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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4-1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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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 문 : 고린도전서 4:1-13

 

 오승주 목사

 

사도바울이 반어법을 많이 쓰고 있고 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굉장히 애쓰고 있다는 것을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개역개정 성경을 읽으면서 조금 어려우신 분들은 쉬운 성경을 보시면 본문의 이해가 오늘 날의 글들로 표현이 되어 있어서 훨씬 더 쉽게 될 수 있습니다. 새가족들이나 성경 읽기가 조금 어려우신 분들은 쉬운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읽으셔도 예수님 믿고 신앙생활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안내를 해드립니다.

 

-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_고린도전서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_고린도전서4:1-2

 

우리 이런 말 요즘 많이 쓰죠. ‘나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살아’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요즘 세대, 포스트모더니즘을 겪어오면서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나는 다른 사람 신경 쓰고 살지 않아’, ‘나는 내 주관대로, 내 가치관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야’라고 하는 시대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되게 좋은 말 같은데 신앙에서는 성경에서는 좋은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살아야 된다, 스트레스 받고 살아야 된다 이 말은 아니지만 우리 자녀에게 내가 네 아버지야, 내가 네 아빠야, 네 부모야 하지만 속으로 자녀가 진짜 당신이 내 아버지 입니까? 당신이 진짜 내 부모입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타이틀, 권위로 자녀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 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다른 사람이, 이방인들이 우리를 마땅히 하나님의 비밀 맡은 관리자로(쉬운 성경에 보니까) 여길지어다,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런 뜻입니다. 마땅히는 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우리를, 사도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라고 바울이 오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방인들, 고린도 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어떻게 생각해야 되냐?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4장이 시작이 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신앙의 목적이겠죠. 왜 그리스도의 일꾼이어야 되나? 그리스도의 일꾼. 우리가 일을 하고 삽니다. 많은 사역도 하고 일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보통은 자기 일을 합니다. 다 자기 일을 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맞습니다. 그게 맞지만 성경은 우리가 우리 일을 하지만 이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은 자신을 숨겨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큰일이라도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큰 일이 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일제 침략 때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작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되게 나라와 후대에 존경 받는 독립운동가가 있는 반면에 그 당시에 되게 똑같은 독립운동을 했는데, 되게 큰일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 주머니 채우고, 자기 실속 챙기고 뭐에요? 나라 팔아서 자기 주머니 채웠다고 평생 욕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도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팔아서, 예수 그리스도 팔아서 자기 실속 챙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스캇 솔즈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인가? 늘 질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기적으로 마음에 점검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자신의 자존심과 어떤 플랫폼, 시스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영역을 높이거나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그런 것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늘 질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비밀 맡은 자로 여겨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는 자로. 원어에는 관리자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운동을 같이 하거나 함께 여행을 가거나 같이 지내고 가깝게 지내다보면 사람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네팔 같은 데 4박 5일 같이 가면 대충 알게 됩니다. 아 저 집사님, 저 권사님 저런 성격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운동 같은 것만 같이 해도 금방 사람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격 같은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들 전도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가족들은 그것을 다 아니까. 밖에서 아무리 착한 척 하고 선한 척 해도 집에 와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말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다 압니다. 그것을 다 보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밖에서는 좋은 일 하고 집에 와서는 내가 좋은 일 했는데 저 인간이 나를 알아주지 않네 이런 식으로 불평불만 해버리면 그 좋은 일이 말로 다 까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게 있습니다. 저 사람 원래 안 그랬는데, 저 사람 원래 인격이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어려웠는데 저 사람 이런 상황에 많이 참네? 인격이 조금 다듬어졌네?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 괜찮았는데 왜 저렇게 됐어? 이렇게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다 맺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떠난다고 한들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있겠어요? 우리 가족들과도 관계를 맺고 이웃들과도 관계를 맺고 직장 동료들과도 관계를 맺고. 우리 신앙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고.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니까 무언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나야 된다고 합니다. 누가 그것을 드러낼 수 있냐? 그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는 사람들. 평상시에. 그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게 다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고린도전서, 후서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처럼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생각이 없고 바보 같고 맨날 당하는 거 같고 부족하고. 그런데 계속 만나고 관계를 하다보니까 이 사람들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네? 소문에는 되게 바보 같은 사람이었는데 만나서 관계를 하다보니까 엄청난 실력자네? 엄청 노력하는 사람들이네? 어? 더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세상에 없는 냄새가 나네? 그게 뭐에요? 그리스도의 향기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어디서 나오죠? 오랜 기도와 예배, 훈련을 통해 나타나는 어떤 삶의 가치관 이런 것입니다. 그게 우리 인생을 평가합니다. 이정도면 일반 사람은 못 하는 건데 어? 알고 봤더니 이 사람은 비밀이 있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구나. 다른 이방인들 사이에 그게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지내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비밀을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지금 사도바울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세월이 쌓여서 성숙해지는 것이고 변화되는 것이고 향기가 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러분 그게 신앙입니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되게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착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어떤 설교를 들었는데 사실 설교가 아닙니다. 목사가 아니니까. 요즘 박진영씨가 설교하고 메시지하고 이러니까 열광하고 이러는데. 그 분과 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대찬성이지만 설교와 강의는 구분하실 수 있으셔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7년 내지는 10년 평생을 성경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한 18과목 정도를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3,000년 역사를 다 다룹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세운 직분입니다. 그 직분을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준비가 되서 목회자가 됩니다. 목회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튼 어제도 어떤 강의를 듣는데 이렇게 설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칠판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끝.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설교를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완전 응답.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끝나버렸어. 이런 거. 돌팔이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병원에 갔는데 내 말 듣고 이 약만 먹으면, 이렇게만 치료 받으면 당신은 완전히 건강하게 살 수 있어, 맞나요? 우리가 살면서 암이라는 것을 마주하고 교통사고나 감기나 충치나 비염이나 피부병이나 수도 없이 만나는데. 어떤 병원에 갔더니 이것만 먹으면 끝장나는 거야. 이게 맞는 말인가요? 우리 인생이 그런가요 여러분? 그러니까 설교도 그런 식으로 하고 성도들도 그것에 현혹되어서. 저는 그런 것을 사이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오랜 세월이 쌓여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이고 예전에는 악한 일을 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 있었지만 점차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말씀과 기도 속에서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을 지키고 인생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후대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지, 우리의 말이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행동 하나, 말 하나. 하나님께서 다 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지금 어린아이와 같고 자기들이 응답 받았다고 나는 아볼로 파다, 게바 파다 이러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이 아니야, 이방인들이 너희들을 볼 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보는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보는지. 그게 뭐가 필요하냐 이야기 했을 때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나요? 맡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충성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사독재정부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또 남자들이 군대를 갔다 와서 충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오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충성은 다른 의미입니다.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결 같다는 의미입니다. 충성! 하고 맹목적으로 목회자에게 충성해야 돼. 이거 완전 틀린 말입니다. 이 단어부터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왜 충성이냐? 신앙생활에 충성이 왜 필요하냐? 신앙은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능력이나 재주로 하시는 분들은 사람들이 그 능력과 재주를 알아주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금방 신앙에서 탈선하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로 판단하잖아요? 안 그런가요? 저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외모로 사람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고 그런게 있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며느리 구할 때 사위 구할 때 안 그러시겠어요? 인사하러 오면. 교회에서 교역자를 써도 외모나 풍기는 이미지 이런 게 다 외모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외모를 보고 우리는 마음에 든다 안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외모가 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멋지고 아름답고 되게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서 속는 경우도 되게 많습니다. 저 인간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럴 때가 많습니다. 또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만나고 만나고 세월을 지나서 같이 살아도 보니까 외모는 좀 부족하지만, 처음에는 조금 모자란 것 같았는데 참 진국이네, 요새 보기 드문 사람이네, 참 괜찮네. 여러분 이게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뭐라고 이야기를 해요?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세상은 신뢰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내가 더 도와주고 싶고 더 많은 일을 소개해주고 싶고.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과 평생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 세상입니다. 변질 되지 않는 사람, 한결 같은 사람. 그런 충성스러운 일꾼은 어딜 가도 사랑 받고 인정받습니다. 그렇죠? 신앙도 똑같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 변치 않는 충성. 주님께.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나 재주, 외모가 아닙니다. 충성스러운 일꾼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처음에는 재주나 능력 있는 사람이 쓰임 받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보면. 저 사람 능력 있어, 재주 있어, 저 사람 헌금을 많이 했어. 이런 사람들이 쓰임 받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분 그래서 기도도 충성스럽게 해야 되고 예배도 충성스럽게 드려야 됩니다. 우리가 사역을 맡아도 작은 일을 맡아도 충성스럽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보통 시작할 때 순교할 것처럼 시작합니다. 내가 이거를.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하고 젊은이 사역하니까 저 오목사님 오른팔 되겠습니다 이런 분들 많이 봤습니다. 지금 어디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 되게 경계하고 주의합니다. 막 순교할 것처럼 달려드는데 나중에 다 떨어집니다. 다 감정인 것이고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늘 하는 말입니다. 야 걔 또 그만둔데? 또 어디 간데? 걔 안 보이더라 요즘? 그런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변에.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하나요? 하나님은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이 능력은 약속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능력은 구속사에서 약속을 지칭합니다. 왜 능력이라고 하나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 내가 독생자 아들을 보내서 너희를 구원하겠다, 내가 너희를 마지막 때 부활시키겠다 약속을 지키셨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말은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너 구원해줄 게 해놓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면 그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너희 구원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어, 안 되겠다 이것은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능력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똑같습니다. 인간사회도 똑같습니다. 저 사람 되게 능력 있다고 할 때 돈 많고 외모가 훌륭한 이런 사람들이 능력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보고 능력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이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판단하지 않습니다_고린도전서4:3-5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_고린도전서4:3-5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3-5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아무나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도 판단을 받지 않겠다. 지금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고 있냐? 판단은 누가 하시냐? 판단은 누가 하시죠? 마지막 때 4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니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아무도 판단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주님이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낸다. 그 때 하나님께 뭐가 있다고요?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성경은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어둠에 감추인 것을 다 드러내고 우리 마음의 뜻을 다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 때 우리를 칭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은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주일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교회에서 하루 종일 살고. 저도 목사니까 그런 분들이 좋죠. 보통 이제 그런 분들이 잘 살고 신앙생활도 잘 하고 합니다. 그런데 꼭 교회에서 뭐하다가 월요일에 직장 가서 졸고, 일 힘들다고 입 튀어나와 있고. 하네 마네. 여러분 그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닌가요? 그건 주님께 충성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주일날은 신앙 좋은 것처럼 교회에서 막 가르치고 하더니 월요일에 자기 직장 가서는 힘드네 마네, 진짜 입이 이렇게 튀어나와 가지고 월요병이. 그건 충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주님께 충성하듯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약속 안 지키고 대충하는 사람, 성실하지 못한 사람, 또 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저는 이런 사람들은 절대 신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런 사람들이 목사 되가지고 나라가 한국교회가 난리입니다. 물론 저도 부끄럽고 저도 많이 고민이 됩니다. 내가 왜 목사를 했을까. 이정도로 제가 연약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학은 목회자는 가장 성실하고 가장 충성스럽게 남을 섬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목회자를 하는데 누구를 죽이려고 그 길을 갑니까. 얼마나 많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죽이고 많은 영혼들을 주님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고 성경은 이야기했습니다. 걸레질을 하더라도 주님께 하듯 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장사하는 분들, 손님을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손님을 그렇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대충, 건성건성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미용실이 있는데 거기에 새로운 직원이 왔습니다. 새로운 직원이 오면 보통 미용을 배우러 오는 친구잖아요. 저희 교회 미용하셨던 그룹들이 있어가지고 제가 그 지방에서 와가지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그래서 어디서 오셨어요? 어디 어디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힘들죠? 했더니 힘들어도 자기가 빨리 기술을 배워서 미용실을 차릴 꿈이 있어서 너무 신나게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한 번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갔는데 머리 잘라 주시는 분이 제가 목사인 걸압니다. 목사님 차번호가 몇 번이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 차번호를 기억하고 있고 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분 되게 좋잖아요. 예의도 바르고. 그래서 제가 커피 한 잔 사다주고 왔습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데 그 날 미용실에 갔다가 아는 분과 식당을 갔는데 안 되는 식당은 그런 것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밥 먹다가 반찬이 떨어지면 당연히 반찬 좀 더 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같이 갔던 집사님이 반찬 좀 더 주세요 말을 하는데 인상을 팍 쓰고.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그 식당에 성경구절이 걸려 있었습니다. 식당 잘 되는 데는 주인이 보고 있다가 반찬 떨어지기 직전에 가져다줍니다. 반찬 더 달라고 하는데 오만 인상을 쓰고, 왜 더 먹느냐 이거죠. 그런 식당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다시는 안 가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일도 우리가 그렇게 안 합니다. 세상일도 다 그런데서 갈립니다. 저 사람이 성실한지, 충성스러운지.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일도 이렇게 합니다. 주님의 일도 대충합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의 일을 은혜로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한국교회에 주의 일은 은혜로 하는 거야, 이런 말, 이런 심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한다는 말 뒤에서 뭐가 감춰져 있죠? 가로 열고? 대충해도 되는 거야. 봉사니까, 예배니까, 기도니까. 오늘 안 하면 다음 주에 하면 되지. 해놓고 못 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여러분 주님의 일이니까 제일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세상에 가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이 드러나고 향기가 드러나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애초부터 글러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보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_고린도전서4:6-9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_고린도전서4:6-9

 

6절에 보니까 너희들은 아볼로와 나를 편 갈라서 너희들이 분쟁하고 있는데 나와 아볼로는 둘이 너무 친하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 줄 아냐? 너희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돼.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면 너희가 되게 높은 사람이고 너희는 되게 빛나는 사람이고 우리는 비굴하고 비천한 사람이고 이런 이야기를 쭉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데 이게 뭐냐면 우리 신앙생활이 말씀으로만 되어져야 하는데 자꾸 말씀 밖으로 넘어가니까 자기 자랑, 자기만족에 빠지고 나를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거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이치가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동을 해도 그렇고 수학을 해도 그렇고 기술을 하나 배워도 원칙이 있고 원리가 있고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벗어나서는 그것을 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그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넘어가버리면 그 사람은 대충, 건성 건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는 나 저거 할 줄 알아, 나 저거 해봤어 라고 하지만 그런데 실제로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우리가 분명히 구원을 받도록 불구덩이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당신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야 하는데 자꾸 우리는 넘어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패스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사이비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단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끝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이것만 하면 바로 응답이다. 이런 식으로 목사들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실제로 그것을 원하니까. 로또 당첨되는 것을 원하고 쉽게 쉽게 구원받고 쉽게 쉽게 응답받고 축복 받고 싶은 것을 원하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원하면서 실제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꾸 말씀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바울과 아볼로에게 말씀을 들었지만 가르침을 받았지만 순종하지 않았고 행하지 않았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파, 아볼로파 이게 뭐에요? 바울이 전한 아볼로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한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배워야 되는데 거기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해서는. 그러니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왜 순종하지 못했죠? 어린아이와 같으니까. 육신적이었으니까. 들으면 맞는데. 여러분 설교 시간에 목사님 설교 들으면 맞아요, 아멘 합니다. 그런데 내 삶에서는 말씀이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어린 아이잖아요. 엄마가 잔소리하면 네, 해놓고 돌아서서. 그게 어린아이죠. 저희 윤빈이가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22개월입니다. 두 돌이 안 되었으니까 사리분별을 못하는 아이입니다. 맨날 부엌에 와가지고 쌀 엎고 소금 엎고 이럽니다. 그래서 부엌에 문을 달아놨습니다. 저나 와이프가 요리를 할 때  옆에 있어야 되니까 부엌에 들어오는데 또 엎습니다. 맨날 혼냅니다. 오윤빈, 그것 좀 만지지만. 그때 씨익 웃고 막 웁니다. 벽보고 서 있어 이러고. 하루만 지나면 또 가서 합니다. 지금 우리 신앙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파, 아볼로 파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다. 말씀이 내 것이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서 늙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그 기회를 주신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오랜 시간 순종하는 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순종해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악에서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루 이틀 어디 기도원 다녀오면 되는 것인가요? 여름에 수련회 잠깐 다녀오면 되나요?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과정이죠. 그런데 우리 생각에는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자꾸 배운 것입니다. 아니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또 삶에서 적용하고 매일 순종하면서 해 나갈 때 어느 날 내 마음과 생각, 내 삶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것입니다. 악에서 멀어지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어디 하루 만에 이뤄지나요 여러분? 그것 역시 매일 순종하는 삶을 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악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이 지나가면서 우리의 기도가 쌓이고 예배가 쌓이면서 주님의 은혜로 내가 변화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교회를 다녀도 변하지 않는 분들. 그것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늘 넘어가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부모님 말씀이 싫고 짜증나서 가출합니다. 가출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술 먹고 담배 피고 남자 만나고 여자 만나고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서 가출합니다.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죠? 그런 것처럼 신앙도 늘 말씀을 넘어가버리면 늘 변덕이고 늘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이 없으면. 13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신앙은 성숙한 사람이 목적입니다_고린도전서4:10-13, 디도서2:1-15, 3:4-7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_고린도전서4:10-13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존경 받고 싶고, 너희들은 바울파고 아볼로 파여서 좋겠다. 너희들은 게바하고 연락하니까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네. 그러면서 바울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반대로? 나는 맨날 매 맞고 다니고, 모함 당하고 나는 진짜 힘든데 너희들은 진짜 대단하네. 지금 이렇게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고했고 모욕당했고 박해와 비방을 받았다. 오해와 조롱과 시련을 당해 왔다. 바울은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충성스럽게 신앙생활하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만물의 쓰레기 같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찌꺼기 같은 존재로 취급 받았는데 그래도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비밀 맡은 자로 감당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진짜 많이 착각합니다. 특히 목사들. 저 같은 사람들. 목사들은 대우 받고 존경 받고 인정받으려고 목사 됩니까? 애초에 출발이 잘못 되었습니다. 혹시 그런 분들이 오해 받고 문제 생기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힘들어서 목회를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해 받을 줄 모르고 목회 시작했습니까? 박해 받을 줄 모르고 예수 믿었습니까? 성도들 섬기면서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로 여김 받지 않으려고 목회했습니까? 대접 받으려고 목회했습니까? 강대상에 좋은 의자 가져다 놓고 왕처럼 앉아 있으려고 목회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것을 모르고 우리가 교회 다닙니까? 주의 일을 한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핍박을 받을 줄 모르고 그렇게 신앙생활 했나요? 여러분 전쟁터 나가면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전쟁터에 나갑니까? 우리가 군인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면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을 모르고 군인으로 자원하는 거 아닙니까? 군대 가면 당연히 자유가 없습니다. 그걸 모르고 자유를 달라고 징징 대는 게 군인입니까? 애굽에서 가나안을 위해서 광야 길을 가는데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면서 가는 건가요? 아니잖아요. 그러려고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 받고 죄 사함 받아 새 사람 되고 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길로 인도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안 그런가요? 오죽하면 하늘의 상급이 있으리라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오죽하면 상급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을까요? 힘드니까.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 힘드니까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관리하는 자에게 상급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짜 그런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신학적인 논쟁을 떠나서 저 사람 분명히 예수님 영접했고 분명히 성령충만해서 많은 좋은 주의 일을 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기름 부음이 사라지고 성령도 떠나고 신앙의 노선에서 벗어나는 사람 진짜 많이 봤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인 교리적인 논쟁에 대해서 저는 되게 유보적인 편입니다. 딱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왜요? 그런 사람들 대다수가 내가 하는 만큼 대우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아니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데 내가 하는 만큼 대우 받으려고 주의 일을 합니까? 내가 하는 것 다 어디서 대우를 받죠? 천국에서 가서 하나님이 상급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충성스럽게 이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이 아신다고 합니다. 그걸 안 믿으세요? 그럼 신앙생활 못합니다. 저하고 같이 교역자 생활 못합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이 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셈하고 계신다고 하잖아요. 어찌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면서도 대우 받으려고 합니까?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까? 그걸 알고 목회해야 합니다. 그걸 알고 중직자로 교회를 섬기셔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애초부터 하지 마세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숙한 유일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바울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도 몇 번 안 합니다. 성도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두 번 이야기를 한 정도입니다. 내가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에게 배웠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한두 번 이야기하고 안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요? 주님 앞에 가면 예수님 앞에 가면 한 없이 연약한 죄인이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도 말씀 앞에 서면 우리의 흠이 보이잖아요. 아닌가요. 디도서 2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그 당시의 늙은 여자분 들이 술을 좋아했나봐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_디도서2:1-8 

 

왜냐하면 우리를 보고 악하다 하지 않도록. 악한 존재들이 교회를 보고 크리스천들을 보고 악하다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도록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디도서 3장 3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_디도서3:4-7

 

그러니까 여러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하는 신앙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로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 고린도전서를 잘 보시면 진짜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변화되어지고 성숙하여져서 우리의 인생이 끝나고 주님 앞에 가면 우리 인생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셨다 라고 간증할 수 있는 복음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부단히 해야 하는 게 뭐냐면 우리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는 우리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신앙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렇게 쌓여서 그런 충성들이 쌓여서 나중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맞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어른들 계시잖아요. 저 분 참 귀하다. 저 분 참 감사하다. 고맙다. 그런 분들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신앙은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 말씀 앞에 충성스럽게. 아니면 우리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늘 변덕스럽고 늘 제자리걸음이고. 인생은 나이가 들었다 고해서 성숙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은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이 사라지고 우리 마음에 뜻들이 주님 앞에 다 드러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급을 받을 수 없겠죠. 그래서 신앙을 굉장히 1차원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너무 고차원적으로 수준 높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주 단순하게 심플하게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너무 고급스럽게, 고급적인 기술을 마주 대단한 메시지인 것처럼 하시는 목회자들을 주의하고 경계하시고 아주 1차원적으로 단순하게 하루하루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그게 쌓여야 나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쌓여야 내 영혼을 바꿀 수 있고 내 마음도 바꿀 수 있는 것이지 여러분 신앙은 스페셜한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무슨 기술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데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습니까. 네, 주님 저는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자로 살아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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