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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1-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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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기도할 수 있다면
본 문 : 이사야 63:15-64:12

 

 오승주 목사

 

Ⅰ. 신앙은 명사의 삶이 아닌 동사의 삶

 

기도할 수 없다면 하루도 살지 못하는 게 기독교인입니다. 그리스도인, 크리스천들은 기도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고 살고 계신다면 그건 크리스천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하루도 예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가 살 수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부패하고 죄악 속에 멸망할 자의 삶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라는 표현으로 자기의 어려움을 두고 한 번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육체의 가시. 많은 신학자들이 그게 뭐 안질일 것이다, 아니면 간질일 것이다,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육체의 가시다.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육체의 가시 좀 해결해주세요. 해결해주세요. 그렇게 육체의 가시로 인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해결해주시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바울은 그 기도를 더 이상 하지도 않았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면서 뭘 깨달았죠? 하나님의 역사하심, 바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는 그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바울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육체의 가시로 인해서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이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신 것이고 그 기도를 통해서 바울은 위대한 사역들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바울을 기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조건을 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사랑 받으려면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성경의 하나님을 많이 오해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형편이 좋거나 아니거나 지식이 많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우리 모두를 다 부르셨고 누구나 다 똑같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 같은 세리장. 여러분 삭개오가 세리장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가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요즘으로 말하면 약간 조폭 같은 그런 이미지입니다. 거기에 장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수가성 여인. 요즘으로 말해도 그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되니까 얼마나 음란하고 타락한 여인이었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들에게도 예수님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말은 지금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갈 수 있는 모두에게 다 똑같이 주어진 기회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지만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저 사람만 사랑하시지? 왜 하나님은 저 사람만 축복하시는 거 같고 하나님은 왜 저 사람에게만 응답하시는 거 같지? 라고 여러분이 생각하신다면 엄청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신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되고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지만 그 구원에 동참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냐? 기도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잖아요. 제가 공평하게 다 사랑합니다. 성도를 공평하게 사랑해야 하는 게 목사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기도제목을 말해주시고 목사님 도와달라고 가까이하시는 분들을 저는 그 분들을 더 기도할 수밖에 없겠죠. 이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편애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의 이름을 두고 매일 기도하고 있지만.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 그래서 삭개오 같은 사람, 사마리아 여인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가까이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자존심, 수치심, 내 어떤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삭개오가 세리장이라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직업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다면 그는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조건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다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큰 방해 세 가지에 대해서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낙심입니다. 낙심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삶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낙심. 여러분 이 낙심은 어쩌면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립니다. 저도 낙심이 된 적이 몇 번 있는데 낙심이 저에게 오니까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이 세상에 필요 없는가봐, 나는 우리 집에서도 필요 없는가봐. 그래서 사람 마음에 죽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나 없어지면 다 잘 살겠지, 행복하겠지 이런 마음이 듭니다. 낙심이 얼마나 무섭냐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낙심된 내 상태라 할지라도 우리는 예배를 와야 되잖아요, 좋아서 오기도 하지만 억지로라도 와야 하잖아요. 목사니까, 성도니까. 그래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공동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는 거짓으로 위장된 잘못된 평안입니다.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 남편이 나한테 잘해주고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경제적으로, 자녀들도 문제없고 너무 잘 되고 내 삶이 이렇게 좋을 때가 있을까. 거짓으로 위장된 잘못된 평안.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절실하고 강력하게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거짓된 평안이.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뭘 경험했죠? 엄청 뜨겁게 기도해서 다윗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근동 지방을 다 정복하고 강력한, 역사상 다윗과 비교할만한 왕이 없을 정도로. 현대 사회까지 넘어와서도. 다윗은 존경 받고 사랑 받고 엄청난 강력한 왕이 되었는데 다윗이 뭘 놓쳤죠? 우리 이제 행복해, 강력한 나라의 왕이 됐어, 뭐하고 살지? 이럴 때 찾아온 것이 범죄였고 또 하나는 자기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그 때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이 내 안에 없어서. 다윗은 그 뒤로는 거의 매일 같이 내 영혼의 궁핍함, 내 영혼의 가난함을 두고 성전 앞에 가서 매일 같이 기도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아들들이, 압살롬이 그렇게 될 줄 다윗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부강한 나라의 재산을 자식들에게만 물려줘도 싸울 일이 없을 텐데. 우리는 거짓으로 위장된 잘못된 평안에 속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세 번째는 나태입니다. 게으름. 마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는 게으름입니다. 성경에는 계속해서 게으름에 대해서 뭐라고 하죠?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잠언을 읽어도 그렇고 모든 성경에 게으름에 대해서 뭐라고 하죠?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게으름에 대해서 나태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습관들. 여러분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게으름은 잠을 많이 자는 게으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타성에 젖은 습관들, 목회를 한 30년 하다보니까 이제는 익숙해져서 하는 그 목회. 그래서 설교를 하도 많이 했더니 이제 설교 준비를 하지 않고 엎드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그런 목회자들. 타성에 젖어서 하는 그런 습관적인 설교들. 그런데 여러분도 마찬가지잖아요. 성도들도. 타성에 젖은 것들. 내일하자, 내일하자. 안 해도 되는 것들. 성경을 10독정도 읽고 나면 다 아는데, 성경 넘길 때마다 다 아는 건데 대충 읽는 것들. 그것을 영적인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태. 그게 우리 영혼을 마귀가 뺏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가 기도를 못하고 합니다. 절실하고 간절하게. 여러분 이 세 가지를 늘 주의하고 사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명사의 삶이 아니라 동사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전이 명사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꿈이 명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후진국들은 꿈이 명사라고 합니다. 나 대통령 돼야지, 나 국회의원 돼야지, 나 의사 돼야지. 꿈이 명사입니다. 나 부자 돼야지, 건물주 돼야지. 나라가 엉망입니다. 그런데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믿음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꿈이 다 동사입니다. 내가 왜 의사가 되냐는 것입니다. 의사가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왜 변호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내가 왜 목사가 되냐는 것입니다. 목사가 명사로써의 꿈이 아니라.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이렇게 되다보니까 정말 많은 우리 아이들이 명사의 꿈을 쫒다 보니까 낙심도 크고 자살도 제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동사의 삶이 아닙니다. 행복은 동사에서 오는 것인데. 주님과 동행하는 것인데. 신앙도 그렇잖아요. 명사가 아닙니다. 야, 집만 사면 되. 다 명사의 삶입니다. 우리나라의 삶은. 집 사면 행복합니까? 자식 낳고 나면 행복합니까? 대기업 취직하면 행복합니까? 여러분? 그러니 상실감이 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저는 왜 우리나라가 자살 율이 세계 1위인가? 도대체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왜 이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생을 그냥 마감하는가? 극단적인가? 너무 극단적입니다. 모 아니면 도입니다. 했다가 안 되면 포기해버립니다. 신앙도 그렇게 하는 거 아시죠? 막 기도했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에이 하나님 안 계셔. 우리나라입니다. 다 명사의 삶을 쫓아서 그렇습니다. 신앙은 동사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노력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 돈 많이 모아서 취직 잘 해서 시집 장가가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결혼해서 하나하나 모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동행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목적을 위한 명사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신앙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명사가 아닌데. 그런 분들은 주로 기도가 사라집니다. 신앙의 목적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그게 이루어지거나 혹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주님과 관계도 끊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신앙 생활하니까. 주님과 교제 하는 게 목적이어야 되는데 주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되잖아요. 우리가 살아서 이 땅에 사는 거 자체가 목적이잖아요. 제가 저희 집에 있는 거 자체가 자녀들에게는 아빠가 계시는구나. 남편이 있는구나. 그 자체가 목적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명사, 어떤 특별한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계속하시다보면 혹시 그 목적이 성취가 되면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뒤로 신앙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병이 나으면 내가 예수님 믿겠다 이런 식 인거잖아요. 병 안 나으면 안 믿으실 거예요? 지옥 가실 거예요? 그런 잘못된 목회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이 병만 나으면, 이 가난 문제만 해결하면 제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님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단 한 번도 성경에서 그런 것을 바란 적이 없으십니다. 병이 있든 없든. 가난하든 부자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지 육신적으로 잘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많으시죠? 어려운 시대잖아요. 그 어려움이 신앙생활에 정말 좋지 않은 건가요? 저는 성경을 보거나 역사를 보거나 큰 그림으로 볼 때 바울이 고백한 육체의 가시가 결코 바울에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은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어려움. 만약 여러분 자녀가 그냥 부모님 뜻대로, 시키는 대로 산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거 같으세요? 아니요. 때로는 아이가 부모님 말도 안 듣고 방황도 해야 합니다. 물론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러면 안 되지만. 맨날 엄마, 아빠 말만 들으면 엄마, 아빠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엄마 뜻대로, 아빠 뜻대로 살게. 그럼 아이들은 그냥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큰 인물들은 나쁜 의미로 반항이 아니라 엄마, 아빠에게서 독립합니다. 도전하고, 경험하고. 그것을 또 좋은 부모님들은 든든하게 밀어주고 서포터 해주고. 우리 자녀들, 우리 부모가 잘 키울 수 있나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아이들 인생에 고생이 있다면 아이들은 인생의 고생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고 그 기도로 더 멋진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들의 고생을 없애버립니다. 요즘은 물질로, 돈으로. 다 돈으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밤새 주님을 찾고 의지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와달라고 부르짖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문제만 와도 포기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뭐라고 고백했냐면 이 육체의 가시를 뽑아버리면 난 교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 그냥 두세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그냥 안고 간 것입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한 번은 기도했지만 그 해결만이 응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그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더욱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도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Ⅱ. 기도할 수 있다면

 

- 포기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사야의 기도_이사야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_이사야63:15

 

이사야 62장에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자기들이 똑똑한 척 다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우리 민족이 이런 민족이야 라고 했고 힘 있는 거 자랑하고 그러다가 결과적으로 바벨론에 포로가 되니까 포기해버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지난주까지. 포기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이렇게 진짜 많이 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자녀야 이러면서 조금만 우리 삶이 잘 되고 잘 풀리면 그래 맞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지 이러다가 자랑하고 교만하다가 갑자기 우리 삶에 위기가 오면 포기해버립니다. 그 위기가 테스트인줄도 모르고. 낙심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착각을 많이 하냐면 왜 이런 문제가 온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가 우상 섬긴 것, 죄 지은 것을 이스라엘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포로가 되게 하셨냐고 하나님께 따지면서 자기들이 죄 지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인간의 죄성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범죄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럽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못한 것만 이야기를 합니다. 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과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장로님들과 목사님하고 파가 갈려서 싸우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을 취재하는 영상에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로들이 말이야, 이러면서 목사가 쫌 실수해도 이해해주고 넓은 아량으로 그러면서 장로님들을 고소했다고 합니다. 교만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꼭 그런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뭐죠? 정말 기도의 사람인가요? 정말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사람의 말과 언행인가요?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낙심하고 포기할 때 오늘 본문에 기도했습니다. 정말 기도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늘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은 세상의 환경과 상황으로 주님께 나아감을, 기도함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다 망해도 구원 받은 사람은,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박성업이라는 사람이 올해 12월에 전쟁이 난다, 백신은 666이다, 백신 안 맞는 사람들 다 모여라 이렇게 하는데 여러분 진짜 쳐다도 보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이 진짜 사이비 중에 사이비입니다. 12월에 전쟁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신 안 맞은 사람들끼리 모이라고 하면서 특별하게 막 자기들끼리 깨끗하고 자기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다는 식으로. 백신 맞은 것을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걔가 하는 게 뭔지 아세요? 커뮤니티에 들어오려면 주민등록증을 카피해서 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백신이 666이면 주민등록증도 666인 것입니다. 우리 신분을 국가에서 다 관리하는 거 아니에요? 국가의 통제 받으려고 주민등록증 만드는 거 아니에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월에 전쟁이 나고 뭐가 나고 뭐가 나고. 이러면서 사람들 현혹해서 중요한 것은 돈을 받습니다. 사이비입니다. 여러분 조심하셔야 합니다. 설사 12월에 전쟁이 나고 진짜 종말이 오고 심판의 때가 시작이 되고 예수님이 당장 내일 모레 재림주로 오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늘 똑같이 구원을 소망하고 기도하고. 아닌가요? 그게 건강한 신앙입니다. 내일 예수님 오시니까 오늘 우리도 공동체 3장씩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 오시니까 갑자기 6장 읽고 이러지 마세요. 주님이 다 아십니다. 어제까지 3장 읽은 거. 물론 안 읽는 분들은 예수님 내일 오시면 오늘이라도 몰아서 읽으셔야 합니다. 힘들겠죠. 이사야가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주시느 것이 있는데 그게 시간입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일정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 차이가 납니다. 그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것이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조금 더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게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용했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백성이 죄악에 빠져 있는 게 가슴 아파서 눈물로 기도했지만 제자들은 그때 잠을 잤습니다.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똑같은 시간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잡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어떤 사람은 주님 앞에 나아가서 소망을 찾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문제를 만나면 어떤 사람은 죽으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서 골방으로 갑니다. 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이 보는 것과 경험한 것, 이사야가 보는 것과 경험한 게 다른가요? 똑같습니다. 이사야도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을 더 겪었습니다. 똑같이 환난을 겪고 똑같이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말세 때 똑같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코로나가 하나님 백성만 피해가나요? 죄가 유혹이 하나님 백성만 피해가나요? 우리는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경험을 합니다. 우리도 똑같이 아이들을 키워야 되고 똑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경제문제 똑같이 당해야 합니다. 나라가 IMF면 우리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만 마치. 그게 사이비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똑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른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들과 다른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완전 다릅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이 조금 이상합니다. 뭐라고 기록되어 있냐면

 

- 17절의 이상한 기도 내용_이사야63:17-18, 로마서1:28, 창세기17:8, 시편94:14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_이사야63:17-18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읽으면 마치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고 경외하지 않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탓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원어를 살펴보고 17절 구절만 가지고 이번 주 내내 고민했습니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태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그런 원망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서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죄를 짓게 만드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죄인을 그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을 보니까.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_로마서1:28 

 

그런 우리가 죄로 인해서 본성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두고 이사야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왜 우리를 그냥 두십니까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17절 하반 절에 보니까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여기 주의 기업과 지파는 창세기 17:8, 시편 94:14을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구원 받은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_창세기17:8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_시편94:14

 

그러니까 지금 이사야가 뭘 이야기하고 있냐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완고한 마음을 줘서 버리셨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범죄 해서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기도하고 있는데 범죄 해서 떠난 상태가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에게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기도하는 것은 언제냐면 약 100년 전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기 전. 놀랍죠 여러분. 지금 이사야가 100년 후를 내다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게 기록된 것은 B.C.721년에서 680년경이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사야 당시로부터 100년 후인 B.C.586년에 있었습니다. 지금무슨 말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가 된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절망 속에 있다는 것을 이사야는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이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이 표현은 이들이 죄로 인해서 완고하게 되었는데 이들을 다시 하나님의 기업으로 지파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니까 이사야가 없는 상태에서 그 일이 벌어지잖아요. 지금 여러분 이스라엘은 굉장히 잘 나가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육신적으로 볼 때는. 그게 너무 안타까운 데 하나님 이들의 마음을 왜 완고하게 하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십니까 라고 100년 뒤의 일을 믿음으로 예언을 받았으니까 그 예언을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겠죠? 지금 한국교회가 잘 나가는 거 같고 저와 여러분이 예배  드리고 있으니까 신앙생활이 괜찮은 거 같지만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많은 죄를 짓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정말 믿는다면 이것을 안타까워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는 그런 이사야의 기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의 구원을 소망했으면 말이에요. 그런 이들의 삶은 주의 다스리심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도다 라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반영한 구절인데 이 비참한 현실을 이사야는 육신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지금 이스라엘은 잘 나가고 있습니다. 100년 전이니까.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의 우상을 섬기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겉으로는 이스라엘이 번영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왜 이사야의 기도 속에는 저들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뭘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경건한, 거룩한 이스라엘이라면 그들의 민족적인 특징인 하나님의 백성 됨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존재 목적을 다 상실하고. 그러니까 겉으로만 예수 믿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저들 안에 하나님을 향한 어떤 마음, 중심이 다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사야는 알고 오늘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사야 기도의 핵심이 64장 5-7절에 있습니다. 

 

- 이사야 기도의 핵심_이사야64:5-9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_이사야64:5-9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_이사야64:5

 

저는 이게 진짜 두렵습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이 저보고 오목사 구원의 확신이 없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진짜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나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이사야가 지금 그런 심정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 가실 수 있겠습니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_이사야64:6

 

희한하게 몰려갑니다. 죄는 우리를 막 몰아서 갑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_이사야64:7

 

이사야가 보는 이스라엘이 왜 멸망의 상태라고 보냐면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100년 전이지만 기도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고 거룩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감추십니다. 기도하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감추십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죄악 중에 있는 자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엄청 무섭죠. 그래서 오늘 이사야가 뭐라고 기도 하냐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8절에 보니까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의 죄악과 부끄러움 앞에서 내가 기도할 수 있겠습니다 라고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이사야는 엄청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완전히 죄악으로 타락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냐면 포기하고 낙심하고 해도 안 되네 가 정상인데 지금 이사야는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잖아요.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잖아요. 창조주이시잖아요. 그러니 저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래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가 뭐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치심 때문에 기도를 못하고 창피해서 기도를 못하고 환경 때문에 기도를 못하고 상황 때문에 기도를 못하지만. 이사야는 반대로 그런 모든 환경들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기도했습니다. 더 나아갔습니다. 그런 환경들, 수치심이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데 한국교회 기독교 신앙이 이상해졌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교회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부탁해야 하는데 이제 교회는 이미 밖에서부터 수준 높은 수준이 돼서 등록해야 하는 교회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그렇게 쳐다보니까. 뭐야 쟤, 쟤 영적 문제 있고. 이런 게 교회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목사님께 권사님께 전도사님께 장로님께 이렇게 힘든 일이 있는데 기도해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완전히 부패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기도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게 건강하다는 증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교회 안에 자존심, 내 의, 내 힘. 기도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부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혼자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입니까? 인간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혼자 기도할 수 있다면 진짜 감사한 일이지만 아예 기도가 우리 삶에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기도부탁도 안 합니다. 왜? 자존심 상하니까. 교회가 마치 무슨 파티장, 연회장이 되었습니다. 나 직업이 뭔데요. 나 어디 직장 다니고 있는데요. 교회에서 왜 그것을 꼬치꼬치 묻죠? 저는 무슨 집에 살고 있고요, 몇 평집에 살고 차는 뭐 타고 다니고 있고. 교회에서 그걸 왜 묻죠? 도대체 왜 묻죠? 도대체 그것을 왜 묻냐고요? 그게 교회 안에서 뭐가 중요하고 그게 왜 필요한데요? 그것 때문에 엎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물질이 많아서 기도하지 못한다면 물질은  저주입니다. 물론 물질이 많아서 더 다윗처럼 기도할 수 있다면 물질은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교회 안에서 너무 좋아서 너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인간관계는 저주입니다.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분은 우리 주님 밖에 없고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실 분이 계십니까? 우리 가정을 살려주고 우리 자녀를 지켜주실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주님을 잃어버리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 건물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교회 성도의 숫자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우리의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고 우리의 건강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가 지옥에 가는데. 그러니 지금 이사야는 그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제하시고 좋은 직장, 좋은 차타시고 좋은 집에 사세요.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나이가 드니까 옷도 함부로 입을 수 없고. 나이가 들면 더 편한 것을 찾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으니까 보상도 받고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리면 오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주님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주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이사야는 40년 동안이나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100년 후에 있을 포로 생활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능력이 많지만 우리가 범죄하여 그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노하셨다는 것에 이사야는 가슴 아파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교만한 상태를 지속하여 살다가 백성들이 신앙에서 멀어지고 나태해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예배조차 망각해버린 무감각한 상태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래서 주님은 무감각하고 예배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에게서 얼굴을 숨기셨다. 얼굴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으신다.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가 왜 막혀있죠? 왜 성령이 우리 가정에 흘러 들어가야 되는데 막혀있죠? 뭐 때문에 막혀있죠? 기도하지 않으니까 막혀버린 것입니다. 다 막혀버렸습니다. 기도를 왜 해야 될까요? 

 

Ⅲ. 기도를 왜 해야 할까요?_이사야64:10-12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_이사야64:10-12

 

교회가 다 무너지고 있고 우리의 성전이 다 무너지고 있고 황폐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_이사야64:12

 

이사야의 기도는 예루살렘의 참상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읍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이사야는 그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인간이라는 존재는 소망을 잃어버리면 죽게 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소망이 없으면 죽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없는데 무슨 재미로 살아요? 소망이 없으면 죽게 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신앙은 더 심하죠. 내 소망이 내 능력, 내 물질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성읍 곧 예수님이 오실 예루살렘, 예배, 성전이라는 것을 이사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지금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지 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 예배가 회복되고 거룩한 성전이 황폐해버린 성읍이 회복되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거라는 것을 이사야는 안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그것을 알고 성전 재건을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회복이 되면 우리는 다 회복이 됩니다. 기도가 회복되면 다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그렇게 안 하잖아요. 하나님 우리 문제 해결해주세요 라고 계속 기도하는데 문제 해결해달라고 계속 기도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 못하니까.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니까. 이사야는 뭘 기도했냐면 본질을 두고 기도했는데 그게 거룩한 성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예배, 성전.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은 우리의 예배입니다. 우리의 기도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부탁, 제안하고 싶습니다. 가스펠 교회 다니는데 안이 우리가 지금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이사야 말씀을 다 들었는데 정말 회복해야 될 것이 있다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될까? 정말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심령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그 믿음이 회복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우리는 그런 신앙생활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안 하면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단지 예전처럼 70년대, 80년대, 90년대 과거를 회상하면서 예전처럼 다시 뜨겁게 부흥의 때를 맞이하자 라고 그렇게 기도하자 이런 말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상관없이, 미래와 상관없이.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인생을 백년을 산다하면 기도하는 시간이 며칠이나 될 거 같으세요? 100년인데 기도하는 시간이 1년도 안 된다면. 요즘 통계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이런 게 나왔습니다. 재밌습니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은 며칠이다 이런 게 다 있습니다. 진짜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게 뭔지 아세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게 핸드폰 사용하는 시간입니다. 불과 10년 전에는 그게 순위권에 없었다고 합니다. 평생 핸드폰 만지다가 죽는 시간이 몇 년이라고 합니다. 순위권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핸드폰 하고 있습니다. 저도 보면 핸드폰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습니다. 물론 핸드폰만 해? 이러면 나 지금 사역하고 있어 이러면서 나 지금 상담하고 이러면서. 와이프가 핸드폰만 한다고 뭐라고 하면. 그래서 저는 요즘 저희 집에 가면 핸드폰을 꺼내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성도님들이 누가 죽는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않으면 전화를 잘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와 있으면 시간이 됐을 때 제 시간에 전화를 해드리면 되니까. 우리는 그런데 내 인생을 내 중심으로 안 살고 남 중심으로 삽니다. 남이 전화 오면 받아야 되고. 그러지 마세요. 스케줄을 정해놓고 전화를 안 받는 게 정상입니다. 내가 밥 먹고 있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게 정상이고. 내가 가족과 예배하고 있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게 정상이고.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전화를 안 받는 게 정상입니다. 남 좋아하는 일을 자꾸 해주지 마세요.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뭘 다 빼앗기죠? 기도도 못합니다. 제가 교회 오면 꼭 본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예전에는 핸드폰을 옆에 딱 두고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다가 카톡이 옵니다. 눈 떠서 봤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주로 교회 성도님들이 성경 읽었습니다 올리는 것일 겁니다. 사람 심리가 기도가 안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목양실에 핸드폰 놔두고 본당에 내려옵니다. 핑계는 시계 봐야 되는데, 누가 중요한 전화 올까봐. 거짓말입니다. 중요한 전화 절대 안 옵니다. 한 시간 기도하는데. 여러분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제안하고 싶어요. 우리 다시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저희 교회 금요예배를 진짜 많이 바꾸고 싶습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All-Night 하고 싶습니다. 9시 예배 시작해서 새벽 2시든 3시든 진짜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 마음은. 어차피 토요일 쉬니까. 한 시간을 기도할 수 없더냐.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 보고 한 시간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한 시간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지금 이 민족이 우상과 어둠과 악한 사단이 다 장악해버린 민족을 보고도 너희가 한 시간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환경이 어려워서 기도를 못한대요, 상황이 안 좋아서 기도를 못한대요. 그래서 환경이 어려워서 상황이 어려워서 기도를 못하는데 그 기도를 안 해서 오는 하나님의 진노는 여러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우리가 얼마나 멍청해요. 환경이 어려워서 기도를 못하는데 너무 잘 나가서 기도를 못하는데 기도를 안 해서 오는 하나님의 진짜 진노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바벨론의 포로는? 이사야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려워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런데 기도를 안 해서 오는 진짜 어려움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나님께 오는 진짜 진노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네 우리가 핸드폰 한다고 기도를 안 한다, 그래서 그 중요한 핸드폰을 하니까 기도를 안 해서 기도를 안 해서 오는 진노는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한국교회에 온 이 진노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부패와 타락. 얼마나 지금  부패하고 타락했는지. 어떻게 하실 건데요? 올해 제가 장로님들 권사들에게 부탁해서 중직자 기도회를 시작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입니다. 같이 모여서 기도하자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하자고. 새가족들을 두고 기도하자고.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같이 뒤에서 기도의 배경이 되어주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선교지를 위해서 같이 기도하자고. 지난주에도 따루 목사님 교회 아이가 너무 가난해서 자살했습니다. 왜 자살하는 줄 아시죠? 네팔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야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완전 통제해버리니까. 굶어서 죽는 것입니다. 비관해서. 어떻게 할 건데요? 남 일인가요? 우리가 기도를 안 한다고요? 교호가? 복음을 아는 사람이 기도를 안 한다? 그것은 죄입니다. 진짜 죄입니다. 천국 갈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 나라와 민족과 선교지의 구원을 두고 기도를 안 한다? 그거는 진짜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니까. 오늘 이사야가 딱 한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까. 모든 수치심, 모든 환경,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기도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죄 짓는 거 알아요, 우리 민족이 죄 짓은 거 알아요 불쌍해 죽겠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당연한 건데 그래도 아버지시잖아요.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시잖아요. 아버지시잖아요. 교회는 기도의 불이 꺼지면 끝입니다. 저는 정말 이사야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에게 도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여러분. 교회 나와서 기도하기 힘드시면 홀로 기도하세요. 혼자 기도하기 진짜 어렵잖아요, 교회 나와서 기도하시고. 제가 교역자와 간사님에게 그랬습니다. 본당 평일 날 기도하러 나오시면 비밀번호 다 가르쳐드리라고. 기도하러 오세요. 기도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만 할 수 있다면 마귀가 왜 두렵겠어요. 기도를 안 하니까 믿음이 사라지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니까 두려운 거예요. 세상이, 마귀가, 상황이, 환경이. 그러나 여러분 진짜 기도하신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도움을 구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마귀가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핍박이 두렵지 않습니다. 환난이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진짜 기도하신다면. 우리 안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안이 임할 것이고 가짜 평안이 아닌 진짜 기쁨이, 찬송이, 정말 희열이 우리 안에서 쏟아 나는 것을 여러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신다고 약속하셨고 환상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기도하는 자에게 계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게 한 개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회복되기 원합니다. 여러분 시간 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루에 10분? 24시간 중에 10분. 창피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헌금만 십일조 하지 마시고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서 기도하시고 성경을 읽고. 그러면 여러분 삶이 손해 볼 거 같습니까? 시간의 십일조를 드렸으니까? 약해질 거 같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강력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 살아계시니까. 하나님 우리의 구원자이시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기도만 할 수 있다면. 오늘 말씀을 마음에 많이 담으셔야 되겠죠. 이사야의 기도가 우리 마음에 많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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