 우리 인생에 수많은 실망 이게 소망으로 바뀌는 것은 예수 이름뿐이라는 것을 여러분 아시길 바랍니다. 삶의 주관자 앞에 우리가 다시 엎드릴 때. 우리는 다시 소망이라는 것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사야서의 마지막 소망의 메시지들은 정말 엄청난 메시지들입니다. 이 본문 자체가. 제 설교가 엄청난 게 아니고. 하나님 지금 두 팔 벌려서 나 여기 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팔 벌려서 지금도 나 여기 있다. 하나님께 심판 받을 거 받고 진노 받을 거 받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잖아요. 악순환에서 벗어나서 선순환으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사는 게 맞잖아요. 그러려면 우리 다시 회복해야 될게 뭐에요? 저는 기도라고 생각해요.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가야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가야 여러분의 모든 일상에 행운이 가져다주는 실망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운 안에는 실망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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