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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3-2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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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2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본 문 : 고린도전서 2:1-16

 

 오승주 목사

 

-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였나니_고린도전서2:1-5, 사도행전18:5-11

 

오늘 본문 시작을 사도 바울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너희에게 사역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스스로가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엄청난 문장의 결단, 결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복음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그게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사역하기 전에 아덴이라는 지역에 가서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6,17장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아덴이라는 곳에 갔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하였다. 마음이 격분해서 17장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회당에서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람들과 변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 변론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한다. 선포한다. 복음을 가르친다. 이런 단어가 나오지 변론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데 이 아덴에서는 바울이 마음에 그 우상을 보고 마음이 격분했다. 화가 나고.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덴에서 회당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장터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과 변론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의 언덕이라는 아레오바고 라는 곳에서 서서 포기하다시피 이야기합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들을 보니 너희가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아덴에서의 상황을 유추해보면 바울이 아덴에 뜨거운 마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려고 갔는데 우상이 가득한 것입니다. 우상은 어느 지역이나 가득한데 눈에 보이는 우상이 유난히 많은 곳이 아덴이라는 지역인데 거기 가서 마음이 격분했다고 했습니다.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변론한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흥분하고 화가 나면 원래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감정이 격해지면 냉정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을 세상에서는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수준이 높은 사람은 집을 깨끗하게 하거나 부자거나 이게 아니잖아요.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사람이 수준 떨어지는 사람이고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을 수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리더나 지도자는 이런 것을 갖춰야 합니다. 바울도 이 순간에 마음이 격분해서 사람들과 변론한 것입니다. 그래놓고 화가 난 것처럼 포기한 것처럼 전쟁의 언덕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가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그런데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덴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바울은 너무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도 이 사람들은 전부 다 기복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기복을 추구하는 종교심. 한국에서도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건지 교회에 다녀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지 겉모양으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미신, 기복. 그것이 아덴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덴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바울이 깨닫게 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변론하고 복음을 전한 것, 그 자체를 후회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그 때 변론했던 것을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많이 후회하고 속상해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 고린도에서는 너희들에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에 가서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될까요? 똑같은 일이 반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_고린도전서2:6

 

실제로 사도행전 18장에 보니까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이 이 바울을 대적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연하겠죠. 고린도에서도 아덴처럼 똑같이 대적을 할 것입니다. 바울이 그 때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내가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 내가 이방인에게로 가겠다. 하고 이방인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안에 이방인의 가정에 들어가서 1년 6개월 동안 사역을 합니다. 1년 6개월 동안 사역하려고 이방인의 가정에 들어갔을 때 밤에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처음으로. 아덴에서는 하나님이 한 마디도 하시지 않았는데 고린도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는 하나님이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러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오늘 사도행전 16,17,18장과 오늘 본문을 추정해보면 바울은 오늘 본문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다는 것은 그가 아덴에서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변론하는 것 때문에, 그 종교심이 많았던 그들을 변론으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 바울 이러면 기독교 역사에서 어쩌면 예수님보다 영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경책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신앙서적, 책 바울이 그 다음으로 많습니다. 넘사벽이다. 원탑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신학이 넘사벽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저자도 양으로 따지면 모르겠지만 바울 서신, 신약에 거의 바울이 쓴 사역이 조명 되어 있습니다. 바울 이러면 사람들이 바울이 쓴 하나님의 성경이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우리가 권위로 인정해서 받아 드리지만 바울도 우상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도 인간입니다. 바울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아닙니다. 목회자들끼리 이야기하면 바울은 마치 무오한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말고 이 땅에 무오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에 속습니다. 칼빈,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이 무오하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의 역사를 알면 칼빈주의의 신학을 버려버릴 것입니다. 칼빈이 얼마나 악한 짓을 많이 했는지. 인간은 무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너희에게 하지 않겠다는 말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어쩌면 바울이 위대한 전도자가 맞고 기독교 역사의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사도였고 제자였습니다. 그런 바울도 아덴에서의 자기의 전도 사역을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표현은 없지만 문제가 있었다. 라고 표현하고 고린도에 와서 회개하고 나는 고린도에서 너희에게 십자가의 도만 가르치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스스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감정이 아무리 좋은 것을 한다고 할지라도. 바울이 아덴에서 나쁜 짓을 했습니까? 아덴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교회를 세우러 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러 아덴에 갔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한다고 할지 감정으로 일을 하면 마음이 격분해서 진행하면 진짜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하셔야 될 맡겨야 될 우리의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인들이 이런 오류를 범합니다.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들이 교회나 가정이나 삶에서 무언가를 할 때 내가 기도해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이러면서 그런데 그것이 자기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자기의 감정이 격분하면 내 연약한 육신을 보지 못하고 내 육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들어왔던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은 다 무엇이 되나요? 다 껍데기가 되는 것입니다. 말. 바울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얼마나 변론을 했겠습니까? 너희는 이렇게 해서 잘못 된 거야. 너희는 이렇게 해서 틀린 거야. 너희들은 이렇게 우상을 섬기고 있으니까 문제가 있어. 너희는 복음을 이렇게 받아야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믿어야 해. 라고 얼마나 설득하고 변론하고 논쟁하고 그랬을까요? 그런데 아덴사람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너희는 종교심만 많구나.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에 속고 있나요? 사실은 다 말에 속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다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설교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하면 나 참 지혜로워. 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오만이고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부 말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왜 말이 껍데기가 되고 문제가 되느냐. 똑같은 말인데. 삶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삶이 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은 말로 떼웁니다. 말로 포장하고 말로 설득하고. 그러니까 삶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바울이 아덴에서 마음이 격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상을 보고 거룩한 마음에 의로운 마음에 격분했겠지만 정황을 보면 화가 난 것입니다. 짜증이 난 것입니다. 제가 뉘앙스를 볼 때 사도행전 16장, 17장을 봐보세요. 뉘앙스를 볼 때 바울은 자기가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전도를 아덴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래야 될 사람인가요? 잘못하다가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제가 원하는 그림을 가지고 사역을 했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 짜증부터 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오늘 바울이 고백한 내용처럼 우리는 그 것에 속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 분노가 일어나나요? 내 삶이 다시 말해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남 시선, 남보다 우월해야 되는 그런 우월감들이 우리 안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말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말로 해결이 됩니까? 가서 1시간, 2시간 이야기하면 해결이 되나요? 그 순간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밤새 포럼하고 새벽까지 메시지를 나누고 이야기 해보세요. 삶이 변화되나. 물론 말이 동기를 부여하고 삶을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설교도 하고 메시지도 하고 은혜를 나누는 것이지만 결국 그 말에 순종하고 행할 때 역사는 일어납니다. 말로 하는 신앙은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되어 버립니다. 그 거짓, 위선이 반복되면 낙심할 수밖에 없고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말을 그렇게 잘하더니. 사실 마귀가 우리를 완전히 구체적으로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마귀를 우리를 무너뜨리나요?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우리를 속이는 존재이지 마귀가 우리의 삶에 와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속일 뿐입니다. 게으르게 만들고 상처를 주고 우리를 속일 뿐입니다. 바울이 그래서 알았던 것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_고린도전서2:4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역자들이 여기에 속을 수 있습니다. 막 메시지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열심이 있는 사역자였나면 가정에 가서나 사람을 만나면 막 이야기합니다. 나도 못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플러스 알파해서 요구합니다. 그 순간에는 아멘 하지만 그 분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역을 진짜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해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보이셨으니_고린도전서2:6-11, 빌립보서2:13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_고린도전서2:6-7

 

곧 감추어졌던 것을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지혜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6절 초반에 나와 있는 ‘온전한 자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온전한 자들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덴처럼. 그래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이방인들인데 회당 장 그리스보가 온 가족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보는 회당 장이니까 유대인입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그 사도바울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 곳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바울에게는 지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해. 하나님이 나를 이방인을 위해서 나를 선택하셨어. 그런데 실제 사역은 유대인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울도 베드로처럼. 왜냐하면 내 민족이니까. 그래서 아덴에서 종교심 많은 유대인들, 신앙생활 잘하게 생긴 유대인들. 그 사람들 깨닫게 해주고 변화시켜주려고 엄청 애쓰다가 바울이 낙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울을 선택할 때부터 이미 사도행전에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부터 너는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이라.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100%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알지만 이방인에게 가야 해. 그리고 그의 모든 사역은 이방인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미련이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아덴의 사역을 끝내고 고린도 사역을 시작하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 고린도 성에. 이 고린도에 이방인이 많다. 여러분, 아덴이 더 좋은 도시 일까요? 고린도가 더 좋은 도시일까요? 영적으로 봤을 때 아덴이 훨씬 좋은 도시입니다. 복음 전하기도 좋은 도시이고, 유대인들도 많았고 더 온유하고 온순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완전히 타락한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린도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하셨습니다. 아덴에서는 음성을 들려주시기 않았습니다. 바울이 생각했을 때에 아덴에 제자가 더 많을 것 같은데. 아덴이 더 복음을 잘 받을 것 같은데. 아덴이 더 교회를 세우는데 더 편할 것 같은데. 고린도는 너무 힘든 지역인데. 영적으로 싸우기도 힘들고 기도하기도 힘들고 너무 어려운 곳인데 하나님이 그 곳에 길을 여신 것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_고린도전서2:10

 

바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그 전에 자기의 계획, 뜻으로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린도에 와서는 완전히 성령으로. 성령께서 보이시고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구원을 위한 지혜. 그냥 지혜가 아니라 구원받는 지혜. 예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고 그래서 그 구원을 위한 지혜를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보이신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깜짝 놀랄만한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가족이 구원받고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구나 하고 깨달으면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이것이 사라졌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해야해. 우리가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야 해. 우리가 메시지를 잘해야 해. 이런 내용으로 메시지를 해야 구원 받을 수 있어. 완전 삐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찾아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옛날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메시지 내용이 좋아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미련하고 농부였고 가난했던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뜨거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나. 다 성령께서 감동 주신 것이었습니다. 대학교 나와서 대학원 나와서 사회생활 잘 하던 엘리트여서가 아니라 메시지 내용이 좋아서 목사님의 설교가 서론 본론 결론이 깔끔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셔야 한다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놀랄만한 한 가지를 설교 내용 중에 붙잡고 가셔야 합니다. 즉 성령께서 하시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종교심이 많은 아덴사람들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론을 해야 하는 온전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온순한 자, 마음이 준비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은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이니까 엄청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은 세상을 탐했습니다. 마음이 온순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변론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영원히 자기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똑같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영 외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신 것도 성령이 하신 것이고 말씀 듣고 은혜 받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 부르면서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고 회개가 되는 것도 전부 사실은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구나. 나중에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신앙 생활하는 모든 것을 성령으로 보이셨다고 하셨습니다. 보이셨다라고 하는 것은 비전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길을 보이시는 분입니다. 가르쳐주셔서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야.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야. 가르쳐주시는 분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단지 복 받으려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기의 삶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 천국 백성이 되는 것, 그 십자가의 비밀을 전하며 사는 것으로 성령은 우리에게 그것이 기쁨이다. 그것이 즐거움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라고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보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도 참는 것이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봤기 때문에 믿음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왜. 그것을 보았으니까.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누가 알아주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인정해줘서 예배 잘 드리고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사역하다가 갑자기 낙심을 합니다. 제가 그러면 물어봅니다. 왜 열심히 사역하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하냐고. 이렇게 해서 뭐하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알아주는데. 하나님을 섬기는데 누가 알아주려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그런 것입니까. 물론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사회이고 공동체이니까. 그런데 그런 신앙을 종교심이 많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자기 스스로 해왔던 것이 무너진 케이스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으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령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억울하고 열매도 없는 것 같고.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 무슨 열매를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까? 자식들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전도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한번 보세요. 얼마나 우리가 위험한 상태인지.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믿음은 성령께서 길을 보여주시는 것인데 한결 같이 그 길을 갑니다. 그 길을 본 사람들은. 그래서 그 길을 한결 같이 가기 때문에 변화라는 것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기 때문에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평생을 매일 아침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난 것뿐입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똑똑해서 배경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제 마음이 변화가 된 것입니다. 남들은 오목사 뚝심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뚝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뚝심으로 내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 길을 안 가면 죽습니다. 저는 천국가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싶지 지옥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가는 것뿐입니다. 매일 날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_고린도전서2:12-15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_고린도전서2:12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영, 세상의 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성령을 받으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가 없고 찬송이 없습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변론밖에 없습니다. 다 따집니다. 이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속상한 것은 자기는 평생 교회에 헌신했다고 합니다. 누가 하라고 했나. 평생 교회에 헌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합니다. 무엇이 얼마나 억울하신데요? 누가 시켰나요? 누가 강요했나요? 라고 물어보면 정신이 혼미해서. 정말 축복된 삶을 한 번에 끝내버리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영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성령을 받지 않고 세상의 영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내게 주신 것들을 은혜로 깨닫지 못합니다. 제가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가진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빚밖에 없습니다. 평생 살면서 빚지고 살지, 유산을 물러 받은 것도 없고 학교를 좋은 곳을 나왔나요? 아이큐가 높은 것도 아닙니다. 머리도 나쁩니다. 어제도 너무 피곤해서 커피 한 잔 마셔야 되겠다 싶어서 커피를 들고 차에 타야 되는데 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차 위에 올려두고 그대로 왔습니다. 커피 마시려니까 없었습니다. 제가 자란 환경도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아버지 매일 술 마시고 엄마 괴롭히고. 어렸을 때에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제대로 온전한 집에서 커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자취생활하고 누나 집에서 빌붙어서 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제가 비뚤어진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해도 아버지처럼 산다고 해도 제 환경을 보았을 때에 그런가보다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교회, 좋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만난 목사님은 박이석 목사님을 만났는데 사실 목사님이 저에게 해준 것이 없습니다. 저에게 용돈을 준 것도 아니고 저를 만나서 특별히 말씀을 전해주시거나 예배를 드려주거나 저희 집에 심방 온 적도 없습니다. 그냥 멀리 계시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은혜를 받고 말씀을 듣고 목사님을 보니 늘 목사님이 밝으시고 어려운데 늘 웃으시면서 성도를 섬기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기도의 자리에 계셨습니다. 금요예배, 새벽예배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피곤하실 땐데도  그러면서 죄에서는 엄청 단호하셨습니다.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제가 오은영 박사님이 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봅니다. 거기에 탤런트 이지현씨가 나옵니다. 남편이랑 헤어지고 딸과 아들을 키우는데 그 아들을 보셨나요? 그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 아들을 진단하는데 우리 같으면 상처받아서 문제가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서 마음의 병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텐데. 한마디로 진단합니다. 왕 예민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예민한 아이라는 것입니다. 예민한 사람에 대해서 3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예민한 사람은 기분이 좋더라도, 기분 좋게 대화 하다가도 말 한마디, 단어 한마디가 자기에게 걸리면 따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졌을 때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면 공격받는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물러서지 못하고 더 공격적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결책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엄마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예민해서 학원가서 테스트를 보려고 하는데 이 아이가 예민해서 하기 싫다고 하니까 엄마가 극단적으로 합니다. 너 하지마. 나도 편하게 살 거야. 라고 하니까 이 아이는 더 예민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은영 박사님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한 번 더 올 수 있지 않나. 이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들보고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 다음에 또 오자. 다음에 또 오고 또 와서 그 예민함이 풀려야 하는데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예민함 때문에 엄마를 때리고 폭력을 씁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 폭력을 다 받아줍니다. 그러니까 오은영 박사님이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나요? 자녀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아이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데 폭력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단호합니다. 폭력은 안 되는 거야. 폭언은 안 되는 거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오은영 박사님과 스텝들이 강하게 나오니까 엄마가 원래 습관대로면 안아주고 괜찮다고 해 줄 텐데 오은영 박사님의 코치를 받아서 단호하게 거리를 두니까 이 아이가 거기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폭력을 행한다는 것은 당신이 교육을 안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남편이 없고 상처를 받은 것은 두 번째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육을 안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제가 그런 가정에서 자라서 제가 비뚤어지거나 나쁜 삶을 살거나 이상한 짓을 하고 살면 그것은 합당하고 정의로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박이석 목사님을 만나고 목사님의 삶을 엿보고 배웠습니다.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분노조절이 안되거나 극도로 불안하거나 우울증이나 사회에 적응이 안 된 사회 부적응자. 뭐라고 하죠?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학을 가르치고 운동을 가르치고. 이런 것들은 정말 잘 가르치는데 폭력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냐오냐 축복 설교, 다 잘 될 거야. 예수님을 믿으면 다 축복해주실 거야. 교회 열심히 다니고 헌금하고 예배 빼먹지 않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 주실 것이야. 다 틀린 설교라는 것입니다. 찰스 피니 목사님이 미국교회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가 지옥에 가고 있는 교회의 키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냉정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겸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들이 허황된 비전을 성도들에게 제시하고 그릇된 삶을 그대로 묵인하고 그러면서 정작 바른 예배, 바른 기도, 바른 신앙은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자기들도 그렇게 못하니까. 죄가 세상에 관영하고 있는데 애통한 마음도 없고 우리 자녀들이 죄악 속에 있는데도 그 누구하나도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올바르게 똑바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고린도 교회에는 온전한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는 정직하고 진실 된 마음.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_호세아10:12

 

공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입니다. 공적인 의. 하나님의 의. 진리. 그 말은 우리가 공의를 심는다는 말은 공의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이 갈급해야 된다는 말인데 우리의 마음이 묵은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굳어버린 것입니다. 옛날에 은혜를 받았어. 이런 식입니다. 무엇인지 모르는데 우리의 마음이 굳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공의에 대해서 갈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덕적, 윤리적 범죄를 지어도 애타지 않고 우리의 삶이 죄 가운데에 그대로 있어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양심에 화인 맞은 것입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성도들이 어려운 데도 그 누구하나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공의를 심는다는 것이 이 말입니다. 왜 우리는 공의에 대한 애타는 마음이 없습니까? 마음이 병 들어서. 양심에 화인 맞아서. 마음이 묵어 버린 것입니다. 저희 교단에서 목회자들이 윤리적, 도덕적 범죄를 계속 짓고 그것이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이 괴로워 죽겠습니다. 쪽팔리고 화나고.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말을 잘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목사님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맨날 술 먹고 성추행이나 하는 사람.  우리 목사님의 메시지가 좋아서. 상식적으로 맞습니까? 우리 목사님 말이 좋아서. 바울이 그것을 회개하고 있는데. 말에 속지 마세요.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왜 떠날까요? 말이 없어서 그런가요? 메시지가 나빠서 그런가요? 복음이라는 메시지가 없어서 그런가요? 오늘 사도바울은 간절히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묵은 땅 기경해야 합니다. 공의를 심으려면. 하나님께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려면 우리의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성령이 강제로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오시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계속 죄를 짓고 있는데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으려면 지금 신앙생활로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 신앙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을 수 있나요? 우리의 일주일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의 예배를 살펴보았을 때, 기도생활을 살펴볼 때 양심적으로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요? 지난주 저희 교단도 아니고 한국교회에 유명한 분이신 감리교 목사님이신 유기성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시냐면 제가 그 이야기가 마음에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습니다. 박이석 목사님처럼 이야기하셨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곧 은퇴하십니다. 후임자도 정했습니다. 교회가 엄청 큽니다. 그 분 매달 책이 나옵니다. 집회가 엄청 많습니다. 비서도 많습니다. 유기성 목사님 정도의 위치가 되면 스케줄이 빡빡할 것입니다. 운전도 누가 대신해주고 주치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신 줄 아시나요? 나에게 외부의 사역이나 행사들이나 이런 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금요일 밤에 나와서. 그래서 지방의 많은 일정을 하고도 그 날도 금요예배에 나와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러 나오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설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부교역자 목사님이 설교할 때 금요예배 패스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도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시는 것이 저는 평생 제 사역의 우선순위가 이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기도하시는 권사님들과 장로님들과 함께 기도로 여기까지 왔고 제가 은퇴해서도 이 기도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맞잖아요.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기도를 많이 하지만 삶이 괜찮아 지면 기도를 안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으면 공식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소멸되고 주의 영이 떠나신다고 합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어떻게 되나요? 주의 영이 떠나면 어떻게 되나요?

 

-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_고린도전서2:16, 빌립보서2:5-11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_고린도전서2:16

 

성령이 떠나시면 주님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_빌립보서2:5-11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어떤 마음으로 그 고난을 통과하셨고 어떤 마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해주셨는지. 그 마음. 성령이 오시면 그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데 깊은 것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어찌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고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고 그 마음이 아니고 어찌 이방인들에게 불신자들에게 복음이라는 것을 건강하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길이 보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예수님처럼 살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나옵니다. 그런데 양심에 화인 맞아서 성령이 소멸되고 나면 주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종교심만 남습니다.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옛날이야기 하지 마세요. 저처럼 간증하면서 하는 것은 괜찮은데. 지금 오늘 성령이 내안에 함께 하고 계시나요? 아침마다 성령을 구하고 계시나요? 하나님의 영을 사모하고 계시나요? 하나님의 영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은 가만히 계십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들에게 문제를 주시고 어려움을 주셔서 기도하게 만드셔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지만 우리 편에서 볼 때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오시지 않고 일하시지 않는구나. 라고 깨달으시면 됩니다. 문제가 왔을 때, 삶에 어려움이 왔을 때 수많은 징조들이 보입니다. 새가족 중에 청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 진짜 예수님을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워서 알겠는데 강의를 들어서 알겠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 분이 이번에 세례도 받고 새가족 수료도 하고 교리 공부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장로님, 권사님, 목회자들이 정말로 한 영혼을 두고 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기도 없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만난 기쁨으로 예수의 길을 빌립보서 2장 13절의 길을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분별해서 그 것을 소원삼고 우리 젊은이들이 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우리의 묵은 땅을 기경하고 공의를 심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런 때라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입니다.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나 살만해. 안심하지 마세요. 옆 사람이 쓰러지면 그 쓰러짐이 나한테는 안 올 것 같습니까? 저 집은 기도를 안 해서 문제가 오나봐. 여러분의 집은 문제가 안 올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어가시고 성령을 거두어가시면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그럴 일이 없다고요? 그럴 일이 없기는요. 지금도 죄가 관영하고 교회가 타락하고 목회자가 타락하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너무 많이 느낍니다. 교회가 멀다. 우리 교회는 너무 지리적으로 멀다. 수많은 상황들, 환경들이 있지만 뛰어 넘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성령을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하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모여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지역에 모여도 되고 교회에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교회에서 점심 때 밥 안 먹으면 어떻습니까? 일주일 내내 먹는 점심 밥. 김밥 한 줄 먹고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장로님들도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끼리 카톡으로라도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하고 우리의 교역자들도 모여서 기도하고 금요일 밤을 다시 회복해서 같이 기도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공의를 비처럼 내려주신다고 합니다. 은혜를 부어주시면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는, 공의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회개가 되나요? 그래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는 하나도 안하면서 목회자들에게 공의를 원하십니까? 좋은 설교를 원하십니까? 좋은 삶을 원하십니까?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승주 목사에게 떠나서 소멸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도 그러면 말뿐인 목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악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런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잠을 줄여서라도 진실하고 정직하게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설교, 저 잘 못한다는 것 압니다. 제가 제 설교 들어도 설교를 이것 밖에 못하냐 이럴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설교를 하는지. 그런데 최선을 다합니다. 정말 기도하고.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들, 청년들이, 이 설교를 듣는 분들이 그 영혼에 주님을 향한 사모함이 생기도록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정말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사모하도록 은혜 달라고.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길 원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소원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을 성령이 하십니다. 언제요?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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