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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4-1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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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17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죄를 짓게 하는 환경에서 멀리하라
본 문 : 고린도전서 5:1-13

 

 오승주 목사

 

-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_고린도전서5:1-3

 

고린도전서 5,6,7장에서는 윤리적인, 도덕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복음에 관한 많은 메시지를 찾아서 읽지만 실제로 성경 안에는 실생활에 관한 말씀들이 훨씬 다양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고 목사님들이 순서대로 강해설교를 해주지 않아서 굉장히 편협 되게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주제설교를 많이 하시다보니 이런 것을 다 패스합니다. 저도 고린도전서 5장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이런 약간의 갈등들이 이었지만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주신 이유, 오늘날 가스펠 교회에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겠다. 그래서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부흥의 시대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교회, 부흥의 때에 교회는 세상에서 리더의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대단한 리더의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목회자나 사모나 장로님들이나 그런 분들이 밖의 사람들보다 학문적인 수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독립운동 뿐 만 아니라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어려움 속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들을 교회가 리더역할을 하면서 많이 주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것, 음악이라든지, 혹은 행정도 교회가 엄청나게 앞섰습니다. 건축도 그랬습니다. 교회가 모든 부분에 있어서 리더의 역할을 많이 했지만 솔직하게 평가해보면 지금은 교회가 세상에 많이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떨어졌다는 것을 많은 목회자들이 잘못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문화적인 뒤쳐짐, 혹은 건물의 뒤쳐짐, 행정 시스템의 뒤쳐짐, 이런 것이 뒤쳐져서 마치 교회가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된 것처럼 생각을 해서 한동안 문화사역을 얼마나 열을 올려서 했는지 모르고 건축을. 우리가 랜드마크를 지어야 한다. 교회가 어떻게 랜드마크입니까. 교회를 랜드마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목회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세교회나 할 법한 생각들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건물이 뒤쳐졌다든지 어떤 행정 시스템이 없어서 밖의 마케팅이라든지 밖의 행정들을 우리 배워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시간표에 따라서. 교회는 건물도 필요하고 행정도 필요하고 문화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다. 나쁘다. 필요하다. 필요 없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진짜 뒤처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에서 뒤처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팩트 확인을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이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이유는 건물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사역을 활발히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가 뒤처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보다 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들이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오늘 고린도 교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음행입니다. 그 것이 왜 불편한 진실이냐면 음행의 문제들이 일어나면 예를 들어서 목회자에게 음행의 문제가 일어났다 그러면 다들 이런 식입니다. 우리 안 믿는 남편이 시험 들어서 예수님 안 믿으면 안 되고 우리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피해가 갈까봐 다 쉬쉬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문화가 교회 안에 있습니다. 다 덮어주고 쉬쉬하고 그냥 갑니다. 그러다보니 실제 음행을 드러낸다면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교회에 목회자라든지 선교 사역자들의 음행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언론에도 나오고 실제로도 음행문제가 벌어진 것이 많고 쉬쉬하고 덮었는데도 드러났습니다. 목사들이 그 정도인데 성도들은 더 많습니다. 오늘 날 이런 문제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밖에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밖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밖에도 할 수 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저들과 구별되었다면서요.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면서요. 교회 안에 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죄도 수습할 수 있는 죄가 있고 수습이 불가능한 죄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수습할 수 있는 죄가 있습니다. 용서가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런 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습이 불가능한 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음행입니다. 목회자들이 음행 문제로 주저앉으면 다시 죄 값을 치르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다시 사역을 하면 가능할까요? 회복이 힘든 것이 음행입니다. 가정 파탄 나고 그 전에 쌓았던 명성, 명예 다 사라집니다. 음행이라는 죄는 엄청 무서운 것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가슴 아프지만 다뤄야 합니다. 제가 다루는 것이 아니고 오늘 성경이 다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많이 지면은 할애해서 오늘 이 내용을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특히 고린도전서에 엄청 깊이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을 외면해서 우리가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행이라는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음행도 수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젊은 남녀가 처녀, 총각이 눈 맞아서 임신을 했습니다. 요즘 사회의 문화는 임신은 혼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가 그러니. 축복이다. 부모님이 결혼을 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다고 인간적으로 인정이 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_고린도전서5:1

 

그러나 바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냐면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을 너희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너희 중에 음행이 있는데 그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근친상간인 것입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그 당시 아버지가 새장가를 든 것입니다. 그 계모와 근친상간을 한 것입니다. 이 것이 교회 안에 왜 벌어지냐.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고린도 시에 그런 문화가 성행하던 곳인 것입니다. 그 곳에 비너스 신전이 있습니다. 제가 고린도 설교 시작할 때 고린도 지역에 대한 배경설명을 했습니다. 고린도 시에는 대표적인 신전이 진짜 많은데 대표적인 신전 중 하나가 성에 관한 비너스 신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공식적으로 창녀가 천 명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창녀가 천 명이 있었다는 말은 비공식으로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비너스 신전에 그 당시에는 신을 섬기는 그런 여자들은 몸을 파는 여자들. 그래서 일본에 가면 일본의 절 밑에는 항상 창녀들이 활동하는 곳이 같이 붙여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과 음행하는 곳이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아시죠. 그러니까 고린도 시는 원래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초기에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는데 교회를 다녔는데 이 사람들이 음행 짓는 것을 구원받았으니까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지 오늘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면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_고린도전서5:2 

 

그를 쫓아내지도 않고 가슴아파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식으로 교회가 그것을 덮고 넘어가고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음행을 저지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가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라고 교회 안에서 음행을 저지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나요? 사도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바울이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은 진리 위에 있어야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사랑자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의 없는 사랑 없고 책임 없는 자유 없습니다. 우리 자유시민이니까 마음대로 남의 물건 훔쳐도 되고 남 때려도 됩니까?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이 공동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책임을 가지고 자유를 지킵니다. 법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것을 질서라고 이야기합니다. 법 없는 자유는 방탕입니다. 방종입니다. 그런 자유는 범죄자가 됩니다. 내 마음대로 남편 죽이고 사람 죽이고. 내 마음대로 술 먹고 음주운전하고. 여러분, 어제 음주운전한 차가 학원 끝나고 가던 중학생을 쳐서 중학생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제가 그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도대체 우리나라 법을 만드는 사람은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음주운전 측정을 거부했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어떤 부모의 자녀라는 것을, 그 집안은 파탄이 났을 것입니다. 중학생이 죽으면 온 집안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제 아이가 그렇게 죽으면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주운전 법은 너무 약합니다. 어제 어떤 70대 할아버지는 음주운전으로 입건이 5차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하루에 음주운전으로 몇 명이 죽는지 아십니까? 음주운전해서 안 걸렸으니까 나는 피해를 안 받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죽어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내 자식이 죽어야 법을 바꾸실 것입니까? 음주운전은 살인죄와 똑같이 적용해야 합니다. 술 먹다가 운전해서 걸리면 무기징역을 때리면 아무도 술 먹다가 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음주운전해도 벌금만 받고 풀어줍니다. 이것이 무슨 법입니까? 그러니 술 먹고 음주운전하고 잠깐 쉬었다가 연예인들 다시 복귀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 안 죽어봐서. 진리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진리 없이 사랑하면 그 사랑은 그릇된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부모도 자녀를 사랑할 때에 진리를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냥 사랑하면 그릇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공의와 사랑, 심판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쫒아내라. 음행한 사람을 쫓아내라.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해요?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해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문화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문화입니다. 어제도 음주 운전한 사람 얼굴 다 가리고 사람이 죽었는데 중학생이 죽었는데 가해자 인권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가해자 인권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전부 술 먹고 운전하는 인간들일 것입니다. 다 죽일 놈들입니다. 음주운전은 최악입니다.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보셨습니까? 그러니 이 한 사람이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한 사람 때문에 교회 전체 어떻게 되죠? 세상의 문화가 교회에 들어와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설교를 하고 있는데 가르침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용납한다는 것입니다. 그 회개는 무엇이냐면 다시는 그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회개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회개했는데 하나님이 용서해주셨는데 공동체가 그 사람을 용서해주었는데 똑같은 죄를 반복하면 그러면 성경은 가차 없이 내쫒으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단입니다. 이단은 그 회개의 기회도 안 줍니다. 이단이 끼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공동체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어라. 그런데 또다시 같은 죄를 지으면 치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어렵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나머지 영혼들은요? 하나님은 한 영혼의 대상이 나머지 영혼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찢어지는 가슴을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이냐. 

 

-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_고린도전서5:6-8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_고린도전서5:6-8

 

이것을 사도바울은 누룩 이야기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은 곰팡이입니다. 곰팡이의 특징이 퍼집니다. 제 아이들이 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박스째사서 놓고 먹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박스에 귤이 많이 모여 있으면 섞습니다. 한 조각이라도 먹어야 하니 그냥 둡니까? 그냥 두면 그 귤과 닿는 다른 귤들은 다 같이 썩습니다. 누룩은 퍼지는 것이 특성입니다. 바울은 누룩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지 전에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암이 그렇습니다. 위암에 걸렸다. 전이가 되지 않았다. 아직 전이가 되지 않았는데 위에 암이 있다면 위가 아까워서 위를 살려봐야지 이렇습니까? 바로 자릅니다. 다른 곳에 전이되면 우리 몸이 죽어버리니까. 위를 아낄 틈이 없습니다. 전이가 안 된 상태에서 장기에 암이 생기면 잘라내야 합니다. 그것을 살려내겠다고 치료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음행의 죄를 누룩으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음행이 일어나면 음행의 죄를 지으면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그러면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묵은 누룩을 내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라내지 않으면 전체에 퍼져서 썩어버리니까 변질되니까 한국 교회 전체가 다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도 그렇게 해도 되나보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살아도 되나보다. 하고 또 음행을 저지르니까. 음주운전해도 되는거구나. 그렇게 사람 쳐서 죽여도 술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형량이 1,2년으로 끝내는 구나. 벌금내면 괜찮구나. 라고 하니 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묵은 누룩을 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새 누룩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 새 누룩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이야기합니다. 8절에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 이 새 누룩은 예수 그리스로도 말미암아 순전해지고 진실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_로마서4:2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으신 것이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는 크리스마스보다 부활절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에 부활절이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의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주일에 칸타타도 하고 간증도 하고 온 성도가 모여서 부활을 축하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축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상하게 부활주일이 좋았습니다. 목사님이 부활주일에 설교하고 칸타타하면 감동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힘들고 어려웠던 제 삶, 제 가정, 제 모든 삶에 소망이 없었습니다. 전 제 미래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제 모든 삶에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소망이 되셨다는 사실이 믿어졌고 그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지니 제 삶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삶이 변화되었고 제 마음이 소망이 생겼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나 같은 연약한 사람도 나 같은 무능한 사람도 변화될 수 있겠구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께 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누룩으로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는 말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인데 새 누룩에는 번지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되면 죄가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_고린도전서5:9-12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_고린도전서5:9-12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새 누룩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런 세상 사람들도 너희가 내쫓아내고 잘라내야 하느냐.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러면 너희가 세상에 살 수 없기 때문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하고 교제하는 것은 허락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같이 회사생활도 하고 공동체 생활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명을 가지고 그들과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죄라는 것은 그 순간적으로 못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자기 인생을 쌓아온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고 나면 굉장히 후회스럽습니다. 그리고 후회뿐 아니라 깨닫습니다. 무엇이라고 깨닫습니까? 내가 그 때 신호를 지켰어야 했는데. 내가 그 때 거기 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내가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거기에 도장을 찍지 않았어야 했는데. 내가 그 사람과 같이 어울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런 깨달음이 죄를 짓고 나서 오는 것입니다. 후회입니다. 내가 술 먹고 운전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미 벌어져 버렸습니다. 그 하찮은 죄 때문에 내 인생이 무너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찮은 이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수준을, 인간의 수준을 높게 책정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수준을 높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목회자들이 설교하고 목회 일을 하다 보니 자기들이 영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고 목회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종인데 너희들은 안 그러나 보네? 목회자들이 충만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 무섭기 때문에.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십자가를 붙잡으라고 자신을 겸비하라고 성경은 메시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 충만해. 나는 믿음이 충만해.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성도들 한 영혼 한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한 두 사람의 죄 때문에 전체가 묵은 누룩이 되어버리면 교회는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너를 음녀에게서 지켜줄 것이다. 여기서 음녀는 단순히 음행의 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음행뿐 아니라 탐하는 것, 속여 빼앗는 것, 우상 숭배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말씀 설교에 음녀가 저 모퉁이 틀에 서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은 죄가 아닙니까? 그 여자를 만나서 죄를 지어야만 후회를 하실 것입니까?

 

- 죄를 짓게 하는 환경에서 멀리하라_로마서5:1-11, 6:12-23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냐면 죄 짓는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 분명히 로마서 5,6장에 죄를 짓게 환경에서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할 것인데 첫 째는 죄를 짓지 않을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돈을 만지만 돈 사고 날 확률이 높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환경에 있으면 나도 남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환경에 늘 있다면 그럼 나는 술을 먹을 수밖에 없고 술의 유혹에 넘어갈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자주 만나면 차를 같이 타고 다니거나 계속 같이 만남이 지속되다 보면 문제가 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불륜이 내 와이프보다 이쁜 사람과 불륜이 나나요? 아닙니다. 처녀, 총각은 그래도 됩니다. 한 공간에 오래 있어도 됩니다. 왜 유부남, 유부녀가 그런 만남을 가지십니까? 저는 제가 공개를 안 해서 그렇지 그런 상담을 많이 받습니다. 카톡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식사는 요즘 잘하고 계시나요? 유부녀한테 왜 그런 질문을 합니까? 요즘 공기가 차갑네요. 카톡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습니다. 왜 유부남이, 유부녀가 걱정을 합니까? 모든 시대가 다 타락하고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기준 삼아서 교회는 살아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고린도 시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이런 식인 것입니다. 밖에 다 그렇게 하는데. 창녀를 만나는 것이 합법인데요. 바울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해.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옥에도 가게하고 천국에도 가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목사들이 젊은 여자와 단 둘이 술을 먹습니까? 저희 교역자들이 술 먹다가 걸리면 바로 계약 해지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나 성직자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엄격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을 잘못 배웠습니다. 남에게 엄격한 신앙을 배웠습니다. 신앙은 나에게 엄격한 것입니다. 남에게는 관대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술을 드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을 건전하게 즐기십시오. 그러나 교역자는 술을 즐겼다면 바로 아웃입니다. 저희 성도를 그런 목사에게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그런 교역자에게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_로마서5:1-11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니까 끝났어. 구원받았으니까 끝. 이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누리라는 단어는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누리다 라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 화평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어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해라. 하나님과 화목해라.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우리의 믿음으로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하냐면 하나님과 화평하고 화목하도록. 그래서 그 뒤에 하나님과 화평과 화목을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그 일에 환난,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그 연단을 지나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엄청 행복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즐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화평함으로 받은 영광을 위한 소망은 우리 인생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조금 가난하게 살아도 조금 바보같이 살아도 우리 인생이 끝났을 때에 우리 인생을 두고 자녀들이나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에 참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구나 평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맥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그러다가 죄를 짓는 환경과 가까워지고 그래서 대단하고 큰 일했는데 죄로 인해서 무너지면 그 인생은 부끄러운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는 환경을 버리고 죄를 짓지 않을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환경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짓는 환경에서 벗어나 은혜 받는 환경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리에 가야하고, 기도하는 자리에 가야하고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나쁜 사람과 어울리면 내가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스스로 거룩하다고 의롭다고 해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 지혜가 필요합니다. 로마서6:12-23에 보면 의의 종이 되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종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그 당시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 종이 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 종이라는 단어를 썼겠죠? 그 당시 노예. slave. 그 당시 노예는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강아지, 짐승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노예는 허락없이 웃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예 시장에 내다 팔고 죽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너희가 죄의 종노릇하지 말고 의의 종노릇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의의 종이 되어야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_로마서6:19-23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술을 먹고 운전을 하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커리어를 잃어버릴 수 있구나. 그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내가 불륜 저지르면 가정이 깨질 것을 예상하고 이것을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 순간의 죄를 어떻게 참을 수 있죠? 알아야 합니다. 그 죄가 주는 결과, 비참한 최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지혜로 우리에게 말씀을,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진짜 구원받은 성도는 성경을 읽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목숨이 살아있으면 밥을 먹게 되듯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게 되듯이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라고 한 이유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와 가까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을 이길 수 없으니까. 환경보다 더 이길 수 없는 것이 무식함입니다. 무지함. 그래서 성경은 무식하고 무지함을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에 지방의 한 권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저 보이스피싱 당했는데 모아 놓은 돈을 다 빼앗었어요. 모르니 당했습니다. 마귀가 와서 나 마귀야. 음녀가 와서 나랑 사귀면 집안이 파탄 나. 음주운전하면 오늘은 안 걸려. 라고 말해주나요? 모르니까 당합니다. 영적인 것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신앙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보면 너무 무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나 무식하면 목사가 호텔방에서 여자와 단 둘이 술을 마실 수 있나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_로마서6:17

 

교훈의 본이 말씀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나를 본 받아라 라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고린도 시의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나를 본받아라. 이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죄의 종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순종해서 다시 말해 말씀을 다시 배워서 죄에서 자유로워라, 죄에서 벗어나라. 그래서 의의 종이 되어라. 하나님의 축복된 백성이 되어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 환난이 있고 인내가 있고 연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고 나면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꾸셔야 합니다. 죄를 짓는 삶에서, 죄를 짓지 않는 삶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신앙은 환경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성경 읽고 묵상하는 삶으로 제가 신앙서적을 추천하면 읽으셔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알아야 합니다. 죄를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야 하는데 모르니까. 여러분, 기도하는 삶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늘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늘 괴로워하다가 인생이 끝납니다. 그 결과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습관, 실수 무섭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면 내가 죄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교만하냐면 우리가 늘 쳐다보고 있는 것을 우리가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늘 쳐다보는 것이 나를 움직인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게임을 쳐다보고 하고 있으면 내가 게임 조절할 수 있어. 게임 한 시간만 하고 그만 둘 거야. 다 그런가요? 보고 있는 것이 자기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쳐서 복종해서 의의 종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고 이야기합니다.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죄에서 멀리하려고 믿는 것입니다. 죄에서 멀어져야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멀어지도록 행동하셔야 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환경에서 벌어지도록 새로운 환경을 만드셔야 합니다. 건전한 취미를 만드시고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락을 만드시고 교회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 인생에 가져다주는 끔찍한 결과를 성경을 통해서 배우시고 지혜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5장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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