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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1-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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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23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신앙은 오늘을 사는 것
본 문 : 이사야 63:1-14

 

 오승주 목사

 

Ⅰ. 무엇이 십자가인가_마태복음16:24

 

오늘 본문은 조금 무섭고 섬뜩하고 하나님이 굉장히 두려운 그런 심판의 주님으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에돔과 보스라가 나오는데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 같은 곳, 도시이고 에돔은 그 당시에 가장 악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가장 범죄를 많이 했고 우상을 가장 많이 섬겼던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말씀이 짧은 말씀이지만 가스펠교회 성도님들, 이 설교를 듣는 모든 분들에게 참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16:2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_마태복음16:24

 

예수님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어려운 환경, 어려운 상황 이게 우리의 십자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성경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십자가 이러면 우리의 힘든 상황이 십자가다 이런 식으로 이해를 되게 많이 하는데 사실 엄청난 오해입니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 앞에 예수님이 꼭 하시는 선행되는 말씀이 뭐냐면 자기를 부인하고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항상 그 이야기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부인할 수 있지?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이게 되게 많이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목사님들 설교를 듣고 책을 보면서 자기를 부인하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제가 운동도 좋아하고 제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혼해서 저희 와이프와 가정생활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조금씩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아, 힘을 빼야 되는 거구나. 자기를 부인하다는 말은 힘을 빼는 거구나. 내 힘을 빼지 않으면 믿음이 내 인생에 세워질 수가 없는 거구나. 여러분 뭐든지 그렇잖아요. 운동도 그렇고 지식을 배우는 것도 그렇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그렇고 부부 사이도 그렇고. 힘을 빼야 얻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게 있고. 제가 신학교에 갔는데 여러분 고등학교 3년 지금으로 생각하면 진짜 어리잖아요. 고등학교 때 3년 신앙생활하고 신학교를 갔는데 얼마나 교만했는지. 제 어깨가.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전도 좀 했거든요. 훈련도 다니고 메시지도 전하고 제 친구들 영접도 많이 시키고 이러다 보니까. 엄청 교만한 상태로 부산의 신학교를 갔는데 부산 신학교 가서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살았는지. 부끄러워서 그 시절을 회상도 하기 싫습니다. 엄청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설교 시간에 신학교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제가 엄청 수치스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짜 신학교에 가서 엉망진창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을 때 제 선배들이 인도에 단기선교를 가는 것입니다. 그때 3주 정도 갔습니다. 20박 21일 이렇게 갔습니다. 인도를 어찌 저찌 가게 되었습니다. 선배들이 돈 보태주고, 비행기 값 보태주고. 이렇게 끌려간 것입니다. 엉망진창인 저를. 그때 룸메이트 하던 선배가 되게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오픈 윈도우라는 선교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 선배는 조용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였습니다. 앞에서 메시지를 강하게 하거나 이런 선배는 아니었는데 주변에 성경공부 모임도 많이 인도도 많이 인도하시고 기도회도 많이 인도하시고 실제로는 사역을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4학년 선배였는데 그 선배와 제가 룸메이트가 된 것입니다. 21일 동안 그 선배와 같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상태인지 그 선배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그 선배를 저에게 붙여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선배가 첫날 도착해서 예배드리고 둘이 대화를 하는데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승주야, 너 힘 좀 빼야 되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 힘을 빼야 하나님이 너를 사용하셔. 여러분 그게 무슨 말인지. 제가 뭐라고 항변했냐면 신학교 1학년 때니까 아니, 저는 지금 돈도 없고 집도 어렵고 머리도 나빠서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어렵고 힘이 다 빠져 있는데 낙심해 있는데 무슨 힘을 빼라고 하냐. 제가 항변했는데 그 선배가 웃었습니다. 나도 너처럼 그랬다고. 아니 진짜 그랬습니다. 빠질 힘이 있어야죠. 제가 그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낙심하고 포기하고 이렇게 살고 있었던 때인데, 지친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못 따라가겠고 수업도 어렵고. 학교에 가서 잘 안 풀리는 것이고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예상했던 대로 큰 꿈을 가지고 신학교 갔는데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갔더니 공부는 어렵지 과정을 다 거쳐야 된다고 생각하니 갑갑하지, 집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이 없지, 돈은 없지, 자취방에 뒹굴뒹굴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선배가 저보고 힘을 빼라니까 무슨 힘을 빼라는 거냐, 도대체. 그랬더니 그 선배가 문뜩 저에게 그랬습니다. 너 하나님 살아계시는 거 믿지? 그럼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신학교에 왔죠. 그럼 힘을 빼야 돼. 제가 그 선배와 20일간 룸메이트 생활을 했습니다. 인도에 가서. 거의 끝날 때쯤 그것을 조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등학교 때 복음 메시지, 전도하고 이래가지고 세계를 복음화할거야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그 선배는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책상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항상,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리고 잠을 잘 때도 TV보다가 잠 들었는데 그 선배는 항상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자더라고요. 20일 동안, 매일. 그 선배의 삶을 제가 본 거죠. 물론 그 선배가 저랑 같이 있으니까 더 그렇게 했을 수 있지만. 그런 가식적인 선배는 아니었고,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는 아니었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제가 아침에 눈 뜨면 기도소리에 잠이 깨고 그랬습니다. 저는 복음도 알고 전도도 잘 하고 그랬던 시절인데 세계복음화 할 거야 그런 시절인데 그 선배는 아침에 성경 읽고 있고 저녁에 기도하고 일기 쓰고 자는 거. 그 선배가 그랬습니다. 승주야,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았는데 힘을 빼지 못해서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거야. 그전에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저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순종해봐.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으면 순종해봐. 저는 반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선배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골에 어머니 홀로 계신다고 했습니다. 신학교에 주님의 종이 되려고 왔으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저는 반대였습니다. 똑같이 왔지만 제가 보니 저는 신학교에 와서 세계복음화 해야 되는 마음뿐이지 게으르고 신세한탄하고. 그리고 이제 그렇게 끝나고 학교에 와서 보니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성경 읽는 사람들. 그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저만 보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그 선배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는 하루에 2시간정도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될 사람이니까. 그리고 성경은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독정도 해야 되겠다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저도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기도할 시간이 없었는데 기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학교에 가서 수업 사이사이에 공간 시간, 빈 시간에 맨날 농구장에 가서 농구하고 아이들과 수다 떨고 분식집 가서 떡볶이 먹으면서 남 이야기하고 이렇게 살았었는데 그 시간에 학교 기도실에 간 것입니다. 저는 기도실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레포트 쓰고 자취방에 내려가기 전에 기도할 장소가 어디 없을까 했는데 학교에 대학교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를 들어갔습니다. 제가 거기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제가 그 찰나의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진짜 충격이 되었습니다. 거기가 낮에 채플 드리고 수업 받는 강의실 같은 곳이고 주일날에는 대학교직원들이 예배드리는 곳이고. 그날 문 열고 들어갔는데 캄캄한 대학교회 안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 각자가. 신학교지만 신학과가 아닌 친구들도 많거든요. 일반 아이들, 대학생들입니다. 제가 그날 맨 뒤 좌석에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멍 하니 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대학생들이 뭐라고 기도하냐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기도 소리가 다 들리잖아요. 세상에 나는 신학교에 와서 얼마나 불평하고 원망하고 신세한탄하고 게으르고 맨날 나쁜 짓, 죄 짓고 이렇게 살았는데. 힘을 못 빼니. 힘 빼고 제가 그날부터 그 기도에 합류를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거기에 가서 1시간씩 기도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진짜 하나님께 죄송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진짜 하나님께 죄송했습니다. 제가 신대원까지 졸업할 때 성경 11독을 했습니다. 원래 20독이 목적이었는데 아마 제가 농구만 아니었어도 30독은 했을 건데 농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제가 농구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농구를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꼭 했어야 했습니다. 그거만 아니었으면 성경을 더 읽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힘을 빼고 있습니까? 정말 믿음이 우리 삶에 세워졌습니까? 믿음이 딱 세워지려면 힘을 빼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다못해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빵집에 가서 전문가에게 빵 만드는 기술자에게 빵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세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힘 빼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야, 설거지 해, 야, 바닥 쓸어. 그런데 힘을 못 빼. 아니 내가 청소하러 왔어요? 내가 설거지 하러 왔어요? 기술 가르쳐줘요. 너는 자세가 안 됐어, 나가 이러죠? 힘을 못 빼면 그 기술을 절대 배울 수 없습니다. 왜 청소 시키겠어요? 왜 설거지를 시키겠냐고요? 태권도를 3-4년 정도 했는데 운동하러 가면 제일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 기초 체력부터 가르쳐줍니다. 기본부터 가르칩니다. 몇 년을 합니다. 아이들이 나도 발차기 멋있는 거 하고 싶고 기술도 하고 싶고 이런데 맨날 똑같은 거 하니까 얼마나 싫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가르치겠어요? 기초체력이 있고 기본이 있어야 멋있는 발차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육이 그렇게 발달이 되어야 그것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그냥 그 수치심, 자존심, 자기 힘을 못 빼니까 영원히 태권도의 아름다운 무도의 맛을 못 보는 것입니다. 신앙은 더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믿음이 세워져야 영적인 눈도 열리고 하나님 앞에 헌신도 할 수 있는데 힘을 못 뺍니다. 저는 옛날에 돈 많은 사람들, 부자들이 실력 있는 사람들이 그것이 힘인 줄 알았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저였는데 그런 제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힘을 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자기를 부인하고. 수치심. 여러분 우리가 수치심 같은 거 느끼죠? 그게 우리의 힘이거든요. 그런데 다윗은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이 수치심을 다 극복했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신앙에 세워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봅시다. 교회 다니면서 자존심, 이 수치심 앞에 다 나가떨어집니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다 나가떨어집니다. 바닥 쓰는 거, 내가 기술 배우러 왔지, 창피한 것입니다. 설거지하고 바닥 쓰는 것이. 그래서 포기하고 나가버립니다. 신앙도 그런 식으로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윗이 기도했잖아요. 주님 저 이 수치심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세워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힘을 빼야 합니다.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수치심을 안 느끼고 뭘 배울 수 있습니까? 수영을 하나 배워도 수치심 느끼는데. 태권도를 하나 배워도 수치심을 느껴야 배울 수 있는데. 내가 공부를 잘하려고 해도 내가 수학 문제 하나를 배우려고 해도 수치심이 느껴지잖아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기술은, 그 기쁨은 영원히 맛보지 못합니다. 수학문제 푸는 기쁨을. 그런 것처럼 신앙은 수치심을 맛 봐야 합니다. 내 힘을 빼야 합니다. 내 인생 주께 맡기려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일하게 하시려면 주께 내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순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해볼까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생긴 제 추측인데 평생 신앙생활해도 교회만 왔다갔다하지 일주일에 단 10분이라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까? 얼마나 될까? 하긴 제 후배 목사, 전도사들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경 일독 안 한 목사들 천지입니다. 성경 일독을 안 한 목사가. 더 이상 말을 안 해야죠, 계속 욕먹어서. 목사입니까? 관둬야 합니다. 여러분 제과점에 갔는데 빵 만드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빵 만들어주면 그 빵집 갈 거예요? 안 가죠. 가면 안 됩니다. 믿음이 세워지지 않는 사람이 목사가 돼서도 안 되겠지만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널렸습니다.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하지 않고 있냐? 그 수치심, 자존심, 그 힘.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에게 믿음이 세워지려면 수치심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수치심입니다. 말이 안 되는 사건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겉옷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그런데 오셔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린양으로 침 뱉음 당하셨죠, 조롱 당하셨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 자가는 창피한 죄수들, 죄수들 중에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십자가 틀에. 왜요? 조롱 받으라고 십자가 틀에 매달아놓은 것입니다. 명예로운 사람을 법적으로 죽일 때는 그냥 사형을 시킵니다. 조용히. 왜 십자가 틀에 매달아 놓겠어요? 사람들 보라고 3일씩이나. 조롱 받으라고. 수치심을 느끼고 죽으라고. 그냥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수치심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연약하니까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존심 내세우는 분들의 특징은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약한 것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수치심도 느끼고 얼굴도 울그락 불그락 하고 기분 나빠하고 이러는 것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강해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강해서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약하기 때문에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거예요. 진짜 가진 사람들은 실력자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돈 입니까? 우리 가족입니까? 그런 것들이 자존심으로 포장되어서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존심으로. 여러분 이런 자존심 있으면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어떤 상징적인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신 상징입니다. 우리보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다 해결하셨으니 너희는 어떤 상황과 어려움, 환경 속에서도 나를 따르면 돼. 주님을 따르는 순종을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을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왜 못 믿냐? 왜 못 따라가냐?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서. 그래서 주님은우리보고 자존심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힘 빼라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과 아벨 너무 잘 아시죠?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너무 화가 나고 수치심을 느꼈죠. 동생의 예배는 받으시고 내 것은 안 받았으니까. 부모 앞에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쳐서 죽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동생을 왜 죽였어요? 만약에 둘 다 하나님이 예배를 안 받으셨다면 동생을 죽이지 않았을 건데 동생 거는 받고 내 것은 안 받았으니까 자존심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살인자가 되고 그 가인이 에돔의 선조입니다. 아시죠. 우리 같으면, 진짜 하나님을 안다면 왜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고 내 제사는 안 받으셨지? 그건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다음 예배드릴 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예배 드려야 되겠다. 이게 정상인데 그 수치심에 에돔의 조상인 가인은 동생을 살인했습니다. 그 힘을 못 빼면 영원히 주님을 못 만납니다. 여러분 이자익 목사님 너무 잘 아시죠. 대전신학교를 세우시고 한국 초창기에 한국교회 신사참배 운동을 반대하신 엄청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남해 사람인데 남해 가난한 바닷가에 살 때 2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와 살다가 어머니도 이자익 목사가 12살 때 잃었습니다. 고아가 된 것입니다. 부모가 없습니다. 그 시골 바닷가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배고프니까 어디라도 가서 살아야 되기에 풍요로운 땅, 농사가 잘 되는 땅을 가자해서 어디로 갔냐면 김제평야, 김제까지 간 것입니다. 전라도까지 걸어서 간 것입니다. 12살짜리 아이가 걸어서 간 것입니다. 가서 제일 큰 집을 찾은 것입니다. 제일 큰 집을 찾아서 딱 갔습니다. 가서 뭐라고 그랬냐면 너무 배고프고 어린 아이가 밥만 주시면 재워만 주시면 이 집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밥만 먹으면 되니까. 열심히. 그런데 갔던 집이 조덕삼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이 조덕삼이 그때 외국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얼마나 부자냐면 만석꾼의 집이었습니다. 큰 집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집 한 칸을 내어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성도들이 헌금해서 교회를 한 것이 아니라 부자니까 그냥 집 한 칸을 내어서 거기에 예배당을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이자익은 종이니까 주인을 따라서 같이 예배를 드리며 자연스럽게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잘 했는지.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했죠, 그래서 선교사님이 지도자를 세워야 되겠다 싶어서 장로를 투표를 한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임직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누가 올라갔냐면 아이러니하게 조덕삼 집사와 이자익 집사, 두 사람이 올라간 것입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장로를 한 사람만 뽑기로 했나 봐요. 그래서 투표를 했는데 사람들이 이런 마음일 수 있습니다. 조덕삼 집사님은 다 투표하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반발심으로 불쌍한 종이었는지 이자익 집사에게 투표를 많이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선교사님의 기록이 이렇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인원이 가득해서 임직자 투표 발표를 하는데 침묵이 흘렀다고 그렇게 기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덕삼 집사는 떨어지고 이자익 집사가 장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냥 그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떨어지면 창피하고 수치심 느껴서 교회 떠난 사람들 많잖아요. 여러분 임직자 투표 때 떨어져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잘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장로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도들이 난리가 났겠죠. 이제 이 예배당 못 쓰나, 그런 생각부터, 큰일났다, 왜 조덕삼 집사가 떨어졌냐. 다들 정적이 흐르고 걱정하고 있을 때 조덕삼 집사가 걸어 나온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겠어요. 나와서 하는 말씀이 이랬습니다. 이자익 집사는 믿음이 좋고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는 덕을 가지고 있고 성실하고 훌륭한 분입니다, 저 분이 장로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는 저 장로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글고 다음 번 임직식 때 조덕삼 집사님은 당연히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 조덕삼 장로가 되어서 또 뭘 한 줄 아세요? 또 이자식 장로님이 너무 총명하고 믿음이 좋고 기도를 많이 하니까, 선교사님이 언제까지 한국에 계실 수 없으니까.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냈습니다. 전적으로 조덕삼 장로가 자기의 개인 돈으로 신학교를 다 지원하고 보냈습니다. 보내서 서포트하고. 신학교육이 딱 마칠 때 그 교회 담임목사로 부른 것입니다. 이자익 목사를. 놀랍지 않으세요? 종입니다. 그리고 평생 그 목사님을 모시고 섬기고 다니면서 부흥회를 다니고 그래서 이 목사님이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고 노회 총회장을 하면서 대전 신학교를 세우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조덕삼 집사가 자기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는 일어날 수 없겠죠. 우리의 수치심, 우리의 자존심. 사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인가? 조덕삼 집사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자익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복음을 위해서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힘을 빼야 믿음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교회 다니면서 믿음이라는 것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영장 가서 수영 강사님이 가르쳐주시는 그 기술, 훈련하기 싫으니까 갔다가 말고, 갔다가 말고, 갔다가 말고. 죽을 때까지 수영 못 배운 것과 똑같은 것 같습니다. 교회를 갔다가 믿음이 세워지려고 하는 하나님의 테스트 통과 못하고, 테스트 통과 못하고, 테스트 통과 못하고. 평생 살면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쁘고 그래야 되는데 자존심 때문에 거듭남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힘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서. 우리는 언제 내 인생에 믿음이 세워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나? 여러분 교회 교적부에 이름이 올라간다고 천국 갑니까?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곳입니다. 믿음으로 가야 됩니다. 그 믿음이 세워지지 않으면 천국을 못 갑니다. 죄송하지만. 목회하는 입장에서 교적부에 사람이 많으면 기분이 좋습니까? 별로 안 좋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으로 사는가? 우리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이 우리 청년들이 진짜 믿음으로 사는가? 그게 정말 목사가 가져야 될 관심입니다. 그 자존심이 무엇인지. 그게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힘을 빼지 못하니까. 누가 힘을 빼지 못하게 하죠? 마귀가.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와서 그랬습니다. 너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힘 줬습니다. 너 눈 떠서 눈이 밝아줄 수 있어. 힘 줬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반대로 힘 빼라고 합니다. 교회 오면 밖에서 교수님, 사업하시는 분들, 실력 있는 분들이 세상에서 알아주는데 교회 와서 보니까 교회 와서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회개하라고 합니다.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라고 합니다. 거기서부터 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못 믿는 것입니다. 나는 밖에서 똑똑하고 대기업 다니고 사랑받고 교회 갔더니 회개하라고 하네. 왜 교회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가 그런 복음과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밖에서 활동하던 것을 우와 진짜 귀한 분이 오셨네 당신. 이러면 그런 교회는 도망가야 합니다.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종교기관이지. 힘 빼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상황이나 어려움, 사람이 십자가가 아니잖아요. 그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순종이 믿음이고 그 믿음이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거 하기 싫어, 자존심 내세우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게 믿음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 내 영광을 맡겨도 될까? 내 기업을 맡겨도 될까? 이 아이에게 한 영혼을 맡겨도 될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그런 말 하지 마시고 테스트 하지 마시고 기술이나 빨리 가르쳐주세요. 축복 받는 방법이나 가르쳐주세요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 빼야죠. 신앙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 무릎 꿇지를 못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성경을 못 읽습니다. 왜 성경을 못 읽는지 아세요? 힘이 있어서 못 읽는 것입니다. 힘이 있어서 매일 성경을 못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없는 사람이 성경 읽지 힘 있는 사람은 성경 못 읽습니다. 우리는 반대잖아요. 저 사람 영적으로 힘없으니까 성경 못 읽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반대입니다. 힘 때문에 성경 못 읽는 것입니다. 진짜 힘 빼고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긴 사람은 성경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힘을 빼야 되죠?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주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어요.

 

Ⅱ.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_이사야63:1-6, 요한계시록19:11-21

 

1.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_이사야63:1-6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_이사야63:1

 

1절. 그러니까 지금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냐면 에돔은 그 당시에 가장 악한 나라고 보스라는 완전히 타락한 도시입니다. 가인의 후손들 아닙니까. 거기를 지금 심판하고 오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판했냐? 그 사람들의 피가 예수님 옷에 다 튀었다고 합니다. 전멸시키고 오신 것입니다. 지금 이게 요한계시록 19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 시대에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주로 오실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두 팔 벌려서 고생했다 이렇게 오실 거 같죠? 아니요, 심판주로 오십니다. 이 땅에 예수님은. 우리가 착각하잖아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 정말 예수님이 너를 사랑해 이러면서 아니요, 심판부터 하세요.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될 조건은 뭔지 아세요? 심판입니다. 심판 없이 구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도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얻으려면 테스트가 있어야 합니다. 과정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자동차를 한 대 선물 받으려고 해도 운전면허를 따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고 오냐, 오냐 너 밖에 없어 이렇게 할 거 같지만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판주로 먼저 오십니다. 에돔을 심판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와서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왜 네 옷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주 틀을 밟는 자 같으냐.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너희도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민이야, 하나님의 선민이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를 심판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짓이든지 다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주님은 에돔을 심판하시고 오신 주님이 이스라엘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서운 말이죠. 교회 교적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_요한계시록19:11-21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_요한계시록19:15

 

똑같은 말씀이죠. 이사야 말씀에서도 포도주 틀을 밟는다고 하십니다. 포도주 틀에 넣고 죄인들을 밝아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나님이 백마 타고 이 땅에 오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세마포 옷 입고 백마 타고 이 땅에 오시면 재림주로 오시니까 두 팔 벌려 환영해야 되는데 무서운 말이 있습니다. 그 입에 예리한 검이 나와서 만국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십니다.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시겠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아마겟돈. 왜요? 저항하니까.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에돔을 심판하고 오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도 지금 죄악으로 물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구원은 항상 심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구원입니다. 심판 없이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무조건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신다고 하지만 틀린 것입니다. 무조건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죄악을 먼저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테스트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 생활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게 하셨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 믿음이 세워진 백성에게 성벽재건,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아무에게나 맡기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이 땅은 심판이 먼저입니다. 그 심판을 견디는 자가 구원 받는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을 견디는 자가 구원 받는다고. 그 심판, 핍박을 견디는 자, 누가 견디냐?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어요.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다시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심판도 견디는 것입니다. 수치심을 견디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지. 

 

- 내가 여호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리라_이사야63:7-9, 요한계시록21:1-7

 

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_이사야63:7-9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_이사야63:7

 

갑자기요?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_이사야63:8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는 사랑이시라 고백하는 사람, 거짓을 행하지 않는 삶,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9절에 보니까 모든 환란에 동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_이사야63:9

 

보십시오 여러분. 이 고백을 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을 해야만 심판의 때를 지나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느끼는 믿음이 세워져야 구원이라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우리 자녀들 키울 때 우리가 오냐 오냐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그러면 좋은 부모인가요? 좋은 부모 아닙니다. 좋은 부모는 올바르게 크도록 주님을 경외하고 살도록 키워야 좋은 부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좋은 부모는 부모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고 그래야 아이들이 커서 믿음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갈 거 아닌가요? 언제까지 부모가 자식을 끼고 살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나이가 들면 죽는데. 그 말은 지금 우리 신앙도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단단하지 않으면 어찌 주님을 따라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냐 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믿음인가요? 풍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인가요? 어떤 시련이 와도 시험이 와도 이겨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그 믿음인가요? 그 믿음이 없다니까요 교회 안에, 성도들 가운데. 시련이 조금만 와도, 풍파가 조금만 와도 다 에이 교회 다녔더니 힘만 드네. 이러고 다 등 돌리잖아요. 구원 못 받는다니까요. 요한계시록 21장은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7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_요한계시록21:1-7

 

6절까지는 천국 말씀입니다. 천국은 보석으로 만들어졌고 이런 축복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7절에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_요한계시록21:7. 

 

이기는 자에요. 분명히 성경은 이기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하는 자, 환란을 견디는 자, 믿음이 없이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여러분. 그러니까 그냥 교회 가서 예수님 영접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라고요 여러분. 이겨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겨야 됩니다. 이 개념이 우리에게 이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진짜 축복합니다. 이겨야 합니다. 수학 문제를 풀어야 됩니다. 이 문제가 풀릴 때까지 깨닫고 복습하고 가르쳐 달라 하고 수치심 느껴가면서 배워야 대학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신앙도 이겨야 합니다. 이겨야 된다는 표현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표현이 어떤 표현인지 우리가 이해가 되도록 제가 예화를 계속 드는 것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힘을 빼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천국이 보입니다. 성경에서 이긴다는 표현은 믿음을 뜻합니다. 이겼을 때 반드시 아들이 되고 천국을 상속 받게 됩니다. 믿음은 천국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섬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고 섬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합니다. 왜? 사랑하고 위로하고 막 남의 발 씻겨주고 이러니까. 그게 힘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남의 발 씻겨주는 자존심 없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요? 예수 믿는 자에게 자존심이 어디 있습니까? 천국을 얻었는데 내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다 배설물이라고.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말씀을 주셨는데 10절에서 14절을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과거를 회상하는 이스라엘 : 그들은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_이사야63:10-14, 요한계시록21:8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_이사야63:10-14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_이사야63:10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습니다. 심판하셨다 이 말입니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_이사야63:11

 

지금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이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죄 때문에 심판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뭐라고 과거를 회상하냐면 아니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던 하나님, 바다를 가르셨던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광을 팔로 모세를 오른손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광야에서 승리하게 하셨던 하나님, 반석이 갈라지고 물이 나오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 어디 가셨냐고 지금 따지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들이 오늘 신앙생활 똑바로 안 하고 있으면서 내가 옛날에 신앙생활 할 때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라고 심판하신 하나님 앞에 지금 반역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말인지? 완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라도 광주에 있는 요즘 대학생이면 2000년대에 태어난 2000년대생입니다. 2000년도에 태어났습니다. 이 친구들이 5.18 이야기를 합니다. 5.18을 경험해보지 않았잖아요. 5.18 이야기를 하면서 씩씩 거리면서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그게 맞아요? 저는 6.25를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 부모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때 경험해보지 않았거든요. 지금 자기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세운 민족을 하나님이 왜 심판하시냐고 지금 반역하고 따지는 것입니다. 뭐에요?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 시절 무릎 꿇고 기도하는 거 다 죽고 사라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에돔의 우상을 섬기고 살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니까 뭐라고 그러냐면 당신이 우리 구원했지 않냐, 당신이 우리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했지 않냐, 그런데 왜 심판하시냐 라고 지금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_요한계시록21:8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아니하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이 다 똑같습니다. 두려움도 우상숭배와 똑같은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똑같습니다. 믿음이 세워지지 않으면 똑같은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는 짓은 두려워하죠, 믿지 않죠. 그러면서 뒤로는 흉악하고 살인하고 음행하고 점술과 우상숭배, 거짓말, 다 뭐라고요? 성경은 지옥 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 조상의 신앙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테스트하십니다. 믿음이 세워져야 구원 받을 수 있으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따라야 주님을 따라야 구원 받을 수 있으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테스트를 반드시 우리에게 하십니다. 안 그러겠어요 여러분? 빵 만드는 기술도 테스트하는데. 동네 빵집도 빵 배우려고 온 사람에게 설거지 시키고 청소 시켜서 테스트 다 시키는데, 저 사람이 자세가 됐는지 안 됐는지 다 테스트 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시는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 받게 하시겠다는데 우리를 테스트 안 하시겠어요? 자기를 부인하는 테스트 안 하시겠나요 여러분? 다윗은 광야에서 13년 동안 그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테스트를 그 똑똑한 친구가 제자들이 어부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밑에서 1년이 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그래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그냥 신앙은 오늘을 사는 거야 이게 아니잖아요 지금. 오늘 본문 말씀으로 오늘 설교로 오늘을 왜 살아야 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오늘을 사는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과거에 매여서 고등학교 때 전도 좀 했는데 꿈은 얼마나 큰지, 나는 세계복음화 할 거야, 그런데 오늘 성경 한 장 안 읽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 한 번 하지 않는 그런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Ⅲ. 신앙은 오늘을 사는 것_마태복음21:33-43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_마태복음21:33-43

 

마태복음 21:33-43에 보니까 이 비유가 있습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거기에 망대도 짓고 포도즙 짜는 틀도 만들고 거기를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에 갔습니다. 그래서 열매 거둘 때가 돼서 주인이 그 열매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그 종을 죽였습니다.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주인한테 당연히 줘야 될 포도열매를 안 주고 가지고 있으니까 더 많아지잖아요. 욕심이 더 생깁니다. 다음에 주인이 더 많은 종을 보냈는데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주인이 자기는 갈 상황을 아니니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면 포도원 주인이잖아요. 농부들이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주인의 아들은 이 포도원의 상속자니까 저 아들을 죽이면 이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될 거야.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게 지금 구약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셨는데 이스라엘이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보내주셨는데 예수님도 죽였죠. 지금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하시는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을 보냈는데 주인을 포도원에서 내쫓아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냐? 칭찬하겠냐? 너희가 잘 살고 있구나, 포도원에서 열매 많이 얻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겠냐? 41절에 보니까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_마태복음21:41-43

 

주인에게 세를 바치는 사람, 주인을 섬기는 사람에게 그 포도원을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종을 죽이고 아들을 죽인 그 포도원의 농부들은 주인이 오셨을 때 진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비유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어야 하는지. 여러분 우리 자존심, 힘, 이거 빼지 못하니까 주인을 기만했습니다. 농부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힘을 빼지 못하니까 완전 오만하고 주인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도원이 자기 것 인줄 알고, 포도원 열매가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 오만하고 교만한 거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이스라엘처럼 이렇게 과거에 빠져있고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고 미래의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런데 이스라엘은 진짜 오늘은 하나님을 섬기는 오늘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살고 오늘은 기도하지 않고 산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그렇게 살지 않는데 그 과거가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고 오늘을 그렇게 살지 않는데 어떻게 그 미래가 우리에게 실제로 다가올 수 있겠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읽고 오늘 기도를 하고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정말 우리 인생을 맡겼다면 내 자존심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래야 합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게 진짜 별거 아닌 거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아 오목사 비전은 커야지, 꿈을 크게 가져야지, 세계복음화해야지.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오늘을 다 잃어버리잖아요. 오늘을 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게 우리에게 올 수 있어요?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신실한 뜻이. 제가 뭐 세계복음화를 붙잡는다고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습니까? 그건 하나님 계획입니다. 그 일에 나는 조금이라도 한 귀퉁이라도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제 인생은 축복이겠지만 그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늘을 살아야 믿음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를 버릴 수가 없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오늘이라는 날에 있습니다. 오늘을 살 때 빛나게 준비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매여서 오늘을 못 삽니다. 자꾸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에 홍해를 가르고 과거에 광야에서 물이 나왔고.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시절에 모세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오늘을 살았는지 우리도 그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그리고 헛된 미래 때문에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너무 꿈이 허황됐습니다. 그리고 그 꿈대로 오늘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 들고 수치심을 느끼고. 하나님이 내 기도 안 들어주셨다고 말하는데 실제는 기도를 안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 안 들어주셨다고 하는 분들 제가 만나면 팩트로 이야기합니다. 당신 기도 얼마나 했어요? 기도 안했습니다. 기도 안 해놓고 기도 응답 못 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딱 펼쳐보면 기도 안했습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10분이라도 무릎 꿇습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봅시다. 이건 중요한 문제니까. 여러분 일주일동안 몇 분이나 기도하십니까? 하루 말고 일주일에. 10분이라도 무릎 꿇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아닐걸요. 제가 알기로는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성도들의 50% 이상이 단 한 번도 성경 한 번 펼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 한 번 꿇지 않고 일주일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무슨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런데 무슨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축복 주시겠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학생들이 맨날 과거가 어쩌고저쩌고 우리 엄마 아빠는 어쩌고저쩌고 이러면서 오늘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은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과거는 그냥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오늘 아무것도 안하면 그 미래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세계는 더 정확합니다. 여러분이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기 원하신다면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믿지 않습니다. 목사님 큰 기술 가르쳐주세요. 큰 기술. 저 크게 쓰임 받고 싶어요. 저 문제 해결 받고 싶어요. 그러니까 가서 청소해, 가서 설거지 해 그 말이 너무 자존심 상해서. 아니 나는 교회 와서 큰 응답 받고 싶고 크게 쓰임 받고 싶은데 맨날 성경 읽으라고 하니까 때려 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해서. 신앙생활 안 한 거 다 드러나니까. 오늘 어떻게 사는지 다 드러나는 게 너무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을 드러내야 여러분 믿음이 우리 인생에 세워지고 그것이 드러나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 가서 그러면 됩니까? 다른 나라가면 됩니까? 숨기고 산다고 그게 됩니까? 영적인 세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아셔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 힘을 빼지 못하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순종하지 못하면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 10독 해보셨나요? 성경 일독만 해도 눈이 열립니다. 목사님 설교 듣는 것이 다릅니다. 성경을 아무것도 모르고 목사님 설교 듣는 것과 성경을 10독정도 하고 메시지를 듣는 것이 다릅니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매일 한 시간씩 기도생활 해보셨어요? 그러면 기도를 하루에 한 시간씩 하잖아요? 정말 마음에 오묘한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안에 모든 내 아픔이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되고 그 시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진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 신앙생활하면서 전부 과거, 미래 이야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제가 오늘을 성경 읽고 기도하고 신앙생활하자고 이야기하면 오율법이라고 합니다. 저보고 율법주의자라고 합니다.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주일을 쉽게 안 지키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그런 영향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도. 그러니까 정말 주님을 믿고 정말 하나님이 영화로우신 나의 구원자라는 것을 믿는다면 온전히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편리를 위해서 목사부터 그런 단어를 다 뺏습니다. 거룩한 주일도 뺏고. 주일성수라는 단어도 다 뺏고. 목사들이 다 뺏습니다. 성도들 더 많이 유치하려고. 교회 숫자 늘리려고. 다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도 죽고 성도도 죽고 자녀들도 죽고. 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면서 신앙생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돔을 심판하고 오셔서 악의 무리들을 심판하고 오셔서 이스라엘도 심판하셨습니다. 테스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테스트가 지금 바벨론 70년 포로고 우리 앞에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심판의 때가 오겠죠. 그것을 견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 견딜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심판을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여러분 신앙은 오늘을 살아야 돼요.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야 됩니다. 오늘을 살아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오늘을 살려면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내가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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