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2-01-16 주일예배

2022-01-16 주일예배.hwp
0.32MB

2022년 01월 1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왜 거룩한 백성인가?
본 문 : 이사야 62:1-12

 

 오승주 목사

 

Ⅰ. 버림받은 자, 열방의 조롱거리_이사야62:2

 

이사야서 하반절의 말씀은 단지 하나님이 너희 힘드니까 소망 가져, 너희 좀 고생하고 있으니까 희망 가져 이런 메시지가 아니라 실제 이루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실제로 성취하실 말씀, 여러분 아멘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옛날에 예배드리면서 어떤 성도님들이 목사님 설교하시거나 찬양할 때 아멘 하고 손 들고 하면 처음에는 조금 그게 거부감 같은 것들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성도들이 어디 가서 마음껏 목청 터져라 아멘 이럴 수 있겠고 어디 가서 하나님 마음껏 찬양할 수 있겠나. 예배가 그런 곳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율법적으로 성도들이 아멘 하면 거슬리니까. 사실 은혜를 다 같이 받으면 그게 거슬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이 주일이 온전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임했을 때 우리 안에 그 감동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표출을 다 하셔도 됩니다. 예배는 온 마음을 다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 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4절에 보니까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_이사야62:4

 

그 말은 버림받았다는 거잖아요. 황무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은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었는데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선민이고 거룩한 백성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하나님이 정말 함께하셨던 다윗의 왕조를 다 거쳤던 민족인데 지금은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꽁무니 쫓아다니고 앗수르의 문화 쫓아다니고 바벨론의 발전된 문화에 취해서 그거 쫓아다니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버렸으니까. 완전히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자존심도 필요 없이 완전히 황무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단지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게 그냥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망했구나 이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열방에 내세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작은 땅덩어리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 자기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영광 밖에 없는데 이제는 완전히 무슨 불신자를 쫓아다니는 그런 교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왜 버림받은 자가 되고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그들이 세상 적으로 성공하지 못해서 그런가요? 강대국들과 전쟁해서 이기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실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이 다시는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훈련하십니다. 광야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가나안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제 막 출애굽한, 노예에서 이제 막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냈으면 바로 다 패했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냥 애굽에서 노예에서 바로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40년이라는 시간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그렇게 훈련된 사람이 여호수아, 갈렙 같은.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교회가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조롱거리가 될까? 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저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을까? 역사적으로도 살펴볼게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포교활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톨릭과 기독교를 같이 보시면 안 됩니다. 종종 개신교 다니는 성도들이 아, 기독교가 타락해서 나는 가톨릭 갈 거야 이러는데 제가 볼 때 가톨릭은  구원이 없거든요. 왜냐하면 가톨릭이 포교활동을 하는데 아시아에 와서 포교활동을 할 때 뭐가 있냐면 나라에 들어가니까 제사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가 같은 데는 제사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서 한국에 말씀,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데 제사 문제가 딱 걸리니까 뭐라고 했죠? 십계명을 바꿔버렸습니다. 여러분 가톨릭 십계명과 기독교 십계명이 다른 거 아시죠? 십계명 빼버렸습니다. 그게 무슨 신앙이 있어요? 거기에 무슨 구원이 있어요? 십계명을 빼버렸다니까요. 가톨릭은 십계명을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기는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지역을 토착화를 하는데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너희 그럼 제사 지내, 너희 신 섬겨.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왜 기독교만 독선이냐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만 독선이냐는 프레임을 걸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기독교가 독선입니까? 저도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독선이라는 소리는 되게 안 좋잖아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뭘 하죠? 기독교가 뭘 했죠? 그럼 우리도 너희하고 손잡을게. 그게 다원주의입니다. 그게 WCC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하고 손잡고. 여러분 부산에서 WCC총회를 했는데 저는 그것을 봤습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어떤 거냐면 여러분 목사님, 스님, 전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와서 우리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손잡자 이러는데 거기에 목사들도 있거든요? 거기서 뭐하는 줄 아세요? 부산 벡스코에서. 무당들이 신 내림 굿 했습니다. 거기 목사가 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다원주의. 우리 손잡고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그래서 WCC하는 교회들, 그런 총회들 우리가 지금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배교가 일어난 것입니다. 밖에 더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와 버린 것입니다. 독선이 아니라 성경에 오직 주 예수만이, 그리스도만이 너희의 구원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하잖아요. 성경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뿐이에요. 교회는 뷔페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와가지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곳이 아니고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제가 그런 집을 가봅니다. 함바집. 건설 현장 가까이 가보면 항상 함바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면 메뉴가 사장님이 매 끼니마다 메뉴를 다르게 줍니다. 왜냐하면 건설 노동자들과 조인해서 건설하는 동안 식당이 임시로 차려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뷔페가 없습니다. 점심은 육개장. 저녁은 계란말이 이런 식입니다. 그냥 가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기가 그렇지만. 무슨 교회가 뷔페입니까? 입맛대로 골라서 먹게. 진리가 뷔페입니까? 그러니 종교다원주의가 독선이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은데, 그럼 우리도 같이 손잡아 줄게 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가톨릭과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개신교도. 너희 제사 지내는 거 그게 걸림돌이 돼? 그럼 십계명 빼줄게. 로마 가톨릭 십계명은 십계명이 아닙니다. 9계명입니다. 완전 다릅니다. 큰 집, 작은 집. 큰 집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리가 왜 조롱거리가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게 연합 같고 그게 타협이 좋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완전히 속까지 마음속까지 완전히 다 부패해버렸습니다. 거기에 빠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 곳에서 사역을 하거나 목사를 하고 있으면 의구심이 듭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인가? 의구심이 들면 점차 멀어집니다. 여러분 신앙도 그럴 것입니다. 왜 목사님, 성경 읽으면 독선 같고 불편하고 의구심이 들고 의심이 생깁니다. 거기서 멀어진단 말입니다. 멀어질 때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점점 떠납니다. 떠나는 것은 괜찮은데 배교까지 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그렇게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이 멀어지는 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구원은 못 받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열방의 조롱거리가 된 이유를 오늘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완전히 불순종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불순종으로 가정이 다 파괴되었습니다. 제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얼마나 흥청망청 사는지. 제가 사랑하는 동생 장로님이 계시는데 공연계에서 일을 합니다. 이번 주에 같이 식사를 했는데 장로님이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선배들, 공연계 선배들 진짜 크리스천들은 리얼 크리스천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그게 몸소 자기에게 완전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 공연업계에 직원으로 채용을 해주는데 와서 자기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여기를 복음화하자, 전도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복음 전하고 한 쪽에서 영접도 시키고. 그런데 공연 끝나면 똑같이 술 먹고 남녀 관계 문란하고. 장로님이 부끄러워가지고. 그건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전도는 하지 마세요.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다는 것입니다. 성의식, 도덕의식, 예의범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활, 삶, 일하는 거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그거는 그럴 수 있잖아요. 개인성향이고 일 못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성적인 문제 일으키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전부다 그런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다 그러겠습니다만 장로님 하시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왜 조롱거리가 되었는지, 왜 이스라엘이 버린바 되고 황무지가 되었는지 성경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진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진짜 문제가 진짜 많았습니다. 예수 믿은 지 3년 만에 신학교를 갔습니다. 제가 불신자 가정에서 예수 믿고 열정만 가지고 신학교를 갔는데 와 진짜. 해도 안 되는 벽이 딱 느껴졌습니다. 여러 가지 벽을 느꼈는데 열정만 가지고 되지 않는 벽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3년 다니다가 신학교를 갔으니까 그 문화도 어렵고 수업내용도 못 알아먹겠고. 또 신학교 동기들 지금 보니까 다 똑같은데 그때 당시에는 엄청나게 그런 열등감이 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조금 방황하고 힘들어하니까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가 너 불신자 가정이잖아, 너 배경 없잖아, 너 그 나쁜 머리 해도 안 되는거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어떤 틀이 된 것입니다. 진짜 같았습니다. 나는 안 되는구나. 해도 안 되는 거구나. 신학교에서 수업 듣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직신학, 구약학 이런 거 이야기하는데 알아먹을 일이 있습니까? 철학 수업 이런 것을 알아먹겠어요? 책 한 권 읽지 않은 제가? 그러다보니까 매일 자취방에서 수업 가기 싫으니까 뒹굴며 자기도 하고. 잠이나 자고. 그래서 영적으로 게을러지기 시작하고. 영적으로 게으르다 보니까 뭐에 무지런하죠? 세상적인 것에 부지런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여자 만나러 간다, 놀러 간다 이러면 거기에는 엄청 빠릇 빠릇, 부지런해지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죠. 그러니 당연히 조롱거리가 되는 거죠. 제 인생자체가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게으름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 왜 내가 사람들 말을 듣고 있지? 나 신학교에 배우러 왔잖아. 변화되려고 왔잖아. 왜 내가 우리 가정을 쳐다보고 내 과거를 쳐다보지?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믿음이 생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는데.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이곳에 왔는데 내가 왜 불평하고 원망하고 사람들 말을 듣고 있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실 그 때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 지어서 통장에 돈을 입금해주셨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혼자 먹고 자고 해야 되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루에 3000원짜리 밥을 세 끼만 먹어도 9000원이고 한 달이면 30만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두 달에 한 번 돈을 보내오셨는데. 15만원, 17만원 이렇게 보내오신 것입니다. 돈이 없죠. 저희 누나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학비는 다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이 집, 저 집 자취방 얻어 다니면서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토요일은 꼭 노가대를 하러갔습니다. 그게 일주일동안 밥을 먹을 수 있는 돈이 되니까. 밤에는 편의점 알바도 하고. 그런 돈으로 책도 사봐야 되고.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환경이 나는 이 정도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라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고 구원하셨는데 하나님은 나를 왜 부르셨지? 왜 나를 구원하셨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가 생각되지 않고 우리 환경이 이러니까 이거에 맞춰서 살아야 돼 이게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제가 그러다가 전도사를 한 것입니다. 사실 신학교 졸업하고 전도사 시작할 때 진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저 같은 인간이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전도사로 불러주시닉까 너무 감사하잖아요. 너무 감사해서 저는 교회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가족들이 증인입니다. 뭐든 해야 합니다. 능력은 없죠, 잘하는 거 없죠, 교회 봉고차 세차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전도사님 왜 교회 봉고차 세차를 하고 있냐고. 그거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부를 맡았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교회 부흥은 시켜야 되겠는데. 우리 아이들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긴 해야 되겠는데. 박이석 목사님께서 저보고 신학생은 빼먹지 말고 배출해 이러셨는데 뭘 어떻게 하야 되는지 모르겠었습니다. 토요일마다 예배당 청소부터 했습니다. 예배당부터 깨끗하게 했습니다. 혼자 나와서 걸렉질 하고 의자 닦고. 뒷정리하고. 그리고 아이들 학교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같이. 이 학교, 저 학교. 가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떡볶이 먹으면서 신앙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교회 안에 대학생들, 장로님 찾아갔습니다. 제가 눈치는 빠릅니다. 어? 저 장로님이 교사하면 좋겠다. 저 권사님이 청소년부 도와주면 좋겠다. 나 영상도 만질줄 모르고 찬양인도도 할 주르는데 찬양인도도 해주고 영상도 만져주고 하면 좋겠다. 이런 것을 기획했으면 좋겠다. 가서 얼마나 부탁하고 꼬시고.  장로님 저희 중고등부 교사 좀 해주세요. 안 해요. 또 갔습니다. 장로님 아니시면 안 될 거 같아요. 안 돼요, 안 해요. 또 갔습니다. 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다 오십니다. 그렇게 가서 부탁하는데. 팔짱 끼고 웃는 얼굴로. 신삥 전도사가 가서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장로님 계세요? 왜 그렇게 했냐면 진짜 잘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그냥 그렇게 한 게 아니에요. 교사들하고 주일날 저녁에 교사 기도모임을 했습니다. 아이들 왜 예배 안 왔는지, 아이들 신앙이 지금 왜 자라지 않고 있는지, 아이들 성적도 확인하고, 가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같이 기도하고. 그 주에 그런 것들이 다 소통 되면 이번 주에는 누구를 찾아가야 되겠다 나옵니다. 나오죠, 그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손잡고 위로해주고. 다 압니다. 말은 안 하지만. 네 성적이 안 좋구나 말은 안 하지만 다 파악하는 것입니다. 왜 신앙이 자라지 않는지. 그런데 제가 왜 전도사 시절 이야기를 하냐면 그때 저는 진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 은혜가 너무 좋아서. 누가 알아주냐, 누가 보냐, 안 보냐 관심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 성경에 보니까 그냥 두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복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그것을 믿습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자 성경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 가정 진짜 세상 말로 개판 5분 전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너무 가난하고 문제 많고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믿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도 책임 져 주시겠다. 네,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게 내가 가정을 위해서 어떤 사역을 하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서 어떤 메시지를 하고 복음을 어떻게 전하고 우리 엄마 아빠를 위해서 뭘 했다 이거는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사랑하는 만큼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복 주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가로막으시면 아무리 복을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말의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장로님이 사업을 옛날에 크게 하셨습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진짜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왜 어려워졌냐면 그 사업이 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세상은 막 바뀌어가잖아요, 그러면 옛날에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영광이 남아있기 때문에 갱신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가지고 가면서 장로님 태도가 어떤 태도냐면 장로니까 새벽기도 막 하시고, 목사님 불러서 회사에서 예배하고, 직원들 모아놓고 예배하고, 그것으로 그 어려움을 뚫으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예배도 가고 같이 다니고 보면서 느낄 때 이건 그 문제가 아닌데. 저 사업 컨텐츠는 이 시대와 안 맞는 것입니다. 안 맞는 사업을 계속 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성공했었으니까. 여러분 사업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살면서 굴곡이 있을 수 있죠. 여러분 그런 거 아니에요?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병이 걸릴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새벽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다가 결과적으로 사업이 무너졌습니다. 안 돼서 접었습니다. 그 뒤의 태도입니다. 교회를 등졌습니다. 아니 교회를 등지면 괜찮아,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내가 사업해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려고 사업합니까? 내가 새벽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 나한테 이러실 줄 있어요? 그러시더라고요. 아 저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았구나, 저분은 구원 못 받았구나. 끝났습니다. 그게 신앙입니까? 종교지. 진짜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입니까? 그 사업이? 그럼 갱신하셔야죠, 내려놔야죠, 과거의 영광을. 하나님 음성을 듣고 도전했어야죠. 그게 새벽기도로 풀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켜야 될 진리가 있고 바꿔야 될 것이 있는 것입니다. 변화되어야 할 게 있는 것입니다. 한빈이가 올해 7살이 되었습니다. 얘가 2살처럼 행동하고 2살 때 입에 쪽쪽 팔고 있던 장난감 빨고 있으면 생각해보세요. 예쁘나요? 화납니다. 7살이 2살 때 빨던 장난감 빨고 있으면 화납니다. 한빈아 새로 사줄게. 네가 입을 수 있는 옷 사줄게. 왜 4-5살 때 옷을 입으려고 해. 그것에 집착하고 있으면 화납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정신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신문제 있는 아이입니다. 미숙하죠, 자라지 못한 아이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러는 것입니다. 신앙은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 외의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자꾸 2000년 전에 수염 길렀으니까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수염 길러야 돼 이런 말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수염 기르면 안 됩니다. 지금은 양복 입어야 되고. 시대에 맞춰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은 더러운 것이고 세상은 안 좋은 곳이니까 우리끼리 교회에 있자 이러는데 그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빈이는 부모와 좋은 관계가 본질인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고 나는 네 아빠야. 나는 네가 6살이 되고 7살이 되고 8살이 되면 그게 맞춰서 옷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줄 거야.  네가 성장하는 거야. 네가 성숙해지는 거야. 맞죠.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장하면서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고 새로 받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자꾸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과거의 신앙에 매여 있으시면 안 됩니다. 내가 옛날에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렇게 응답 받았다 다 버리셔야 합니다. 오늘 성령이 음성을 들려주신다고 하잖아요. 말씀을 주신다고 하잖아요. 그것을 자꾸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 우리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는가?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_이사야62:2

 

Ⅱ. 왜 거룩한 백성인가?

 

- 헵시바와 쁄라라 하리니_이사야62:1-5, 열왕기하21:1, 호세아2:19-20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_이사야62:1-5

 

제가 선우 돌 예배 때 이 본문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우리 선우보고 너는 쁄라야, 헵시바야. 헵시바가 무슨 뜻인가요? 나의 모든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내 모든 기쁨이 신부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너는 나의 기쁨이야 이 뜻입니다. 쁄라는 뭐에요? 결혼한 여인을 쁄라라고 합니다. 신부를 쁄라라고 합니다. 헵시바, 쁄라가 사실 같은 말이거든요. 너는 나의 헵시바야, 쁄라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기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기뻐하리라,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리라. 어떤 것이라고 비유하시냐면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사실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여인이고, 조롱 받은 여인인데.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새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너는 쁄라라, 너는 헵시바라. 우리의 모든 과거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기쁨, 그냥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나 너하고 결혼할게. 쁄라라, 너는 결혼한 여인이야.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성도를 쁄라라 하시는 것입니다. 결혼한 여인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_열왕기하21:1

 

그의 어머니 이름이 헵시바라는 말은 헵시바는 누구의 부인이죠? 히스기야의 부인이죠. 므낫세가 누구인지. 그러니깐 이 헵시바는이런 이름입니다. 실제로 쓰임 받았던, 이스라엘의 왕비가 헵시바였습니다.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_호세아2:19-20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실제로 헵시바, 쁄라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장가 들겠다고 하십니다. 그게 지금 다 뭘 이야기하는 거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을. 그 예수님을  신랑 삼으라는 것입니다. 장가 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 너의 모든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용서해주고 너를 나의 헵시바다, 쁄라라 받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될 때 이스라엘은 시온의 의가 되고 예루살렘의 구원의 횃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될 때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신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고 예배의 목적이고 경외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리가 성가대를 하고 조직을 짜서 우리 모든 성도, 주일학교를 하고 아이들을 섬기고 봉사를 하고 그래서 우리가 예배하면서 그 예배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뭔가 착각을 해도 한참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많이 알고 배웠고 지식도 있고 바벨론에 가서 유학도 갔다 오고 가진 것도 좀 있고, 사역은 이렇게 하는 거야.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거야, 복음은 이런 거야. 신앙생활은 이런 거야.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이러니까, 상황이 이러니까 상황에 맞춰야 돼.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 변질입니다. 이스라엘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변질한 것입니다. 제일 더러운 것이 변질입니다. 여러분 와이프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 변질입니다. 제일 더러운 것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신부가 화장을 하면 예쁘죠, 몸을 파는 여인이 화장을 하면 예쁜가요? 성경에 그걸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 몸을 파는 창기가 화장을 하면 이쁘냐고요? 신부가 화장을 하면 예쁘죠. 사랑스럽고.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실 때 변질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가장 진노하셨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다니엘서에 예언하고 계십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너희는 도망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말세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고 합니다. 교회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종교통합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 강단에서 스님이 불법을 이야기하도록 교회들이 오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청파교회인지 무슨 교회인지. 깜짝 놀랐습니다. 스님이 주일날 설교하고 있더라고요. 그건 설교가 아니죠. 종교통합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을 교회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성경에 산으로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도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만 애초에 더러운 것은 더럽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곳에 그 더러운 것이 흘러 들어와서 거룩한 곳이 변질이 되는 것은 이것은 성경에 끝난 줄 알아라, 그건 끝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배교, 변질이 나오죠? 우리 가정들이 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부가 변질되고 신랑이 변질되어서 가정이 깨어집니다. 화가 납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상을 섬기는 이방은 진노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우상을 조금 섬겼는데 진노하십니까? 이제 무신론자들이 그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먼저다. 우상을 섬기는 저 민족들 잘 되는 것 같고 로마와 앗수르, 바벨론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을 먼저 심판하시느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 멸망의 가증한 것들을 섬기고 있으니. 내 신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으니 이 말입니다. 거룩한 너희를 먼저 심판할 거야. 여러분 교회에 도덕적인 소리, 목사들이 하는 옳은 소리 들으려고 교회에 오십니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강단은 도덕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살아있고 온전한 생명의 말씀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있고 성경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생명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위기인 게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멈추면 다 끝난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사화복의 주인이신 것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점차 안 하다 보니, 가까이 가지 않다보니 이제는 머리도 까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불편하고 불평스럽고 회피하고 자기 삶 사려고 다들 성막 떠나고. 앗수르로 이민가고 바벨론에 자식들 유학 보내고. 그래서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떠나면 끝이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다. 이스라엘만 끝인가요? 바벨론, 앗수르도 끝입니다. 완전 쫄딱 망했습니다.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민족을 보세요. 우상 섬기는 민족들 어떻게 되었는지.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도 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목사들이 제일 그러기 쉽습니다. 작은 관행이라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대표기도를 하면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과연 저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 대표기도를 준비했을까? 성도들 들으라고 대표기도를 준비했을까? 그런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게 죄입니다.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데요. 그런 것입니다. 목사님들 와서 설교하고 나가면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칠 수 있지만 그게 습관이 되고 관행이 되어서 목사님에게 박수치는데 왜 박수를 치지? 목사가 박수를 받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거예요. 스스로 멀어져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타협이 되기 시작하면 점차 교회는 그 본연의 빛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왜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렇게 타협했기 때문에 빛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겨서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니까 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개념이 다릅니다. 우리가 세속화되어서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에 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쉬지 못하시게 하라_이사야62:2-9, 시편128:2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62:2-9

 

6절. 왜 파수꾼 이야기를 하시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죠. 파수꾼을 세우는 것을 누가 하셨냐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 파수꾼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6-7절. 내가 파수꾼을 세어 놓을 테니까 너희는 그 안에서 여호와가 기억하는 자가 되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 지금 이 말입니다. 8-9절.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보고 기회를 줄 테니까 내가 너와 결혼해줄 테니까 내가 너를 헵시바라고 해줄 테니깐 너희는 뭐해야 하느냐? 신랑 남편만 사랑하고 온전히 경외하고 신랑이 쉬지 못하도록 너를 늘 기억하도록 신부 너는 늘 기도해야 돼. 깨어있어야 해. 신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라는 이 말은 하나님보고 일하도록 만들어 라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원래 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일에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히브리어 원어에는 하나님을 쉬지 못하도록 우리가 계속 기도하라는 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늘 쉬지 않고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 입장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에 쓰임 받으라는 것입니다.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거에 그 관심.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관심, 얼굴을 돌리시면 우린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배교하고 변질 된 신부에게 등 돌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혼해야 되는 것입니다. 버림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그럼 끝입니다. 헵시바로 쁄라로 부르셔서 그 모든 과거를 품어주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내 신부야 라고 해주셨는데. 그 신부가 결혼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돼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벽에 파수꾼을 세웠습니다. 주야로 잠잠하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서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너희들을 다시 기억하게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아,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셨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창조주셨지. 이걸 말씀을 듣고 파수꾼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삶이 힘드니까 목사님, 저 신앙 좀 쉬었다가, 교회 좀 몇 년 쉴게요. 이런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뭐라고 이야기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를 몇 년 쉰다는데. 쉬라고 말할 수도 없겠고. 교회를? 예배가 쉬는 것입니까? 예배는 보는 게 아니라 드린다는 표현을 씁니다. 예배는 이런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배는 빈 그릇 가지고 와서 주님 주신 것을 받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배 때 와서 은혜 받고 가야 돼. 하나님이 주신 것 말씀 받아 가야해. 그래서 빈 그릇 들고 와서 담아가고. 빈 그릇 든 것 담아가서 집에 계속 쌓아놓고 또 받아서 쌓아놓고.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빈 그릇 만들려면 원래 그릇 안에 있던 것들 다 집에 다 놔두고 교회에 오잖아요. 아닙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욕심, 가치관, 우리의 죄, 우리의 그릇된 생각들을 다 그릇에 담아서 하나님 앞에 처리 받는 시간이 예배가 아닌가. 예배시간 마다 처리 받는. 상한 심령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죄를 자복하고 자백하라고 합니다. 처리 받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원래 제사라는 것은 태워서 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원래 나를 태워서 드리는 게 예배입니다. 나를 태워서 드려야 하는데 나를 태워서 드리면 나는 끝나니까 그래서 어린 양을 태워서 드리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번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나를 드리는 게 사실 예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저의 아내, 저희 아들들이 아빠 쉬지 못하게 합니다. 집에 가면 아이들이 붙어서 들러붙고 와이프도 힘든 일 이야기하고 하루 종일 육아했던 거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스트레스 받은 거 이야기하고. 그렇죠. 왜요? 남편이고 아빠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까?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_시편128:1-4

 

1-3절. 축복하는 것입니다. 

4절. 신앙이 무엇인가요? 여러분 우리 복음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 훈련도 받으셨잖아요. 한때 여러분 열심히 하셨잖아요. 그럼 신앙이 무엇인가요? 저는 신앙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는. 목사 이전에 제 신앙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오늘 시편 본문에 보니깐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걷는 자래요. 결혼은 무엇인가요? 부부가 동행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인가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결혼은 똑같은 조건으로 만나서 사는 거지만 죄인인 우리를 신부 삼아서 헵시바라, 쁄라라. 하나님의 길을 가도록 그 길로 가야 복, 구원이니까. 그 길로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창녀같이 살았던 우리 인생. 우상 섬기면서.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멋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인생을 건져서 믿음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경외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거룩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이 경외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교역자, 중직자, 성도들, 자녀들도 경외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다못해 목사들도 이 경외라는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축복을 받으려면 자녀가 잘 되려면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으려면 다 뭐라고 쓰여 있냐면 경외하라고 합니다.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경외가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다 가로챕니다. 목사들이. 사람들 보는 데에서는 목사인 척 거룩한 척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은밀하게. 그건 여러분 무서워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고 했는데 그걸 안 보는 것입니다. 은밀한 죄를 얼마나 많이 짓는지.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을 훼방하는 것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가 예전에는 성령을 몰랐을 때는 성령을 훼방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용서해주셨다. 이제는 성령을 알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데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 삽비라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알고 은혜 받아가지고 하나님께 드린 재물에 대해서 성령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여러분 바울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말도 상스럽게 하고, 죄송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기쁨으로 모시고 자랑하면서 사는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런 신앙의 기쁨이 우리한테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다 사라져버린 시대입니다.

 

- 어둠의 삶을 빛의 삶으로 바꾸라_이사야62:10-11

 

10.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11.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_이사야62:10-11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둠의 삶을 빛의 삶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삶, 신부가 되기 전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길도 닦고 수축하고 돌도 제하고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상급이 있고 보응이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꾸 하나님께 복 받는다는 기도하면 복음이 아닌 거 같고 그렇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본인들은 깨끗한 척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해서 살지 않는데 그게 무슨 깨끗함인가요. 어둠에 있으면 여호와를 경외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어둠에 있는데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겠어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도록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길을 닦고 수축하고 돌을 제하고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고 합니다. 우리 아들, 딸들이 다시 회복하도록 길을 닦으라고 합니다. 이게 전도인가? 선교인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둠의 삶에서 빛의 삶으로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이게 전도입니까? 길 닦으라고 하니까 진짜 길을 닦는 전도를 말하나요? 이건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길을 닦으라고 합니다. 하나님하고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가깝게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떠났던 신랑이 다시 돌아오도록 다시 헵시바, 쁄라가 되도록 길을 닦으라는 말입니다. 이건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이게 전도를 위해서 길을 닦으라 이 말입니까? 전도를 위해서 건물 지으라 이 말인가요? 아니잖아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뭐가 있다고요? 보응이 있고 상급이 있다고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당연히 상급이 있습니다. 저도 제 아들이 기분 좋게 해주면 뭐라도 하나 더 사주고 싶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제 와이프가 너무 사랑스럽고 기쁘면 뭐라도 더 하나 해주고 싶은 게 신랑의 마음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공평은 똑같이 나누어주는 것이 공평이 아닙니다. 그건 공의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한테 더 주는 것이 공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주는 것이 진짜 공의입니다. 여러분 자꾸 남녀평등하면서 진짜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녀는 평등할 수 없습니다. 자꾸 남자들이 여자들 군대 보내자는 소리 하지 마세요. 양성평등이에요. 각자의 존재의 이유로서 평등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다르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완전 다릅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그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데.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너희가 어둠을 버리고 우상을 버리고 나를 신랑 삼으면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보응하겠다, 상급을 주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분들 상급이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똑같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 자녀들도 어둠에 있다가. 어둠이 무엇인가요. 공부 못하고 있다가 공부만 잘해도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사람이 그렇잖아요. 내 자식이 맨날 0점 맞다가 50점 맞으면 100점 맞은 거 안 부럽습니다.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0점 맞다가 50점 맞았는데. 마음은 장난감가게 통째로 사주고 싶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안 그런가요?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하나님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탕자를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0점 맞은 녀석이 30점 맞으니까 더 사랑하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늘 100점 맞은 아이는 늘 100점 맞으니깐 너가 잘하고 있잖아.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Ⅲ. 사람들은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하리라_이사야62:12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_이사야62:12

 

이방 사람들이 원래 이스라엘은 이걸로 멋있게 살아야 하는 백성이잖아요.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어디서 들었죠? 초대교회 때도 들었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비로소 초대교회를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다, 우리끼리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밖에서 우리를 보고 거룩하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거룩해,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야. 예수님이 나는 너희들이 누구인지 몰라. 나는 너희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없어. 나는 너희들의 예배를 받지 않아. 우리가 마치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가? 거룩한 백성이 될 때라야 버림받지 않는 성읍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될 때라야 교회는 세상의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될 것은 거룩입니다. 그때라야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에 복음 전파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도 하나님이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한다고 복음이 전해지나요? 가서 전도해보세요. 교회가 부흥하나? 하나님이 문 열어 주셔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셔야 돌아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도해도, 물론 우리가 전도해야합니다. 전할 자가 없는데 누가 듣겠습니까.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우리가 이 시대에 큰 도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든 주변에 환경, 상황이든 문화든. 그런데 그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게 뭘까? 성경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 마음이 드는 확신은 거룩입니다. 거룩은 뭐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세요. 우리가 거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거룩하신데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해야 될까요? 사람들이 버림받은 자라고 조롱하는 교회라면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황무지라고. 바벨론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더니 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구걸하고 있네. 버림받은 자라고 조롱하는 교회였는데 그런 자들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면 메시지를 들을까요? 뒤에서 뻔히 배교하고 변질되어서 우상 섬기는 것을 아는데, 예수 믿으세요. 누가 예수를 믿겠어요.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니, 오목사가 맨날 변질되어서 술 먹고 담배 피고 나쁜 짓하고 제가 성도들에게 가서 신앙생활 똑바로 하세요. 술 좀 끊으세요. 모를 때도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을 모를 때도 그게 역사가 있겠나요? 성령이 거기에 역사하시겠냐고요? 그게 알려지면 끝나는 거고.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교회를 보고 거룩한 백성이라. 그래서 우리는 밖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해야하고 따뜻해야 되지만 안으로는 우리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거룩한가. 거룩한가. 교회는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밖으로는 왜냐하면 우리교회가 9살이기 때문에. 9살에 맞는 옷도 입어야 되고요. 학교 갈 준비도 해야 되고요. 안 그런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의 관계는 우리가 9살이 된 만큼 성숙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7살, 1살, 2살처럼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것입니다. 칭찬하고 위로하고 이게 맞습니다. 교회는 그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진짜를 바꿔주지 않으면 오히려 그 칭찬과 위로는 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그걸 진짜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못하고 신학교 때 정신을 못 차리고 자취방에 누워 자고 있는데 사람들이 괜찮다는 것입니다. 힘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함께 하시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 괜찮아, 좀 못하면 어때. 그게 저를 죽였습니다. 완전히 게으름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목사님이 저를 만나려고 광주에서 부산까지 오셨습니다. 물론 저 만나려고 오셨겠어요. 겸사겸사 오셨겠죠. 오셔서 저 부르셔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승주야, 너 왜이래. 정신 차려. 너 이 학교 오려고 얼마나 노력했어. 너희 가족들이 얼마나 눈물로 기도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러분, 위로는 좋은 게 아닐 때가 있습니다. 괜찮아, 대충 살아도 돼. 하나님이 함께 하시잖아. 저는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무슨 말인 줄 아세요? 저는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복음이니깐 괜찮아. 정말 듣기 싫어합니다. 복음이니까 괜찮습니까? 죄 짓고 있는데, 우상 섬기고 있는데, 다른 남자 만나고 있는데? 하나님 보실 때 말이에요. 제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운동을 꼭 하라고 합니다. 40대 되면 다 그럴 것입니다. 땀 흘리는 운동을 꼭 하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병 걸린다고 합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이 힘듭니다. 여러분 운동이 쉽지 않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하던 저 같이 바쁜 사람들은 밤에 나가서 하던 뭔가 해야 합니다. 옆에서 가족들이 오목사 힘들었으니까 운동하지 말고 좀 쉬어. 좋은 말인가요? 저 죽이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를 죽이는 말입니다. 쉬어, 좀 쉬고 나중에 해. 죽이는 것입니다. 그건 위로도 아니고 칭찬도 아닙니다.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 바꿔야 합니다. 옷, 차, 집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 지켜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경외, 거룩은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우리 예배?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우리 진짜 온전한 예배인가요?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온전한 예배 아닙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신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원래 온전히 24시간 안식일입니다. 지금은 예배? 이러면 1시간 30분짜리 예배입니다. 예배인가요? 다 변질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의 날입니다. 이 날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봉사하며 섬기며. 장로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우리 중고등학교 때 주일날 예배 끝나면 사직공원, 기독교병원 가서 기타 하나들고 가서 찬양하고 전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주일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나?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나? 무엇 때문에.  계속 타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독선이라고 하니까 손도 잡고, 이것도 손잡고, 손잡고 교회 안에 멸망에 가증한 것들이 다 들어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_말라기3:16-18

 

16절. 여호와를 존중하고 경외하는 자를 그 기념책에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17절.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면.

18절에.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 당신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축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해야 지만 의인과 악인을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서 거룩해져라 이렇게 메시지 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져야 될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전도해야지, 선교해야지. 그건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이 빠져버리고 하나님이 부재한 신앙생활은 그건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신앙생활하거나. 내 지식으로 신앙생활하거나 그건 세상에 조롱거리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 우리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겠다고 합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1-30 주일예배  (0) 2022.01.30
2022-01-23 주일예배  (0) 2022.01.23
2022-01-09 주일예배  (0) 2022.01.09
2022-01-02 주일예배  (0) 2022.01.02
2021-12-26 주일예배  (0) 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